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91장 (192/199)

 # 191

191.

혁성으로서는 사부에 대한 원망이 하늘 끝까지 이를 것 같았지만 일단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천음조화의 묘용은 실로 커 천선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오혁성의 소식을 듣고 쏟아져 나왔다. 총관 하문양이 표영을 향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방주님은 참으로 재밌으십니다. 여기 젊은 분은 어딜 봐도 혁성 공자님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하하하.”

몰려나온 다른 천선부인들도 거의 대부분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럼 농담하신 거겠지.”

“혁성 공자님이 저렇게 변할 리가 있겠어? 그건 말도 안 되지.”

“분명 다른 제자를 데리고 오셨을 거야.”

모두들 믿지 않는 듯하자 표영이 즉시 혁성을 보고 말했다.

“혁성아, 네가 말해 보아라.”

“네?”

“응, 어서.”

혁성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주르르 흘리면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하 총관, 나 맞어.”

하문양은 설마설마 하다가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큰 소리로 말했다.

“정말 혁성 공자님이십니까? 정말입니까?”

어찌나 크게 말하는지 혁성은 턱이라도 한 대 갈겨주고 싶었다. 계속 정말이냐고 물어오니 이젠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 맞다니까. 이젠 말귀도 못 알아먹는단 말이냐!”

폭언을 듣고서야 하문양은 혁성을 알아봤고 다른 이들도 모두 혁성임을 알았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웅성거리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킬킬대기도 하고 살짝살짝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혁성으로서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표영의 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하 총관님과 함께 부주님을 뵈러 갈 테니 너는 내가 나올 때까지 이곳에서 견치지겁을 쌓고 있도록 해라.”

“네? 여기에서요?”

“그래.”

표영은 단호하게 말하고 느닷없이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것은 견왕의 신분으로 천선부 내의 개들을 소집하는 명령이었다. 천선부 내에도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고 개를 기르는 곳도 꽤 있었기에 개들은 날듯이 달려왔다. 천선부의 개들이라고 해서 견왕의 명령을 무시할 만한 특권은 없었다.

일단 삼십여 마리 정도가 순식간에 몰려들어 표영의 앞에 줄을 맞추고 섰다. 표영은 진백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뭐라고 주절거렸고 진백이 ‘월월’ 하며 알아들었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표영은 일단 진백에게 개들을 지휘하라고 명한 것이다.

천선부인들은 이 황당한 상황에 모두들 입만 쩍 벌리고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며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봤다.

‘개방의 방주는 개하고 말까지 하는군.’

‘허허, 거참.’

‘저건 우리 누렁이인데 저 녀석이 왜 저리 꼬리를 살랑대지?’

‘뭐, 뭐냐, 대체 이건…….’

진백은 연신 짖어대며 삼십여 마리의 개들에게 자세히 설명을 하는 듯했고 개들은 거의 다 들었는지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표영이 넋이 나간 하 총관에게 말했다.

“우린 가십시다.”

“예? 예, 그래야죠…….”

하 총관을 따라 표영이 가버리자 개들은 일제히 달려들어 혁성을 물어뜯었다. 혁성은 개들에게 포위되어 천선부 광장 한가운데서 모로 누운 채 개 이빨의 두려움에 대한 수련을 쌓아야만 했다. 혁성의 눈에서 서러움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 시커멓게 칠한 얼굴에 하얀 줄이 생겼다.

한참 혁성이 견치지겁을 연마할 동안 표영은 신임 부주 오경운과 마주 앉았다. 상견례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표영이 짐짓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혹시 경천일필 맹공효의 죽음에 대해 알고 계시는지요?”

“공효가 죽다니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오경운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현재 개방에서 파악한 정보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시작으로 표영은 상세하게 맹공효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고문산 절벽 아래로 추락했고 죽음 직전에 천보갑에 대해 언급하며 꼭 전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표영의 말이 끝날 때쯤 오경운의 안색은 붉게 변해 있었다.

“도대체 저로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군요. 공효가 죽고 또 난데없는 천보갑이라니…….”

“그럼 혹시 부주께서는 맹공효가 천보갑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천보갑에 대해 말씀하시길 없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하셔서 저는 거기엔 관심을 두지 않았었답니다.”

욕심을 갖지 않는다라는 것이라면 표영은 그 누구보다 대단하다고 자부해 왔는데 지금 앞에 있는 부주는 한술 더 뜨는 것 같았다.

“천보갑 안에는 금환신공이 들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에도 오경운은 놀랐다.

“네? 그럴 리가요!”

그리곤 말을 이었다.

“방주께서 오시기 전에도 저는 금환신공을 보고 있었습니다만…….”

“아니, 그럼 거기에 무엇이 들어 있다는 말씀입니까?”

표영의 놀람에 오경운이 난색을 표했다. 그로선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었다.

“글쎄요…….”

그는 문득 천보갑을 개봉할 수 있는 열쇠의 행방을 떠올렸다.

“천보갑에 대해선 모르지만 천보갑을 열 수 있는 이는 오직 돌아가신 아버지와 저의 넷째 동생 유태뿐이랍니다.”

표영은 그 말을 듣고 대충 상황이 짐작되었다.

“음, 그럼 이런 가정을 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건곤진인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맹공효에게 천보갑에 뭔가를 넣고 몰래 전달하도록 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맹공효는 천선부에서 나갈 때 천보갑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았던 거로군요. 혹시 동행이 있었습니까?”

“네, 부인과 함께 떠났습니다.”

“으음…….”

표영은 부인이 의심스러웠지만 함부로 말하기가 난처해 속으로 삭인 후 다른 질문을 던졌다.

“부주께 금환신공 비급이 있다면 거기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요? 왜 꼭 넷째 아드님께 전달하려고 했을까요?”

“사실 넷째가 우리 형제들 중에선 가장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났답니다. 아버지께서는 특히 유태를 아끼고 사랑하셨죠.”

그건 표영도 오비원으로부터 직접 들어 알고 있던 바였다.

“으음, 가만 생각해 보니 좀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어떤 점입니까?”

“그러니까 돌아가시기 6개월 전 정도일 겁니다. 그때부터 아버지께서는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 내전에 들면 뭔가를 황급히 숨기시곤 하셨죠.”

그 말을 하고서 오경운은 한숨을 내뱉었다.

“사실 누구에게도 부끄러워 말은 못했지만 천선부주의 자리는 원래 제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니랍니다. 사실 넷째의 자리인 것이죠.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따로 넷째에게…….”

오경운은 그 뒷말을 잇지 못했다. 표영도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표영은 속으로 말했다.

‘부주, 당신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주로서 자격이 있는 겁니다.’

오경운이 다시 입을 뗐다.

“아마 그것은 금환신공의 사본이나 새롭게 창안한 무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효가 죽으면서 진인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했고 그것을 천보갑에 넣어갈 정도이니 필히 금환신공이거나 새로이 창안한 무공일 가능성이 높겠지.’

“일단 희대의 보물이 강호에 떠돈다면 한바탕 대소란이 일어날 우려가 있으니 대책을 마련해야겠습니다.”

“당장 각 문파의 장문인들을 소집해 대비책을 마련하도록 합시다.”

제14장 소문은 천리마가 되어

하하하…

천보갑이라고 했으렷다.

이번엔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집 한 채 정도는 넉넉히 살 수 있는 돈이겠지?

이런 행운이 내게 찾아오다니…역시 나는 운이 좋은 놈이란 말씀이야.

하하하하!

- 맹공효를 제일 먼저 발견한 막포

***

두 눈.

아주 느리게 깜박이는 두 눈은 관상용 붕어의 눈처럼 그렇게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사람의 눈이 그렇게 천천히 깜박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단단히 각오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 느린 깜박임은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게 될 때 뭔가 달라져 있었다. 아주 미세해 구별하기 힘들었지만 그건 분명 생기(生氣)였다.

생명의 기운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눈빛이, 그리고 깜박임의 횟수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투명하리만치 푸르른 하늘은 죽음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기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그는 더욱 서글펐다.

‘누군가 팔베개라도 해주었으면…….’

꼭 팔베개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것을 지켜만 봐주어도 좋겠다.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한줄기 안타까운 눈빛이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죽어가는 숲 근처에는 그의 무릎 밑으로 열심히 식량을 옮기는 개미의 무리만이 있을 뿐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신 다른 것이 있었다. 머리 위로 죽음의 냄새를 맡은 것인지 독수리가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까마귀들이 독수리 다음을 노리고 있었다.

그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어, 어마…….”

죽어가는 마당에 속으로 되새길 수 있을 텐데도 그는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다. 피가 엉킨 메마른 입술 사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불러선 도무지 누구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금 힘을 내야만 했다. 이번에는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나왔다.

“어, 엄마…….”

이번에도 그렇게까지 명확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엄마라고 했다. 아마 그가 태어나 처음으로 배운 말이 ‘엄마’였으리라. 그는 어릴 적 울면서 엄마를 부르던 때를 떠올렸다. 엄마만 부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때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렀던 그 ‘엄마’라는 말을 그는 이제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내뱉었다.

힘없는 노인이 창문을 힘겹게 서서히 닫듯 그의 눈이 스르르 감겼고 다시는 떠지지 않았다.

그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몸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처럼 뚫린 가슴으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 독수리가 날아들었다. 이제 곧 화장을 당하듯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쓸쓸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죽음을 맞이한 이는 막포였다.

혼금부에서 일하던 요원으로 제일 먼저 맹공효가 떨어진 것을 발견했던 그이다.

막포의 죽음은 결국 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혼금부주 철온의 경고를 무시하고 정보를 팔아 한몫 챙겨보려 했다. 비밀리에 진행한다면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그가 찾아간 사람은 번천산장의 장주 번석이었다. 번석은 쾌검이라는 별호를 가진 자로 검술에 능했고 욕심이 많은 자였다. 막포는 그에게 천보갑에 대한 정보를 팔아 거금을 손에 넣으려고 했지만 결국 그 일로 인해 번석에게 죽임을 당해 독수리의 밥이 되고 만 것이다.

욕심이 많은 자를 찾아간 까닭에 그 욕심의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번석은 천보갑에 대한 말을 듣고 바로 은밀히 동료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약 십여 명의 동료들이 모이고 그들은 천보갑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모두의 심장이 뜨거워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말을 들은 것에 불과했지만 강호인들으로서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당장 천보갑이 수중에 들어오는 것처럼 흥분했다.

이렇게 천보갑에 대한 이야기는 막포에서 번석으로 이어졌고 다시 십여 명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제 점점 천보갑을 아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는 셈이다.

분명 번석은 이들에게 천보갑에 대해 말할 때 이런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그대들에게만 하는 것이니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해선 안 되네. 알겠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당연히 크게 고개를 끄덕였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떤 이는 버럭 소리까지 지르며 ‘우릴 뭘로 보고 그렇게 믿지 못하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내 입이 무거운 것은 중원이 알아준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자부했던 사람들은 또다시 그 이야기를 비밀리에 전했다.

“이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만 당신에게만 하는 거야.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돼?”

“당연하지. 날 뭘로 보는 거야.”

이런 식으로 천보갑에 대한 소문은 일파만파가 되어 퍼져 나갔다. 번석은 입을 봉하기 위해 막포를 죽였지만 빠르게 전해진 소문을 생각할 때 막포만 불쌍하게 된 것이었다.

발 없는 말[言]이 천리 간다고 했다. 천리마가 제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어찌 욕망에 가득 찬 소문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것이 오비원의 유물이며 천보갑이라 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빠르게 전해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강호에는 삽시간에 천보갑에 대한 소문이 휩쓸었다. 심지어 어린아이조차도 천보갑에 대한 소식을 알게 되었다. 강호는 들썩였고 중원은 폭풍이 일어날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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