18화
장자방은 비척비척 식당으로 걸어갔다.
푸석푸석한 얼굴에 생기라고는 없었다.
눈 밑은 시커멓고, 남자답고 시원하게 잘생긴 눈은 쑥 들어가서 퀭했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던 얼굴은 하룻밤 사이에 몇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장자방은 무인이었다.
평생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며 살았는데 겨우 어린아이 하나 때문에 몸과 마음이 이리도 고단하다니…….
‘한동안 게으름은 피운 탓인가? 상대가 방주의 여식이라 그런가?’
별 소득 없는 생각에 빠져 흐느적거리며 식당으로 향했다.
개방 총타의 식당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반듯하고, 단정했다.
지금의 방주, 천상이 지은 총타의 많은 건물 중 하나였다.
총타의 식사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거지한테 자기들을 위해 차려진 밥상이 무엇이든 나쁘겠느냐만, 장자방은 입이 까끌까끌한 것이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참… 내가 배가 불렀구나, 밥을 다 남기고…….’
장자방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터벅터벅 걸었다.
머리가 맑지 못하고 기운이 없었기에 어디 구석에 가서 한숨 자고 싶었다.
일단은 별채의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찌 되었든 걸화를 만나서 타일러 봐야 할 것 같았다.
‘걸화에게 연무장을 돌라고 시키고 연무장 바닥에서 눈을 좀 붙일까….’
아직도 사태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장자방의 속 편한 생각이었다.
피로한 장자방이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걸윤의 경고였다.
성질 더러운 걸화의 인내심은 병아리 눈곱보다 크지 못했다.
장자방에 대한 걸화의 미미한 참을성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고, 그와 반대로 하해와 같은 복수심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 깊고 넓은 복수심은 겨우 하룻밤에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의 것은 겨우 예고일 뿐.
그는 이미 걸화의 심기를 건드려버렸고 걸화는 그를 향한 복수의 칼날… 아니, 짱돌을 골랐다.
걸윤이 경고했음에도, 흘려들은 건 장자방이었다.
걸화는 복수는 미루지 않고 꼭 해내고야 마는 성미였으니.
크― 이것이 진정한 무인의 자세가 아니던가.
기운 없이 걷던 장자방이 걸음을 멈추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몸이 힘들어서 그런가? 속이 왜 이리 안 좋지?’
아랫배가 사르르 아파왔다.
장자방은 걸음을 돌려 터덜터덜 뒷간으로 향했다.
뒷간은 어디나 지저분하다.
총타의 뒷간은 전각과 같이 흙과 지푸라기를 개어 지은 것이었다.
겉만 본다면 어지간한 고관대작의 집 뒷간만큼이나 훌륭했다.
하지만 그 내부는 유난히 더러웠다.
식당이나 전각은 깨끗하게 쓰도록 지시하고 확인하며 검사할 수 있지만, 뒷간은 그게 안 된다.
위생개념이 희박한 거지들은 방주의 지시에 의해 보이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깨끗하게 쓰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뒷간까지야…….
더러운 뒷간이면 어떠랴.
아무 곳에나 싸며 돌아다니던 거지인데, 누가 보지 못하게 가려놓은 곳이면 감사하지.
뒷간에 든 장자방은 바지를 내리고 쪼그려 앉았다.
속이 부글거리며 좋지 않은 신호가 왔다.
“휴…….”
기운 빠진 몸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벌컥―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누군가 급작스럽게 뒷간의 문을 열어젖혔다.
“아씨… 어떤 놈이…….”
짜증스럽게 욕설을 내뱉던 장자방은 입을 벌린 채, 그 자세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문이 열린 자리에는 걸화가 씩 웃으며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햇살이 역광으로 걸화를 비추었다.
성스러운 인물에게나 내비친다는 금빛 후광이 걸화를 휩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 건 장자방의 착각일까?
눈부신 후광 속의 걸화는 양쪽 콧구멍에 쑥 잎을 쑤셔 넣고, 허리에 손을 떡하니 올린 채 웃고 있었다.
왼쪽에 찬 커다란 주머니에 무언가가 불룩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하하하하하하.”
걸화가 통쾌하게 웃으며 장자방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장자방의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났다.
번뜩 정신이 들어 손으로 앞을 가렸다.
밝은 빛 속의 상거지 외모지만, 그래도 여아라고 하지 않던가?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일장쯤 떨어져 뒷걸음질을 멈춘 걸화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한쪽 어깨를 크게 돌려 앞을 향해 쭉 내밀었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장자방을 향해 짱돌이 날아왔다.
장자방은 급하게 손을 들어 돌을 막았다.
“아이쿠!”
서둘러서 앞을 가렸다.
또다시 돌이 날아왔다.
돌을 막았다, 다시 앞을 가렸다.
계속해서 돌이 날아왔다.
장자방은 돌을 막… 아니, 앞을 가렸… 돌을… 앞을… 돌… 앞… 돌… 아… 아무튼 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슈웅―
슈우우욱―
슉―
돌멩이는 우후죽순으로 날아와 장자방의 머리와 어깨, 가슴과 무릎을 두루두루 맞추었다.
돌이 명중한 곳에 싸한 통증과 함께 피가 배어났다.
흙을 개어 만든 뒷간의 벽면이 움푹움푹 패였다.
덩이 진 흙가루가 떨어져 내리며 푸슬푸슬 먼지가 날리고 텁텁한 냄새가 났다.
똥통으로 빠진 돌멩이가 잔잔한 그곳에 파문을 일으키며, 똥물이 솟아올랐다.
까 내린 엉덩이를 척척하게 적시고도 높이 도약했다.
지독하게 역겨운 냄새에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장자방은 쪼그리고 앉은 다리에 힘을 바짝 주어 뒤로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똥물이 튀고 벽의 흙가루가 떨어져 내리고, 돌에 맞은 곳에서 피가 났다.
그렇게 한참을 짱돌을 던져대던 걸화가 혀를 쏙 내밀고는 잽싸게 달아나버렸다.
걸화가 달아나고도 정신을 차리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허!”
정신이 든 장자방은… 그만 똥물에 빠져서 확!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아프고 더럽고 수치스러웠다.
기가 막히고 난처하고, 곤란하고 어처구니가 없고… 똥이 엄청 묻었다.
돌멩이의 여파로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다 튀어 오른 똥물은 높이도 날아올라 장자방의 얼굴과 백회까지도 점령을 했다.
똥이 묻었다기보다는 똥물을 뒤집어썼다는 표현이 더 바른 것 같은 몰골이었다.
대충 바지춤을 올리고 뒷간에서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왔다.
그의 뒤꽁무니에 똥으로 만든 발자국이 자박자박 걸어간 그의 걸음을 대변해주었다.
똥 발자국은 뒷간에서부터 한참 동안 이어졌다.
장자방은 도저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물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지나가던 거지들이 코를 막고 장자방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어기적대며 앞으로 걸었다.
장자방이 우물가에 도착했을 때, 어린 개방도 몇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중 한 명이 장자방을 막아섰다.
눈이 또랑또랑하게 생긴 어린 개방도였다.
“규지검인님, 이곳은 안 됩니다. 저희가 푸성귀도 씻고, 그릇도 닦고 하는 곳인데 이곳에서 그런… 몸을 씻을 수는 없습니다.”
생김만큼이나 똑 부러지는 목소리였다.
장자방은 그 어린 방도에 대한 기억이 없었지만, 그 개방도는 장자방을 아는 모양이었다.
“…….”
예의 바르지만 단호한 말에 장자방은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리가 멈춰버린 것 같았다.
“저쪽 산으로 쭉 올라가시면 냇가가 나옵니다. 몸은 그곳에서 씻으십시오. 혹시 여벌의 옷이 필요하시면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어린 개방도가 손가락으로 한쪽의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탁하네.”
장자방은 짧게 말하고 다시 산을 향해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똥이 굳고 있었다.
* * *
무섭게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 장자방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따뜻한 봄기운이 스미고 있었지만, 아직 겨울의 그림자가 모조리 걷히지 않아 쌀랑했다.
깊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이가 떨리도록 차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칼날처럼 매서웠다.
그 맹렬한 기운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장자방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감은 눈 아래의 맑은 얼굴이 마치 세상을 달관한 도승과 같았다.
미동 없는 장자방을 향해, 날 선 폭포수가 쉼 없이 떨어져 내렸다.
보는 사람의 치아가 달달 떨리며, 몸이 부서지는 아픔이 느껴졌다.
어린 개방도인 위량은 폭포수 옆에서 장자방을 지켜볼 뿐이었다.
장자방은 한참 만에 눈을 번쩍 뜨고는 천천히 물 밖으로 나왔다.
“제가 말씀드린 냇가에 안 계셔서 한참을 찾았습니다.”
위량이 한 손에 여벌의 옷, 다른 손에는 이가 나간 쪽박을 들고서 말했다.
“씻어내도 여전히 냄새가 지독하구나.”
장자방이 넋이 나간 채로 웅얼거렸다.
“이것으로 문질러 씻어보십시오.”
위량이 들고 있던 쪽박을 내밀었다.
박 속에는 어두운색의 걸쭉한 액체가 들어있었다.
군데군데 덩어리진 것들이 뭉쳐져 있는 꼴은, 뒷간이 다시 생각나는 모양새였다.
“…….”
장자방은 멍하니 쪽박을 내려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에 박하잎과 솔잎, 계피와 칡뿌리, 돼지기름과 벌집, 매화 꽃잎과 금잔화 꽃을 갈아서 섞은 것입니다. 생 꽃잎이 있으면 효과가 더 좋았겠지만, 아직 초봄이라 말려놓은 것을 사용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물에 씻는 것보다는 효과가 좋을 겁니다.”
위량이 또박또박 설명했다.
“…….”
위량이 쪽박을 내미는 통에 얼떨결에 받아든 장자방은 위량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것을 사용하고 나면 냄새는 빠지는데 몸에 붉은 반점과 어루러기가 나는 부작용이 있긴 합니다. 어차피 똥독도 다스려야 하니 비름나물 찧은 것은 몸에 바르면 똥독과 함께 부작용도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위량이 침착하게 말했다.
“…어찌 그리 잘 아는 것이냐?”
위량의 말에도 찝찝하고 끈적한 액체를 몸에 바를 엄두를 내지 못한 장자방이 물었다.
나이도 어린아이가 똥 냄새와 똥독을 다스리는 방법을 너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걸화 아가씨에게 당한 이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그러니 규지검인 님도 너무 괘념치 마시어요. 지난번에 길상 형님께서는 아예 뒷간에 빠지셨습니다. 방주님께서 아시고 경을 치기는 했습니다만 그런다고 고쳐질 아가씨가 아니지요.”
“으흠…….”
장자방은 걸쭉하고 찝찌름한 액체를 보고 길게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 떠서는 몸에 문질렀다.
모양새만큼이나 불쾌한 감촉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장자방은 미간을 구기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