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196.
“잘 봐라.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저쪽으로 건너갈 것이다.”
기가 막히다 못해 이젠 아예 귀엽게 보이기까지 했다.
두위종은 두 손을 앞으로 펼쳤다 접었다 했는데 그건 거리를 재는 한편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얍!”
한소리 기합 소리가 터지고 그의 발이 잰걸음으로 움직이며 첫 번째 엎드린 건달 앞에서 톡 하고 발을 구르고선 그 위로 고양이처럼 날아가 다섯 번째 건달 몸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뒹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름대로 건달들 세계에선 시원스런 낙법이라고 할 만했다.
다시금 일제히 박수가 터지고 이어 바로 기를 죽이겠다는 듯 구암이 둘째를 불렀다.
둘째 천붕이 보여주는 것은 날라차기였다. 천붕은 부근에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저걸 발로 부러뜨리겠다.”
길게 숨을 들이쉰 천붕은 다다다닥 달리더니 오른발을 쭉 뻗고 왼발은 그 옆으로 접은 상태로 멋지게 날아올랐다.
“아뵤∼!”
슈우욱.
뭐, 이런 소리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그런 소리가 들린 것처럼 생각들 만치 멋진 날라차기였다.
쿠궁!
안타깝게도 첫 번째 시도는 실패였다. 그의 다리는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 아래를 스치고 지나갔고 몸은 그 자세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천붕은 그것으로 좌절할 사내가 아니었다. 주위에서도 격려가 쏟아졌다.
“힘내세요, 천붕님!”
“넌 할 수 있어! 자자, 다시다시!”
“형님, 여유를 가지세요.”
여러 격려 속에 천붕은 양 손바닥에 침을 퉤 하고 뱉어 박박 문지른 후 다시금 몸을 날렸다.
다다다다닥-
슈우욱-
몸이 허공을 날아 쭉 뻗었다. 그의 오른발이 나뭇가지 위를 스쳐 올라가고 접은 상태인 왼발이 나무 아래쪽으로 향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그의 두 다리가 위아래로 나무 사이에 끼었고 그로 인해 그의 몸은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리다가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나뭇가지가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쿵, 소리와 함께 땅으로 곤두박질친 천붕의 모습에 구암등이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건 개망신이었다. 하지만 천붕은 넘어지는 순간 벌떡 일어서더니 의기양양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어떠냐? 내 두 다리로 나뭇가지를 끊는 솜씨가 말이다. 하하하하!”
원래 처음의 의도가 그러했었다는 듯 천붕은 크게 말했고 그 말에 구암은 다시금 활기를 되찾아 말을 보탰다.
“하하하, 너의 양다리 꺾기는 언제 봐도 예술이구나. 하하하, 수고했다.”
하지만 등으로는 몰래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다음번엔 잘해, 자식아. 으이구∼’
표영이 감명받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구암을 향해 말했다.
“부하들은 그렇다 치고 너는 뭐 대단한 기술이라도 있는 거냐?”
구암은 거지가 버르장머리없이 말하는 게 거슬렸지만 이제 마지막에 자신의 멋진 시범을 보임으로 완벽하게 기를 꺾어둘 생각이었다.
“나? 하하, 그래도 보는 눈은 있어서 대단한 것이 있는 줄은 알아보는구나. 좋다. 네놈들에게 내가 왜 대장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도록 하마.”
구암은 주위를 둘러보며 적당한 돌덩이를 하나 주워 양손에 쥐었다. 양손으로 받쳐 들어야 할 정도의 크기인 돌덩어리였다.
“잘 봐라. 이 돌덩이는 산산조각날 것이니 말이다.”
그는 있는 힘껏 머리로 받았고 돌이 그대로 세 조각나 버렸다.
“하하하, 어떠냐. 이놈들, 어서 무릎 꿇어라!”이 정도면 충분히 이해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그의 귓가로 들려온 말은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야, 임마. 니 이마에서 지금 피나.”
혁성의 말 그대로였다. 돌이 세 조각난 것은 좋았는데 구암의 이마도 깨져 피가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구암의 그 지렁이 같은 흉터 자국에서 피는 계속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속으론 엄청 쪽팔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난폭스럽게 수하의 옷을 찢어 이마에 감쌌다.
그 모습을 보며 표영이 말했다.
“좋다, 잘 봤다. 그럼 이제 우리도 너희들에게 보여줘야겠지?”
“하하하, 그래? 거지 녀석들도 보여줄게 있다 이것이렷다!”
“당문천, 네가 해봐라.”
당문천이 씨익 웃고 나섰다. 그는 바로 암기와 독의 대가가 아니던가. 그는 바닥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패거리들을 향해 말했다.
“잘 봐라.”
그리곤 마침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참새 한 마리를 향해 던졌다.
쉭-
공기를 가르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참새는 그대로 얻어맞고 땅으로 추락했다. 그 광경은 양아치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헉!”
“설마… 이게 진짜는 아니겠지?”
“뭐, 뭐냐, 대체…….”
우두머리 구암으로서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걸 보고 눈으로 보아도 믿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리라. 구암은 당문천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호통 쳤다.
“이놈! 그냥 날아가던 새가 지 혼자 떨어진 걸 가지고 네놈이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느냐! 인정할 수 없다!”
그 말에 당문천이 다시 돌을 하나 들었다.
“어이, 친구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움직이면 안 되네.”
다시금 암기의 달인 당문천이 손을 뿌렸고 돌멩이는 쌩 하고 날아 아름드리 나무를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팍!
“헉……!”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지고 몸이 굳은 듯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저 두꺼운 나무가 그대로 뚫려 버린 것이다. 이건 부인하고 싶어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증거였다.
구암의 안색이 급변했다.
“아하하… 아이고, 저희들은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습니다요. 애들아, 가자.”
“네, 그럼요. 어서 가야죠.”
그때 표영의 신형이 바람처럼 움직여 구암 앞에 이르렀다. 구암은 저만치 있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나타나자 화들짝 놀라 그만 뒤로 넘어져 버렸다.
“어딜 가나, 부탁 한 가지는 들어주고 가야지…….”
표영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구암이 억지로 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 그럴까요? 뭐, 아무것이나 말씀하십시오.”
“사실 지금 내 제자가 수련을 해야 하는데 자네들이 좀 도와줬으면 하네만…….”
“아, 그럼요. 당연히 도와야죠.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요?”
구암이 자리에서 일어나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혔다. 까닥 잘못했다간 돌멩이에 맞아 배에 구멍이 날 판인데 뭐든지 못할 것이 없었다.
“애들아, 우리 힘껏 도와드리자.”
“아, 당연한 말씀입죠.”
그 말을 들은 혁성은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짐작하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 사부님! 어떻게… 그런 일을……!”
“이놈아, 늑대보다 낫지 왜 그래.”
그리곤 구암 일행에게 수련의 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것의 요지는 견치지겁에서 꼭 필요한 개를 대신해 혁성을 물어뜯으라는 것이었다. 얻어터지는 것에 비해 이건 훨씬 수월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사부님, 정말 그러실 겁니… 크악!”
혁성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덧 구암을 비롯한 오십여 명에 이른 패거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혁성의 온몸을 물어뜯은 것이다.
“으르릉… 왈왈……!”
짖으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소리까지 개하고 비슷하게 냈다.
“으악! 살려… 살살 물어… 으아악……!”
그 옆에는 진백이 물끄러미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곤륜사인방의 어설픈 침입 이후 몇 차례 더 구체적인 침입이 있었다.
전문 토굴꾼들인 우형, 우난 형제가 땅을 파고들어 와 천보갑의 열쇠를 탈취하려고 했으나 은신술에 능통한 지문환에게 걸려 들통나는 바람에 격한 고문을 당하고 풀려났는가 하면, 서역에서 명성을 날리는 십환수(十幻手) 좌경이 수하 십여 명을 데리고 나타나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십환수 등이 날뛴다고 곱게 열쇠를 바칠 사람들도 아니고 능력도 모두 그 이상인지라 그런 소동들은 그저 작은 소동에 불과할 뿐이었다.
정한 기한이 가까이 이르자 곤륜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오유태의 거처 쪽으로 무림인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요청을 받은 대학사 일이관지(一以貫之) 소하천이 수하 열 명과 함께 도착했고 혈곡의 곡주 단천우와 혈곡의 수많은 고수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갈수록 모여드는 이들은 점점 많아졌다. 그들은 각기 검과 자신만의 무기를 들고 왔고 또 다른 것들도 어깨에 잔뜩 짊어지고 곤륜에 도착했다.
그들의 어깨에 놓여 있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호기심의 덩어리였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욕망의 덩어리였다.
그렇게 곤륜은 천보갑을 두고 욕망에 사로잡힌 공기로 점점 둘러싸여 갔다.
제19장 오비원의 보물
날 용서해 다오.
나의 보물을 너에게 주고 싶구나.
널 보내고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되었단다.
너와, 며늘아기, 그리고 나의 손자가 보고 싶구나.
행복하렴.
- 오비원
***
이 밤이 지나고 내일 정오가 되면 천보갑은 열려 그 안의 신비를 드러낼 것이다.
이제 고작 하루도 남지 않은 이 밤은 이미 저녁부터 곤륜의 모든 공간을 팽팽한 긴장으로 몰고 갔다. 공기들은 날카롭게 날이 선 칼날처럼 대기 중을 떠돌았다. 누군가 자칫 숨이라도 크게 쉴라치면 날카로운 공기에 의해 폐가 난도질당할지도 모를 정도로.
또 한 편에서는 짙은 욕망의 덩어리들이 그 사이사이를 누볐다.
몽롱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는 있으나 그 눈빛이 닿는 곳에는 정작 앞에 펼쳐진 광경은 전혀 보이질 않고 전혀 본 적이 없는 특이하고 신비로운 광채를 뿜어내는 비급만이 눈동자 가득 보일 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비급으로 보였다.
풀잎 하나.
나무 한 그루.
저 높이 떠 있는 달.
스치는 바람.
심지어 바닥에 흩날리는 흙가루마저 비급의 글씨로 보일 정도였다.
그들의 몸에서는 썩은 욕망의 냄새가 추하고 역겹게 풍겨 나왔다. 그건 시장 바닥에서 썩어가는 비리고 비린 생선 냄새보다도 더욱 지독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유상종이라고 하지 않던가. 역겨운 냄새가 지독하게 풍겨도 그들은 묘하게도 한데 뭉쳐 가까이에 이르러 있어 전혀 서로의 몸에서 나는 그 쓰레기 같은 냄새를 맡지 못했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눈빛은 그 어떤 목소리보다도 더 크게 외치고 있었다.
-천하제일고수가 되고 싶다!
-세상의 모두를 내 발 아래 두고 싶다!
-한 목소리로 나를 칭송하지 않느냐! 으하하하!
-내 말이 곧 중원의 법이며 내 말이 곧 생명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그들의 망상은 커져 갔고 어느 순간에는 최고수가 되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욕망의 밤이 그들의 무의식에 잠재된 욕망을 철저히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