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70장 (17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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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제11장 수라혼마강시

진백아! 야, 이놈아!

내가 말이다. 너와 함께 밥을 먹는 것에 불만을 가지는 건 아니야.

하지만 왜 하필 취설루 정문 앞에서냐고.

아이고, 불쌍한 내 인생아.

- 진백과 그릇을 마주하고 있는 슬픈 혁성

***

호북성 안현 지역의 변두리에 위치한 취설루.

이곳의 주인장 조묵은 제대로 된 건수를 잡아 기분이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대개 주루를 통째로 하루 동안 빌려주는 경우엔 대략 보름치 수입을 상회하는 금액을 받게 되는데 이번 계약은 단 하루에 그의 두 배가 되는 돈을 받은 것이다.

특별한 조건이 붙긴 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조묵에게도 춤을 출 만한 조건이었다.

‘요즘 매상이 좋지 않아 마음이 괴로웠는데 하늘이 날 도우셨구나. 흐흐흐, 매달 한 번씩만 이런 계약을 성사시키고 난 벼락부자가 될 텐데…….’

계약자가 내건 조건은 딱 한 가지였다.

그날 하루만큼은 누구도 주루에 남아 있지 말아달라는 것, 아무런 음식 준비도 없이, 주인도 주방장도 잔심부름 할 점소이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조묵으로서야 그것이 무에 어렵겠는가. 주방장이나 점소이들에게도 선심 쓰듯 휴가를 하루 주게 되는 셈이니 이건 꿩 먹고 알 먹기였다.

취설루를 하루 빌려 쓰게 될 이들이 약속한 시간은 정오였다. 아직 정오가 되기에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인지 아무도 도착한 사람은 없었다. 변두리라 사람도 지나다니지 않는 취설루에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 이는 표영이었다.

표영은 혁성과 진백을 데리고 느긋하면서도 건들거리는 특유의 걸음으로 취설루의 정문 앞에 이르러 중얼거렸다.

“취설루라… 여기로군. 으음, 혁성아. 이 사부는 각 장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니 너는 이곳에서 진백과 함께 기다리고 있어라. 그리고 정오가 되거들랑 준비해 온 밥을 진백과 나눠 먹는 것도 잊어먹어선 안 된다, 알겠지? 견식식탐이 벌써 사 개월째에 이르렀으니 더욱 마음을 다해 연마해야 한다.”

표영의 말에 혁성이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사, 사부님. 저도 오늘의 이 모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중요한 이 모임에 진백과 제가 정문에서 어른거린다면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진백과 함께 저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부님이 나오시길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혁성은 각대문파의 장문인들과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모여드는 중에 진백과 개밥을 나눠 먹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만일 장문인들과 가주들 정도라면 뭐 그러려니 하고 얼굴 두껍게 있을 법도 했다. 허나 결정적인 건 오늘 이 취설루의 모임엔 할아버지인 천선부주 오비원이 참석한다는 점이었다. 할아버지에게만은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혁성의 마음이었다.

“으음, 너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싸하구나.”

표영은 충분히 수긍하겠다는 듯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다면 너는 진백과 함께 이곳에서 때를 맞춰 밥을 먹도록 해라. 자, 그럼 나는 안으로 들어가 볼까.”

“네?!”

표영의 말인즉,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혁성은 얼굴을 흙을 한 움큼 씹은 듯 찡그렸지만 그렇다고 어찌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반항해 봐야 이제껏 전례로 보나 현실로 보나 좋을 건 없었다. 게다가 사부에게 대항하는 경우엔 진백도 여간 까다롭게 구는 게 아닌지라 그것도 상당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벌써 인상을 찡그리는 것을 보았는지 진백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하하, 진백. 이 녀석, 뭘 그리 예민하게 그러냐? 자자, 자리 잡고 앉자.”

혁성이 대충 무마하고 나서자 겨우 진백은 마음을 풀고 자리에 곱게 앉았다. 진백의 사고방식으로써는 견왕에게 대드는 놈들은 모두 후레자식이었고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점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오가 되기 전 각대문파의 장문인들이 하나둘 도착해 취설루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정문에 큰 개 한 마리와 상거지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괴이히 여기긴 했지만 모두들 혹시나 개방 방주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싶어 모른 척하고 지나쳤다. 요즘 들어 개방이 진정 개방다워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예정된 모든 인사들이 참여한 듯 보였지만 아직 회의는 속개되지 않았다. 이 회의를 소집한 천선부주 오비원이 도착하지 않은 까닭이다.

바깥에 있는 혁성은 부디 할아버지 오비원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바램이었다.

혁성의 소망이 참으로 부질없다는 것임을 증명이라도 하렴인가, 멀리서 흰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혁성과 진백을 바람처럼 스치듯 지나가는 한 인영이 있었다.

오비원이었다. 혁성은 마침 고개를 숙이고 밥을 퍼 먹던 중이라 뭐가 지나간 것만 느낄 뿐 그 존재가 오비원임을 알지 못했고 오비원 또한 시간을 지체한 것을 안지라 급히 들어가느라 혁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었다.

“오늘 할아버지는 정말 안 오시는 걸까?”

안으로 들어간 오비원은 포권을 취하며 늦은 인사를 보냈고 그에 따라 각 파의 장문인들이 분분히 일어나 맞인사를 했다.

“다들 모이셨구려, 이 노부가 조금 늦었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희도 거의 방금 전에 도착했을 뿐이랍니다.”

“그럼 이제 다 모인 듯합니다.”

인사를 마친 후 제일 중앙 상석에 자리한 오비원은 몇 마디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오늘 모임의 핵심 안건을 끄집어냈다.

“이미 서신을 통해 충분히 숙지하셨겠지만 개방에서 조사한 내용이 거의 확신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 일은 필시 마천에서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우리는 그에 대해 마땅히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음, 그럼 일단 수라혼마강시에 대한 내용을 정보를 직접 취득한 표 방주님께 들어보도록 합시다.”

표영은 자신에게로 주목된 얼굴을 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수라혼마강시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사실 강시에 대한 일이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니까…….”

표영이 수라혼마강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견왕지로의 시작을 알리며 혁성에게 견식식탐을 전한 후 표영은 감숙성의 개방 분타에 들르게 되었다. 표영은 그동안 비운 기간이 꽤 되기도 하고 분타에 특별한 일은 없는지 겸사겸사 알아보려 간 것이었다.

그때 표영은 감숙 분타주인 오추에게 요즘 별일은 없는지 물었고 오추는 별다른 일이랄 것도 없어 머뭇거리다가 아무 말도 없으면 어색할 것 같아 며칠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것은 삼결제자 진초혁이 고향에 갔다가 당한 해괴한 일에 대한 것이었다.

진초혁이 당한 일은 고향에 내려가 마을 공동묘지에 안치된 아버지의 묘를 보러갔는데 놀랍게도 묘가 파헤쳐지고 관 껍데기만 남은 채 시신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진초혁은 자신의 가슴이 곡괭이에 의해 도려진 듯한 충격에 휩싸여 분타주 오추에게 아픈 마음을 털어놓은 것이었고 그 이야기가 표영에게 전해지게 된 것이었다.

표영은 마침 사부의 묘를 보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지라 크게 분노했고 그날로 개방 모든 분타에 명령을 내려 도굴꾼을 찾도록 했다. 전 개방이 동원되어 이 잡듯이 묘지를 뒤지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고, 그 일은 엉뚱하게도 도굴꾼이 아닌 아주 특별한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각처에서 시신이 사라지는 일이 수백 건이 발생했다는 점과 특이하게도 그 연령층이 모두 60세가 넘은 사람들의 시신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 마을에서 처녀 30명이 사라진 일도 추가로 발견되었다.

이 일은 평상시에 특별한 고급 정보를 분석하는 일로 소일하던 능파와 능혼에게 전해졌고 이러한 특징은 일반 도굴꾼이 아니라 강시를 제조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라는 분석이 나왔다.

표영은 이 일에 관심을 갖고 이때부터 더 세밀하게 강시 제조에 대한 내용을 토대로 정보를 취합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결론이 실전된 것으로 알려진 수라혼마강시의 제조를 위한 방법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라혼마강시에 대한 것은 이미 능파와 능혼이 확실히 검증한 상태였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표영은 이런 결론을 먼저 천선부주 오비원에게 전하게 되었고 오비원이 다시 각대문파에 비밀 서신을 보내 사태의 중대함을 알려 취설루에서의 모임을 주선하게 되었던 것이다.

표영은 강시 문제를 알게 된 계기에 이어 이번에는 강시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라혼마강시의 무서운 점은 도기와 검기마저 그 몸을 상케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또한 특별한 급소라 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단 한 군데 겨드랑이뿐입니다. 하지만 그곳이 급소라고는 하나 겨드랑이를 공격하기는 무척 난해합니다. 일반적인 강시들은 각 관절이 뻣뻣하게 굳어 있으나 수라혼마강시는 관절을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있어 그 행동이 고수들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수라혼마강시를 제조할 때 60세가 넘은 시체를 이용하는 것은 그러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모두의 마음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장문인들조차 강시 하나를 처치할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강시를 제련함에 있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짐작하기로 마천에서는 준비 과정만 약 20여 년을 보내며 그동안 구하기 어려운 마흔아홉 가지 약재와 칠십이 가지의 독초를 마련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거기에 열 종류의 짐승의 피와 약 30여 명의 처녀의 피를 구한 것으로 보아 현재 약 400구에서 500구 정도의 강시를 제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짐작컨대 지금쯤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지 않았나, 라는 생각입니다.”

표영이 추레한 차림새와는 달리 일목요연하게 강시에 대해 설명을 마치자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시에 대해 놀라는 한편 개방의 정보력과 표영에 대해 은근히 감탄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오비원이 심각해진 좌중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마천이 이런 일을 꾸미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므로 이제 우리는 여기에 대해 명확하고도 신속하게 대처하는 길만 남았을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라혼마강시가 완성되는 날에는 이미 손을 쓰려 해도 늦는다는 점입니다. 그때는 우리가 아무리 힘을 합친다 해도 결국 당해내지 못할 것이오. 이번 일에 각 대문파에서는 크게 마음을 써야 할 것이며 정예고수들을 모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마천을 공격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의견이 혹시라도 있으면 말씀해 보십시오.”

오비원의 말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껏 정파의 모든 일은 이렇게 오비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터라 이에 달리 토를 달 까닭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잠시 침묵으로 기다리던 오비원은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자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 뜻을 모은 것으로 하고, 이번 정파연합대는 약 800여 명을 모으도록 하여 한 달 후 천마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묘일산에서 집결토록 합시다.”

오비원은 각 문파마다 대략 어느 정도까지 참여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각 파마다 무공의 고저를 따라 인원을 분배했다.

“그리고 이번 정파연합대는 이 노부가 나서긴 힘들 것 같으니 나를 대신해 표 방주께서 지휘를 맡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오.”

표영은 느닷없는 말에 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저는 아직 그러한 중책을 맡기엔…….”

하지만 오비원은 그런 말 자체를 못들은 척 말을 맺어버렸다.

“그 표 방주께서 받아들인 것으로 알겠소이다. 표 방주는 이번 마천에 대한 문제를 가장 세밀하게 알고 있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긴 것이니 다른 분들도 기꺼이 따라주시기 바라외다.”

오비원의 위치가 거의 정파에서는 맹주 격인 까닭에 모두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오늘 모임은 이것으로 마치고 각 파로 돌아가 한 달 뒤를 준비하도록 합시다.”

일사천리로 회의가 마쳐지고 각 파의 장문인들은 분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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