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155.
표영이 다시 아양과 애교를 떨었다. 그것은 세상천지에 비위가 세다는 사람들을 다 모아놓더라도 어느 누구도 견디기 힘든 느글거림이랄 수 있었다. 부백경은 특히나 얼굴은 그래도 별호가 적반하장인지라 스스로는 늘 섬세한 남자라고 생각해 온 터라 속이 울렁거리며 아침에 먹었던 국거리가 솟구치려 했다.
“우욱∼ 욱!”
퍼펑! 퍼펑!
장력이 공기를 째는 소리와 구역질하는 소리가 절묘하게 어울려 박자를 이루었다. 거기에 표영은 한 박자를 더해 우욱∼ 하는 소리가 끝날쯤엔 후렴식으로 ‘호호호’하고 웃어주었다.
쉬식-
신법을 펼치며 장력 사이를 누비던 표영의 오른손에 어느덧 타구봉이 들렸다. 이제 안마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함이었다. 타구봉이 나옴과 동시에 부백경은 개가 되고 말았다.
뒤쪽에 여섯 아우의 몸이 흠칫하고 떨었다.
‘이젠 진짜 큰일 났군.’
‘어떻게 한담…….’
‘이대로 지켜만 봐야 하는 건가…….’
모두가 망설이는 가운데 시선은 하북칠살 중 서열 이 위인 둘째 염독고에게 쏠렸다. 염독고로서는 아우들의 질문이 담긴 시선을 받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 까짓껏 개방 방주가 별거냐, 제아무리 구주신개라고 해도 우리 일곱이 온 힘을 다해 싸우면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염독고가 이렇게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 어느덧 부백경은 여러 군데를 얻어터지고 있었다.
파팍! 팍팍!
“호호호, 어깨를 두드리고 다음엔 목, 이번엔 겨드랑이…….”
표영의 공격은 어깨를 가리킬 때는 정확히 어깨를 강타했고 목을 말하고선 바로 목을 가격했지만 너무 현묘하게 움직이는지라 부백경은 피해내지 못하고 연신 순서대로 얻어맞았다.
얻어맞은 곳의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연신 호호호거림에 부백경은 끝내 참지 못하고 구토를 하고 말았다.
“우에엑∼”
힘찬 분수였다. 부백경이 뿜어낸 줄기(?)는 너무도 힘차고 굵어 마치 그것으로 공격을 해보겠다는 뜻인 줄 착각할 지경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염독고를 비롯한 아우들은 황당함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세상에 살면서 이렇게 추접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존경하는 형님이라도 이건 너무한 것이었다. 구주신개를 보며 비록 자신들의 비위도 뒤틀리긴 했지만 대형은 구주신개보다 더 더러웠다. 그래도 대형이라면 참았어야만 했다.
방금 전까지 전의를 불태우며,
‘이제껏 하북칠살은 약하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과거 오독문의 네 명의 장로들과 싸울 때도 압도했던 우리가 아니던가.’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둘째 염독고는 앙다물었던 이를 풀고 강렬한 시선도 내리깔았다.
스르르르…….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것은 염독고뿐만이 아니었다. 모두들 마음 같아서는 터벅터벅 혼자서 어디론가 정처없이 걸어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휴우∼ 세상 더럽네.”
“살맛 안 나는군.”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삶이란 대체 무엇이냐?”
“누가 세상을 아름답다고 했는가.”
“모든 것이 다 헛된 거지.”
이들은 작은 소리로 제각기 한 마디씩 내뱉는 것이 한 삼십 년씩은 도를 닦은 사람들만 같았다. 아직도 간헐적으로 우에엑거리는 소리에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바라보고 더욱 마음만 처연해졌다. 그런 와중에 염독고가 위로의 말을 던졌다.
“자, 모두 자리에 앉아 마음을 비우고 가만히 기다리도록 하자꾸나.”
도망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아까 서문세가의 호위들이 다다닥거리며 도망가던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도망갈 마음도 없었다.
모두는 긴장 속에 서 있다가 염독고의 말에 따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느덧 전면의 상황은 끝을 향하고 있었다. 부백경의 몸은 끝내 연타를 당하고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하북칠살의 명성이 땅바닥에 곤두박질 치는 순간이었다. 부백경이 바닥에 모로 누워 할딱거리는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여간 불쌍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하북칠살의 아우들의 마음에 연민의 감정이 피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주르르륵…….
공교롭게도 부백경은 하북칠살의 아우들이 앉아 있는 방향으로 누워 있게 된 것인데 그의 입에서 진득한 침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뭐, 뭐냐……!’
‘너무하잖아!’
‘아이 씨…….’
방금까지 불쌍하게 바라보던 아우들은 참담함에 사로잡혀 온 인상을 찌푸리며 서로 얼굴에 주름 많이 잡기 경쟁에 돌입했다. 적나라한 광경은 비참하면서 추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표영의 공격이 그것으로 끝났다면 대충 이 정도에서 불쌍함이 마감되었겠지만 아쉽게도 표영의 타구봉은 쉬지 않았다.
파팍파팍!
“어때? 시원해∼ 좋지요? 호호호…….”
부백경은 할딱대다가 몽둥이에 한 대씩 얻어맞을 때마다 몸을 꿈틀거렸고 간헐적으로 붕어처럼 눈을 천천히 끔뻑거렸다. 아마 눈만 따로 집중적으로 보고 있자면 영락없이 ‘저건 붕어야!’라고 소리쳐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파파파팍…….
부백경의 몸이 꿈틀거렸고 입에서는 거품과 함께 위에 남아있던 최종적인 음식물들이 삐질삐질 새어 나와 뺨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호∼ 이거 배가 부르신가 보군. 음식을 버리면 곤란하지.”
파파파팍!
표영이 끝을 맺듯 부백경의 머리를 세 번 타구봉으로 가볍게 두들긴 후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하지만 표영의 웃음과는 반대로 하북칠살의 여섯 아우들은 고개를 떨구었고 그중 몇 명은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무의미하게 긁고 있었다. 이젠 그 악랄한 처분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자, 네놈들에게 선물을 주도록 하마. 네놈들 표정을 보아하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 크큭.”
‘드디어…….’
‘올 것이 오는구나.’
‘난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들은 모두 눈동자를 불안하게 움직이며 장래에 대해 염려했다. 세 번째 호리병의 내용물을 먹은 후에 죽었다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소문이 강호를 휩쓸고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식사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1년 내내 물만 마셨다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껴 자살을 했다는 소리도 있었다. 심지어 아예 그 후로는 입을 열지 않고 손짓으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이들까지 있었다고 하니 하북칠살이 암담해질 수밖에.
표영은 세 개의 호리병 중 하나의 마개를 열고 그 옆에 달린 작은 잔에 하나 가득 따랐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염독고에게 쭉 내밀며 턱을 치켜 올렸다.
시원하게 쭉 들이키라는 뜻이었다.
꿀꺽.
염독고가 마른침을 삼켰다. 유난히 크게 들린 꿀꺽 소리에 염독고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군침이 돌 때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한 모금씩만 해. 많이 먹는다고 좋은 거 아닌 건 알지?”
염독고는 덜덜 떨며 양손으로 잔을 받아 들었다. 지독한 악취가 코를 자극했다.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냄새만으로도 코피가 터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것을 마시지 않으면 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
그는 오늘 이것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편안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도망을 친다든지, 혹은 ‘마시지 않고 그냥 몸으로 때우겠습니다’라고 하면 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 때까지 먹을 순 없지.’
거부할 시엔 맞고 때를 먹고 그 후에 다시금 세 번째 호리병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새까만 액체가 시야 가득 들어왔다. 옆에서 지켜보는 다섯 아우들의 눈은 경악과 안타까움, 그리고 서러움으로 물들고 있었다. 염독고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한쪽 손으로 코를 쥐고 가까스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싸한 악취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코를 막았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입 안에 가득한 악취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는 쓰라린 속을 위해 손으로 가슴을 두어 번 문지른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종류인지는 정신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세 마리의 새가 유유히 푸른 창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너희는… 행복하니?’
염독고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고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일곱째 보만응이 눈이 충혈된 채 물었다.
“형님!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염독고는 듣지 못한 듯 뚜벅뚜벅 걷더니만 약 3장여(약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드러누웠다. 그는 대자로 누웠는데 고개는 옆으로 돌린 채 끊임없이 눈물만 흘렸다.
“자자, 그 다음.”
표영은 염독고 같은 모습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다음 차례를 재촉했다. 그 광경에 보만응이 참을 수 없다는 듯 분노를 터뜨렸다.
“씨파,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야앗!”
보만응이 갑작스럽게 간덩이가 급성 팽창했는지 표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표영은 훗, 하고 웃음을 짓더니 몸을 공중으로 띄워 회전하면서 회선각으로 보만응의 턱을 날려 버렸다.
퍼억-!
“끄악∼”
표영의 추레한 옷자락이 파다닥거리고 회전하는 선을 따라 펼쳐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추레한 옷이었지만 지금 이순간만은 그 어떤 비단옷과 보석이 달린 옷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보만응은 철퍼덕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자빠진 이후에 번개같이 몸을 튕기고 일어났다.
두 번째 공격 대응? …을 추측할 수 있었으나 그건 단지 추측일 뿐이었다. 보만응은 몸을 튕기고 일어나더니 턱을 어루만질 새도 없이 아까 있던 자리로 잽싸게 튀어가 줄을 맞췄다.
“형… 줄이 좀 안 맞잖아…….”
그 옆에는 조강이 있었다.
“어? 어… 그, 그래…….”
그러면 그렇지 하며 옆으로 늘어선 다섯은 그렇게 차례로 표영이 따라준 잔을 받아 들었다. 셋째 파유각, 넷째 악전, 다섯째 초일, 여섯째 조강 순서로 잔을 받아 든 그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까 염독고가 왜 터벅터벅 걸어가 드러누운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 것처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표영은 일곱째 보만응 차례가 된 것을 보고 씨익 웃었다. 아까 전에 반항했던 놈인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웃음이었다. 보만응은 암담한 심정이었지만 그 웃음을 받고 무표정하게 있기가 어색해 대충 어설프게 웃어 보였다.
보만응은 따라준 잔을 받으며 한 번에 들이켰다. 앞서 형님들이 다 마신 터라 부담은 더 적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잔에 특별한 선물이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에서 물컹거리는 건더기를 느낀 보만응이 일순 뱉어내려 하자 표영이 손을 가로저었다.
“그냥 먹어둬, 아 참. 그건 씹어야 해, 알겠지?”
보만응은 그제야 그 건더기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눈은 표영의 팔뚝을 향했고 팔뚝에 약간 희끗한 부분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그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반항의 열정은 뜨거웠지만 그 대가는 쓰디쓰고 추접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게 차례대로 모두들 걸음을 옮겨 바닥에 드러눕게 되었을 때 이제 남은 건 타구봉에 얻어터져 바닥에 누워 있던 부백경뿐이었다. 이때쯤 부백경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게 되었던 터라 아우들이 한 잔씩 들이키고 허망함에 빠져 있는 것을 다 본 상태였다. 부백경은 혹시나 자신은 맞았으니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더 불쌍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자, 너도 한잔해야지.”
역시나였다.
부백경의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부백경은 꾸역꾸역 아픈 몸을 일으켜 앉은 후 한 잔 가득 마시고 아우들이 드러누운 곳으로 가 자리를 함께했다. 무언가 어설프지만 의리 같은 것이 연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들의 모습은 아주 특이해 마치 죽음의 끝에 선 연인들이 죽어가면서 간신히 손을 잡으려고 애쓰는 듯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사는 게 뭔지… 흘흘흘.’
표영이 그들 곁으로 걸어가 조용히 말했다.
“니네들, 거지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