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아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떼어내고 연천의 이마를 살폈다.
그리고 얼굴에 남은 핏자국을 지혈했던 넝마 자락으로 쓱쓱 문질렀다.
역한 냄새와 땟국이 연천의 얼굴에 들러붙었다.
“이제 피 안 나요!”
아이가 누런 치아를 드러내고 말했다.
연천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의 얼굴에서 괴괴한 냄새가 났다.
아이가 딴은 지혈을 하겠다고 한 것인데, 불쾌한 얼굴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얼굴과 상처가 찝찝하고 비위가 상했다.
“휴…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질문을 하는 연천은 정신이 쏙 빠진 것 같았다.
“가… 갑자기 산적들이 나와서…….”
아이가 눈앞의 세 사내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아니… 우리가 산적은 맞소이다. 하지만, 아무리 산적이라도 거지한테 뭔 도적질을 하겠소!”
사내 중 한 명인 장도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머리가 터졌는지 머리카락을 타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맞소! 어린 거지가 숲속에 자고 있기에 죽었나 살펴본 게지.”
다른 산적인 심상이 말했다.
그는 어깨와 가슴께에 옷이 해져 있었다.
“굶어 죽을까 싶어 먹다 남은 육포도 적선하려 했건만 돌아오는 대접이 이게 뭐요!”
나머지 산적인 구평이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이마 한가운데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연천은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했다.
다시 눈을 뜨면 이 모든 게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불행히도 눈을 떠도 아이와 세 사내는 그의 눈앞에 있었다.
아이가 아니꼬운 눈으로 세 명의 사내를 흘겨보았다.
세 명의 사내들도 못마땅한 얼굴로 거지 아이를 노려보았다.
죄 없는 연천은 양쪽을 번갈아 보며 난감해했다.
연천은 곧 세 명의 사내들에게 포권을 하고 허리를 굽혔다.
“대협들, 내가 대신 사과하겠소. 어린아이가 껌껌한 곳에서 자다 일어나 낯선 이들을 보니 무서웠나 보오. 이해해 주시구려, 미안하게 되었소. 소협! 어서 사과하시게.”
세 명의 사내들에게 용서를 구하던 연천이 아이에게도 시켰다.
“…죄,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마지못해 연천을 따라 포권을 하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속으로 세 사내를 향해 욕을 해댔다.
‘아니 지들이 자는 사람을 깨워서 놀라게 해 놓고는 누구 탓을 해!! 돌멩이 몇 대 맞았다고 엄살은… 에잇! 사부님만 아니면 저런 것들 가만 안 두는 건데…….’
“제가 가진 금창약을 드리겠소. 사나흘 상처에 바르면 금세 나을 것이오, 정말 죄송하게 되었소.”
연천이 바랑에서 조그만 도자기 단지를 꺼내어 사내들에게 내밀며 말했다.
사내들은 연천과 거지 아이를 번갈아 보았다.
낡은 의복 차림의 사내와 꼬질꼬질한 거지에게 뭘 더 받아낼 것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사내들이 산적이라고는 하나 산채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말단이었기에 셋이서 뭘 어찌할 수도 없었다.
상대가 사과하니, 못 이기는 척 받아주는 것이 체면이라도 세우는 길이었다.
“거! 앞으로 조심하시오.”
심상이 금창약을 받아들고 말했다.
“그리하겠소이다.”
연천이 예의 바르게 말했다.
세 사내는 연천과 아이를 힐끔힐끔하다 숲속 어딘가로 사라졌다.
거지 아이는 사라지는 세 명의 사내를 못마땅한 얼굴로 쏘아보았다.
‘이씨… 사부님만 아니면 내 저것들을 가만히 안 놔두는 건데…….’
세 명의 사내들이 사라지자, 아무도 없는 깊은 숲에는 연천과 거지 아이만 남게 되었다.
연천이 거지 아이를 조용히 직시했다.
거지 아이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연천의 시선을 피했다.
“흠… 소협… 혹시 나를 쫓아다니는 것이오?”
연천이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저의 사부님이 되어주십시오! 사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거지 아이가 빠짝 긴장한 얼굴로 크게 말했다.
“으흠…….”
연천이 침음을 흘리고 말을 이었다.
“소협, 나는 누구의 사부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니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안 되오, 미안하오.”
연천은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찬찬히 말했다.
연천은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많이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편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동행이라니, 더구나 제자를…….
누군가의 사부가 되기에 연천은 부족한 게 많았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 또한 부담스러웠다.
“왜… 왜? 상황이 안 되시는 겁니까?”
거지 아이는 연천이 거절할 것을 전혀 생각도 못 했다는 듯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개인적인 것이라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는 없지만 미안하게 되었소.”
연천은 정말 미안한 얼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누군가를 건사할 만한 계제가 못되었다.
“그… 그럼… 저는 어찌하라고…….”
아이는 몹시 상심한 얼굴이었다.
그런 아이를 보는 연천의 마음이 불편했다.
“날이 밝는 대로 사람들이 있는 마을에 데려다주겠소.”
“사람들이 있는 마을 어디요? 거기 나 혼자 두고 간다구요?”
연천을 바라보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더니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아이는 떨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상처받은 아이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 시선을 돌려버렸다.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자신의 얼굴이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하나뿐인 의지처를 잃은 얼굴.
“거지들은 모여 사는 경우가 많은데 함께 살던 일행은 없소?”
연천이 조심스레 물었다.
“있었는데… 자기들끼리만 놀고, 나는 안 끼워 주고… 해서… 나왔어요.”
아이가 곧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연천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겪어 본 일이니.
아주 어릴 때의 일이었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드세고 억척스러운 거지들 틈에 조금만 만만해 보이면 우습게 봤다.
따돌리고 먹을 것을 빼앗고, 걸핏하면 단체로 폭행을 가하기가 일쑤였다.
방법은 세 가지였다.
그대로 버티다 병신이 되거나 죽거나, 무리에서 도망쳐 나오거나, 아니면 더 지독하고 드세게 변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아…….”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마음이 짠했다.
그렇다고 아이를 데리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 자기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데다 자신이 하려는 일이 언제 끝이 날지, 어디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연천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연천에게 문파가 있거나 믿을만한 사람이 있으면 맡길 수도 있지만, 연천이 이 세상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자신을 키워준 스승님과 가끔 그들을 찾아오는 숙부님이 전부였다.
스승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숙부님은 남의 가문에서 일하고 있었다.
부탁할 만한 곳이 없었다.
“으음…….”
고민을 해도 해결책이 없었다.
“뭐… 사부님이라고 하는 게 영 불편하시면 그냥 몸종이라고 생각해도 되고, 그것도 불편하면 그냥 따라다니게만 해주세요.”
연천의 고민하는 모습에 일말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 아이가 간절하게 부탁했다.
“흠…….”
연천은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절대 폐 끼치지 않겠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폐를 끼친 아이였지만…….
아이의 얼굴은 절박했다.
“…….”
아이의 마음이 너무 이해되었다.
어린 거지가 혼자 감당하기에 세상은 매정한 곳이었다.
“스승님이 아니면 저는 갈 곳이 없습니다.”
아이가 연천에게 매달렸다.
“…….”
연천은 작고 마르고, 더럽고 품행도 제멋대로인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제발…….”
아이도 연천을 올려다보며, 절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아이의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던 연천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으흠… 좋소, 하지만 스승님이라고는 부르지 마시오. 그리고 음… 좀 씻고 옷도 하나 구입하는 게 좋겠소.”
도저히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연천은 오갈 때 없는 아이를 매몰차게 내칠 만큼 모질지 못했고, 그 아이가 스승님을 만나기 전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쓰렸다.
연천으로서는 많은 것을 감내하고 정한 결정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면 지금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대충 산열매로 식사를 때워서도 안 되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야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연천이 좋아하는 깊은 산속에는 위험한 것들이 많기에 더욱 피해야 했다.
“네!!”
아이의 큰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는 연천이었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바꾸어 환하게 웃었다.
때 끼고 누런 치아가 가지런히 드러났다.
“나이가 몇이오?”
연천이 물었다.
“올해 열여섯입니다.”
아이가 씩씩하게 답했다.
“…….”
연천은 입을 다물었다.
짠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아이는 아무리 잘 봐주어도 열다섯을 넘어 보이지 않았다.
작은 키에 마른 몸, 얼마나 못 먹고 힘들게 살아왔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형님은 몇 살이십니까?”
연천이 자신을 가엾게 생각하건 말건, 그와 동행할 수 있게 되어 신이 난 아이가 물었다.
“혀… 혀… 형님?”
연천이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나는 사부님이 좋은데, 그리 부르지 말라면서요.”
“그렇지… 그래…….”
“몇 살입니까? 저한테 형님은 맞지요? 말씀도 편하게 하십시오.”
아이의 당돌한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천의 키는 최소한 아이보다 머리통 두 개만큼 더 컸다.
“열아홉이다.”
“와… 하필 열아홉…….”
아이가 중얼거렸다.
“응? 열아홉이 왜?”
“나 엄청나게 괴롭히던 거지가 딱 열아홉이라… 헤헤…….”
아이가 말을 하고 멋쩍게 웃었다.
아이의 말에 연천은 다시 한번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자신이 불편하긴 하겠지만, 아이를 거두기로 결정한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연천이 무거운 마음을 지우고, 아이에게 물었다.
“배걸… 걸… 걸… 아! 맞아요, 걸아! 배걸아!!”
“걸아… 구걸하는 아이라는 뜻인가… 누가 지었는지 참…….”
연천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억거렸다.
거지 아이의 이름은 그의 아비가 지은 것이었다.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아주 살짝 바꾸어 연천에게 알려주기는 하였지만, 그 의미가 구걸하는 아이라니…….
아이의 이름을 지어준 아비가 이 사실을 안다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이제 무공을 배울 거라는 생각에 그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