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어떤가? 어서 말해보시게.”
천상이 초조하게 물었다.
“힘들 겁니다.”
의원이 짧게 답했지만, 그의 무겁고 침울한 표정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뭐?”
의원의 얼굴에서 이미 답을 찾았지만, 애써 모른 척 되물었다.
“발목을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닙니다. 환자가 기력이 없어 움직이지 못한 것이지… 기본적으로 환자의 건강이 너무 좋지 못합니다. 나이 들고 몸이 약한 분이 사흘 내내 한데서 지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 기능을 못 하는 장기들이 탈이 난 겁니다. 지금이라도 모셔와, 임종이라도 지킬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의원이 말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 크게 다친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방법이 없단 말인가?”
천상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물었다.
“유모께서 연세가 많고, 워낙 기력이 약한지라 이번 일이 아니었어도 두 해를 넘기기 힘드셨을 겁니다. 이번 일로 시일을 조금 앞당긴 것이지요…….”
의원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 이런 것이었다.
사람의 명이라는 것이 의원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유모는 의원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깡마른 여인이 어찌나 바지런하고 야물던지… 방주의 세 아이를 반듯하게 키워냈다.
거의…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으니… 뭐…….
워낙 옹골차고 굳센 여인이라 연세가 들고 건강을 잃어간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미리 신경을 좀 쓸 것을…….’
누가 뭐라 말하지 않아도 유모에게 미안했다.
의원이라는 자가 지척에서 환자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이런… 내가 연세도 많은 분을 너무 힘들게 했던가… 걸화의 유모를 새로 알아볼 것을…….”
죄책감이 천상의 가슴을 쿡쿡 찔러댔다.
“인명은 재천이라 하였습니다, 방주님께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은 방주 천상뿐 아니라, 의원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의원의 말에도 천상은 마음의 짐이 덜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유모께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걸화를 다른 이에게 맡겼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이화는 걸화의 어미가 데리고 온 유모였다.
그녀의 유모였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천상보다 더 부모 같았기에 당연히 그녀에게 걸화도 맡겼는데, 생각해보면 그녀의 나이에 힘에 부쳤을 것이다.
거기다 걸화가 워낙 유난스러웠으니…….
천상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음이 먹먹했다.
천상은 다시 의약당으로 들어갔다.
유모의 상태를 보니 의원이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걸화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유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맞아요…. 내가… 하… 늘그막…에… 내 인생을… 살아보려… 하… 했어요, 하…….”
유모가 힘겹게 말을 했다.
“……?”
천상의 눈이 커졌다.
유모가 걸화를 위해 되지도 않는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
천상이 보아온 유모는 내내 자신의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맡아 키워온 걸화를 많이 예뻐했고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다.
그런 분이 마지막, 돌아가시는 길에도 걸화를 위로하려고 힘을 쥐어짜고 있었다.
“난 찬성이야, 무조건 찬성이야. 얼른 나아서 유모 하고 싶은 거 더 많이 하고 살아, 훌쩍…….”
걸화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을 활짝 벌리고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하… 아가씨를… 돌보는… 것이… 행복했…어요…. 아가씨… 하…헉…….”
“알았어… 훌쩍….”
걸화가 목이 떨어질 듯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님… 제…가 부탁… 하나만… 헉… 해도… 될까요?”
유모가 힘겹게 말했다.
“그러시게, 그러시게.”
천상이 서둘러 유모가 누워있는 침상 옆으로 다가가 유모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아가씨가… 하고… 싶은…대로 살게… 해…주세요…….”
“…….”
유모의 마지막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리라 다짐했던 천상이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목이 콱 막힌 것처럼 답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유모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제… 부…탁입니다, 마지막… 부…탁.”
유모가 간절한 얼굴로 겨우 말을 내뱉었다.
“…….”
천상이 마지못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행복…하…세요…….”
유모의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걸리며 잠자듯 눈을 감았다.
“유모! 유모!! 유모오오오!!”
걸화가 악을 썼다.
눈에서 굵은 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의원!! 어서 와보시게, 어서!”
천상의 다급한 외침에 의원이 유모를 향해 달려왔다.
급히 유모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은 의원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 *
늦가을, 메마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깨끗한 하늘은 높았고 햇살은 맑았다.
연이어 기분 좋은 청명한 날씨가 이어졌다.
“돌아가신 유모께서 편안하신가 봅니다.”
“유모의 상을 치르고 계속 기후가 좋지 않습니까? 호상입니다. 그러니 그만 털고 일어나십시오.”
장로들이 우울감에 빠진 천상을 위로했다.
천상의 무거운 기분 탓에 개방 전체가 활기를 잃고 있었다.
천상은 개방의 방주였다.
천상의 기분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개방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자신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유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으흠…….”
길게 숨을 내뱉은 천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신 유모에게는 죄송하지만, 계속 이리 지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장로들의 말이 맞았다, 털고 일어나야 했다.
* * *
하얀 상복을 입은 걸화가 머리를 벽에 대고 초점 없는 눈으로 앉아 있었다.
유모의 상을 치른 지 닷새가 넘었건만 걸화는 산송장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한자리에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걸화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아이가 하루하루 수척해져 가니, 보는 사람은 속이 답답했다.
“야… 걸화야… 밥 먹자. 야… 나도 힘들어, 야아아아…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이러다 진짜 네가 죽는다. 네가 좋아하는 닭고기 죽이야, 내가 떠먹여 줄게… 너는 입만 벌려, 응? 자! 아~ 해봐 아~”
걸윤이 김이 나는 죽을 한 숟가락 떠서 호호 불어 꽉 다문 걸화의 입에 밀어 넣으려고 애썼다.
“하…지…마…….”
걸화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힘없이 말했다.
“걸화야…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걸윤이 걸화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없어…….”
“으흠… 오라비랑 누가 돌멩이 잘 맞추나 내기할까?”
걸윤이 분위기를 바꾸어 물었다.
얼굴만 마주하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걸화와 걸윤이었지만, 오라비라고 매일 찾아와 뭐라도 먹여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마…….”
“흠…….”
걸윤이 숟가락을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개방도들이 걸화와 걸윤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떤 방향으로건 걸화의 고집은 알아줘야 했다.
“쯧쯧…….”
천상이 혀를 찼다.
그도 곡기를 끊은 딸아이의 전각에 매일 걸음을 했다.
어찌하건 어린 딸아이를 살리고 봐야 했다.
“걸화야! 아비와 얘기를 좀 하자꾸나. 내 방으로 오거라.”
천상의 말에 걸화가 며칠 만에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쯧…….”
천상은 언짢은 얼굴을 하고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 * *
며칠 사이 얼굴이 반쪽이 된 걸화가 기운 없이 앉아 있었다.
씻겨놓으면 반질반질 윤이 흐르던 얼굴은 푸석푸석 거칠었다.
호기심과 장난기로 반짝이던 눈은 초점을 잃고 흐리멍덩했다.
원래도 살집이 없던 몸은 비쩍 말라 상복이 헐렁거렸다.
천상은 곡기를 끊은 여식을 보고 침음을 흘릴 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천천히 차를 마시며 딸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걸화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천상이 아닌 어딘가를 빈 동공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흠…….”
천상이 침음을 흘렸다.
“…….”
“유모는 호상이었다.”
말을 하는 천상도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의 의욕을 잃은 딸을 위해서라면 호상이라 우겨야 했다.
호상이 되어야 했다.
천상의 말에 걸화가 미간을 일그러트리며 매섭게 노려보았다.
천상도 유모의 죽음이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다.
자신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리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신을 괴롭혔다.
유모에게 미안하고, 무심했던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힘들었다.
하지만 걸화에게 그런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유모의 죽음이 아무리 슬프고 안타까워도 살아있는 딸아이가 더 소중했다.
“칠순을 넘겼으면 좋았겠지만 지금 가셔도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네 어미와 걸부, 걸윤이와 너까지 본인 손으로 이리 장성하게 키우고 돌아가셨으니 그분은 행복하게 사시다 돌아가신 게야.”
말을 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
걸화는 천상을 향한 매서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너도 가실 때 유모의 편안한 얼굴을 보지 않았느냐, 유모의 마지막 말이 네게 행복하라는 것이었다.”
천상이 힘을 주어 말했다.
“…….”
걸화의 붉은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남아 있는 우리는 그분의 유지를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 그게 우리가 고인께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걸화가 의아한 눈으로 천상을 바라보았다.
눈가에는 여전히 이슬이 맺혀있었다.
“…네가 그리도 배우고 싶어 했던 무공을 배우도록 해주마.”
천상이 내내 고민하던 말을 꺼냈다.
“……!!”
걸화의 눈이 커지며 이채를 띠었다.
“으흠…….”
천상은 길게 침음을 내뱉었다.
유모의 유언이 있다고 해도 걸화가 저렇게 고집을 부리며 곡기를 끊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일단은 어린 자식을 살리고 봐야 했다.
‘아가씨도 자기 몸 하나 지킬 정도의 무공을 배워놓아서 나쁠 게 없습니다’라고 설득한 장로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천상의 의도와 다르게 걸화의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