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175.
제15장 오비원이 남긴 것
나의 삶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무엇을 위해 이때까지 살아왔는가.
난 정말이지 제대로 살아온 것일까.
하늘에 가면 꼭 물어보고 싶군.
- 죽음 직전의 오비원
***
오비원은 침상에 누워 가느다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여기서 가느다란 숨이란 내공이 절정에 이른 고수들이 호흡을 한 듯 안 한 듯 내쉬는 그런 호흡을 말함이 아니었다. 죽음의 입구에 서성이는 한 인간의 호흡일 뿐이었다.
천하제일고수.
하늘과 땅도 놀랄 만한 사람.
이러한 칭송도 하늘이 정한 운명의 시간을 거역하긴 힘들었다.
오비원은 푹신에 침상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만일 신(神)이 묻길 너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몇 가지는 후회한다고 말할 것 같았다. 언뜻 떠오르는 것만도 -물론 조금 애매하긴 해도- 서너 가지가 되는 듯싶었다.
‘천하제일이란 무엇이냐. 나는 그 명성을 조금 더 일찍 버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은퇴 후 내가 후회하고 있는 것들을 추스르며 마지막을 보냈다면 이렇게 답답하진 않았을 텐데…….’
혈곡이나 마천 같은 사파의 세력들을 견제해야 하므로 강호에 남았어야 했다는 생각 따위는 이제 헛된 핑계로 느껴졌다. 게다가 이젠 자신이 떠나도 강호를 지킬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다.
‘후후, 구주신개. 그 녀석이라면 잘해줄 거야.’
표영을 떠올리자 오비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엽지혼, 자넨 여러 가지 일로 먼저 떠나 섭섭할는지 몰라도 난 자네가 부럽네그려. 우리 같은 강호인들에겐 제자야말로 아들과 같지 않은가 말일세. 자네 제자는 솔직히 너무 잘났단 말이네. 자네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그 녀석과 맞선다면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네. 뭐,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겠는가마는 그만큼 대단하더라는 것이지.’
오비원은 엽지혼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가득 차 올라오자 셋째 아들이 어른거렸다.
“휴우… 보고 싶구나.”
그는 초절정의 고수답게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길어봐야 삼 일 정도일 것이었다. 그 삼 일 동안 그는 하나씩 정리해야만 했다. 천선부의 장래에 대한 문제들이 주를 이루는 것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천선부에 대한 것보다 더 각별한 것이었다.
‘음… 이제 공효가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심복인 공효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그 각별한 것을 위함이었다.
그의 생각이 전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속하 공효, 부주님의 부르심을 받듭니다.”
문밖에서 공손하면서도 비굴함이 섞이지 않은 음성이 들렸다. 맹공효는 음성만으로도 어느 정도 그 인간 됨됨이를 전하고 있었다.
“들어오라.”
얕게 속삭이듯 내뱉은 소리였다. 보통 사람 같으면 뭔가가 스치는 소리로 착각했을 만큼이나 가느다란 소리라 할만 했다. 하지만 맹공효는 천둥처럼 크게 들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맹공효의 모습은 태연한 듯했지만 그의 마음은 사실 찢어지는 듯 아팠다. 단언컨대 그로선 이제껏 부주가 저런 목소리를 낸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맹공효는 나이가 이제 고작 30대 중반에 불과했지만 그의 성취는 남달랐다. 그는 14세 때 천선부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뛰어난 근골을 타고나 오비원으로부터 전광철획(電光鐵劃)이라는 무공을 전수받아 지금 강호에는 경천일필로 통하고 있다. 비록 천선부 내에서 군신(君臣)의 예를 취하고 있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스승과 제자였다. 오비원은 특히 맹공효를 아껴 늘 곁에 두고 중요한 일을 맡기곤 했다.
“가까이 오라.”
오비원의 음성은 꺼져 가듯 힘겹게 새어 나왔다. 맹공효 그의 굳센 얼굴은 순식간에 제어력을 잃고 하마터면 울컥하고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에게 있어 오비원은 절대자이며 신과 같았다. 또한 어릴 적에 부모를 잃고 떠돌던 자신을 거두어 준 스승이며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아직은 울지 말자.’
눈물은 도리어 부주를 서글프게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맹공효는 대답을 할라치면 입술이 삐죽거려질 것 같아 아무 말 없이 가까이 다가갔다.
움푹 꺼진 눈, 핏기 없는 피부, 이젠 완연히 백발을 이룬 머리카락… 오비원의 외모 어디에도 과거 천하를 내려다보던 절대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희망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침울한 표정을 짓지 마라. 아직 세상을 떠난 것은 아니잖으냐.”
애써 참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표가 난 모양이었다. 그나마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고 있던 맹공효는 오비원의 말에 허락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공효는 눈을 깜박이지도 못하고 붉게 충혈된 눈을 그저 뜨고 있었다. 눈을 깜박이면 더 많은 눈물이 쏟아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오비원은 가만히 그런 공효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 기분 나쁘진 않구나. 누군가 날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지.”
“…….”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늘이 정한 이치이니 그 누가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 내 이전의 그 어떤 자라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길이지. 누가 먼저 가는지, 누가 늦게 가는지의 차이가 아니겠느냐. 내 말인즉,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느릿하게 말하면서도 숨이 찬지 오비원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말을 이었다.
“내 이제껏 살면서 후회되는 일이 없다고 할 수 없으나 그중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내 셋째 아들을 박대한 것이다. 이제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나는 이때 그 녀석에게 아비의 선물을 주고 싶다. 이것은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니 너는 힘을 다해 전해주어야 할 것이다. 너는 무공과 경공이 뛰어나고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터이니 큰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쿨럭… 쿨럭…….”
오비원은 좋지 않은 몸 상태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한 까닭에 거세게 기침을 토했다.
“쿨럭… 쿨럭…….”
큰 소리를 내기 어려운지 오비원이 손짓으로 맹공효를 불렀고 맹공효가 바짝 다가가 귀를 댔다. 오비원이 들릴 듯 말 듯 말하기 시작했다.
“나의 보물은… 천보갑에 담아… 네가 거처하는… 곳 천장에 미리 놓아두었다… 그 속에는… 쿨럭쿨럭…….”
마지막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눈물로 얼룩진 맹공효가 귀를 더욱 바싹 대야만 들을 수 있었다. 천보갑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를 듣고서 맹공효는 더욱 눈물이 났다. 그것은 오비원에게 있어 그 어떤 것보다 값진 보물일 터였다. 그 값진 것을 자신에게 전달해 달라는 것에 맹공효는 감사했다. 그건 자신이 마치 아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맹공효의 눈물이 오비원의 이마에 떨어졌다. 오비원이 그 눈물이 그에 다짐을 받은 것이라 여기며 작게 중얼거렸다.
“됐다, 피곤하구나. 조금 쉬어야겠다.”
“속하, 부주님의 하늘과 같은 은혜 높이 받들어 차질 없이 뜻을 이루겠습니다.”
맹공효는 그 보물이 천보갑에 들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히 다루고 있음인지 알 수 있었다. 천보갑은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담가도 속으로 물이 투과하지 못하고, 도검이 뚫지도 못하는 특수한 작은 상자였다. 책 두어 권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기에 주로 과거로부터 귀한 무공 비급을 보관하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었다.
떨리는 음성으로 맹공효가 말하고 거처를 나가자 오비원은 가만히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아쉬움이 어느 정도 가시는 듯하구나.’
오비원은 맹공효에게 은밀히 천보갑에 대한 것을 명한 후 이틀이 지나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 81세였다. 강호의 거성이 떨어진 것이다.
강호의 수많은 인사들이 천선부로 향해 천하제일고수로서 명성을 휘날린 오비원의 가는 길을 애도해 주었다. 각 대문파의 수뇌들은 물론이거니와 군소방파에서도 그의 죽음을 애석해했다. 표영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그 아쉬움은 이루 말로 형용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들이 가져온 화환들만 해도 천선부를 가득 메울 지정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소림사)
고 오비원 대협의 영전에 애도하는 마음으로 명복을 빕니다.(무당파)
평소 고인의 은덕을 되새기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화산파)
심지어 흑도인들의 구심점이랄 수 있는 혈곡에서도 세 명의 장로가 찾아와 오비원의 환을 앞에 두고 향을 올렸다. 비록 천선부가 앞으로 어찌 변화될 것인지를 정탐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천하를 호령한 절대고수에 대한 예라 할 수 있었다.
천선부에는 수많은 화환이 전달됨과 함께 그 자리에 모인 정파인들은 각기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앞으로의 강호가 어찌 변할지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곤진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나타날지 걱정되는군요.”
“제 생각엔 그리 염려할 것은 없을 듯합니다. 얼마 전 마(魔)의 하늘이라는 마천이 정체불명의 고수에 의해 강호에서 사라졌던 일이 있지 않습니까?”
“저도 동감입니다. 연약한 발언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최고라고 믿는 것은 비교도 안 되는 그런 문파가 있어 강호를 지켜주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긴장이 풀어져서도 안 되겠지요.”
“천선부가 그 위력이 감소했다 해도 그와 대조적으로 개방의 힘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건곤진인 또한 농담반 진담반으로 앞으로 강호는 개방을 중심으로 그 힘을 펼쳐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현 개방은 물론 그런 믿음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너무 과대평가되는 것은 아닌지…….”
오비원 이후의 강호에 대해 사람들은 이와 같이 어느 정도는 평안함을 예언했다.
하지만 강호인들 중 어느 누구도 오비원이 남긴 보물이 세상에 나와 중원에 대혼란이 야기될 줄 짐작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 일을 가리켜 ‘천보갑의 유산(遺産)’이라 칭했다.
* 작가의 말
마천루 스토리 5 - 어느 처절하고도 오래된 죽음에 대해
분명 꽤나 이른 아침이었다.
요사이 이렇게 일찍 일어나 본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이 들 만큼 이른 시간이었다. 주섬주섬 일어나 손목에 매인 시계를 바라보았다.
10:05.
째깍째깍.
'오늘은 너무 일찍 일어났네'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윈도우 98이 깔려 있는 노트북에 나오는 디지털 시계가 약 5분 빠르긴 해도 그때가 새벽 5시 30분을 막 지나려던 차에 정리하고 잠에 들었으니 4시간 반을 잔 셈이었다. 아무래도 조금은 더 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꾸물꾸물.
가끔 나는 잠을 조금밖에 자지 않고 글을 쓰는 객기를 부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뿌듯한 마음에 많은 분량을 쓸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물론 처음에는 굉장하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갈수록 손과 발이 움직임을 거부하고 머리가 늘어져 아이디어는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려 효과적이지 못하고 결국에 가서는 객기임이 판명 지어지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다시 자기엔 왠지 뭔가 어설펐다.
"그래, 마인드 컨트롤이다."
라고 중얼거리며 난 스스로에게 컨디션 회복 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마법이 전신 가득 퍼지길 바라는 마음에 개인 컵에 물 한 잔을 따라 홀짝이며 밖으로 나왔다.
지난날 태풍이 지난 후라서인지 공기는 맑았고 주변이 청명해 보였다. 처음 본 새 한 마리가 한가로이 이 집 저 집 구경하듯 비행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찰병인가 보군. 훗.'
난 내가 생각해도 헛소리인 것을 직감하고 후훗거렸다. 그때까지, 즉 내가 낯선 정찰의 임무를 띤 새를 생각하고 있을 때만도 난 처절하고도 오래된 죽음을 바라보게 되리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했다. 단언하건대 솔직히 그것은 너무나 황당해 어지간한 예지자들이라 할지라도 짐작하기 힘든 것일 게 분명했다.
"으아악∼"
이른 아침의 고요를 깨뜨리는 비명이 사무실 내에서 터져 나왔다.
익히 들어온 목소리!!
그건 타락고교의 저자 홍성화님의 목소리였다.
난 한참 동안 저놈의 정찰병의 임무가 과연 정찰만 있는지, 아니면 다른 여러 집들의 사생활을 남몰래 엿보는 부수적인 직분남용을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하고 있었던 터라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침부터 성화 형 오버하는군.'
작가들은 글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거나 할 경우엔 난폭해지거나 폐인이 되는 경향이 있기에 난 그런 일반적인 부르짖음에 약간의 오버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려니 단정 지어버리고 오늘 하루 써내려 갈 글의 줄거리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표영이 혁성이를 아작 내야 하는데. 그래, 맞아. 비디오의 느린 화면을 이용하는 거야. 쿠쿠쿡."
난 실제 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그저 행동만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는 것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고 그것은 내가 생각해 봐도 엉뚱하고 또 즐거웠다.
쿠쿡거리며 중얼중얼거리던 내 세부적 구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내 귀에 다시금 비명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현영아∼ 살려줘∼"
오, 이런…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닌 게 분명했다. 대개 누구누구∼ 살려주세요 등등의 말은 슈퍼맨이나 배트맨, 스파이더맨류의 초절정 영웅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형식으로 내가 불려졌다는 것은 나로서도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쌔애앵∼
난 절정의 신법인 풍운보를 시전하여 발 아래로 먼지를 일으키며-나중에 치우려면 고생스럽긴 해도 당장은 폼이 나다 보니-사무실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건 거의 슈퍼맨의 등장과 비슷할 정도로 날렵했고 멋진 모습이었다.
물론 아직 안경을 쓰고 있는 채였고 유니폼도 갈아 입지 않았으며-공중전화 부스나 회전문을 찾기가 어렵다 보니-머리는 부스스하고 수염이 얼굴 사방을 뒤덮고 있었지만 상황과 나의 의도는 대충 비슷했다… 고 생각했다.
성화 형은 손가락으로 컴퓨터 본체를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본체는 새벽녘부터 우웅 하는 거의 우리 나라 최초의 자동차인 포니의 엔진음 같은 소리를 내던 것이었다. 새벽에도 몇 번이나 들고 나가 뜯어보다가 계속 소리가 나 다시 뜯어보던 중이었던 것이다.
"바퀴… 바퀴벌레가 들어 있어∼"
그건 차라리 절규였다.
'이런… 바퀴라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슈퍼맨이 고작 바퀴벌레나 처리해야 하다니……. 요즘 슈퍼맨 성질 많이 죽었군.'
생각해 보니 요즘 슈퍼맨 시리즈가 중단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하찮은 일로 불러대다 보니 짜증이 나 잠적하였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갸우뚱∼
'그럼 나도… 잠적해야 하나…….'
그건 조금 생각해 볼 문제였다.
여기서 잠깐 성화 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형은 나보다 여러모로 뛰어나다. 나이가 나보다 두 살이 많아 내가 밥그릇 숫자로 레벨을 맞추려면 장장 730그릇을 더 먹어야 한다. 또 나보다 얼굴이 잘생겼으며 키도 크다. 결정적인 건 배가 안 나왔다는 점이다. 또한 글에 대한 예술적 감각도 훌륭하다. 게임도 잘한다(전 마천루 스토리 참조 요망).
제길, 그러고 보니 난 대체 뭐지. -_-;;
하지만 내가 성화 형보다 더 뛰어난 것도 많다.
첫째… 으음… 그러니까… 이런… 제길, 없군…….
내가 갑자기 미워진다.
비교적 분석이 아닌 관점에서 성화 형을 바라볼 때 그에겐 두 가지 결점이 있다. 하나는 타락고교나 투귀류 같은 다분히 파워풀한 글을 쓰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벌레를 무지무지 싫어한다는 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혐오를 뛰어넘어 무서워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직 미스터리다.
또 하나는 생선회다. 그래서 마천루에서 생선회 먹기는 무척 까다롭다. 새롭게 만들어진 속담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성화 형과 생선회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라는 것으로 이건 도저히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형수님이랄 수 있는 순정님은 벌레 같은 것은 뚝딱 해치울 것 같은 야무짐이 돋보여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닐지 싶다.
다시 사건의 현장으로 돌아와서.
성화 형은 새벽에 소음의 원인을 하드디스크와 시피유 쪽으로 보고 나사만을 조였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파워 쪽을 분해해 보았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으카아악∼"
괴상한 비명 소리였다.
'저런 비명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거라구. 만화를 많이 보더니'라고 나는 속으로 주절거렸다. 하지만 겉으로는,
'어디어디?' 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로선 너무 태연하면 성화 형이 더 쪽팔릴 것 같아 같이 호들갑을 떨어준 것이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착한 듯-퍼억∼ 으윽∼ 좋아좋아. 이 말은 취소-나의 물음에,
'저기 사이에 있잖아'라며 형은 파워 쪽을 가리키면서 경기를 일으키기 일보 직전의 모습을 보였다.
"좋아, 타락고교 작가가 대항하기 힘든 바퀴벌레 따위는 이 걸인각성 작가가 없애주지. 크하하하!"
난 어깨를 한번 으쓱한 다음에 자신있게 말해 주었다. 괜히 걸인각성 작가가 아니잖는가.
그 순간에도 성화 형은 난리법석도 아니었다.
"으아악∼ 믿을 수 없어… 어찌 내게 이런 날벼락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솔직히 시끄러웠다. 귀를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쪽 귀퉁이에 찌그러져 있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내가 찌그러져 있어야 할 가능성이 백 퍼센트이기 때문이다.
난 비장의 카드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나 시끄러워 자꾸만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기울어갔다. 그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것이냐, 말 것이냐 정도로 심각한 갈등이었다. 하지만 난 결국 원폭을 투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얼음!"
이라고 외치며 난 벌떡 일어나 성화 형의 어깨를 짚었고 성화 형은 한 손을 추켜세우고 입을 벌린 채로 굳어버렸다.
왜 그런지는 대한민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다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모른다고? 원래 얼음 하면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왜냐면… 그건 게임의 법칙이니까! 내가 다시 터치해 줄 때까지 성화 형은 저대로 얼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사실 이 얼음게임은 진실이었던 것이다).
난 잘 굳었는지 들고 있던 컵으로 두들겨 보았다.
텅. 텅.
명쾌하게 들리는 것만 봐도 제대로 굳은 것이 분명했다.
"휴우, 이제 좀 조용하군. 이제 자세히 들여다볼까?"
난 긴장감을 높이고 바퀴벌레를 찾았다. 하지만 난 긴장할 필요가 없음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이미 바퀴벌레는 죽은 채였던 것이다. 게다가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지 파삭파삭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컴퓨터 본체 파워부를 보면 바깥쪽으로 팬이 붙어 있고 그 안쪽으로 여러 장치가 배열되어 있는데 바퀴벌레는 팬의 반대쪽 쇠창살 너머(?)를 보며 죽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사인 분석에 들어갔다. 조사에 있어 아쉬운 점이라면 돋보기가 없다는 것. 대신 나는 안경을 추켜세우고 살피기 시작했다.
"으음."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난 보고, 그리고 느끼고 만 것이다. 당시 바퀴벌레가 얼마나 처절한 고통 속에 죽어갔을 것을 말이다.
컴퓨터 파워부로부터 진한 애절함이 사무실 전체로 퍼져 묘한 공기를 형성했다.
난 물이 떨어진 컵에 일회용 커피를 타고서 바퀴벌레가 죽었을 당시를 추리해 보았다.
아마 그 바퀴벌레가 그곳에 갇힌 것은 적어도 두 달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바퀴벌레는 사무실 내를 자유자재로 왕래하며 그다지 깨끗하지 못한 환경에 만족하며 은밀한 삶을 이어갔다.
막강 울트라 파워 바퀴 약이 곳곳에 부비트랩이나 기관 장치처럼 설치되어 있었지만 나름대로 고수라 자부하는 바퀴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미 기관 장치에 당해 처참하게 죽은 것을 본 다른 바퀴들은 짐을 싸들고 분분히 사무실을 떠나 주변 허술한 곳으로 이동했지만 그 바퀴는 떠나는 이들을 비웃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 기관 장치들은 최첨단이었고 그 위력도 가공할 정도로 엄청난 것들이었다. 대략 그 위력이 어떠한지는 기관 장치들의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바퀴 박멸제 퍼펙트.'
그 밑에는 작은 문구로 '살짝만 연고를 짜 구석탱이에 발라주세요'라고 적혀 있었고 -난 설마 정말로 구석탱이라고 적혀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그 아래로 같은 글자 크기로 '바퀴 없는 나라로 선진 조국을 만들어갑시다'라는 글귀가 거창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회사 이름도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바퀴벌레들은 이것의 이름만 봐도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 분명했다.
바퀴가 없는 그날까지-주식회사
주소:00시 00동 00번지
전화번호: 000-000-0000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퀴나라 총공격'이라는 상품은 거의 바퀴를 전쟁 상대로 여기는 분위기로 몰고 갔으며 그 밑에 가미가제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아 시작부터 바퀴들의 전의를 상실시키고자 했다.
이 물건은 초기 제품과는 달리 최근에 나오는 제품에는 우리 나라 정서를 고려해 가미가제라는 말 대신 '이 한 몸 불살라'라는 것으로 대치되었다고 한다. 역시 우리 나라 말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또 다른 것은,
'바퀴야, 놀자'라는 상품인데 이것은 바퀴가 좋아하는 향을 풍겨 유인한 후 중독시키는 사파의 법칙을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 상품은 대개 다른 약품들이 바퀴가 두 조각나는 그림이나 불살라지는 그림을 그려놓는 것과는 달리 바퀴와 어린아이들이 함께 소꿉놀이를 하는 그림과 가정주부들이 애완용으로 키우며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짓는 그런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어느 바퀴벌레가 봐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인데 그 마수에 걸려 죽어 나간 바퀴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 외에도 마천루에는 수많은 바퀴를 잡는 기관 장치가 수두룩 널려 있었다. 대충 살펴보자면,
바퀴는 다 싫어, 바퀴 헌터, 바퀴 퍽큐, 멍청한 바퀴들(이 회사는 아마도 심리전을 이용하려한 듯싶다. 하지만 바퀴들을 너무 뜨문뜨문 본 까닭에 지금은 망했다고 한다), 바퀴 지옥, 바퀴 밧투, 바퀴 주화입마 등이다.
어쨌든 이런 무수한 장치를 마천루에 살고 있는 이 바퀴가 무시했더라는 말이다.
-훗, 바보들. 연약한 것들이 꼭 저런 식이지. 나중에 또 그곳에서도 기관 장치가 만들어지면 다른 곳으로 갈 테냐. 그러기 전에 경공술과 은신술을 더욱 깊이 연마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왜 모르는 것인지.
역시 마천루에 기생하는 바퀴답게 무공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다. 베란다 쪽에 비치된 전시용 무협서적을 마치 비급처럼 연마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의 비웃음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가져올지 그 바퀴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유난히 서늘한 새벽녘이었다. 이런 날 온도 유지를 못하면 급사하는 수가 있기에 바퀴벌레들은 대개 서로 연합해 무리를 지어 온도를 높이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마천루의 바퀴벌레는 혼자였기에 그런 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바퀴는 역시 보통 강호바퀴가 아닌 절정의 바퀴고수였다. 춥거나 혹은 더울 때 어느 쪽에 몸을 두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마천루에는 추위를 이길 만한 곳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보다 더 기막힌 안식처는 없지.
바퀴는 유유히 이동하며 어느 곳으로 갈지 갈등했다.
-이거 너무 많아도 머리가 아프군.
바퀴가 말하는 안식처는 바로 컴퓨터 본체 안쪽이었다. 가끔 그곳에 있다가 전기 충격으로 쇼트가 나 화들짝 놀란 적도 있었고 느닷없이 시피유가 돌면서 놀란 적도 있었지만 그 나름대로 지루하지 않는 이벤트라 생각했고 거기에 묘한 매리트를 느꼈다.
어쨌든 공기가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팬이 돌면서 공기가 순환이 되는 까닭에 추운 날에는 제격이었다.
바퀴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살폈다. 글을 쓰고 있는 이는 비뢰도 작가 목정균님밖에 없었다. 힐끔 살펴보니 무당괴협전의 작가 한성수님이 보이지 않았다.
-저곳으로 갈까? 아니야, 저건 펜티엄 1이라고… 아주 구닥다리지. 본좌가 거하기엔 솔직히 자세가 나오지 않는단 말씀이야.
거만한 바퀴는 본좌 운운하며 한성수님의 컴퓨터를 가볍게 무시했다. 솔직히 무시당할 만했다. 시대가 대체 어떤 시대냔 말이다. 펜티엄4가 평준화되고 있고 2기가대 시피유가 보급형이라고 선전하는 시대이지 않는가.
바퀴가 한성수님의 자리를 지나 다음 칸을 흘깃거렸다. 그곳은 걸인각성 작가 김현영의 자리였다. 사람은 없었지만 얼핏 눈에 '걸인각성'이라는 책 제목이 보이자 바퀴는 한차례 몸을 떨었다.
-걸인각성 작가. 으음… 언제나 생각만으로도 무섭다. 여긴 피해야 해. 게다가 노트북이니 들어갈 수도 없잖아.
바퀴는 왠지 걸인각성 작가에게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걸인각성이라는 책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해야 옳았다. 그 초록 빛깔의 표지와 그 속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묘한 공포를 주었는데 그것은 본능을 일깨우는 두려움이었다.
-여긴 피해야 해.
바퀴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는 것을 말이다. 표영의 혼은 하찮은 미물에게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리만큼 살아 있음이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그 앞쪽 본체였다. 마침 홍성화님이 자리에 없는 까닭에 바퀴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접근했다. 본체 뒤쪽에는 여러 카드를 꽂는 곳이 있고 칸막이가 되어 있지 않아 왕래는 어렵지 않았다. 안쪽에서 그래픽카드와 시피유 사이를 왕래하던 바퀴는 늘 다니던 곳이라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뭔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데…….
인간들이 하는 에베레스트 산 정복이라든지… 는 아니더라도 모험을 할 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때 바퀴의 눈에 네모난 철판함이 보였다. 뭘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다른 곳보다 열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음∼ 좋은걸.
바퀴는 망설임없이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쇠창은 틈이 좁아 몸집이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 더듬이 두개를 집어넣고 머리를 우겨넣어 보았지만 삼 분의 일 정도를 넣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바퀴는 경험이 풍부한 터라 반드시 돌아 들어가는 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본체를 빠져나와 뒤쪽으로 올라갔다.
바라보고 있자니 미소가 떠올랐다. 몸을 충분히 들이밀기에 적당한 공간이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다름 아닌 컴퓨터 본체의 파워부였다. 가장 열기가 많이 나는 곳이기도 했다.
스멀스멀.
안쪽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파워부 내부는 비좁았다. 하지만 새로운 곳이라는 충족감이 비좁음이라는 불만을 걷어차 버렸다.
바퀴는 만족한 미소와 함께 따뜻한 환경 속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바퀴는 그것이 마지막 잠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얼마나 잤을까.
우우우웅∼ 쌔애앵∼
파워의 안쪽에서 노곤한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던 바퀴는 굉음에 벌떡 일어났다(이런… 바퀴가 다리를 들어 올리고 등으로 눕는지 아니면 걷는 그 자세 그대로 자는지에 대해선 솔직히 모른다).
컴퓨터가 켜진 것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홍성화님이 새벽에 사무실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바퀴에게 이런 경험은 흔한 것이었다.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았으면 바퀴가 홍성화님을 가리켜 '홍길동'이라는 별명까지 지 멋대로 붙여놓았겠는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컴퓨터 안에 들어갔다가 시피유 돌아가는 소리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퀴는 벌떡 일어났지만 한두 번 경험한 것도 아닌지라 크게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순간 평소완 다른 뭔가가 느껴졌다. 그건 벌레 특유의 감각이었다.
-이런… 그러고 보니 이곳은 다른 곳이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듯 바퀴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까 들어왔던 곳만이 나갈 수 있는 통로인데 그곳은 이미 파워팬이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었다. 그쪽으로 간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팬이 도는 까닭에 몸이 조금씩 이끌려가고 공기를 빨아들이는 통에 호흡이 곤란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컥… 숨을 쉬기가… 허어업… 흐으으읍… 헤에에… 에엑…….
바퀴는 너무도 거센 태풍 앞에 숨을 간신히 몰아쉬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이렇게 죽을 순 없는 것이다.
-난 안 돼… 버텨야 해…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바퀴는 혼신의 힘을 다해 팬의 반대 편으로 다가가 쇠창살을 부여잡고 숨을 헐떡였다. 숨을 쉬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지만 바퀴는 초바퀴적인(?) 힘을 선보이며 버텼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파워부 안의 열기가 점점 달아올라 견디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조금만 버티면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이 기계는 동작을 멈출 테고 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껏 수많은 기관 장치에서도 살아남았던 내가 아니던가.
스스로 용기를 북돋고 있는 바퀴는 그 순간에도 숨을 헐떡거렸다.
-헤에… 에엑… 헤에… 에엑… 후으으으읍……. 조금만, 참으면 조금만 참으면 구조대가 올지도 모른다.
정신은 점점 아득해져 갔다. 바퀴는 다시 힘을 다해 정신을 잃은 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좁은 지역으로 이동한 바퀴는 몸을 꽉 끼어 바람에 빨려가지 않도록 한 후 뜨거운 열기와 싸워 나갔다. 철판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한 시간이 가고 두 시간이 넘으며 장장 세 시간이나 지났다. 이제나저제나 탈출의 시간만 기다리던 바퀴에게 도저히 회복 불능의 치명적인 말이 들려왔다. 그건 홍성화님의 목소리였다.
"앞으로 일주일은 바짝 써야 하니까 컴퓨터 끄는 일 없이 계속 써야지. 컴퓨터 부팅되는 시간도 아깝다니까. 다른 사람도 내 컴퓨터 켜져 있어도 절대 끄지 마."
땅. 땅. 땅.
바퀴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그렇게 바퀴는 쓰러지는 희망과 함께 고개를 떨군 채 서서히 죽어갔다.
나의 추리가 다 끝나갈 때쯤 컵 안에 커피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난 바퀴벌레의 어이없는 죽음에 대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렇다.
애도. 애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했다.
나의 손은 가만히 컵을 내려놓고 어느샌가 진공청소기를 들어 올렸다.
쑤우우웅-
그렇게 바짝 말라 버린 바퀴의 흔적은 진공청소기 안으로 사라졌다.
안녕∼
잠시 후 나의 터치로 얼음에서 깨어난 성화 형은 컴퓨터를 조립하고 다시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엔 전과는 다른 비장감이 엿보였다. 마치 바퀴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일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p.s>마천루 홈페이지가 드디어 열렸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었죠, 저도 잊어버리고 있었을 만큼.
주소는 www.machunru.net입니다.
메일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