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59장 (160/199)

 # 159

159.

“쿠아악∼”

꽈당거리며 의자가 뒤로 넘어가고 혁성은 바닥으로 널브러져 버렸다. 주먹이 날아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아 충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었다.

아들의 변고에 오백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오비원이 얼른 손으로 가로막으며 제지했다. 이미 오백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전해 들은지라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자리에 앉았다.

“오호, 이거 오늘 왜 이러지? 또 그냥 날아가 버렸네.”

혁성은 죽은 듯이 널브러져 있다가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까 들은 바대로라면 자신이 개방에 들어갈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좋아, 조금만 참자. 그놈의 날파리만 아니었어도… 끙.’

혁성이 힘겹게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겸손하게 말했다.

“제가 방주님께서 날파리를 잡으시는 데 도움이 된다니 그저 감사하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믿을 수 없는 참을성이었다. 이 정도의 정신력이라면 가히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것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어라? 어어… 어, 저놈 봐라?”

표영은 대답도 없이 다시 날파리가 왔다는 시늉을 하고서 주먹으로 혁성을 강타해 버렸다.

푸욱.

“우읍프…….”

가까스로 일어났던 혁성이 아니었던가, 복부의 통증으로 혁성은 눈알이 터져 나을 듯 불룩해진 채 표영의 옷자락을 잡고 서서히 미끄러지며 주저앉았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니, 이것들이 이젠 집단으로 날아드네, 다 죽여 버릴 테다!”

표영은 탁자를 깨부수고 이어 혁성의 머리며 가슴, 등 할 것 없이 온몸을 두들겨 팼다. 거의 막무가내식 패기에 혁성은 처절한 비애 속에 숨을 할딱거렸다.

오비원과 오백은 열심히 눈을 들어 날파리의 행방을 좇았지만… 단 한 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휘이잉∼

또 다른 의미로써의 바람이 불어왔고 오비원과 오백은 서로를 마주 보며 눈으로 의사를 교환했다.

‘바람이 꽤 세구나.’

‘옷깃을 여미세요.’

휘이잉∼

혁성은 고통스럽게 바닥을 굴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무언의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내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오백과 오비원은 옷깃을 여미느라 정신이 없을 뿐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뭐, 뭐지?’

혁성 자신은 이렇게 처절하게 위선자의 모습으로 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아버지조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혁성은 화를 낼 것인지 아니면 참을 것인지를 저울질했다.

그때 표영의 호들갑이 또다시 이어졌다.

“오! 이런, 머리야, 머리!”

드러누운 혁성의 머리를 표영이 밟아버렸다.

“죽어라, 죽어! 이 날파리야!”

꽝! 꽝! 꽝!

단단한 대리석 바닥에 혁성의 머리가 충돌했고 밟을 때마다 바닥이 쿵쿵거리며 울렸다. 이 광경을 누군가 들어와서 본다면 혁성이 날파리가 된 것이라 생각할 것이 분명하리만치 상황 자체가 진지하고 사실적이었다.

혁성은 쿵쿵거리는 고통 속에 머릿속이 하얘지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내의 한계선이 붕괴된 것이다.

“이 거지 새끼가 어디서 감히 발길질이냐! 죽고 싶어 환장한 거냐!”

삿대질까지 해가며 혁성은 욕을 퍼부었다.

짜쟌∼

본래의 혁성으로 돌아온 것이다. 오비원과 오백은 욕이 너무 난무해 민망하긴 했지만 워낙 익숙했던 지라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내가 다정다감하게 대해준 것도 모르고 난리를 쳐? 너, 죽어봐라!”

혁성이 주먹을 내지르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거기에 맞을 표영이 아니었다.

“오호, 부주님∼ 마음에 듭니다. 마음에 들어요.”

나비처럼 너풀거리며 표영은 유유히 혁성의 공격을 피하며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좋습니다. 저의 제자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마음에 드는걸요. 입도 걸죽하니 최고로군요. 자넨 최고야, 최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요리조리 피하는 표영을 보며 오비원과 오백은 입을 쩍 벌렸다.

‘생각한 것 이상이군, 그래. 딱 이상적인 만남이야. 엽지혼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혁아는… 제대로 걸렸구나.’

오비원과 오백은 서로 마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천응각을 스르르 빠져나왔다. 문을 닫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양떼구름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아버지, 혁아는 괜찮겠죠?”

오비원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글쎄다.”

“으음…….”

안에서는 아직까지 소리가 요란했다. 여지저기 기물이 파손되는 소리에 뭐가 최고인지는 몰라도 연신 최고라고 외쳐 대는 표영의 목소리, 그리고 죽여 버리겠다고 외치는 혁성의 고함이 뒤범벅이었다.

“하늘에 맡겼다고 생각하자꾸나.”

제4장 잠재력을 끌어내는 법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이제껏 들어본 잠재력을 끌어내는 법이라는 것은 효능도 뛰어났고 개중엔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것도 있었단 말이다.

각혼출몰(殼魂出歿)이나 혼화이법(混化理法) 정도라면 내가 고개를 끄덕일 만하지. 하지만 어찌 인간이 그런 방법으로 잠재력을 끌어낸단 말인가. 이건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란 말이다.

- 잠재력의 비법을 전수받은 혁성

***

아득히 천선부를 감싸고 있는 천운산이 혁성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나마 달려가면서 뒤를 돌아 힐끔거리며 제일 높게 솟아올라 있는 천약봉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던 혁성에게는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

뒤를 돌아보던 혁성의 눈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휴우∼ 죽겠군, 아주.”

이 장여를 앞서 가는 사부 표영의 모습을 보며 한숨 소리에 혼잣말을 섞어 내뱉었다. 초라한 몰골의 사부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니,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 모습은 다름 아닌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반 시진(약 1시간) 정도를 달렸을 때 이미 혁성은 숨을 헐떡대고 있었다. 표영의 걸음은 매우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혁성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달려가고 있는 것보다 더욱 빠른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다리를 빨리 움직인다거나 보폭이 큰 것도 아닌데 도무지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점점 마음에서 악이 받쳐 왔고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활화산이 되어 솟아올랐다. 옷자락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도 혁성의 마음을 가라앉히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때 표영이 약간 속도를 늦춰 혁성의 곁에 바짝 붙었다.

“자자, 힘을 내라, 이 녀석아.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이냐? 이렇게 나약한 놈이었냐? 쯧쯧. 지금부터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넌 내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 이놈아.”

표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혁성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는데 ‘자격이 없다’라는 말을 듣자 옳거니 생각한 것이다.

“전 힘들어서 도저히 가지 못하겠습니다. 저란 놈은 원래 자격이 안 되니 혼자서 가든지 하십시오.”

털썩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혁성은 시원한 냉수가 가슴을 쓸어 내리는 것 같은 개운함에 빠졌다. 진작 사나이답게 말해 버릴 것을 고생만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표영은 갑작스레 혁성이 멈추는 것에 정확히 반응해 그 자리에 우뚝 섰다.

“하하하, 힘들단 말이냐?”

“그럼요, 매우 힘들어서 전 자격이 안 됩니다.”

“녀석, 삐쳤구나? 그렇지? 사나이가 그 정도 가지고 삐치면 되겠느냐? 자격 운운한 말은 사실 내가 잘못 말한 것이었다. 이 사부가 사과하마.”

의외로 부드럽게 나오자 혁성은 잘하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다시금 쏘아붙였다.

“예로부터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고 했습니다. 고명하신 사부님의 분부를 받들기엔 턱없이 모자라니 부디 저를 팽개쳐 주십시오. 지금도 다리가 아파서 꼼짝달싹 못하겠습니다.”

그 말에 표영의 눈이 등잔처럼 동그래졌다.

“팽개치라니? 오오∼ 그런 섭섭한 말을 하다니, 마음이 찢어지는구나. 내가 그만 나의 무공만 믿고 너의 걸음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아무렴, 다리가 아플만도 하지. 다 이 부족한 사부 탓이로구나, 똑똑한 네가 이해하렴.”

자꾸 약한 모습을 보이자 혁성은 몰아붙이면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부쩍 일었다.

‘흥, 알고 보니 좀생이같이 마음이 약한 거지였었군. 괜히 괴짜인 척하더니 모두 허풍이로구나.’

“하하하, 제자야, 앞으로는 다리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한다. 알겠지? 그런 건 참으면 안 되는 것이야. 네가 누구냐? 얼마나 귀한 아들이냔 말이다. 자, 이 사부가 네게 피로를 회복시키고 다리에 힘을 불어넣는 영약을 주도록 하마. 이거 아주 대단한 건데 너에게만 특별히 주는 것이니 고마워해야 한다. 알겠지?”

표영이 사근사근히 하는 말에 오혁성이 손을 내저었다.

“됐습니다. 전 그런 거… 허거걱!”

오혁성은 경악성을 터뜨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표영이 영약이라고 내민 것은 다름 아닌 팔뚝에 존재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직접 보는 앞에서 오른손으로 왼쪽 소매를 걷어붙이고 긁어 모은 것이었다.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둥근 때 구슬을 표영은 살포시 내밀었다.

“자, 먹으렴, 너의 몸에 잠재된 힘을 끌어오게 될 것이다. 아주 귀한 것이야.”

순간 오혁성의 몸은 용수철로 변해 튕겨져 일어났다.

“사부님! 어서 가셔야죠. 여기서 머무를 시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언제 짜증과 신경질을 부렸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도 예의바르고 존경심이 가득 들어 있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혁성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난 달려야만 해, 멈춰선 안 된다. 잡히면 그걸로 끝장이야.’

본능적으로 혁성은 그저 농담으로 던진 말이 아닌 것임을 느끼고 있었다. 혁성의 직감은 정확했다. 표영이 날듯이 혁성을 뒤쫓으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먹으면 금방 회복된다니까∼ 이놈아, 거기 멈추지 못해!”

그 말을 혁성이 ‘네, 그럽죠’ 하고 들을 리가 만무했다. 지금 혁성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속도를 이미 능가하는 속력을 내고 있었다. 가히 초인적이란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 확실하리라. 하지만 어찌 표영을 떨쳐 낼 수 있겠는가. 표영은 어느샌가 혁성의 바로 뒤까지 다가와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자자, 이것도 먹을 만하대두 그런다.”

“으허헉!”

혁성이 놀라 발에 힘을 가했지만 이미 표영의 손은 혁성의 옷 뒷자락을 움켜쥔 상태였다. 목이 획 잡아당겨지며 혁성은 뒤로 나자빠졌고 손과 발을 휘저으며 발버둥쳤다.

“전 절대 먹을 수… 으읍!”

차마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때구슬이 입술 바로 앞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어허, 고 녀석, 너무 겸손해하기는. 이걸 먹어야 더욱 힘이 난대두. 봐라, 네놈은 이것을 보기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힘을 내지 않았느냐? 그러니 두 눈 딱 감고 먹어봐.”

“으음음… 으음… 으으으음음… 으으음!”

혹시나 갑작스레 입 안으로 집어넣을까 봐 혁성은 말은 못하고 으음거리는 것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그 뜻을 짐작해 보건대 ‘사부님, 제발 용서하세요. 제발요’ 뭐, 이 정도가 될 듯싶었다. 표영은 애절한 제자의 눈빛과 으음거리는 말을 알았다는 듯, 네 마음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그럼, 으음. 좋다 이거지? 으음, 나도 좋구나.”

거의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처절한 반항을 해보았지만 앉은 채로 목덜미가 잡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자, 영약이다. 아∼ 하고 크게 입을 벌려야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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