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50장 (15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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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제17장 뜻을 이루다

일행이 표가장으로 온 지 나흘째가 되던 날 밤 능파와 능혼은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근처에 앉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밤하늘에는 미녀의 속눈썹을 도려내어 붙여놓은 듯 아름다운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그 사이로 간간이 옅은 구름이 지나가는 것이 운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한동안 말없이 시선을 멀리 두고 있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능파였다.

“마교 천하를 이루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하는 폼이 꼭 답을 듣고자 한 말은 아닌 듯싶었다. 그 말을 듣고 능혼이 살짝 한쪽 입 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글쎄요.”

예전의 능파였다면 이렇게 흐릿하게 마교 천하에 대해 중얼거리진 않았을 것이다. 만에 하나 능혼이 이런 말을 꺼내기라도 했다면 주먹부터 날렸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능파는 많이 변해 있었다. 개방 방주 자리를 놓고 결전을 벌이던 때가 결정적이었다. 그때 지존의 모습은 결코 천마지체로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고도의 속임수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그가 보는 한도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설사 방주가 진정 기다려 오던 지존이 아닐지라도 어느샌가 마음 가득 들어와 버렸다는 점이었다.

이상한 건 그렇더라도 그것이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정상대로라면 진정한 지존이 어디에 계시며 어떻게 하다가 지존의 상징인 건곤패를 목에 걸고 다니게 되었는지를 캐물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질 않았다.

그로선 그냥 모른 척 시치미 뚝 떼고 이대로 함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되면 마교의 부활이며 마교천하는 그저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성으로 변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일은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한 마음은 실제로 능혼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형 능파의 눈치만 살피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워낙에 능파가 지존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기만 하면 주먹부터 날리고 보는 터라 진지하게 말을 꺼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표가장에 온 뒤로 뭔가 말을 할 듯 말 듯 하다가 입을 다무는 형의 모습을 보며, 능혼은 대충 감은 잡고 있는 상태였다.

글쎄요, 라는 대답에 능파가 능혼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네.’

200년을 뚫고 마교의 재건을 위해 대법을 따라온 그들이었다. 이런 중얼거림에 그저 글쎄요, 라고 말하며 웃음을 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녀석도 내 생각과 비슷한 건가.’

“너의 생각도…… 내 생각과 같은 것이냐?”

그 말에 능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형님이 선택한 길이 곧 저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하하하하…….”

능파가 크게 웃자 능혼도 따라 웃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둘은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었고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럴 때는 자세히 말을 하는 것이 분위기를 깨뜨리고 정서를 해친다는 것을 아는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활기 찬 웃음소리 속에는 마교가 실려 떠나가고 있었다. 훨훨 두 사람의 어깨에 짊어져 있던 마교의 중압감은 하늘로 올라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웃음이 더해지면서 기묘하게 밤하늘의 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별과 달이 찬연한 빛을 뿌려댔다. 그건 마치 두 사람의 선택이 지극히 현명한 것이었다고 칭찬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별과 달뿐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등 뒤, 그것도 바로 뒤쪽에서 한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바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계의 청운신이었다.

사실은 능파와 능혼이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뒤쪽에 다가왔지만 초절정고수인 두 사람도 청운신이 가까이 이른 것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청운신의 귓가로 대천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들이 당할 세 번째 겁난을 제거해 준 후에 표영에게로 가거라.

청운신이 서쪽 하늘을 향해 가만히 머리를 조아렸다. 대천신이 말한 세 번째 겁난이란 능파와 능혼이 대법으로 인해 받아야 할 마지막 주화입마를 가리킴이었다.

이미 첫 번째 두 번째 주화입마를 당한 두 사람으로서는 언제 임할지 모르는 세 번째 주화입마가 다가오면 그땐 바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대천신은 지금 그 세 번째 화를 없이 하도록 명한 것이다.

대천신이 능파와 능혼에게 선처를 베푼 까닭은 두 사람이 새로운 선택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매번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도 달라지는 법이다.

갑작스레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로 인해 원래 가려고 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방향을 잡아가다가 위에서 누가 우연히 던진 돌을 맞고 죽을 수도 있다.

그가 만일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 친구가 원하는 길이 아닌 자신이 처음에 가고자했던 길로 갔었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으리라.

오랜만에 나타난 친구의 경우엔 사실 본인이 죽었어야 할지 모르는 길에 친구를 만나 살아나게 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그처럼 능파와 능혼이 마교에 대한 마음을 웃음과 함께 날려 버리자 그들의 인생도 바뀌게 되었다.

청운신은 뒤쪽에 서서 두 팔을 각기 능파와 능혼의 머리 위로 뻗어 가만히 내려놓았다. 능파와 능혼은 청운신의 손이 닿는 순간 눈을 스르르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청운신의 손에서 푸른 광채가 안개처럼 피어나더니 삽시간에 능파와 능혼의 온몸을 휘감았다. 다시 청운신이 손을 떼자 푸른 광채가 흩어졌고 능파와 능혼은 앉은 채로 고개를 떨구었다.

청운신은 둘을 그대로 둔 채 돌아섰다.

“이제 그대들이 선택한 길을 가도록…….”

청운신의 걸음은 이번에는 표영의 거처로 옮겨졌다. 잠에 깊이 빠져 있는 표영에게 다가간 청운신은 소매에서 생옥과를 꺼내 입가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생옥과는 순간 액체로 변하면서 스르르 표영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론 고생도 많이 했다만 너는 참으로 복을 타고난 녀석이로구나. 천계에서나 땅에서나 널 위하는 이가 많으니 말이다.”

청운신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홀연히 한줄기 푸른 빛줄기로 변해 하늘로 날아갔다.

화연실은 새벽에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이제 다시금 오늘부터 하늘에 기원을 올리고자 함이었다. 참으로 이런 일은 누군가가 돈을 주고 하라고 시킨다 해도 하기 힘든 일이겠으나 그녀의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피곤함도 잊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정 아무도 모르게 해야만 해.’

남편이나 집안사람들이 얼마나 걱정하는지를 그녀는 잘 알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다짐을 하는 화연실이었다.

그녀는 대문을 나서 산책한다는 핑계로 나가려는데 어슴푸레한 새벽에 가복 봉운이 마당을 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이른 새벽부터 나와 청소를 하다니…….’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 위로의 말을 던지려 할 때 마당을 쓸던 봉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것은 봉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머니,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어? 영이냐?”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른 새벽 마당을 쓸고 있는 이는 봉운이 아니라 표영이었던 것이다.

화연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마냥 신기하게만 느꼈다. 그녀로선 과거에나 지금에나 아직 철없는 둘째 아들로 생각했는데 이 이른 시각에 집안 청소를 하고 있다니……. 이런 모습을 살아생전에 보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었던가.

“하하, 도통 잠이 오지 않아서 집안 청소라도 할까 싶어 이렇게 나왔지 뭐예요. 어머닌 어디 가시는 거예요?”

표영이 환한 웃음으로 하는 말을 듣고 어머니 화연실은 더 이상 기원을 올려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제 정말 훌륭한 아이가 되었음을 믿지 않을 수 없구나. 괜히 내가 염려했던 게야…….’

“응… 왠지 내 아들이 밖에 나와 있을 것 같아 나와 봤단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아떨어졌구나.”

“하하, 어머니도 참… 바람이 차니 어서 들어가서 더 쉬세요.”

화연실은 따스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 처소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직 어머니의 소원은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뿐인 것이다.

<1부 - 완결>

* 작가의 말

만선문의 후예 2부를 끝낸 후 어느덧 다시 걸인각성 1부 6권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손으로 꼽아보니 벌써 1년이 되어갑니다. 그새 1년이라니 약간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마천루스토리 1을 쓸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 기분인데 말이죠.

세월의 빠름을 다시 한 번 실감해 봅니다. 세월의 빠름에 대해 말하자면 올해 31번째 생일을 맞이했으니 제 개인적으로도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년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군요.

이번 생일을 지내면서 -해마다 생일 근저에 생각해 보는 것이지만- 잠시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왜 살고 있는가. 마땅히 본연의 가야 할 길이 있지만 잠시 밖을 나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이 길을 통해 본연의 길을 측면에서라도 조명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이런 문제는 하루에도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묻는 질문이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엔 자아를 온전히 성취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에 때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음… 궁상 모드는 여기에서 접고 일단 『걸인각성』 1부를 끝낸 시점에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정리해 볼까 합니다.

지난번에도 조금 언급한 내용이었습니다만 요즘 각광받고 있는 매체로 DVD가 있습니다. 많은 저장 공간으로 인해 영상과 음향뿐 아니라 다양한 내용의 부가적 영상을 담을 수 있어 비디오테이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충분히 느끼도록 해줍니다.

거기엔 영화 속에서 직접 감독이나 주연배우가 음성으로 그 장면장면에 의도된 바를 설명해 주고 그 설명을 듣는 시청자는 단순하게 지나쳤던 장면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한 커멘터리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작가 후기에서도 걸인각성 1부를 마치는 시점이기에 이 책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걸인각성은 2부까지 예정되어 있지만 2부는 좀 더 다른 사건으로 들어가는지라 1부에서 약간의 후기성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걸인각성을 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왜 거지에 대한 소재로 글을 자꾸 내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만선문의 후예에서도 만 가지 선을 행하는 과정 중에 혹독한 거지 생활이 등장했기에 더욱더 본 작가가 거지 이야기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처음 걸인각성 서문에 밝힌 바와 같이 이 글은 만선문의 후예에서 표현되지 않았던 개방과 걸인의 삶을 좀 더 그려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중심에 둘 수도 있을 텐데 왜 거지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은 것일까요.

어떤 독자 분들은 작가가 혹시 이 시대의 개방 방주가 아니냐? 혹은 걸인의 삶을 흠모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꿈이 그것이냐? 또 말하길 거지의 삶을 미화시켜 -과연 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국민에게 욕심을 가지지 않고 자기 삶에 만족하며 편하게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라는 의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너무 추잡스럽게 웃기려고 하는 것은 아니냐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이런 말 들을 땐 울고 싶어집니다).

사실 거지 이야기를 씀은 결국 인생의 빈손으로 왔다가 다시 빈손으로 돌아가는 기본 이치와 어우러져 있습니다.

벌거벗고 나와 다시 벌거벗은 채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기에 가장 자연스럽고 완벽한 모습은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고 의식과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지지 않았기에 지키려 마음 졸일 필요 없고 가진 것이 없기에 누군가와 비교해서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혹은 자부하지 않게 되니 헛되이 정신을 소모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현실에서는 그런 걸인의 자유로운 삶과 시선으로 살기 힘들기 때문에 무협을 통해 표출해 보고자 했습니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이 글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단순히 웃음을 주기 위함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물론 각박한 세상에 웃음을 주는 것도 기쁜 일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로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바라는 것은 껄껄거리고 웃다가 어느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문득 걸인각성을 떠올릴 때면 그 속에 내재된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걸인각성에서는 이야기 속에 본인의 삶과 느낌, 그리고 살면서 느낀 교훈들을 적절히 배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독자 분들 중에서는 1권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게으름을 보고서 '이건 나의 이야기다', '허걱! 내 자서전이…', '나는 전생에 무림에서 활약했었더란 말인가'라며 자신의 삶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건 본인의 이야기입니다(이런 말을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할 수 있다니…).

주인공의 게으름을 묘사할 때 벤치마킹을 할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습니다. 주위엔 거의 태반이 만성지체를 타고난 사람들뿐이었고 마천루에는 일묘님이란 초절정 만성지체가 계셨기에 그저 눈만 옆으로 돌려도 참고 사항은 넘쳐 나기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 부분이 본 작가 삶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 일례를 들어보자면 본문에 주인공 표영이 수박같이 수분이 많은 음식을 기피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그 까닭인즉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될까 봐 먹지 않으려 했다는 글이 있습니다. 이건 순전히 작가의 체험담으로 가끔 한여름날 귀찮음을 면하기 위해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하기도 합니다(아예 누워서 침을 뱉고 있다니… 흑흑…).

하지만 올 여름에는 주인공 표영이 만성지체를 깨뜨리고 바로 섰기에 본 작가 또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수박을 먹어보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참고로 오해가 깊어지게 될까 염려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걸인각성에 나오는 모든 게으른 행위가 본인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게으름이라는 특징 외에 또 하나의 큰 맥을 책에서 찾아보자면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존재입니다.

만성지체를 타고나 평생을 게으름 속에서 지내야 하는 아들, 그 아들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하늘을 향해 기원을 올리는 어머니, 그리고 끝내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와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미소. 결국 어머니로부터 시작하여 어머니로 끝이 나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고 그중 1부는 어머니, 그리고 2부(외전)는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큰 맥을 이루게 됩니다. 먼저 1권에 등장한 표영의 모친 화연실의 5천 번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성의 모티브는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3천 번의 기도입니다. 솔로몬은 3천 번에 걸쳐 기도를 올림으로 인해 하늘로부터 그가 바라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智慧)'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부(富)와 장수(長壽)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의 고전이나 설화 속에서도 그와 같은 어머니의 정성 어린 기원에 대해 기록되어진 것을 염두에 두고 기록하였음을 밝힙니다.

또한 걸인각성에서 과거부터 꼭 쓰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3권 중반에 등장하는 부자 우종만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과거 4년 전쯤엔가 신문지상에서 보았던 내용이었습니다. 신문 오른쪽 한 귀퉁이에 실린 한 가정의 사연이 있었는데 읽은 후 삶에 대해, 그리고 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A씨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주식 투자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능력이 있어 열심히 주식에 대해 배우고 또 관리하며 미래의 부푼 꿈을 꾸며 하루하루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미래를 알 수 없고 단 하루 앞조차도 내다볼 수 없는 것입니다. A씨는 고객의 돈으로 무리하게 투자하게 되고 그 주식이 폭락하는 바람에 그만 회사에서 쫓겨나고 또한 개인적으로도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자 가정 살림은 극도로 어려워졌고 하루하루 살기조차 힘든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삶 속에서 꿋꿋히 A씨가 희망을 굽히기 않게 된 것은 가족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가산을 탕진한 남편이며 생활비도 제대로 가져다 주지 못하는 못난 남편이지만 그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보면서도 항상 밝게 웃어주며 힘이 되는 말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언제까지나 계속 내려가기만 하란 법 없잖아요? 반드시 언젠가는 또 올라갈 때가 있을 거예요.

아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에겐 큰 힘이 되었고 좌절하려고 할 때마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심호흡을 크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건강하게 자라며 앵두 같은 입술을 옴지락거리며 아빠아빠 외치는 어린 아들은 그에겐 또 다른 희망이 되었습니다.

A씨는 그러한 가족의 힘으로 인해 뜻밖의 기회를 잡게 되고 다시 재기에 성공하게 됩니다.

지인이 믿고 의탁해 온 돈으로 투자를 하게 된 것이 수십 배로 돌아오게 되고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그가 투자한 곳마다 황금주로 변해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부를 거머쥐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가히 황금의 손처럼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모든 투자에서 성공하게 되어 믿기지 않는 갑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성공은 오히려 기쁨이라기보다는 슬픔의 전주곡에 불과했습니다. 돈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벌게 되자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 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어지자 남아도는 돈으로 쾌락을 쫓아 유흥을 즐기기에 바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향락에 젖어 보낸 날이 많다 보니 처음에는 걱정하며 만류하고 화도 내던 아내도 점점 지치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외로움과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쇼핑을 하며 고가의 물건을 사들이는 호화 쇼핑으로 날을 보내고 나중에는 심심풀이로 도박을 하거나 A씨가 추정하기로는 애인까지 만들어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바르게 자라날 리 만무한 일이었습니다.

아들은 아직 초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그 또래 아이들이 딱지치기네 구슬치기네 할 때 비싼 게임기에 빠져 지내게 되었고 심지어 수백만 원짜리 컴퓨터에 수백만 원짜리 장난감만 가지고 놀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가정이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음에도 A씨는 시간이 꽤 지날 때까지 전혀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빠르게 흐르는 물살에 몸이 휩쓸리듯 그저 향락에 젖어 쓸려 내려가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그가 다시금 가정의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는 너무도 멀리 와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제껏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가 정신을 차리고 가정을 수습하려 할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고야 만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당시 신문에 기재된 내용입니다. 이 글을 보고 나서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오히려 A씨가 행복했던 시절은 가난할 때가 아니었을까. 부자가 되지 않았다면, 혹은 부자가 되었더라도 돈을 쓸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의 가정은 여전히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요즘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사회 문제가 되는 것 또한 제도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돈을 제대로 사용할 만한 가르침을 주지 못했고 그런 지혜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A씨는 자신이 생각할 땐 돈을 얻었다 믿었지만 실제에 있어서 그는 돈의 주인이 아닌 노예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자신의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피폐해졌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나날들을 보냈으니까 말입니다. 그는 결국 돈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보려 했지만 결국 자신이 사랑하던 것들을 잃고 만 것입니다.

걸인각성을 통해 이 이야기는 부자 우종만의 가정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굳이 그런 내용을 담아보고자 했던 이유는 삶의 경계로 삼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 때문입니다. 본인이 신문에서 A씨 가정의 뒷이야기를 알지 못했던 까닭에 주인공 표영을 통해 A씨의 분신이랄 수 있는 우종만과 그 가정을 되돌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A씨의 가정이 바로 섰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잠시 이야기가 무거워진 것 같아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개에 관한 내용을 적어볼까 합니다. 개들은 만선문의 후예에서도 상당한 곤욕을 치뤘고 걸인각성에 이르러선 거의 절정에 이른 험난한 길을 걷게 됩니다. 이로 인해 개들을 사랑하는 뭇 독자 분들은 개들을 사랑해 주지 못할망정 이거 너무 하는 것이 아니냐며 원성이 드높기만 했습니다.

물론 개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개가 죽어간 원인에 대해서 이 자리를 빌어 설명하자면 첫째 본 작가가 그리 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개나 고양이 종류들을 매우 무서워합니다.

어릴 적에 개에게 물릴 뻔한 적이 있었던 피해 망상에 사로잡힌 영향이 무엇보다 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길을 가다 큰 개를 멀리 보이기라도 하면 비록 멀더라도 빙 돌아 돌아가곤 합니다.

하지만 단지 본인이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개들을 작살(?) 낸 것은 결코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마천루 스토리 2에서도 이야기했던 바 무협이라 하여 사람들을 무작위로 죽이는 것을 싫어하기에 대신(?) 개들이라도 죽어 나가야 하지 않느냐라는 말도 안 되는 강박 관념이 작용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허나 독자 분들의 쇄도하는 반발과 걸인각성을 쓰면서 길에서 혹은 골목에서 만나게 되는 개들마다 바라보는 눈치가 예사롭지 않아 적절한 타협을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걸인각성 3권에서는 주인공 표영이 개들과 뜨거운 의리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게 되었고 그 후로는 독을 풀더라도 개들을 샘플로 삼는 일을 삼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되도록 개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줄까 생각하고 있으니 일만이천 개 애호가님들은 마음을 놓아도 될 듯싶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해도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은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걸인각성의 첫 희생자는 어린 여자 아이를 인질로 삼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해 보려 했던 혈곡의 고수 송도악이었습니다.

그의 행위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존재라 할 만하기에 바로 응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무림인으로서나 그 어느 누구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그렇다고 현실 세계에서 직접 단죄하는 일은 없어야겠죠?).

다음으로 죽은 사람은 노위군입니다. 그는 사부를 죽이고자 독을 풀었고 사주하였으며 앞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될 인물이므로 그 또한 죽어야 할 캐릭터로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 있어서는 되도록이면 삶을 돌이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돌이키게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했습니다.

그 외에 특이한 것들 중에는 천계의 등장이나 이진구의 동굴 사건, 그리고 동영에서 온 제일고수의 어이없는 죽음 등이 있겠습니다.

천계에 대한 부분은 세상은 우리가 보고 있는 육안의 세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말하고 싶었으며 예로부터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가라는 말을 교훈 삼아 기록해 보았습니다.

이진구에 대한 부분은 오래전부터 엉뚱한 상상을 하던 것이 확대 재생산되어 글로 표출된 것으로 AB형의 황당무계함을 그대로 드러낸 전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중 모기 눈알에 대한 부분은 워낙 특이하게 마음에 남았던 것이기에 걸인각성에서 써보고 싶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영제일의 고수 소시타 고로스케에 대해서는 사적인 감정이 전혀 배제되지 않았음을(?) 말씀드립니다.

여기까지 대략 1부에 대한 설명을 마칠까 합니다. 조금 후에 걸인각성 2부(외전)에서 찾아뵙도록 하고 이만 후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함께 힘이 되어준 마천루 멤버들과 그리고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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