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154.
사실 부백경의 마음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이번 습격을 끝으로 강호에서 은퇴할 요량이었다.
요즘 들어선 사파의 기운이 쇠락해지는 듯해 도무지 강호에 머물러 있기가 껄끄러운 상태였다. 하지만 이대로 맥없이 물러나기엔 아쉬움이 남는지라 그는 은거하면서 좋은 부인을 얻고자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었다.
부백경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렇게 고명하고도 훌륭한 뜻을 품은 자신을 못 알아주는 하늘과 세상이 밉기만 했다.
‘왜! 왜! 왜 하늘은 착하게 살고자 하는 나를 방해하려 함인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끌려가 죽을 때까지 곤욕스러움에 처할 주 부인과 마음 아파할 서문 가주를 생각한다면 이런 부백경의 울부짖음 정도는 별것 아닌 것이니 말이다.
부백경의 뒤쪽에 있던 여섯 아우들은 부백경처럼 피바다 속에 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갸우뚱거려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 봉황사에서 불공을 드리고 마차에 오르는 주지청을 본 후 지름길로 발길을 재촉해 이곳에서 기다렸었으니 더욱 의문에 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지청이 역용술을 펼쳤단 말인가?’
‘아니면 주지청은 원래 거지였었나?’
‘주지청을 누가 가로챈 거야? 혹시 저 거지가?’
‘오, 이런 말도 안 돼.’
그들은 수많은 망상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때 드디어 부백경의 발악이 시작되었다.
“아아악! 다 죽여 버릴 거야∼”
부백경은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피바다의 핏물을 사방으로 튀기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광기에 사로잡혔고, 급기야 마차를 부숴 버리기라도 하듯 손과 발을 어지럽게 날렸다.
“아아아악! 세상이 싫다. 싫어∼! 이 거지 새끼, 널 죽여 핏물에 푹 고아 삶아 먹어주마∼”
대형인 부백경의 분노가 너무 커서일까? 하북칠살의 아우들은 차마 함께 손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누구든지 혼자 너무 설치면 끼어들기 곤란하고 어찌할지 난감해지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그에 따른 분노는 더욱 커지는 법이다.
그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면 초인적인 힘까지 발휘할 수도 있었다.
그런 분노에 끼어들 만한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백경은 거센 장력을 날려 마차를 부숨과 동시에 거지를 향해 장력을 날렸다.
“다 죽여 버릴 테다! 으아아악!”
마차와 거지를 가리지 않고 장력이 난무했지만 마차 안에 있는 거지는 연신 웃음을 짓고서 흔들거리고 산산이 부서지는 마차 안에서 나비가 날듯 지극히 평화롭게 너풀거렸다.
“오호호호… 자기야∼ 왜 그렇게 화났어? 으응?”
여전히 거지는 단어의 의미와는 다르게 투박한 남자목소리로 목젖을 일렁이며 말했다. 그것이 부백경의 온몸의 신경을 박박 긁어놓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차 여기저기가 파손되고 형체가 사라질 즈음에도 여전히 마차 안의 젊은 거지는 유유자적이었다. 오히려 더욱더 자유로워지고 있다고 봐야 옳았고 친근감(?) 넘치는 말 또한 더욱 유창해졌다.
“너무 기다리게 해서 우리 자기가 화났나 봐∼ 미안미안∼.”
“으아악! 죽어라! 썅∼.”
푸푹- 퍼펑-!
“화내는 모습도 너무 멋있어∼ 너무 멋지단 말야,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거야?”
“으가가각! 크르르릉…….”
크르르릉은 부백정의 입가에 거품이 생성되어 끓어오르는 소리였다. 그의 분노는 이미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파팡! 파파팍-!
“호호호, 힘도 무척 세네. 밤엔 끝내주겠다. 그치? 그치, 자기야?”
“씩씩… 씩씩… 죽이고 말 테다. 죽이고… 씩씩…….”
부백경은 한낮의 태양보다 더 뜨겁게 입에서 김을 토해내며 씩씩거렸다.
동네 아낙이 보았다면 어디서 밥을 짓고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정도로 실감나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느덧 마차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하지만 부백경의 손길은 아직도 멈출 줄을 몰랐다. 보통 때 같으면 자신의 이 무차별적인 공격에 나비처럼 유유자적 피하는 상대에 대해 경계했을 법도 한 상태였겠지만 그는 연거푸 다가온 일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얼이 나갈 것만 같은 일련의 상황들- 때문에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뒤에서 이제까지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뒤쪽의 여섯 아우들은 거지의 움직임을 보다가 일순 허리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쩌저적……!
얼음이 얼었다.
이미 그들의 표정은 얼음 그 자체로 변해 있었다.
만일 시원한 물을 원하는 이가 있다면 지금 당장 달려와 그들의 얼굴을 조각내 물에 넣는다면 무척이나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으리라.
얼음 조각은 차츰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들의 입가엔 모래라도 씹은 듯했는데 뱉어낼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그런 난처한 지경에 처한 것만 같았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정확히 말해 거지의 허리춤에 매달린 세 개의 호리병과 하나의 검은 막대기였다.
강호고수들 중 호리병을 가지고 다니는 자는 수도 없이 널려 있어 그리 대수로울 것은 없었다. 두 개의 호리병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까지도 그럭저럭 많이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호리병을 세 개씩이나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 작자가 거지라는 점과 호리병 반대쪽에 검은 막대기를 지니고 다니는 자라면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그뿐만은 아니었다. 그 사람을 만나면 되도록 신속하게 -여기에서 신속함이란 잽싸게, 열나게, 온 힘을 다하여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인정사정없이… 등등의 말들을 다 보탠 만큼보다 더한 신속함을 의미했다- 도망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인즉,
개방 방주 구주신개 표영!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하북칠살은 소문으로 익히 들어왔고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으니 그 당황스러움은 말로 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두 시진 전에 먹었던 음식이 가슴에 걸려 버린 것만 같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씨파. 이거 뭐냐…….’
‘아, 제길… 인생 진짜 꼬이는구먼.’
‘왜 이러는 거냐.’
‘아까 그놈들이 대책 없이 도망갈 때부터 알아왔어야 했는데…….’
‘진짜 그걸 마시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아이, 시발… 큰형님은 어쩌겠다고 아직까지 주먹을 날리고 있는 거야. 아주 매를 버는구먼, 매를 벌어.’
이들은 모두 낯빛이 시커멓게 변해 절망에 사로잡혔다. 만에 하나 구주신개가 아니라면 괜찮겠지만 지금 펼치고 있는 신법을 보더라도 아닐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정말 잘못 걸려도 너무 잘못 걸린 것이다.
이들은 이제야 아까 호위들이 도망가고 마부가 우스꽝스럽게 온갖 지랄을 떨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연출된 각본에 의해 철저히 조롱당한 것이다. 입 안이 텁텁해지고 가슴속으로 꾸역꾸역 옷감이 밀려드는 듯 답답하기만 했다.
그들의 눈은 안타깝게도 정확한 것이었다. 유유히 부백경의 공격을 피하면서 온갖 애교스런(?) 말을 늘어놓고 있는 이는 진정 현 개방 방주인 표영이었던 것이다.
그럼 표영이 난데없이 서문세가의 안주인 주지청의 마차 안에 있게 된 건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건 이미 하북칠살이 이런 짓을 할 것에 대한 정보를 개방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북칠살의 넷째 동소는 술과 여자를 좋아했는데 계획이 세워진 후에 기녀들과 어울리면서 술김에 말을 늘어놓게 된 것이다.
개방의 정보는 과거 노위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해져 있었기에 그 말은 고스란히 개방의 정보망으로 빨려들게 된 것이어서 표영이 오늘과 같은 일을 계획하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잠깐!
진모산 백일봉의 개방의 앞날을 결정짓게 된 결전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익히 알려졌다시피 표영은 반구옥에 감금된 사형 장산후를 비롯한 개방의 영웅들을 구하고 진모산 백일봉에서 뭇 중원 고수들 앞에서 노위군과의 일전을 치렀다.
당시 노위군은 우사신공을 연마하여 상상하기 힘든 능력을 발휘했고 표영은 죽음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표영이 뱉어낸 한마디 말로 인해 노위군은 사부 엽지혼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만 연민에 사로잡히게 되어 우사신공의 유일한 약점인, 즉 두 마음을 품게 되면 주화입마를 당하게 되는 상태에 빠지게 되어 광기에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 일 후에 전 강호인들은 전대 방주 천상신개 엽지혼의 실종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었고 개방이 왜 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노위군이 깊은 자책감에 사로잡혀 너무 일찍 목숨을 끊는 바람에 혈곡이 어떤 식으로 개입되어 엽지혼을 죽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말았다.
그 후 표영은 정식으로 개방의 방주로 오르게 되었는데, 그동안 노위군 아래 모여 지위와 권력을 얻고자 했던 이들은 개방을 떠났으나 그 외 대부분은 오히려 더 강화된 개방의 힘에 놀라며 뜻을 함께했다.
방주에 등극한 표영은 개방을 재정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염두에 두었던 살수 조직들을 접수하는 일들을 수행해 결국 강호에 드러내 놓고 청부 조직을 꾸려 나가는 이들은 모두 개방 내로 흡수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특기할 만한 것은 표영이 개방 방주가 되기까지 함께했던 교청인은 원(?)대로 표영과 혼인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표영과 교청인 사이에는 생후 7개월이 돼가는 아들 은(恩)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제갈호의 경우는 이젠 세가로 돌아가 집안을 더욱 견고히 하라고 표영이 명했지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면서 조금 더 머무르며 함께하길 원해 아직은 개방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입장이다.
또한 마교의 후예로 표영을 지존으로 모신 능파와 능혼은 비록 무공이 폐쇄되긴 했지만 대법에 의한 주화입마가 완전히 깨져 평온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불귀도의 안내자로 평생을 산 손패도 능파와 능혼의 뜻을 받아들이고 개방 내에서 걸인 수련을 총괄하는 담당자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표영은 방주로 등극한 지 거의 2년여가 되어 가면서 강호에 새로운 별호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름하여 구주신개였다.
뜻인즉, 술을 얻어먹고 싶어지게 하는 신통한 거지란 것이었다. 그와 같은 별호를 얻게 됨은 표영이 온전한 각성을 이루어 비천신공을 완성한 이후에 세 개의 호리병을 지니고 다닌 데서 비롯되었다.
세 개의 호리병에는 각기 다른 것들이 들어 있어 각 호리병마다 쓰임새가 달랐다.
예를 들어 극악무도한 인간들을 대함에 있어서는 세 번째 호리병을 사용했다. 거기엔 지독한 악취가 나는 구정물이 담겨 있어 그런 종류의 인간들에게는 꼭 한 잔씩 따라주곤 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조금이나마 극악무도하다고 생각되는 강호 인물들은 표영을 마주치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지금 하북칠살의 여섯 아우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도 사실은 세 번째 호리병 때문이랄 수 있었다.
두 번째 호리병 같은 경우는 그나마 세 번째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낫다고 하기엔 민망한 것이었다.
거기엔 개들이 먹고 남긴 국물을 담아두어 마시게 하였는데, 주로 파렴치한이나 딱 봐서 개만도 못한 놈들이다 싶으면 정성스레 따라주곤 했다.
물론 구정물보다야 낫다고 혹자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끔 날씨가 덥거나 기간이 오래되면 국물이 쉬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기에 그럴 때 재수 없이 걸린 사람은 세 번째 호리병보다 더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 호리병은 무엇인고 하면, 영웅호걸들이 마실 수 있는 것이 담겨져 있었다. 거기엔 청향주가 담겨 있는데 이 청향주는 중원에서 술 조제의 달인이라 불리는 종무가 특별히 표영을 위해 정성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종무는 개방의 장로가 된 묵백의 절친한 친구로 개방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매달 일정량의 청향주를 보내왔다. 그렇기에 첫 번째 호리병에 든 청향주는 종무가 특별히 주조했다는 의미와 함께 표영이 따르는 술이란 의미가 결합되어 강호에서는 그 술을 받는 자야말로 진정 영웅의 대열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퍼퍼펑… 퍼펑!
부백경은 뒤쪽의 아우들과는 달리 아직까지도 이성을 찾지 못했다. 그는 그저 거센 장력을 미친 듯이 날려대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러한 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뒤쪽에서 퀭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아우들은 걱정과 염려만이 가득했다. 함정도 이런 함정이 없는 것이다.
이때쯤 표영은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호호… 하도 손 운동을 많이 해서 어깨가 아프시겠네요. 안마라도 해드려야겠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