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아이와 재회하다】
점소이는 앞서가는 아이의 뒤를 쫓아가, 구석 자리로 안내했다.
“오리구이하고 죽엽청 주시오, 배고프니깐 빨리”
아이가 당당하게 주문을 마쳤음에도, 점소이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아이 앞에 서 있었다.
아이는 콧구멍을 넓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점소이의 행동이 맘에 안 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별 말하지 않고 품속을 뒤적여 은전 하나를 꺼내 탁 소리가 나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점소이가 재빠르게 손을 뻗어 돈을 집더니 씩 웃었다.
“얼른 내어옵지요.”
종종거리며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오리구이와 죽엽청.
아이가 무림행을 나가면 꼭 먹어보리라 꿈꾸던 음식이었다.
그 흔한 오리구이가 이렇게 기대될 줄이야.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리구이와 손바닥만한 호리병에 든 죽엽청이 탁자 위에 올라왔다.
아이는 기름이 줄줄 흐르는 오리구이를 만족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때 낀 손으로 다리 하나를 쭉 찢었다.
크게 한입 베어 물고는 게걸스럽게 씹어 넘겼다.
번들거리는 기름이 묻은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흘렀다.
아이는 오리 다리 하나를 먹어 치우고, 죽엽청을 작은 잔에 따랐다.
잔을 코밑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단숨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씁쓰름한 액체가 목구멍을 태우고, 뱃속 깊숙이 불을 지르며 타 내려갔다.
아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으으으… 이걸 왜 먹는 거야?”
짜증스럽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이는 오리고기를 한 손 가득 뜯어 우적우적 씹으며 입 안의 쓴맛을 지웠다.
입을 우물대면서 죽엽청이 든 호리병을 노려보았다.
“으음…….”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죽엽청을 잔에 따라 부었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잔을 비웠다.
“크으으으…….”
여전히 쓰고 독한 액체가 찌르르하게 뱃속을 타고 내려갔다.
쓰디쓴 입에 오리고기 한 점을 욱여넣고,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술을 따라 들이켰다.
“크아아… 쓰고 맛도 없는데 이상하게 자꾸 땡기네…….”
아이는 익숙하게 죽엽청을 잔에 부어 들이켰다.
“크으으…….”
뱃속을 헤집고 지나가는 액체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죽엽청을 따랐다.
“카아~”
아이의 입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통쾌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빈 병을 흔들며 점소이를 불렀다.
“한 병 더!!”
* * *
백연천은 산에서 캐어왔던 약초를 팔아치웠다.
약방마다 찾는 약초가 달라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했지만, 제법 두둑하게 전낭을 채웠다.
오늘 하루는 객잔에서 쉬어 볼 작정이었다.
이제는 산에서 야숙을 하는 것도, 사람들이 버글대는 객잔에서 쉬는 것도 불편하지 않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해 보이는 객잔으로 들어가 국수를 주문했다.
아침부터 약초를 팔러 다니느라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더니 배가 고팠다.
점소이가 내어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는 먹음직스러웠다.
연천이 국수 한 젓가락을 들어 입에 넣으려는 찰나였다.
쾅―!
식당 제일 구석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벌떡 일어났다.
어찌나 조심성 없이 없던지 앉았던 의자가 뒤로 벌렁 넘어가며 커다란 소리를 냈다.
자리에서 일어선 자는 탁자와 의자에 몸을 마구 부딪치며 연천을 향해 걸어왔다.
연천에게 다가오는 이는 아침에 헤어졌던 거지 아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눈에 확 뜨이게 더러운데, 저렇게 법석을 떨어대니 식당의 이목이 아이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가슴에 부딪힌 탁자가 뒤로 밀리고, 의자는 벅적지근한 소리를 내며 자빠졌다.
식당의 기구에 부딪힌 아이의 몸이 괜찮을까 하는 염려와 아이와 충돌한 세간이 부서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아이는 객잔의 기물을 온몸으로 들이받으며 연천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싸부니임!!”
거지 아이가 반가운 목소리로, 아주 크게 연천을 불렀다. 사부님이라고.
“……?”
연천은 당황했다.
아직 입에 대어보지도 못한, 국수를 든 젓가락이 흔들렸다.
그 아이가 누구인지는 대번에 알아보았다.
밤새 폐허를 굴러다니며 연천의 옆구리를 뚜들기고, 머리통을 발로 차며 자던 아이.
천둥소리는 저리 가라 싶도록 요란스럽게 코를 골던 아이.
악을, 악을 써대며 잠꼬대를 하던 아이.
덕분에 밤을 꼴딱 새우다시피 했는데 어찌 잊어버리겠는가.
한데, 왜 저 아이가 나를 사부라고 부르는 거지?
아이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자신을 사부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아이에게 들러붙어 있던 이목이 연천에게 넘어왔다.
연천은 많은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되는 것이 불편했다.
그것이 호의의 눈초리가 아니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들의 눈빛에는 연천을 향한 힐난이 역력했다.
‘스승 되는 자가 제자의 행색이 저 지경이 되도록 돌보지도 않았단 말인가’라는 질책이었다.
당혹한 연천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저 국수나 한 그릇 먹고 따뜻한 방에서 하루 쉬어가려던 것뿐이었는데….
“싸부니임!! 제자 인싸드입니다.”
아이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외치며, 포권을 하고 깊게 허리를 숙였다.
“……?”
연천은 그저 눈만 껌뻑거렸다.
지금 뭘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아이를 쳐다보는 것밖에.
거지 아이가 연천의 옆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뭘 해도 ‘조용히’, ‘조심히’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이제 객잔의 모든 이들이 대놓고 아이와 연천을 관전하고 있었다.
“싸부님이 저를 버리고… 끅… 가셔가지고… 제가 엄마나 상처받은 줄 아세여?”
아이는 정말 상처받은 얼굴로 말했다.
“……?”
‘뭐 얼마나 봤다고 버리고 말고 한단 말인가? 대체 왜!! 상처를 받았다는 것인가?’
늘 명료한 연천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었다.
“허이구… 사부가 돼서 제자를 버렸데.”
“저 제자 꼴 좀 봐,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저 아이는 아직도 저 작자를 사부라고 부르는구먼.”
“세상 참 말세다, 말세. 사부라는 자가 제자를 버리고 도망가고.”
“그래서 저 어린 것이 거지가 됐구먼… 쯧쯧…….”
연천과 아이를 보는 객잔 사람들은 숨기는 기색도 없이 연천을 책망했다.
연천은 귀속으로 파고드는 자신에 대한 비난에 어떡해서든 해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과 다르게 막힌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원래도 말재주가 없는데 당황한 데다, 자신에게 쏘아지는 힐난의 눈빛까지 더해져서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말이라고 하기도 뭣한 더듬거리는 소리일 뿐,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너… 너… 내가… 왜… 너의…….”
아이의 말에 그마저도 끝맺지 못했다.
“이제 저 버리지 마세여…….”
“…….”
연천은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릴 뿐 대꾸도 하지 못했다.
“사부니임…….”
아이는 연천을 보고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그리고, 탁자에 탁 소리가 나게 머리를 박고 의식을 잃었다.
객잔의 모든 이들은 연천과 아이를 재미난 경극이라도 보듯이 구경하고 있었다.
연천은 팅팅 불어서 식은 국수와 그 옆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 거지 아이를 번갈아 볼 뿐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점소이가 다가와 물었다.
“방을 드릴까요?”
연천은 점소이가 하늘에서 떨어진 구세주 같았다.
“그러시오, 작은 방 두 개를 주시오.”
“어휴… 사부란 작자가 저리도 제자가 싫을까?”
“별 볼 일 없어 보이는구먼, 제자랑 방은 또 따로 쓰나 보네.”
“쯧쯧… 저 불쌍한 아이를 또 버리고 도망가지는 않겠지?”
“나도 여기서 묵으니, 어디 지켜봐야겠소.”
사람들은 연천에게 들으라는 듯 말을 내뱉었다.
“에휴…….”
연천도 귀가 있으니 자기에게 해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욕을 먹어도 잠버릇이 고약한 아이와 같은 방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거지 아이도 잠이 들었는데 해명을 해볼까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서 누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랴, 그럴듯하게 설명을 할 자신도 없었다.
못 들은 척하는 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은전을 받고 친절해진 점소이와 연천은 아이의 팔 한쪽씩을 어깨에 걸치고, 질질 끌어 위층의 방으로 옮겼다.
아이는 침상에 집어 던지듯 내려놓아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연천은 멍청한 얼굴로 아이 방 옆의 자신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루종일 굶은 속이 쓰렸다.
정말 꿈만 같았다, 꿈만 같다는 말을 이럴 때 써도 되는 것인가?
아무튼,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저… 스승님이 보고 싶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객잔의 침상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 * *
연천은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눈을 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시간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십수 년을 반복한 것이었으니…….
익숙하다 못해 몸의 한 부분처럼 자연스러운 새벽 수련이었는데, 그런 수련이 오늘은 버겁게 느껴졌다.
어제의 정신적 충격이 크긴 컸나 보다.
연천은 검을 들고 객잔의 뒷마당으로 내려갔다.
검집을 쓰다듬자 어지럽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이 하나씩 풀리는 것 같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 손가락질을 좀 받으며 어떻고 억울하면 어떠하랴, 지나갈 일인데…….’
천천히 검을 뽑았다.
검을 들어, 아래로 죽 그어 내렸다가 가볍게 내리치고 옆으로 그었다.
그 단순한 동작을 쉬지 않고 반복했다.
잠시 뒤, 검을 갈무리한 연천은 몸이 가볍고 개운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되었다.
가뿐한 몸놀림으로 객잔 이 층인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가려던 연천은 멈칫해서 잠시 생각하다, 옆의 거지 아이 방 앞에 섰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기도 전에 코 고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연천은 조심스럽게 아이의 방문을 열었다.
아이는 머리와 한쪽 어깨를 침상 밖으로 내어놓고 깊게 잠들어 있었다.
쳐다보는 연천이 불편했다.
연천은 고민에 빠졌다.
가장 원하는 것은 저 아이를 두고 조용히 객잔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연천은 소리 나지 않게 조심히 걸어서 바랑과 검을 가지고 객잔의 일 층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