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연천이 새벽 수련을 마친 시간이기는 하나, 워낙 이른 새벽부터 하는 것이라 이제 겨우 동이 트고 있었다.
보통 때였으면, 객잔 일 층의 식당은 등불도 켜지 않고 시커먼 어둠만 차지하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평소와 크게 달랐다.
우후죽순으로 주인장을 찾아와 식사를 내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통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방에서 요리도 겸하는 주인장은 새벽에 나간 돼지 구이에 소금은 쳤는지, 소채볶음 양파의 껍질은 깠는지 말았는지도 헷갈렸다.
만두를 나르는 점소이가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해댔다.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은 눈가로 찔끔 삐져나온 눈물을 옷소매로 대충 찍어내고는 음식을 날랐다.
연천은 시끌벅적한 일 층 식당으로 내려가면서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다시 이 층으로 올라가 좁은 계단을 통해 뒷마당으로 빠져나갈까 고민하는 사이, 일 층에서 아침을 해결하던 이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연천을 올려다보았다.
“설마 또 제자를 버리고 가는 건 아니겠지?”
누군가 혼잣말인 듯 연천에게 들리게 말했다.
연천을 도발하는 자의 등에는 어린아이만 한 도가 매달려 있었다.
소매 없는 옷을 입은 그자의 팔뚝에는 울룩불룩, 돌덩이 같은 근육이 붙어 있었다.
“에이… 설마…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 또 버리겠어?”
도를 맨 자의 말이 신호탄인 듯 다른 이가 연이어 비아냥댔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버리기가 더 쉬운 법이네.”
또 다른 이의 목소리였다.
연천의 미간이 구겨졌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탁자 두 개에 나누어 앉아 연천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연천이 객잔을 나가기만 하면 막아서겠다는 의지를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
연천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의 수를 세었다.
열셋, 이기는 것이 아니고 그저 도망치기만 하는 것이라면 가능할까?
열세 명을 하나하나 훑었다.
꽤 강해 보이는 자도 두어 명 있었다.
도망치다 잡혀도 문제지만, 지금 움직이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목만 집중시킬 뿐이라고 판단했다.
새벽에 수련을 포기하고 도망을 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끄응…….”
연천은 길게 침음을 흘렸다.
* * *
어제저녁, 거지 아이와 연천을 지켜보았던 대부분이 객잔에서 묵었다.
덕분에 그저 그런 객잔은 오랜만에 꽤 괜찮은 매출을 올렸다.
밤에 묵은 이들은 동이 트기도 전에 식당으로 내려와 주인장을 깨워댔다.
도의를 저버린 스승이 도망을 가는지 어쩌는지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 덕에 주인장과 점소이는 꼭두새벽부터 잠에서 깨야 했다.
‘다 의를 위한 일이니, 그 정도쯤이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덕분에 돈도 벌었으니 손해 볼 것 없지, 암…….’
이것이 무림인의 사고였다.
하! 이곳이 어디인가?
오지랖이 넓어도 과하게 넓은 이들이 버글대는… 아니,
도리와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초개처럼 버리는 이들이 숨 쉬는 곳.
협의와 의리를 지키는 자들이 판치는, 바로 무림 아니던가.
* * *
“으으…으…….”
요란하게 코를 골아대던 거지 아이가 꿈틀거렸다.
겨우 실눈을 뜬 아이는 다시 의식을 잃고 싶었다.
지독한 고통이 아이를 괴롭혔다.
누군가 머리통을 깨부수는 것과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전날 먹었던 오리고기가 뱃속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조금의 충격만 가해져도 배를 뚫고 몸 밖으로 나올 기세였다.
지독한 소갈증이 일었다.
“으…으…….”
움직일 때마다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우…울…으…….”
아이는 네발로 침상 아래로 기어 내려왔다가, 급하게 아무거나 잡고 일어섰다.
계속 사족보행을 하다가는 오리고기가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쉬지 않고 머리통을 내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으…으…….”
벽을 두 손으로 짚으며 천천히 물을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두 시진 후 청소하는 점소이의 입에서 욕설을 내뱉게 만든 시커먼 손자국을 만들면서.
아이는 있는 힘을 끌어모아 쉬지 않고 아래층 식당으로 향했다.
* * *
“어! 저기 오는군.”
거지 아이를 향한 반가운 목소리.
그 몰골로 어디 가서 이리 환영을 받겠는가?
아이 인생에 다시 없을 환대였지만, 한 발짝 내딛는 것이 태산을 옮기는 것만큼이나 힘든 아이의 귀에는 그딴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어젯밤에 저 소협이 술을 꽤 마셨나 보오?”
환대에 이어 염려의 목소리까지.
염려를 해주면 무엇 하랴?
아이에게는 그깟 것보다 한 모금의 물이 더 간절했는데.
“어린 게 뭘 얼마나 마셨겠어? 그저 한두 잔 했겠지, 먹은 것도 없는 거지 아이이니 금방 술에 취한 게야.”
조그마한 몸에 오리고기 한 마리와 네 병의 죽엽청이 들어갔다는 것을 모르는 이의 태평한 소리였다.
“쯧쯧… 불쌍한 아이로군.”
아이 때문에 국수 한 젓가락 입에 대어보지 못한 연천의 울화통이 터질만한 말이었다.
“한데… 아이가 이상한데? 몸이 성치 못한 게 아닌가?”
이 한마디가 연천을 감시하는 이들의 유일한 바른 말이었다.
요상한 신음을 흘리며 겨우 한 발짝씩 떼어내고 있는 아이는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럼 몸도 성치 않은 제자를 버린 게야?”
결국 그들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아이를 걱정하며 웅성거리던 이들은 다시 연천을 노려보았다.
그들의 눈은 연천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몹쓸 놈’이라고.
아이는 객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한 계단 한 계단을 힘겹게 내려왔다.
그리고 연천이 있는 탁자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앉았다.
앉아서 아이를 지켜보던 이들 중 몇이 인상을 구겼다.
“사부라는 작자가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모양이군.”
연천을 노려보다가, 다시 아이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었다.
그들 중에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
질 좋은 비단옷을 입고 있는 그는 척 보아도 부유한 가문의 자제로 보였다.
그는 하북팽가의 막내아들 팽호연이었다.
집이 멀지 않아 객잔에 묵을 필요가 없었지만, 거지 아이가 걱정되어 하룻밤을 묵고 이른 새벽부터 객잔을 지키고 있던 이들 중 하나였다.
팽호연이 일어나 아이에게 다가갔다.
“소협, 사부가 저기 있는데 소협은 왜 이곳에 따로 앉는 게요? 어서 가서 사부께 아침 문안을 드리시게.”
부드럽게 말하며, 연천이 앉아 있는 탁자를 가리켰다.
상황을 지켜보던 연천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내가 저 아이의 사부가 아니라고 밝히면 되겠군. 차라리 오해를 풀고 가는 게 더 좋겠어.’
팽호연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본 아이의 눈이 커졌다.
어제저녁 술을 마시고 저지른 만행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전날 하루종일 찾아다니던 사람을 만났으니 반가울 수밖에.
아이는 기쁜 표정으로 연천에게 다가갔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아이가 팽호연 덕분에 사부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되어, 안도하는 것으로 오해했을 것이다.
팽호연은 마음이 놓이질 않는지 아이와 같이 연천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섰다.
“이보시오, 대협!”
팽호연의 부름에 연천은 답답한 마음으로 팽호연을 올려다보았다.
“연이어 흉년이 들고 민심이 흉흉하여 당장 한 끼 해결하기도 힘든 이들이 넘쳐난다는 것은 알고 있소. 제 한 목숨 살겠다고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스승이 제자를 버리는 일 또한 있다 들었소. 하지만 그것이 어디 될 말이오? 피죽을 먹어도 제자와 함께해야 하지 않겠소?”
팽호연이 점잖게 연천을 타일렀다.
“…….”
연천은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사이 팽호연은 말을 이었다.
“내 대협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오, 대협 또한 힘든 사정이 있어 그리하였겠지요. 내 지금은 가진 것이 이것뿐이오, 정 힘이 들면 하북팽가를 찾아오시오. 내 팽호연이라고 하오.”
팽호연이 자신의 전낭을 연천의 손에 꼭 쥐여 주었다.
그리고 연천의 생각은 묵살하고 아이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협! 어서 스승께 인사를 올리시게.”
팽호연의 말에 아이가 연천 앞에 반듯하게 서서 포권을 하고 깊게 몸을 숙였다.
그러다 몸을 이상하게 배배 꼬더니, 전날 먹었던 오리고기와 죽엽청을 앉아 있는 연천을 향해 내뿜었다.
잠시 숨을 헐떡이던 아이는 다시 한번, 같은 자리를 향해 소화가 덜 된 음식물을 게워 냈다.
아이의 뱃속에서 나온 뜨끈한 액체는 연천의 백회에서부터 기이한 모양을 그리며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아이는 내내 자신을 괴롭히던 것들이 몸 밖으로 나가자 속이 한결 개운했다.
연천은 얼빠진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이내 눈도 아이의 속에서 나온 액체에 점령당했다.
역한 냄새가 객잔 내부를 스멀스멀 채웠다.
* * *
연천은 객잔에서 준비해준 뜨거운 물에 온몸을 담그고 있었다.
뿌연 수증기 사이로 얼뜬 연천의 얼굴이 나타났다.
“하!”
살면서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었던 적이 또 있었던가?
조금 전에는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죽음의 문턱에서나 본다던 그것이 나이 열아홉에 멀쩡한 객잔에 앉아서 보였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연천은 거지였다.
몰려다니던 거지들에 비해 약삭빠르지도, 영악하지도 못해서 혼자 굶고 혼자 지냈다.
계속 굶었고 너무 오래 굶어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어린 나이이지만 이제 죽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때도 주마등이 지나가진 않았다.
깜깜하다가 모든 것이 사라졌고,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남은 평생을 스승님과 함께 한 그 초막집이었다.
스승님과 연천 외에는 아무도 없는 깊고 외진 산속의 작은집.
음식을 빼앗아가는 이도, 이유 없이 때리는 이도 없는 편안한 곳.
연천을 향한 스승님의 사랑과 수련만 있던 따뜻하고 안락한 그곳.
자신을 바라보던 스승님의 미소 띤 얼굴이 떠올랐다.
연천은 눈을 깊게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 있던, 그의 얼굴이 편안하게 바뀌었다.
연천은 냄새가 남지 않도록 꼼꼼하게 몸을 씻었다.
점소이가 선반에 올려둔 그의 낡은 옷으로 갈아입고, 옷이 있던 자리에 동전 두 개를 올려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