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160.
“으읍… 웁웁…….”
처절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몸부림이었다. 눈물도 닭똥같이 굵은 것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진짜 불쌍한 모습’이었다. 표명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일렁이는 듯했다.
“이, 이 녀석, 감동했구나, 그래. 귀한 것을 귀한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지, 사부의 마음도 뜨거워지는구나.”
염장을 날아서 질러 버린 셈이었다. 혁성의 눈에서는 더욱 세차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건 꿈이야, 누가 제발 날 깨워줘. 도대체 이게 말이 되냔 말이야. 제발 날 이 세계에서 빼내달란 말이다.’
그때쯤 때구슬은 짓이겨지며 혁성의 입가로 스멀스멀 파고들었다. 입술에 때연지(?)를 바른 듯 검은 때를 진하게 묻혀 가며 혁성은 입술 안쪽으로 여미고 들어오는 때를 느끼며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꿀꺽∼
그만 일부가 목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혁성은 눈이 풀어졌고 입을 앙다물었던 힘도 풀어졌다. 그 사이로 남아 있던 것들이 몰려들었다. 머리는 하얗게 변했고 세상은 종말의 날처럼 암흑으로 물들었다. 아까까지 상쾌하게 불던 바람은 칙칙한 썩은 냄새를 몰고 다녔고 하늘은 푸르름 대신 흑적색의 기기묘묘한 색으로 물들었다. 구름은 맑은 빗물을 뿌리기는커녕 굵은 때 더미를 마냥 뿌려대고 있었다.
“헤에∼”
입을 헤 하고 벌리고 눈동자가 풀린 것이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나마 조금 정상으로 보이는 것은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순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환상이 보였다.
-우후∼ 혁성! 때를 먹었다며? 맛이 어때? 요즘 살기 어려운가 보군.
-이봐, 그건 볶아 먹어야 하는 거야, 아니면 삶아 먹어야 하는 거야? 뭐라고? 생으로 먹는 게 최고라고? 예끼, 혁성 이 친구야, 그래도 그렇지. 난 아무래도 튀겨 먹어야 할가 봐.
-자자, 매달 1일은 때를 사랑하여 먹길 즐겨하는 사람들의 정기 모임 날입니다. 잊지 말고 기억해 주세요.
-여기를 주목해 주세요. 때만두에 때국수 등 때로 만든 수천 가지 음식이 모여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때에 관해서 독보적인 존재인 오혁성 님을 모셨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환상 중에는 사람들만 출연한 것이 아니었다. 때들도 인간의 탈을 쓰고 특별 출연했다.
-저는 팔뚝 때장군이라고 합니다. 요즘 들어 마을마다 공중 목욕장이 생겨나 우리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힘을 모아 일치단결하고…….
-가슴 때장군도 한말씀 해보시구려.
-네, 가슴 때장군입니다. 제 생각엔 오혁성 님을 우리 때나라의 왕으로 모심으로써 새롭게 이 왕국을 굳건히 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만.
-오호, 그거 훌륭하신 생각입니다그려.
-놀랍군요, 정말 획기적인 말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와와∼ 오혁성 님을 때왕국의 국왕으로 모시자∼
함성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오혁성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자살이었다.
‘그래, 죽자, 죽어,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겠느냐. 깨끗하게 죽는 게 낫겠어.’
하지만 막상 죽자고 생각하자 ‘깨끗하게 죽는 게’라는 말 중에 깨끗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봐도 깨끗하게 죽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으헉! 그럴 순 없어.’
자살은 불가능해 보였다. 혁성의 귀로 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파고든 것이다.
-카카칵, 오혁성이라는 애송이가 죽었다더군.
-그게 카카칵 하고 웃을 만한 일인가? 자넨 어지간해서는 카카칵 하고 웃지 않잖은가.
-카카칵! 그렇지, 그렇지. 하지만 난 오늘 카카칵보다 더 기묘하게 웃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네.
-이봐, 나도 좀 같이 웃자구.
-그래, 좋아, 이야기해 주지. 먼저 다시 한 번 웃고 나서, 카카칵, 그러니까 말야. 그 오혁성이라는 애송이가 죽은 게 때를 먹고 죽었다지 뭔가. 입술에 때를 잔뜩 묻히고 죽어 있다더군. 정말 추접스런 놈이 아닐 수가 없단 말일세. 우린 말이야, 죽더라도 깨끗하게 죽자고.
-크크큭, 정말 웃긴 얘기군.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 집 개 누렁이도 좋아서 이빨을 드러내 놓고 웃을 것 같으이.
-암, 그렇고말고.
이런 이유로 그는 죽을 수도 없었다, 제길.
오혁성, 때를 잔뜩 먹고 자살하다. 이게 정말 아니었다.
‘그럼 난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어느 정도 정신이 든 오혁성이 주위를 살펴 사부 표영을 찾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나뭇가지를 구해 땅에 끄적이고 있던 표영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손을 흔들었다.
“어이∼ 제자야, 어떠냐? 힘이 솟는 것 같지 않느냐∼?”
배시시 웃으며 하는 말에 혁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말, 정말 때려죽이고 싶다아아아앙∼’
이를 앙다물고 복수심에 불탔지만 그건 마음속에서나 가능한 표현일 뿐이었다.
“어째 안색을 보니 왠지 아직도 몸이 불편한가 보구나, 그럼 한 개 더 먹어야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또 팔뚝을 문지르려 하자 혁성이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튀어 일어났다.
“아하하, 아하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힘이 넘쳐 납니다. 이거 보십쇼. 으라차차!”
거의 환장하다시피 날뛰며 혁성은 소리쳤다. 활기 넘치는 목소리와 경쾌한 몸 동작, 진짜 훌륭한 영약이라도 복용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활기와 경쾌함 속에는 처절함이 깃들어 있음을 하늘과 땅은 알고 있었다. 물론 표영도 알고 있었으나 가볍게 무시한 거지만…….
“자, 그럼 우리 갈길을 가야지. 잊지 말아라. 언제든지 다리가 아프면 말해. 병은 많이 알릴수록 좋다고 했으니 말이다. 가자.”
표영이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다시 혁성이 따랐다. 혁성은 달려가면서 연신 침을 뱉으며 그 역겨운 냄새를 떨쳐 내려 했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로 약 백번 정도를 헹구어야만 간신히 벗겨낼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표영과 혁성이 함께한 지 칠 일째.
드디어!
혁성으로서는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될 것 같다!’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완전무결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냉정한 판단력 등이 요구되는 법이다.
하지만 인간사는 간혹 우연(偶然)이나 감(感)에 의해 순간적으로 이루어질 때가 있지 않던가. 지금 혁성은 바로 그 우연찮은 기회와 감(感)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 지금이야. 혁성, 지금이란 말이다.’
혁성이 숨죽이며 뚫어져라 노려보는 곳엔 사부 표영이 냇가에 달라붙어 물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혁성의 눈에 표영의 뒤통수가 보이더니 급기야는 점점 커져 눈동자 전체에 뒤통수만 커다랗게 비춰 보였다.
그러다 다시 눈을 한번 깜박이고는 이번엔 적당한 놈을 물색했다. 적당한 놈이란, 즉 머리를 뽀사(?)버리기에 충분한 돌덩이를 일컬음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머리통을 날려 버리는 거야. 이 기회에 기억력을 아예 상실해 버려고 좋겠고, 아니면 아예 죽어버려도 괜찮겠지.’
혁성은 스스로에게 잘 풀릴 것이라며 연신 자신감을 불어넣고서 슬그머니 다가갔다. 일이 잘 되려는지 머리통만 한 돌덩이를 집는데도 그 어떤 잡음도 일으키지 않았다. 더욱이 표영은 전혀 경계심을 갖지 않고 여전히 등을 보이고 있는 채였다.
‘흐흐, 그렇지. 원래 죽을 때가 되면 평소완 뭔가 달라도 다른 법이지.’
바로 코앞에 이르른 혁성은 돌덩이를 높이 쳐들었다. 이젠 끝이었다.
‘잘 가시오. 사부∼’
혁성이 온 힘을 기울여 내려친 돌덩이가 중도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표영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강력한 힘이 실린 돌덩이는 그만 돌아선 표영의 이마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퍼억!
“으악∼”
단번에 이마에서 샘솟듯이 피가 뿜어졌고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냐하하, 맛이 어떠냐? 고얀 놈, 네가 사부냐? 죽어라, 죽어.”
혁성은 이마에서 피를 철철 뿜어내고 있는 표영 위에 올라타고 연신 주먹을 내갈겼다.
“어떠냐, 이놈아? 죽어라, 죽어!”
순식간에 표영의 볼은 양 주먹에 연타로 얻어맞아 벌겋게 부어올랐다. 제아무리 표영이라도 이렇게 맞다간 살기 힘들 것 같았다. 표영은 입술이 팅팅 부은 채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혁성! 용서해라, 이젠 그만, 그만 해라. 많이 부었지 않느냐.”
어찌나 참혹스럽던지 혁성의 뜨거운 분노도 사그라졌다.
‘그래, 이놈도 한 생명인데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앞으로 날 건드리지 않겠다고 말해라.”
“마음대로 해라, 앞으로는 널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
표영은 힘없이 고개를 옆으로 떨구며 답했다.
혁성은 승자의 웃음을 띠고 신나게 달음질쳤다. 구름 위를 달리면 이런 기분이 날까?
‘고소하다∼.’
사부의 얼굴이 가득 부어오른 것을 생각하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젠 해방이었다. 하지만 너무 기분이 들떠 지면을 잘 보지 못한 탓으로 혁성은 나무뿌리가 길가로 늘어선 것을 못 보고 그만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어이쿠∼!”
오른쪽 뺨이 땅바닥과 부딪쳤다. 근데 이상한 소리가 났다. 쿵∼ 하는 소리 정도의 둔탁한 충격음이 들려와야하건만 괴이하게도 짝짝∼ 꼭 손으로 뺨을 때리는 소리가 난 것이다.
눈을 번쩍 하고 떴다.
“으아악……!”
혁성은 하늘이 떠나갈 듯 비명을 내질렀다. 눈을 떴으면 땅바닥이 보이던지 해야 하는데 놀랍게도 눈앞에 사부 표영의 얼굴이 가득 들어섰기 때문이다. 표영은 연신 누워 있는 혁성의 뺨을 갈기고 있었다.
“이놈아, 정신 차려∼ 대체 잠을 얼마나 자는 것이냐? 내 살다 살다 이렇게 게으른 놈은 처음일세. 어서 일어나지 못해?”
다시 한 번 혁성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악∼ 꿈이었어∼!”
그 와중에도 사부의 얼굴을 살핀 혁성은 절망했다. 이마에 핏자국은커넝 뺨이 부어오른 흔적조차 없었다. 표영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제자가 기가 막힌지 연신 뺨을 갈겼다. 이것은 혁성이 꿈에서 표영을 후려 패던 것과 닮아 있었다.
“이놈 보게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짝짝짝짝.
시원스럽게 내갈기는 뺨따귀에 혁성은 스르르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처럼, 혹은 정신병자처럼 멀리 시선을 두고 연신 맞고 있었다. 어쩐지 너무 쉽게 일이 풀린다 싶었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제5장 실감나는 거지 생활
더 강렬한 욕망이 꿈틀거린다.
흔하디흔한 닭다리 하나에 침을 꿀꺽이는 나의 모습이 싫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 자신조차 내가 거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부르르…….
두렵다.
이 시간 다시 한 번 탈출을 꿈꾼다.
- 닭다리에 마음이 흔들린 혁성
***
혁성은 골목 벽에 초라하게 기대어 앉았다. 이곳 마을 이름이 어찌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그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강렬한 시선으로 생각에 골몰했다. 예전의 혁성이라면 그 강렬한 시선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마땅히 생각하겠지만 지금 몰골로는 사뭇 다른 의미가 느껴졌다.
현재는 헝클어진 머리에 더럽혀진 옷을 입고 있으며 얼굴 여기저기는 산발적으로 묻어 있는 때 자국이 역력했고, 오른손에 꼭 쥔 때 묻은 주먹밥은 절실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그 강렬한 시선은 지저분한 외모와 오른손에 꼬옥 움켜쥔 주먹밥과 어울려 그저 큰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것 같은 안타까움으로만 비춰졌다.
남이야 어떻게 바라보든 혁성의 매서운 눈동자는 결코 이대로 좌절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직 그의 마음엔 절대로 거지가 될 수 없다는 처절한 몸부림이 가득한 것이다.
강력한 대적으로 인해 연거푸 좌절을 맛보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운명에 순응할 순 없었다.
가끔, 아주 가끔 너무 힘들 땐 그냥 이대로 몸을 맡기고 거지로 사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묘하게도, 즉 시기도 적절하게 언제나 추레한 사부가 눈앞에 가득 들어찼다.
그 모습을 보며 혁성은 다시금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개방 방주도 좋고 강호에 영웅호걸로 이름을 떨친다 해도 거지처럼 살기는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