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동행이 생기다】
연천은 방을 한 바퀴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방 한옆에 난 커다란 창을 열었다.
뜨겁고 습한 공기가 밖으로 밀려나고, 마르고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눅눅하고 갑갑했던 기분이 선선하게 번지는 공기에 밀려 흘러나가는 것 같았다.
창은 객잔의 뒷마당으로 나 있었다.
정오의 높은 해가 뒷마당의 모든 것을 눈이 부시도록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연천은 서두르지 않았다.
창밖의 풍광을 구경이라도 하듯이 볼 것도 없는 뒷마당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뒷마당에 있는 것이라고는 마구간과 뒷간이 고작이었다.
오래도록 보아도 마구간에도, 뒷간에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점소이가 말먹이를 줄 시간이 지났지만, 새벽부터 억지로 잠이 깬 그는 빈 탁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 객잔의 손님이라고 해보아야, 연천과 거지 아이 그리고 연천을 감시하는 무인 무리가 전부였다.
오지랖 넓은 무림인들은 이 층 계단을 목을 빼고 바라보며 연천을 기다렸다.
연천이 내려오기만 하면 어떻게 해서든 거지 아이와 다시 엮어 볼 궁리 중이었다.
연천은 이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푸는 것을 포기했다.
그들의 생각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굳어있었다.
거지 아이가 나서서 오해를 풀지 않는다면, 말주변 없는 연천이 해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다시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필요도 없고, 힘든 일에 모험하지 않기로 했다.
연천은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 해봐야 작은 바랑과 낡은 검 한 자루가 전부였지만.
열린 창으로 몸을 내밀어 뛰어내려 사뿐히 뒷마당에 착지했다. 그리고 자연스럽지만, 빠르게 뒷문으로 객잔을 빠져나갔다.
* * *
“아휴! 무슨 말이 길게 필요합니까? 말 안 듣는 인간에게는 몽둥이가 약이오!”
객잔에 모인 무인 중 한 명이 말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에 가늘고 긴 눈이 희번덕거렸다.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감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연천에게 전낭을 내밀었던 팽호연이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또 제자를 버린다면 그건 우리가 나서도 어찌할 수 없는 게요. 그런 인간 말종에게 저 아이를 맡겨서는 아니 되오.”
검은 무복을 입고 검을 차고 있는 사내가 말했다.
“제자를 버리다니… 천륜을 저버리는 것과 같소. 그런 사람에게 어린아이를 맡길 수 없지! 차라리 저 아이는 내가 데려가겠소.”
번들번들한 비단옷을 차려입은 사내가 침 튀기며 말했다.
참견 좋아하는 무인 한 무리가 자신을 위해 모의 중이건 말건, 거지 아이는 더운 국물 요리를 시켰다.
연천에게 한껏 게워내고 속이 헛헛한 참이었다.
본능에 따랐다고는 하나, 술 마신 다음 날의 첫 끼로 꽤나 좋은 선택을 한 셈이었다.
아이는 그릇째로 뜨끈한 국물을 꿀떡꿀떡 들이켰다.
“크어어…어…….”
따끈한 액체가 쑤욱 내려가며 속이 시원하게 풀렸다.
“으아… 좋다……. 크으…….”
국물이 든 사발을 비운 아이는 소매로 입가를 훔치고 입맛을 쩝쩝 다셨다.
‘올라가서 좀 더 잘까?’
머리카락을 벅벅 긁으며 고민하던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객잔에 모여든 이들이 의식하지도 못한 새에 후다닥 뒷마당으로 뛰어나갔다.
* * *
연천은 금세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나와 그들 속에 섞이었다. 거기서부터는 서두르지 않았다.
하북에서 알아낸 것은 별로 없지만, 이곳을 뜨기로 했다.
연천은 하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정말이지 인적 없는 숲이 그리웠다. 산에서 하루를 보내고 하남 쪽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북에서 하남으로 넘어가는 곳에 위치한 산은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았다.
워낙 왕래가 많은 산이라 사람들이 다니기 편하게 길까지 나 있었다.
연천은 잘 만들어진 산길을 피해 인적이 없는 숲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지고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을 지나 커다란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큰 나무의 그늘에 가려 바로 아래에는 키 큰 식물이 자라지 못했다.
나뭇가지가 축축 늘어져 아늑한 그곳은 하룻밤을 보내기에 그만이었다.
연천은 자그마하게 불을 피우고, 나무 열매로 저녁을 해결했다.
이틀간 거북하고 마뜩잖던 마음이 푸른 녹음에 위로받았다.
참으로 안온했다.
든든한 나무 기둥에 기대어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 * *
연천은 해도 뜨지 않은,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작게 피운 모닥불은 꺼져있었다.
걱정 없이 잠이 들어 그런지 몸이 상쾌하고 가뜬했다.
일어나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
몸을 풀던 연천은 꺼진 모닥불 가까이 붙어 있는 검은 그림자에 동작을 멈추었다.
작게 몸을 웅크리고 있는 짐승 같았다.
산속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연천은 최대한 기척을 내지 않고 모닥불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검은 그림자 바로 옆에 그의 바랑이 있었기에.
짐승을 자극지 않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몸을 숙여 바랑을 집어 들었다.
바랑 옆, 짐승을 돌아보던 연천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답답하다 싶은 정도로 감정 표현이 서툰 연천이 귀신을 본 것보다 더 놀란 얼굴이 되었다.
몸은 생각과 상관없이, 벌써 뒤로 몇 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모닥불 옆에 누워 있는 그것은 바로 그, 거지 아이였다.
연천은 놀라다 못해 무서웠다. 기척을 최대한 줄이고 숲 깊은 곳까지 도망 온 연천을 찾은 것도 놀라웠고, 이토록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것에는 두려움마저 일었다.
수련이고 뭐고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저 무시무시한 거지 아이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아무리 잠들었다고 하지만 무공을 익히지 못한 거지 아이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럼 이 아이가 무공을 익혔단 말인가?
바로 옆에서 눈치도 못 챌 정도의 높은 수준으로?
무림이란 이런 곳인가?
사부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했던 것이 떠올랐다.
‘무림에서는 노인과 여인과 아이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그 말.
‘거지 복색을 한 어린아이의 무공이 이토록 높은 경지에 있다니…….’
거지 아이의 무공 경지가 어떠하든, 그 정체가 무엇이건 연천은 그 아이와 가까이 있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저 아이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이틀 동안 당했던 몸속 조직 하나하나가 말하고 있었다.
연천은 스승님이 돌아가신 며칠을 제외하고, 십수 년 동안 하루도 빠트리지 않은 새벽 수련을 건너뛰고 거지 아이로부터 도망가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저 아이로부터 멀어져야 했다.
최대한 멀리.
연천은 검과 바랑을 챙겨, 조용히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이의 무공을 생각했을 때,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경공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어쩌면 하남이 아니라 더 멀리, 다른 곳으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연천은 내력을 쓰지 않고도 제법 빠른 속도 숲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주위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숲에서 산 연천에게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꺄아아아아악!”
새된 비명소리가 어두운 공기를 찢으며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악!”
곧이어, 또 다른 비명이 산을 울렸다.
연천은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하아…….”
거지 아이가 있는 방향이었다.
아니, 그 아이의 비명이 맞았다.
연천의 마음속에서 두 마음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정말 가고 싶지 않다. 저 아이와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아이가 껌껌한 산속에 홀로 있다가비명을 지르는데 어찌 모른 척한단 말인가.
‘나보다 무공이 뛰어난 것 같던데 굳이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기는 할까?’
‘그래도 아직 어린아이인데…….’
연천은 머리를 흔들어 복잡한 생각들을 털어냈다.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리에 내공을 실어 거지 아이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 * *
“허!”
거지 아이가 있는 곳에 당도한 연천은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역시 저 아이와 연관이 되어 좋은 일이 없었다.
“꺄아아악!”
아이가 찢어지게 비명을 질러대면서,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돌멩이를 꺼내 앞의 세 사내에게 던져대고 있었다.
아이는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지만 돌멩이는 던지는 족족 명중이었다.
“으아아악!”
돌을 맞는 사내들도 비명을 질러댔다.
발을 동동 구르며, 요리조리 몸을 피했지만 날아간 돌은 그들의 몸에 정확하게 꽂혔다.
연천이 다가온 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사내들도 돌을 피해야 했으니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비명도.
연천이 아이를 말렸다.
“소협! 그만하시게.”
아이에게 다가가,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꺄아아아악!!”
아이는 연천이 누군지 인식하지 못한 듯 돌멩이를 든 손으로 있는 힘껏 연천을 내리쳤다.
그러더니, 다시 눈앞의 사내들을 향해 돌을 던져댔다.
“꺄아아악!!”
한껏 비명을 질러대면서.
“으아아악!”
사내들도 소리를 질렀다.
연천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이 아이와 한 공간에만 있으면 늘 있는 일이었다.
아이에게 맞은 이마를 손으로 만졌다.
찝찔한 액체가 만져졌다.
“휴우…….”
연천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꺄아아악!”
“으아아아악!”
아이와 사내들은 누가 더 목청이 높은지 내기라도 하듯이, 그 누구도 멈추지 않고 더욱 소리 높여 악악거렸다.
“소협!! 그만!! 그만하시게! 소협!”
연천이 내공을 실어 크고 단호하게 소리쳤다.
아이가 돌을 든 채로 동작을 멈추었다.
눈을 껌뻑이며 눈앞에 있는 세 명의 사내와 연천을 번갈아 보더니, 연천에게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이려고 했다.
“하지 마시오, 소협! 나는 괜찮으니 예의 차릴 것 없소, 괜찮소.”
연천이 감정을 꾹 누른 목소리로 아이를 말렸다.
아이가 돌로 내려친 이마에서 피가 솟아, 한쪽 눈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악! 사부님! 괜찮으세요?”
아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바랑에서 몸을 닦는 천을 꺼내려던 연천이 동작을 멈추었다.
그 유일한 천으로 아이의 더러운 얼굴을 닦고 버렸던 것이 떠올랐다.
“이걸 어째요! 어째!!”
아이가 야단스럽게 발을 굴리다 자신이 걸친 넝마의 소매로 추측되는 부분으로 연천의 이마를 꾹꾹 눌러 피를 닦았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악취가 풍겼다.
연천은 숨을 멈추었다.
아이는 지혈을 하는지 입고 있는 넝마 자락으로 연천의 이마를 오래도록 꾸욱 눌렀다.
연천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