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
169.
“사부님∼ 사부님∼”
백통은 고래고래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헐떡이는 숨으로 원구협을 찾았다. 그가 보기에 이건 일생일대의 대접전이 예상되는 일이었다. 어쩌면 사부님의 목숨이 위급해질지도 모르는 일로 여겨질 지경이었다.
백통의 고함 소리에 원구협은 웬 호들갑이냐는 듯 방문을 열고 나왔고 백통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바로 뒤를 이어 모습을 드러낸 승견자(乘犬子)들을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 동안 누군지를 가늠해 보았지만 그 정체를 알아내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넌 표영이 아니냐?”
이 다급한 순간을 막 설명하려던 백통은 사부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하자 헐떡이면서도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사부님,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습니까?”
개에게서 내려 반갑게 인사하자 그제야 백통은 의문이 눈 녹듯이 스러지는 것을 느끼며 개들이 왜 그리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천고의 기재라는 사형이시구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나 견왕지로를 완성한 사형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다.
혁성으로서는 어떻게든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어 개 수련을 받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랬지만 그건 그저 기대에 불과할 뿐임을 알았다. 거친 말 속에 더 진한 정이 묻어 있음을 느낀 것이다.
‘이거 정말 큰일이구나, 이러다 이곳에서 개나 잡게 되는 게 아닌가.’
그의 머릿속에서 연신 ‘개 장수’라는 말이 맴돌았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미래가 떠올랐다.
언뜻 개들을 쭉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주눅 든 모습으로 사부와 조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간간이 자신과 눈이 마주칠 때면 사나운 눈매로 노려보며,
-넌 뭐냐, 짜식아.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저것들 심상치 않네.’
오혁성과 개들이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밀고 당기고 있을 때 원구협은 어느새 표영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네놈은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장수의 길을 포기했었다. 하지만 떠나면서 내게 약속하지 않았더냐. 반드시 뒤를 이을만한 인재를 데리고 오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야 나타나다니…….”
그러면서도 원구협의 목소리는 호통 속에 기대감이 묻어 있었다. 지금이라도 제자가 약속을 잊지 않고 기재를 데리고 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잠깐 훑어본 결과 곱상한 얼굴에 고생 없이 자란 놈이라 과연 기대해도 될까란 의구심이 일었지만 아무래도 제자가 고른 녀석이니만큼 깡다구 하나는 알아주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안으로 들어와라.”
자리를 잡고 앉아 서로는 지난날의 안부를 물었다.
“네가 거지들의 두목이 되었다는 거냐? 허허, 그 따위 것이 뭐가 좋다고.”
원구협은 표영이 개방 방주가 되었다는 것에 영 언짢은 기색이었다. 그가 생각할 때는 전 중원에 거지 숫자보다는 개 숫자가 많았다. 고작 거지 두목이라니, 그로선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좋다, 네놈이 떠나면서 약속한 것을 지금이라도 지키기 위해서 온 것이겠지?”
원구협의 목소리는 은근함까지 담겨 있었다. 혁성은 간덩이가 손톱만큼 줄어들어 버렸다.
‘제길, 어쩐다. 거지가 되는 것까지는 그렇다 해도 개장수가 되어야 하다니.’
혁성의 전전긍긍함을 모르는 원구협은 계속 위협을 가했다.
“네놈은 2년 동안에 견왕지로를 완성하지 않았더냐. 너 같은 인재가 어디에 있겠느냐, 휴우∼.”
원구협은 한숨을 내쉰 후 백통을 힐끔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네 사제 녀석은 지금 5년이 넘어가는데도 아직 견왕지로의 4단계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물론 그 4단계도 그리 썩 좋은 성과는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걱정하고 있던 차에 네가 이 사부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온 것이로구나, 고맙다.”
가슴을 졸이며 듣고 있던 혁성은 2년이라는 둥 5년이라는 둥 하는 소리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기이한 것으로 따지자면 천하제일인 사부도 2년이나 연마했다니, 사부님은 이곳에 날 2년 동안 맡겨놓을 생각이시구나. 조사님은 아예 날 평생 개장수로 만들려 하시고, 흑흑.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단 말이냐.’
그나마 혁성은 평생보다는 2년이 낫기에 사부의 뜻이 관철되기만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표영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사부님,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녀석은 사부님의 후계자가 되기엔 자질이 너무 부족하답니다. 전 그냥 한 2년 정도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개들과 어울리며 고생하다 보면 인생에 대한 안목도 생기고…….”
표영은 그 이상 말을 맺지 못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고서 계속 말을 이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 그러니까… 으음… 후우후우.”
더듬더듬 말을 꺼내려다 말고 원구협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견왕봉은 아직 잘 간수하고 있구나.”
이젠 개방의 타구봉이 된 과거의 견왕봉이 표영의 허리에 매달린 것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한번 만져 보고 싶구나.”
“그러시죠.”
표영은 뭔가 불안했지만 타구봉을 건넸다. 원구협은 타구봉을 받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몸에서 정체불명의 살기가 감돌아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견왕지로 중 구혈잠혈이 펼쳐진 것이다.
“너희 둘은 잠시 밖에 나가 있어라.”
백통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얼른 튀어나갔고 혁성은 무슨 일인가 하다가 엉겁결에 대답했다.
“네? 저요?”
원구협이 고개를 끄덕이자 혁성도 달아나듯이 빠져나갔다. 혁성으로서도 그 살벌한 기운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이런 살기를 느껴보지 못한 혁성이었다.
‘설마 사부님이 어떻게 되지는 않으시겠지.’
하지만 그 생각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방 안에서는 살벌한 몽둥이질이 펼쳐졌고 믿어지지 않지만 사부 표영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퍼퍼퍼퍽. 퍽퍽.
“으아악∼ 살려주세요∼.”
“죽어라, 이 자식아, 죽어∼.”
혁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믿을 수가 없다. 어, 어떻게 사부님이 한낱 개장수에게…….’
하지만 몽둥이 소리와 비명 소리는 너무도 사실적이었다. 혁성은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작은 틈새로 눈을 맞추고 방 안의 정경을 살펴보았다.
‘허거걱.’
그 광경은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
사부는 온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감싼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원구협은 몽둥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후려패고 있었던 것이다.
‘뭐, 뭐야, 이건 말도 안 돼.’
혁성은 눈을 떼고 벽에 가만히 기대고서 숨을 가라앉혔다.
얼마가 지났을까, 대략 일 식경(30분) 정도가 지났을 즈음 와락 방문이 열리며 표영의 몸이 튕겨져 바닥을 뒹굴었다.
“으아악∼.”
원구협의 분노에 찬 음성이 그 뒤를 이었다.
“이 못된 놈 같으니,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라.”
표영은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머리를 조아렸고 그때부터 엉금엉금 기어 집 안을 빠져나갔다. 혁성은 간이 콩알만 해져 괜한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봐 얼른 표영 옆으로 가서 보조를 맞춰 엉금엉금 두 손과 두 발을 땅에 대고서 기어갔다.
“이건 가져가거라. 못난 놈.”
휘리릭.
원구협이 던진 것은 타구봉이었다. 타구봉은 정확히 기어가는 표영의 머리에 맞고 앞쪽에 떨어졌다. 혁성은 기가 막혔다. 대체 얼마나 당황했으면 개방의 신물인 타구봉을 놓고 갈 정도란 말인가.
원구협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표영과 혁성은 기고 또 기어갔다 혁성이 이제 일어서서 가자고 해도 표영은 막무가내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원구협은 조용히 뇌까렸다.
“으이그∼ 좋은 녀석!”
원구협이 아무리 개장수라 하지만 개방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표영이 개방에 투신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본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알아본 개방은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바로 그곳의 방주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를 보내고 아쉬워했던 것처럼 네 제자를 받아들이고 정이 든 다음에 또 헤어지는 일을 겪고 싶진 않구나. 네가 하는 일이 잘되길 바란다.”
원구협은 표영이 억지로 맞으러 온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후계자를 데려온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하고 있음을 안 것이다. 표영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원구협은 개장에서 호랑이만 한 크기의 흰 개를 꺼냈다. 원구협이 흰둥이라고 부르며 아끼는 개였다.
“흰둥아, 널 보내야겠구나. 아까 온 그 못난 놈에게 선물로 너를 보낼 생각이란다. 자, 어서 뒤쫓아 가도록 해라.”
흰둥이는 견황의 말에 미적거렸다.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자, 어서 뛰어.”
다시 한 번 말하자 그때서야 흰둥이는 표영이 사라진 곳으로 달려갔다. 원구협은 흰둥이가 하얀 점이 될 때까지 바라보다가 평소와 같이 개밥을 준비했다.
표영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없이 기어서 계속 이동했다. 옆에서 기던 혁성이 지칠 정도였다.
“사부님! 언제까지 기어가실 거예요?”
“어거거…….”
“……?”
표영은 제자 교육에 대한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원래대로 하자면 약 2년여 동안은 개 사부에게 맡겨 견왕지로로 기본을 다지게 한 후 무공을 전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컷 두들겨 맞고 돌아선 이때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사실 혁성은 개 사부 밑에서 2년여 간을 썩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쁨을 이기지 못했지만 실제로 표영이 생각해 낸 그 다른 방법은 결코 혁성이 좋아만 할 일은 아니었다.
표영은 그다지 길게 생각하지 않고도 기막힌 방법을 알아냈다. 그건 매우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어서 스스로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아무 무리 없이 이루기에 개 사부가 보내준 흰둥이는 큰 역할을 차지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흰둥이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어디선가 개를 구해 와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마을 어귀에 이른 표영은 그런 의미에서 꼬리를 귀엽게 살랑거리는 흰둥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앞으로 너를 진백(眞百)이라 부르겠다, 알겠지?”
호랑이만 한 덩치의 흰둥이는 진백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앞발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껑충거렸다. 혁성은 사부 표영이 이름까지 붙여주자 괴이쩍다는 듯 물었다.
“설마하니 사부님, 이 개를 데리고 다닐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표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게 대수냐는 식으로 답했다.
“왜? 데리고 다니면 안 되냐?”
“아니, 뭐 안 될 것도 없지만… 강호를 다니는데 개라니… 아무리 개방이라도 이건 좀 너무하는 것 같… 아하하하하.”
한참이나 말하다가 혁성은 크게 웃었다. 스스로 지껄이다보니 답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부님께서는 아하하하… 제 생각이 맞죠?”
표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아하하, 그래. 맞다. 맞아.”
“정말 역시 사부님의 머리는 이 제자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비상식량으로 이보다 제격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하하.”
표영은 더 크게 웃으면서 낄낄거렸다.
“하하하, 이 녀석 이젠 농담까지 제법 그럴싸하게 하는구나, 하하하하.”
그 말에 혁성의 안색이 조금 경직되었다.
“아하하… 농담이라니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혁성은 웃고는 있었지만 어느새 얼굴은 상당 부분 경직되어 거의 끝에 가서는 멋쩍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음, 좋다. 차분하게 네게 이야기하마. 자, 앉아라.”
“네.”
사람들이 한두 명씩 지나가긴 했지만 그런 것을 따질 두 사람이 아니었다.
“전에 네게 이야기했던 견왕지로에 대한 것이다.”
혁성이 마른침을 꿀꺽 하고 삼키자 목에 핏대가 바짝 세워졌다가 다시 사라졌다.
“…진백, 이 녀석이 필요한 것은 나와 함께하는 생활 중에 견왕지로를 전수하기 위함이란다. 그러기 위해선 견왕지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야겠지.”
표영은 한 손으로는 진백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근히 견왕지로의 요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험험, 그러니까 말이다. 견왕지로라 함은 개방방주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랄 수 있다. 그러니 네가 당연히 가야 할 길인 게지, 험험. 견왕의 길은 총 일곱 관문으로 구성되었는데 하나씩 통과하여 일곱을 완성하면 비로소 견왕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났다는 이 사부조차도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니 너는 마음을 연약하게 먹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까지만 들었는데도 혁성은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언뜻 보면 지금 비가 오는 줄로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첫째, 과정은 견식식탐(犬食食耽)이라고 한다. 개밥을 탐냄과 동시에 오히려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반년, 즉 6개월에 걸쳐 오로지 개밥만 먹어야 한다. 이때는 스스로 밥을 지어 먹거나 돈을 내어 사먹어서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니 너는 오직 개밥만을 탐내고 개밥으로 연명해야만 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렇게 함은 개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이 과정이 없이는 결단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혁성은 눈알이 핑핑 돌면서 비로소 왜 사부가 진백을 데리고 다니려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도 이 정도면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으응? 근데 너 왜 그리 땀을 흘리는 것이냐? 덥냐?”
표영은 이상한 놈 다 봤다는 식으로 째려본 다음에 바로 말을 이었다.
“…견식식탐은 개밥을 먹어야하는 것이니 진백을 데리고 다니면서 진백이 밥을 먹을 때 너도 같이 먹으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진백이 한번 혀를 대고 나면 그건 개밥이 되는 것이니 너는 견식식탐을 이루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떠냐, 이 사부의 지혜가 빛나지 않느냐? 하하하하.”
기고만장하게 웃어젖히는 표영을 보며 혁성은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혁성은 진백을 한번 쳐다보았다. 진백은 그저 무표정하게 ‘뭘 봐’란 식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자자, 두 번째 과정도 들어야지, 두 번째 과정은 견치지법(犬齒知怯)이라 한다. 이것은 개 이빨의 무서움을 알아야 함을 의미하는데 견식식탐과 마찬가지로 6개월여에 걸쳐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 과정은… 다음 세 번째는 견육다식(犬肉多食)으로 약 세 달에 걸쳐 수련해야만 하는데 이때는……. 네 번째는… 다섯 번째는 타구일일로서…….”
표영이 한참이나 얼을 내며 다섯 번째 타구일일에 대해 설명을 마쳤을 때 혁성은 이미 그 자리에서 모로 누운 채 두 눈에서는 진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어찌 눈물뿐이겠는가. 마음은 이미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표영은 말을 중단하고 화들짝 놀란 듯이 말했다.
“너 왜 그러냐? 응? 응? 어디 아픈 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