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98장 (199/199)

 # 198

198.

‘특이한 이름이군. 아들에게 전하는 기록?’

뭔가 이름에서 꺼림칙함을 느낀 단천우는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첫 장을 넘겼다. 글자 하나하나를 읽어 내려가던 단천우의 안색이 점점 붉게 변해갔다. 그리고 손은 책의 이곳저곳을 빠르게 살피며 눈을 가까이 들이대고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은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좋으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인가?’

‘우리를 속이려고 저러는 것이 분명해.’

‘그러기엔 연기력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가.’

침묵 속에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단천우를 보며 판단했지만 단천우는 진정 심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게 아냐… 이게 아니라구! 어찌 이따위가 보물이 될 수 있단 말이냐! 오비원, 이 나쁜 자식! 이따위를 보물이라고 거짓말을 했더란 말이냐!!”

단천우는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책을 찢어버리려는 듯 양손으로 좌우를 잡고 힘을 주려 했다.

“안 돼!”

“무슨 짓이냐!”

“그만두지 못해!”

“미친놈아, 정신 차려!”

사방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도 모를 폭언이 쏟아졌다. 천고의 비급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 이들의 목소리였다. 그때 변수가 발생했다.

“으헉……!”

단천우는 책을 찢어발기지 못하고 그만 그 자리에서 모래성이 무너지듯 힘없이 허물어졌다.

네 명의 장로들이 각기 인질을 팽개치고 서둘러 단천우를 부축했다. 단천우는 이미 혼절한 상태였고 몸의 반쪽이 푸르스름하게 변한 것으로 보아 주화입마가 확실했다. 장로들로서는 일단 곡주를 살리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여기에서 정파인들과 다투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비급이기에 단주가 비통에 젖어 쓰러졌는지는 알아야 했다.

그때 소하천이 인질에서 풀려 정파 인사 쪽으로 걸어가 대표가 된 다섯 명의 인사들에게 대충 비급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표영은 혈곡의 장로들이 책을 살펴보도록 배려했다.

“그대들도 살펴보시오.”

장로들은 두 사람씩 돌아가면서 책을 살펴보았고 그 후 그들의 얼굴엔 잔뜩 쓴웃음이 떠올랐다. 수석 장로 개천마군 봉만추가 뒤쪽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혈곡인들은 들어라! 천보갑 따위는 잊고 지금 즉시 곡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이미 곡주가 쓰러진 상태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터에 장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혈곡인들은 모두 발길을 돌렸다.

혈곡의 무리가 떠나자 정파와 사파 간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렇게 되자 심약한 사파인들은 분분히 혈곡의 뒤를 따라 도주하듯 달아났고 아직도 미련이 남은 사람들은 쭈뼛거리며 어떻게든 살펴보려 했다. 그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음인가. 표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분들은 다 함께 건곤진인이 남긴 보물을 살펴보고 가도록 하시오!”

먼저 사파인들이 차례로 책자를 살폈다. 그들은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갈망하며 절대신공의 요결 몇 가지라도 외워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정작 책자를 살펴본 이들은 모두 안색이 무겁게 변하거나 괜히 실없는 웃음을 짓기도 하고 또 긴 한숨을 토해내며 각기 아무런 대화도 없이 곤륜을 떠났다.

그런 광경은 아직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너무도 신비스런 구결에 전혀 이해하지 못해 답답하고 놀라워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결국 그들 또한 책을 살펴본 후에는 마찬가지의 모습이 되었다.

사파인들이 다 살펴본 후에는 정파인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정파인들이라고 어찌 무공 비급에 대한 욕망이 없겠는가. 걔중엔 사파인들보다 더한 욕망에 사로잡힌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책자를 살펴본 후에는 사파인들의 반응과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가장 소중한 것이라…….”

“건곤진인의 보물은 역시 대단하군.”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건곤진인이 내게도 큰 선물을 준 게로군. 후후.”

자전록을 모두가 다 살펴본 후에 모두의 마음엔 따뜻한 기운이 가슴으로부터 피어났다.

건곤진인 오비원이 남긴 서신의 내용은 이러했다.

태야, 오늘따라 저녁 해가 곱구나.

요즘 들어 부쩍 지는 해를 멍하니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

이런, 벌써 동이 뜨고 말았구나.

요즘 들어서는 아침 햇살이 부쩍 부담스럽다.

또 이렇게 몇 자 적지도 못했는데 밤이 지나고 말았구나.

네 아비는 언제나 이러는구나.

할 말은 끝없이 많은데 막상 붓을 들면 어디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회한이 많은 사람들의 붓은 천 근보다 무겁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단다(이 부근부터는 글자가 심하게 번져서 내용을 읽기가 어렵다. 내공의 힘을 담았다면 어지간한 물기로는 먹이 번지는 일이 없는데, 오비원은 내공을 빌지 않고 자연인 상태로 돌아가서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잊은 채 편지를 썼던 것이다. 고로-중략-).

아비는 주변 사람들에게 너를 없는 자식으로 치도록 엄명을 내렸다. 굳이 네 소식을 알고자 한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알량한 자존심이 자승자박이 되었나 보다.

딱히 음식 타박은 안 했어도 형들보다 유난히 입이 짧았던 네가 아니더냐? 타지의 거친 음식이 입에 맞기나 했을지. 딱히 사치라고는 할 수 없어도 제법 멋 부리기를 좋아하던 네가 아니더냐. 험한 땅에서 멋을 낼 여유나 있었을꼬.

아니다, 아니다. 그 정도가 아니겠지. 가진 것 하나 없이 객지로 떠난 너일진대, 세상 물정도 모르는 너일진대, 하루 세 끼나 제대로 찾아 먹고 엄동설한에 제대로 걸치기나 했을런지.

네 아비인들 어찌 편안하게 먹고 입을 수가 있었겠느냐?

아니다, 아니다. 한때의 욕심으로 자식까지 내팽개친 주제에 어찌 호위호식을 못한 것을 탓하랴. 있어도 못 먹는 내가 어찌 없어서 못 먹었을 너와 비교가 되겠느냐(다시 글자가 심하게 번지기 시작해서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대략적으로는 장성한 아들임에도 부모에게는 언제나 철부지밖에는 되지 않고, 그런 자식의 고생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런 요지의 내용으로 짐작된다).

그래, 이제 이 말만은 꼭 하고 싶구나. 용서해라, 내 아들아.

그때는 왜 외면했을까. 이 아비의 뜻에 따라 무림의 용이 되든, 그 뜻에 반하여 평범한 필부가 되든 어차피 나는 너의 아비이고 너는 나의 아들인 것을…….

구차한 변명이겠다마는 다섯 손가락 깨물어서 어디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느냐는 평범한 세간의 말을 너에게 굳이 들려주고 싶어하는 이 아비의 마음을 헤아려 다오.

보고 싶구나.

내 아들, 그리고 너의 처인 내 며늘아기, 그리고 내 손자가 되는 너의 아이를…

보고 싶구나.

이렇게 서신은 끝을 맺었다. 오유태는 물론이거니와 이것을 읽은 모든 이들의 마음은 감동에 젖었다. 그리고 진정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이 아들을 용서하십시오.’

비급으로 생각했던 자전록은 오비원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아들 오유태를 떠올리며 기록한 하루하루의 일기였다.

곤륜산에서 주화입마를 당해 쓰러진 단천우는 혈곡으로 급히 옮겨졌으나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결국 1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울화가 치밀어 나타난 현상이라 모두들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그 순간 너무도 부끄러워진 것이다. 도무지 오비원을 따라갈 수 없는 보잘것없는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본 것이다. 그리고 쓰러진 후에는 눈을 뜰 용기가 나지 않았고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천보갑에 대한 이야기는 무림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일화로 계속 퍼져 갔고 무림인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지펴주었다. 긴장과 살의가 감도는 강호에 오비원은 큰 족적을 남긴 것이다. 그가 남긴 것은 아들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강호를 향한 큰 가르침이었다.

표가장에 머물며 표영은 아들 은을 두 손으로 높이 치켜들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 아들 은, 내 가장 소중한 보물이지요.”

<마침>

* 편집자 주: 이후 작가의 말이 계속됩니다.

마천루 스토리 6 - <걸인각성>을 마치며

작년 6월 초순 마천루에 처음 발을 디뎌 「걸인각성」을 쓴 지 어느덧 1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작가 후기성으로 마무리할 마천루 스토리도 마지막이 될 듯싶네요. 언제까지 마천루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멋지게 끝낼 그 시기를 정해야 했는데 걸인각성을 마치는 이 시점이 가장 적합한 때가 아닐까 생각해서 지금 이처럼 글을 씁니다.

이건 단순히 마천루 스토리라는 이름을 달지 않는다는 것뿐이므로 다음 작품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뭔가 색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마천루 스토리를 끝낸다는 것이 어떤 독자 분들이 말한 ‘난 걸인각성보다 마천루 스토리가 훨씬 좋더라’라는 말 때문에 작가가 토라져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말해 두고 싶군요. 혹시나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어떤 글이든 마음에 와 닿는 글이 되었다면 그것이 본편이든 후기성 글이든 작가로서는 기쁘기 그지없답니다. 그런데 난 왜 이렇게 길게 설명을 늘어놓은 걸까나…).

걸인각성은 이번 권인 8권(2부)으로 마쳐지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만선문의 후예도 1부와 2부를 합쳐 8권으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똑같이 8권이 된 것에 대해서는 잠재적인 무의식이 그만한 분량을 적정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하지만 8이라는 숫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특별한 감정이 없었는데 -단순해 보이지만 전 숫자 7자를 좋아합니다- 이번 일로 인해 약간의 의미가 생겨난 셈이 되었군요).

원래 걸인각성의 시도는 -미리 전에도 말한 바가 있지만 -만선문의 후예에서 표현해 보지 못했던 걸인에 대한 부분을 좀 더 표현해 보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매우 식욕이 당기는 시점에서 맛있게 식사를 했지만 포만감을 느끼기엔 부족한 상태라 다시금 수저를 드는 것과 같다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걸인각성은 만선문의 후예의 아류며 또 다른 만선문의 후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걸인각성은 만선문의 후예와 너무 비슷해 보여’라고 말한다면 본인은 고개를 끄덕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히 나와야 할 말이고 그렇게 느껴야 하는 것이 정상인지도 모릅니다.

앞으로의 글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해 봅니다. 물론 그것은 소재적인 측면에서의 변화이지 결코 그 안의 정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어느 작가에게나 자기만의 향기가 있듯 부족한 제게도 저만의 향기와 정서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만선문의 후예와 걸인각성에서 나왔던 정서는 앞으로 어떤 글을 쓰더라도 그 본질이 유지되리라 봅니다(실제 그 정서를 벗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저의 글이 조금은 더 무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조금 더 동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무협적이어야 한다는 부분은 좀 더 세밀한 설정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고, 더 동화적이어야 한다는 점은 좀 더 순수하게 읽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동화적이어야 한다는 부분을 좀 더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걸인을 묘사할 때 크게 자극적인 요소를 사용하는 부분이 잦았는데, 그것이 비록 걸인의 특징을 극대화시킬 수 있고 단번에 머리에 이미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해도 그런 부분들을 배제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쓰게 될 글에는 걸인에 대한 노골적인 상황들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걸인각성의 2부가 2권으로 끝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아쉽게 다가오겠지만 그저 의도한 바를 나타내기엔 적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연 잘 표현했는지에 대해 스스로 두렵기도 하지만 어쨌든 세상에 가장 소중한 보물이 무엇인지 정도는 말하고 싶었답니다.

각박한 세상사에서 가족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현대의 생활에서도,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함 속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무엇인지를 이 글을 통해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보신 분이 단 한 분이라도 계셨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걸인각성을 끝낼 때까지 격려해 준 마천루 식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멤버이면서도 동시에 형제가 된 분들이 있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작품에 대해 고뇌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부족한 글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아주신 독자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좀 더 깊은 성찰과 많은 명상, 그리고 깊이 배려하는 마음으로 다음 책을 쓰고 그때 다시 만나뵈었으면 합니다.

마천루에서 김현영.

* 작가의 말 - 2부 들여다보기

2부가 2권이라는 짧은 분량으로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실 걸인각성을 처음 기획할 때는 1부와 2부가 나뉘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원래는 주인공 이름도 표영이 아니라 표숙이었는데 -만선문의 후예 2부 1권에 짧게 그려진 곳을 보더라도…- 표숙의 ‘숙’ 자를 계속 쓰다 보니 약간은 무거운 느낌으로 계속 마음을 압박해 오는지라 그보다는 좀 더 가벼운 이름으로 가는 게 좋겠다 싶어 ‘영’ 자로 고치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한두 번 나오고 말 것이 아니라 수없이 언급되는지라 작가에게 있어서는 늘 불러도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고 밝은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일단 표영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잘한 것이라 판단됩니다.

이름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만 더 하자면, 2부에 어린아이가 두 명 나옵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아이는 표영의 아들인 표은이고 두 번째 등장하는, 조금은 큰 아이가 오유태의 아들 오후입니다. 두 아이 다 아들이고 -그렇다고 제가 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해가 없으시길. 개인적으로 둘째가 태어난다면 딸아이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2부에서는 비중있는 인물들의 자식인데 두 아이의 이름을 합치면 저에겐 소중한 보물의 이름이 됩니다. 이런 장치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또 다른 기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가 잠시 이름 때문에 옆으로 샜습니다만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원래 1, 2부로 나뉘어지지 않고 쭉 이어가며 천보갑 사건으로 매듭을 지으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선을 확실히 긋고 다시 정리해서 바라보도록 하는 시각이 더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한 것이 1부는 <표영, 개방의 방주가 되다>가 되었고, 2부는 <천보갑 사건,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는 주제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혹여 어떤 독자 분들은 -저로선 대다수이길 바랍니다만- 2부가 너무 짧은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네, 물론 조금 짧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꼭 하고 싶은 내용만 스피드하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2부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험난한 강호에서 진정 가치있는 것은 힘이나 권력, 명예 따위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며, 자녀들을 위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원의 강호와 같아 하루하루 살과 피가 튀는 나날일지라도 그 속에서 인간 본연의 정을 잊지 말고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행(百行)의 근본은 효(孝)라고 했고 세상이 수만 년이 흘러도 변치 않을 것이 어버이의 사랑이라 했습니다. 걸인각성이 무협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글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그렇다고 뭔가 거창한 걸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편안하게 바라보며 그저 사는 동안에 슬쩍 떠오르는 이미지, 혹은 으음… 그래, 이런 마음도 필요하지라고 한번 정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마천루 홈페이지(www.machunru.net)에 올라온 글 중에 어떤 독자 분이 2부 7권을 보시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라는 논지로 글을 적으신 걸 보았습니다. 혹시 작가가 이상하게 변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점을 달고서 말이죠.

그렇기도 한 것이 만선문의 후예나 걸인각성 1부에서 거의 사람 죽어 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다가 갑작스레 페이지 넘기기가 무섭게 죽어가니 당황스럽기도 하셨으리라 봅니다.

물론 거기에 답변을 하긴 했습니다만 이 자리에서 다시 말씀드리자면 2부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욱 강력하게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오로지 신공비급을 차지하기 위해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해하는 모습들, 하지만 정작 천보갑을 손에 넣지만 그 뒤에 밀려드는 형용하기 힘든 불안감.

자신을 믿고 따르던 사람을 자신이 잔인하게 죽인 것처럼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이젠 믿을 수 없게 돼버린 현실 앞에 그들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그 앞에서 누군가 친근하고 진솔한 미소를 짓는다 해도 결코 신뢰하거나 믿을 수 없는 괴상한 사람이 돼버리고 만 것이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결코 만족감을 얻지 못했고 결국 또 다른 배신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보갑에 욕망을 품은 자들 중 어느 누구도 살아나질 못했던 겁니다. 오비원은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오비완의 이름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물어보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그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답니다- 살아서 힘으로 강호를 굳건히 지켰지만 죽은 후에는 천보갑을 통해 더 강력하게 강호를 향해 외칩니다. 진정 소중한 것은 무공의 뛰어남이나 보물을 간직하고 있음이 아니라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부모의 애틋한 사랑의 마음이다’라고 말이죠.

이런 까닭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새겨야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2부에서의 주인공은 표영이 아니라 천보갑이라고 해야 옳을 듯합니다. 왠지 표영은 천보갑의 들러리로 나선 듯하죠.

2부에서 또 하나 강력하게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바로 2부 7권에서 언급된 마천의 멸망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의 모티브는 바이블에 등장하는, 혹은 영화 십계에서 잘 표현된 출애굽 장면입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부분인지라 자연스럽게 나왔고 또 인상 깊었던 만큼 한번 적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열 가지 재앙은 일곱 가지 재앙으로 표현했고 유월절(逾越節) 날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재앙을 면하는 표로 삼은 것은 붉은색 띠로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검은 묵광이 뻗어 나가며 붉은 띠를 하지 않은 마천인들을 멸하는 것을 표현할 때는 인디아나 존스(1편 레이더스-법궤편)에서 언약궤를 열자 천사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악령으로 변해 나치의 잔당들을 쓸어버리는 영상을 -그 장면은 워낙 인상 깊게 남아 있던지라…- 떠올리고 기록했습니다. 원래 묘사할 때 십계 영화를 따라 초록빛 안개로 표현하려 했지만 사건의 성격상 흑운신이 출동해야 할 입장이었기에 묵광으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2부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설명드렸습니다(그 외에 2부에 대해 언급해 놓은 것이 홈페이지에 있으니 오셔서 봐도 좋으리라 여겨집니다).

이제 걸인각성은 끝을 맺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글을 통해서 좀 더 가깝게, 좀 더 많은 분들과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모든 독자분들에게 멋진 나날이 펼쳐지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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