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90장 (19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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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어? 누구라구? 아, 묘 분타주! 어서 들어와.”

묘진이 내전으로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표영은 무릎걸음으로 은을 쫓아다니면서 연신 어흥 소리를 질러댔다. 표영의 차림새는 강호를 활보할 때와는 달리 매우 깔끔했다. 묘진은 익히 표가장 내에서 이런 모습을 봐왔던 터라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정 내에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실질적인 거지의 모습을 추구하는 개방이라고 해도 집에서 아들과 부인과 함께할 때만은 예외가 되어야 마땅했다. 그것은 비단 표영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가진 개방인이라면 누구나 허락되는 것이었다.

“방주님, 긴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묘진은 표영이 의자에 앉지 않고 여전히 아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기어다니는 통에 의자에 앉아 있기도 어색해 그저 뻘쭘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두 장로님이나 방주님이나… 허허… 참.’

표가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는 당장 천하가 두 쪽 날 것 같은 기분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온 강호가 평온해 보였다.

“어흥, 잡았다. 어흥, 어흥.”

“으아앙… 까르르∼ 살두세여…….”

“어흥∼ 묘진, 어서 이야기해 봐.”

“까르르르∼ 아바빠… 바부…….”

까꿍까꿍 하며 뽀뽀를 해대는 통에 곁에 있던 묘진은 일순 정신이 혼란스러워짐을 느꼈다. 말을 하려던 천보갑에 대한 문제와 지금의 평온함에 너무도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 방주님… 그러니까 천보갑이 강호로 유출된 듯합니다.”

“천보갑? 그게 뭔데? 까꿍… 까꿍.”

“까르르∼ 깔깔∼ 까르르르…….”

묘진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정신이 모아지질 않았다.

“그게, 그러니까 천보갑이 건곤진인으로부터 세상을 뜨셨는데 그게 그러니까 유물이… 중도에 절벽으로 떨어졌습니다만… 그래서 맹공효가 말하길 꼭 전해야 한다고 하면서… 세상을 뜨게 되었답니다.”

도무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무슨 이야길 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팍!

표영이 묘진의 눈앞에 우뚝 서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말이 앞뒤가 워낙 뒤엉켜 한마디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묘진이 소매로 땀을 닦아낸 후 순서대로 조리있게 말했다.

“건곤진인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 심복인 경천일필 맹공효에게 천보갑을 맡겨 어디론가 보내고자 했나 봅니다.”

묘진은 이 말을 시작으로 어떻게 맹공효의 최후를 목격하게 되었는지, 그가 내뱉은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더불어 희대의 명물인 천보갑에 대해서도 자신이 아는 만큼 설명해 주었다.

“천보갑이라… 좀 문제가 커지겠구나.”

“그렇습니다. 천보갑 안에는 금환신공이 들어 있을 게 분명합니다.”

“음, 천선부에서는 이 일을 아직 모를까?”

“그 부분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거의 7할 이상은 모른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의 개인적 판단으로는 맹공효가 배신을 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천선부에선 모르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음, 어쨌든 천선부로 가봐야겠구나. 너는 그 혼금부주에게 확실히 비밀을 지키라고 주지시켜 놓았겠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막상 대답을 한 묘진은 조금 불안함을 느꼈지만 곧 떨쳐 냈다.

‘철온은 그리 쉽게 입을 열 친구는 아니다. 아무렴.’

표영이 은을 안아 들고 힘있게 말했다.

“그럼 혁성과 진백을 데리고 천선부로 가야겠구나.”

제13장 또 다른 비급

다 좋다 이거야.

견왕지로도 좋고 그 안에 견치지겁도 좋아.

하지만 그것도 상황이나 때를 봐가면서 해야 되지 않냐구.

정말 싫다, 정말 싫어.

세상도 싫고 사부도 싫고 진백도 싫고

다 싫다.

이씨, 또 눈물이 나오잖아.

- 천선부 바닥에서 혁성

***

혁성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견왕지로를 향해 가는 길은 아무리 험난하다 하더라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그곳이 표가장이든 강호의 어떤 장소든지 말이다.

‘다 좋아, 다 좋다구. 하지만 왜 천선부에까지 이런 몰골로 가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좋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는 있었지만 가는 동안 내내 혁성의 머리는 어떻게든 천선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쪽으로 굴러갔다.

천선부까지 약 반 시진(1시간)가량 남았을 때 그동안 머리로 정리해 놓은 멋진 생각을 펴 보였다.

“사부님!”

약간 여유롭게 걷게 되자 혁성이 진중한 어조로 표영을 불렀다.

“뭐냐?”

표영은 계속 걸으면서 느긋하게 답했다. 걷는 걸음에 세 개의 호리병이 앞뒤로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쳐 발랄한 소리를 일으켰다. 보통 사람은 우연히 부딪치는 것으로 생각할 테지만 무공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고 음공에 대해 이해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이 결코 우연히 발생할 수 없음을 알 것이다. 제일 뒤쪽에서 큰 덩치를 촐랑대며 따라오는 진백은 호리병 박자를 맞춰 사뿐사뿐 뒤따라오고 있었다.

혁성이 본격적으로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번에 천선부로 가는 길은 매우 중대한 문제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흠흠, 저는 진백과 함께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높으신 분들이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제가 들어간다면 격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천선부 밖에서 사부님이 나오실 때까지 구걸이나 하며 수련을 쌓도록 하겠습니다.”

혁성은 수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사부 표영이 상당히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을 양념처럼 집어넣었다.

표영이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혁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네 녀석이 이제 제 분수를 파악할 줄 아는 경지에 이르렀구나. 대견하구나. 하하하하!”

표영은 혁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진백을 보면서 한마디를 이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진백은 혀를 길게 내밀며 헥헥거리고 꼬리를 살랑거렸다.

“좋다. 너의 가상한 마음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휴우∼’

혁성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고 어렵사리 설득에 성공하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번에 천선부에 이르게 되면 천선부의 모든 사람들에게 너의 성장한 모습을 멋지게 보여주도록 하자꾸나. 자, 어서 가자.”

“에에? 사부님!”

혁성은 어이없다는 듯 외쳐 보았지만 이미 표영은 성큼거리며 앞으로 걸어갔고 그 뒤를 진백이 촐랑거리며 뒤따랐다. 혁성은 울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려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저는, 저는 그냥 밖에서 기다리겠다니까요. 사부님, 정말 그러실 겁니까?”

저만치 앞에서 표영의 목소리가 맑게 들려왔다.

“음흥… 하늘이 참 맑지 않냐, 진백아?”

왈왈.

‘젠장…….’

혁성으로서는 막막했다. 천선부에서 나와 개방 제자로 들어간다는 것과 개방 제자가 되어 다시 천선부를 방문한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것이다.

혁성으로선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빠른 걸음으로 표영의 뒤를 따르며 혁성은 다시금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굴리기 시작했다.

‘이젠 사부의 도움 없이 내 스스로 날 지켜야 한다.’

차선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어쩔 수 없이 천선부에 들어가야만 한다면 어떻게든 못 알아보게 하면 되는 것이다.

표영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얼굴에 검은 자국을 묻혀 누가 보더라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했다. 안 그래도 꾀죄죄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평소의 혁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심지어 표영이 보더라도 워낙 시커멓게 칠해놓아 분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배려할 리 없는 사부가 애매히 폭로할 것이 두려워 말은 확실히 해놔야 했다. 변신이 완벽하게 성공한 후 혁성은 비굴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헤헤… 사부님, 저는 이제 천선부 사람이 아니라 개방 사람이잖습니까요?”

표영은 입을 툭 내밀고 ‘이건 또 뭐냐’는 식으로 바라보았다.

“근데?”

“에헤헤… 그러니까 굳이 천선부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저를 드러내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요?”

표영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듣고 보니 그렇구나.”

“에헤헤… 그냥 저는 부모님이나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께만 제가 혁성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요. 괜찮겠습니까요?”

“그래, 뭐 나쁘진 않구나. 근데 그 웃음소리 말이다.”

“네? 아하… 에헤헤요?”

“응, 그것. 상당히 멋지구나.”

“에헤헤… 그럼 자주 하겠습니다요.”

노골적으로 비굴함을 드러내며 혁성은 연신 ‘에헤헤’거렸다.

“에헤헤… 에헤헤…….”

천선부 근처에 이르자 외부 수비를 맡고 있는 이들이 표영과 혁성을 감지했다.

“그렇군. 근데 그 옆에 있는 지저분한 녀석은 누굴까?”

“글쎄, 제자는 혁성 공자님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새로 거둬들인 제자가 아닐까?”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 혁성 공자께서 저런 몰골로 천선부에 오시진 않을 테니 말이야.”

“아무렴. 방주님도 그 정도는 배려해 주는 분이겠지.”

“그런데 저기 뒤에 따라오는 개는 뭘까?”

“그러고 보니 일행이로군. 어허, 고놈 덩치가 호랑이만할세.”

“하여튼 특이하다니까, 특이해.”

두 사람은 전음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표영과 혁성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만일 적으로 의심된다면 일단 이곳에서부터 검열이 시작되는 것이다.

표영이 천선부 정문에 이르게 되었을 때 천선부에서는 이미 수비대원들을 통해 알고 있었던 터라 바로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천선부인들은 개방 방주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뒤를 잇는 어린 거지와 흰 개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혁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흐흐, 역시 완벽했어.’

그때 표영이 시선을 의식한 듯 옆에서 걷는 총관 하문양을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하하,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간단히 동행을 소개할까요?”

총관 하문양은 느닷없는 말에 얼떨떨하게 답했다.

“뭐, 편하실 대로 하시죠.”

하지만 이 말에 이미 혁성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버렸다.

‘뭐, 뭐지?!’

표영은 곧바로 천음조화를 시전해 고요하고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음조화의 기본적인 특성은 거리에 상관없이 소리가 닿는 곳까지는서는 같은 음량으로 소리가 들린다는 점이었다.

“개방의 방주 표영이 제자 오혁성과 영특한 개 진백을 데리고 천선부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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