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이상한 것을 주웠다】
연천이 혼자서 무림행을 다닌 지 석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태연한 낯으로 사람들이 버글대는 곳을 지나다녔고, 산에서 안정을 취하는 데도 익숙해져 있었다.
숙부가 준 전낭에는 제법 많은 돈이 있었지만, 연천은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산에서 약초를 캐다 파는 것으로도, 소박한 연천에게는 모자람이 없었다.
하북으로 넘어가는 산속에서 익숙하게 값나가는 약초 몇 뿌리를 캐어내던 연천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연천은 자신이 발견한 것을 찬찬히 살폈다.
달포 전, 약방에서 약초꾼들이 이야기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생각하고 넘겼는데…….
그것이 진짜였단 말인가.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발견한 것이 딱 그것인 것 같았다.
* * *
“자네, 그 이야기 들었나? 약초꾼 곽가 말일세… 산에서 아주 엄청난 것을 발견해서 그리 돈을 많이 벌었다는구먼, 이제 약초를 캐러 다니지도 않는다네.”
입이 튀어나온 것이 입담이 좋아 보이는 사내였다.
어찌나 은근하고 솔깃하게 말을 시작하는지 약초를 팔러 온 약초꾼과 약초를 사러 온 의원, 심부름꾼, 약방 주인장, 아무튼 그의 첫마디를 들은 이들은 모두 귀를 쫑긋 열고 이야기를 경청했다.
산에서만 살아온 촌뜨기 백연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슨 대단한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저도 모르게 침을 꼴딱 삼켰다.
“뭐? 뭘 발견했기에? 불로초라도 캤나?”
불로초라는 단어에 목이 꺾이지 않을까 염려가 되도록 돌아보는 이도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대단한 것을 주웠다는구먼.”
불로초가 무엇인가?
억만금을 가지고도 구하지 못한다는 갈망의 존재이다.
모든 약초꾼이 죽기 전 단 한 번만이라도 손에 넣어보기를 희원하는 환상 속의 불로초보다 더 대단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자신이 약방에 와 있는 이유도 잊은 채, 입이 튀어나온 사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 글쎄… 산속에서 자그마한 아이를 발견했는데 그 아이가 사람이기는 하지만, 태어나서부터 짐승이 키운 아이래.”
은밀하고 낮은 목소리가 좌중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켰다.
입 나온 사내의 씰룩거리는 입꼬리로 보아, 주위의 관심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에잉? 짐승이 안 잡아먹고?”
일행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러니깐 희한하고 대단한 것이라는 게지. 그것이 생긴 것은 사람이긴 헌데, 짐승이 키워 놓으니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대. 평생 씻어본 적도 없는 것처럼 꼬질꼬질하고, 머리카락은 아주 산발을 해가지고 거적때기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대.”
모두가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소곤대는 듯한 분위기를 내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아… 그런데 그걸로 어찌 돈을 많이 벌었대?”
“그것이 짐승 말을 할 줄 알더라는 거야. 경극단이고 마방집이고, 짐승 키우는 곳에서 서로 큰돈을 주고 데려가려고 난리도 아니었다는구먼… 그중에 제일 돈을 쳐준다는 곳에 팔았다지.”
입이 튀어나온 사내는 말을 끝맺고, 멍하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좌중을 돌아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크흠!”
누군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것이 신호인 듯 약방 사람들은 서둘러 자신이 하던 일로 돌아갔다.
잠시 멈춘 약방의 시간이 보상이라도 하듯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에잇!”
누군가는 불쾌한 얼굴로 앞섶을 탈탈 털며 일어섰다.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잡놈 때문에 괜스레 솔깃한 것이 짜증스러워 사내를 흘겨보고는 서둘러 자신의 볼일을 보았다.
연천도 김이 팍 새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촌놈이라고 하지만, 허풍도 정도가 있어야지…….’
그리 흘리고 넘어갔는데 자신이 발견한 것이 딱, 그자가 말하는 그 모양 그대로였다.
평생 물 근처에는 가지도 않은 것같이 더러운 몰골에 지푸라기와 낙엽이 끼어있는 산발한 머리카락, 거지도 주워가지 않을 넝마를 걸친 꼴이 꼭 맞았다.
연천은 작은 아이를 살폈다.
어디서 굴러떨어졌는지 몸 여기저기가 긁혀 피가 배어 나오고, 발뒤꿈치에는 뱀에 물린 작은 자국이 나 있었다.
맨발의 아이 근처에는 발에 맞지 않는 커다랗고 꼬질꼬질한 신발이 나뒹굴었다.
연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작은 아이의 종아리와 허벅지, 복부와 가슴, 목까지 몸 군데군데를 끈으로 묶어 놓은 것이었다.
팔과 다리는 피가 통하지 않아 어두운 빛으로 퉁퉁 부어 있었다.
“어찌… 사람에게…….”
끈이 묶인 목에는 선명한 삭흔이 남아 있었다.
측은한 얼굴을 한 연천이 묶인 끈을 풀어주자, 몸에 혈색이 돌면서 점차 제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아…….”
아이를 내려다보는 연천에게 갈등이 밀려왔다.
연천은 아이를 팔아 돈을 벌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의식을 잃은 아이였다.
돌보아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이후에는 어찌해야 할지 그것이 가장 염려스러웠다.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었기에 고심하던 연천은 아이를 등에 업었다.
일단은 아이가 의식을 찾는 것이 우선이니 아이와 자신이 쉴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마을에서 떨어진 산 초입에 버려진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아이를 데리고 객잔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돈 때문에 아이를 탐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염려되었던 것이다.
아이의 더러운 외관이 워낙 눈에 띄어, 그 소문을 들은 사람이라면 알아볼 만했다.
연천은 마른 짚을 두툼하게 깔고 그 위에 아이를 눕혔다.
그리고 저녁 재료를 구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 * *
눈이 떠지지 않았다.
아교풀로 단단히 봉해놓은 것처럼 눈을 벌릴 수가 없었다.
‘벌써 눈까지 영향이 미친 것인가…….’
실명에 대한 두려움이… 두려움보다 후각이 먼저 발동했다.
다행인지 후각만큼은 또렷이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이 냄새는… 토끼 냄새야, 아닌가? 꿩인가? 아… 뭔가 향신료를 넣었어, 킁킁… 음… 고기와 꽤 어울리는 양념인데……. 그 향 때문에 고기 냄새를 잘 모르겠어, 익숙한 향인데… 뭘까? 노루는 아닌데…….’
연천이 주워 온 아이가 의식을 차리고 이런 생각을 해댔다.
아이가 코를 벌름벌름하며 킁킁대는 소리가 연천에게 들렸다.
아이에게 다가간 연천은 어찌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이었다.
뭐, 길게 할 것도 없는 고민이었다.
자신은 사람 말밖에 할 줄 모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할 수밖에.
“깨시었소?”
연천의 말에 코를 킁킁대던 아이가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응? 소리도 들리는구나…….’
아이는 아이대로 생각했다.
“깨었으면 좀 일어나 보시구려.”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아… 아무래도 눈 쪽은 이미… 도저히 눈이 안 떠지는구나…….’
아이는 눈을 뜨려고 눈에 힘을 주어 미간을 들썩여보고 이마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눈을 벌리려 해보았지만, 꼭 붙은 눈은 떠지지 않았다.
“뭐가 불편하시오?”
연천은 괴상한 모양으로 얼굴을 구겼다 폈다를 반복하는 아이에게 물었다.
‘저것이 짐승의 언어인가?’
‘누구지?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듯싶은데…….’
아이가 우울하게 생각했다.
“일어나기 힘드시오?”
연천이 아이를 재촉했다.
어찌 되었든 눈을 뜨고 일어나야지 사람 말이든 짐승 말이든 할 수 있었으니.
“제가 뱀에 물려… 이미 독이 너무 퍼진듯합니다. 눈까지 독이 퍼져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아직 말은 할 수가 있군요.”
아이가 또랑또랑하게 말을 했다.
“……?”
아이의 명료한 목소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사람 말을 하네? 짐승이 키운 아이가 아니었어? 그럼 몰골이 왜 저 모양이지?
더러운 아이의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연천의 귀에 아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무림으로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으흑… 무림에 나가서 무공도 배우고 강해지려고 그랬는데… 으흐흑……. 무림 근처에도 못 가보고, 십육 년생을 여기서 마감하게 되는구나… 억울해…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해……. 으아아앙… 나 죽기 싫어요……. 앙… 지금이라도 독을 빨아내면 안 될까요? 독 좀 빨아내 주세요…. 으아아앙……!”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던 아이는 신세를 한탄하다, 때가 켜켜이 낀 더러운 발을 연천이 있는 방향으로 들어 올리며 눈물을 흘려댔다.
누워서 한쪽 다리를 어정쩡하게 들고 시커먼 눈물을 쏟아내는 아이의 꼴은 차마 혼자 보기 아까웠다.
“하….”
‘그럼 저 아이는 그냥 더러운 아이란 말인가?’
연천은 더러운 것이 찐득하게 붙어 눈조차 뜨지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으흐흐흑…큭… 훌쩍… 으흐흐흐…….”
아이는 눈물을 떨구며 울어댔다.
한쪽 다리는 계속 들어 올리고서.
눈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은 더러운 얼굴을 지나, 까만 구정물이 되어 아이가 누워있는 짚으로 뚝뚝 떨어졌다.
“으흠…….”
연천은 바랑에서 천을 꺼내어 물에 적셨다.
하나밖에 없는 그 천 조각은 연천이 씻고, 물기를 닦을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저 더러운 아이를 닦는 것이 마음에 영 내키지 않았지만, 점점 커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연천은 차가운 물에 적신 천으로 아이의 양쪽 눈을 번갈아 가며 문지르고 양쪽 뺨과 입술까지 사정없이 벅벅 닦았다.
아이의 더러운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아… 아파요…. 좀…! 아… 좀…….”
연천은 아이의 말을 묵살하고 다시 눈부터 뺨과 코 입술을 거칠게 문질러댔다.
시커먼 걸레쪽으로 변한 천을 아이의 얼굴에서 떼어냈다.
아이는 꼬질꼬질한 몰골에 얼굴만 말갰다.
생각보다 훨씬 오목조목 잘생긴 얼굴이었다.
“아야…아…….”
벌게진 아이의 얼굴은 불만의 빛이 역력했다.
“이제 눈을 좀 떠보시구려.”
연천이 입을 삐죽이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가 슬며시 눈을 떴다.
새로 태어난 것처럼 상쾌하고 개운한 기분이 되어 자리에 앉았다.
뱀에 물리기 전보다 시야가 맑아졌고, 숨쉬기도 편했다. 머리도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아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