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42장 (14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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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제13장 구출

표영은 그동안 함께 다녔던 일행들만 데리고 망창산 정상으로 향했다.

산을 오르는 표영의 발걸음은 경쾌하기 그지없었는데 그 변화가 눈에 띌 정도라 능파를 비롯한 모두는 은근히 놀라워했다.

특별히 새로운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공을 연마한 것을 본 적이 없건만 점점 더 강해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표영의 이러한 변화는 이번에 청막에서 청부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근본 표영의 무공의 근간이 되는 비천신공은 비천한 삶 속에서 인생을 알고 사람의 도를 깨우치면서 내공이 조화를 이루고 무공의 깊이를 헤아리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각지에서 온 여러 삶의 모습을 통해 인간적으로도 성숙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땅을 스치듯이 나아가는 발걸음은 누가 보기에도 고매하기 그지없어 보일 정도였다.

청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는 지문환을 불러 다시 한 번 확실히 산서 분타주로서 역할을 잘 해낼 것을 명했고 부를 때까지는 거지 수련에 온 힘을 기울여 훌륭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놓았다.

그 말에 지문환이 강한 어조로 답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훌륭한 모습으로 변화되라는 말에는 잠깐 동안 얼굴이 어두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말이 훌륭한 모습이지 실제로는 확실한 거지로 탈바꿈하라는 말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개방의 십이밀로 모진 고문을 받고 진개방으로 돌아선 수여막과 공초환은 표영으로부터 회선환(때독)을 선사받고 산서 분타의 일원이 되었으며 일단은 부상을 치료하는 데 힘을 쏟았다.

표영이 산을 오르며 살짝 눈을 들어 꼭대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리고 오기 전 수여막이 들려준 말을 떠올렸다.

“노위군은 망창산 정상에 뇌옥을 만들어놓고 반구옥이라 불렀습니다. 반구옥이라 함은 말 그대로 ‘자신을 반대하는 개같은 무리를 가두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반구옥을 방문했는데 그 까닭은 저희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번 그의 대사형을 만났는데 나올 때는 늘 어둡거나 화난 표정이 되었습니다. 일단 그곳 정상에 오르시게 되면 근처 풀숲에 뇌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밧줄이 말뚝에 박혀 있습니다. 그 밧줄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면 절벽 중간쯤에 동굴이 있고 그곳이 바로 반구옥입니다. 경비는 다섯 명 정도입니다. 지형이 워낙 험하고 누구도 그곳에 뇌옥이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기에 굳이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여긴 것입니다.”

‘노위군이라는 위인은 집요한 놈인 것이 분명해. 아니면 어찌 절벽에 뇌옥을 만들어놓을 생각을 했단 말인가.’

표영은 노위군을 사형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방의 배반자이며 사부님의 원수에 불과했다. 표영은 노위군을 죽인다고 해서 사부님이 살아나실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사부도 복수에 대한 부탁 따위는 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마음으로 아파했음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죽일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얼굴을 보게 되면 마음에 살심이 일지 않으리란 보장을 하긴 힘들었다.

‘일단 노위군에 대한 문제보다 대사형과 형제들을 구하는 데 힘을 기울이도록 하자.’

지금으로써 제일 중요한 건 반구옥에서 그들을 구출해 내는 일이었다. 그들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지킨 사람들이었다.

어느덧 망창산 정상에 오른 일행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절벽가에 섰다. 산 정상인지라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옷자락을 날렸다.

‘바로 이곳에 사형이 있단 말이지.’

사부로부터 말로만 들었던 사형이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니 뭔지 모를 기대가 가슴을 타고 올라왔다. 그때 능파가 밧줄을 발견하고서 실제로 밑에 반구옥이 존재하는지를 살피기 위해 밧줄을 쥔 채로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가 몸을 날린 것은 밑으로가 아니라 수평이었는데 그건 아래의 지형을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몸이 절벽을 벗어나 황망한 허공에 이르렀고 줄이 팽팽하게 당겨질 때 그 작은 반동을 이용해 다시 지면으로 돌아왔다.

“녀석의 말대로 동굴이 있습니다.”

“좋다. 내려가도록 하자.”

첫 번째로 내려갈 이는 능파였다.

능파는 아까 동굴이 과연 있는지 확인하였고, 그때 대층 어느 정도 위치에 동굴 입구가 있는지 살펴본 터였다. 그는 밧줄의 길이를 쭉쭉 펼치며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동굴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지 가늠해 보았다.

곧이어 그는 밧줄의 어느 한 부분에 표시를 남기고 지체없이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끝을 알 수 없는 벼랑인지라 그러한 능파의 행동을 보통 사람이 보았다면 입을 쩍 벌리고서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능파의 뛰어내림은 태연자약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능파가 잘못될 것이라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능파가 몸을 던진 후 밧줄은 곧바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로 인해 능파의 몸이 허공에서 작게 출렁였고 그 반동을 타고 그의 몸은 동굴 안으로 빨려들듯이 들어갔다.

그 다음부터는 같은 방법을 동원하여 내려섰는데 능혼이 뒤를 이었고 표영, 그리고 제갈호, 교청인 순으로 동굴 안으로 내려섰다.

표영이 반구옥에 발을 디뎠을 때는 입구 근처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두 명의 개방인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진 후였고 안쪽에 있던 세 명도 혈도가 짚인 채 허물어져 있었다. 그리 힘들이지 않고 능파가 제압했을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이거 너무 쉽게 끝나 버렸는 걸? 수여막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군.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경계가 허술해서야 원.”

표영으로서는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듯하자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허탈한 느낌도 들었다. 그때 능파와 제갈호 등이 쓰러진 개방인들의 허리춤을 뒤진 후에 표영에게 말했다.

“방주님, 열쇠를 찾았습니다.”

표영이 고개를 끄덕이고 천음조화를 시전하며 외쳤다.

“개방의 영웅들을 구하기 위해 진개방에서 왔으니 문이 열리더라도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크나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이나 다 동일한 크기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고매한 수법이었다. 이 정도면 되었겠다고 생각하고 표영이 수하들에게 명했다.

“좋다. 문을 열도록.”

열쇠 꾸러미는 총 세 개였다.

뇌옥의 수는 30호실까지 있었는데 각 꾸러미마다 10개씩 세 개로 나누어져 관리되고 있었다. 특별히 능파 등에게 있어 열쇠가 없다고 해서 문을 열 수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열쇠를 찾았음에도 굳이 문을 부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안에 있는 이들이 놀랄 수도 있고, 괜히 힘을 낭비할 건 없었으니 말이다.

제갈호가 잡은 열쇠 꾸러미는 1호에서 10호실까지의 열쇠였고 능혼이 11호에서 20호까지, 그리고 능파가 21호에서 30호까지의 열쇠를 쥐고서 각기 뇌옥의 번호를 파악하며 문을 열기 위해 나아갔다.

표영은 제갈호의 뒤에서 1호실에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개방인들이 아니겠는가.’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표영의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설레었다. 또 한편으로는 문이 열리게 되면 떠나간 사부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줄 것만 같기도 했다.

찰각.

제갈호가 1호실에 열쇠를 꽂고 문을 열었다. 삐꺼덕 소리와 함께 안이 드러났는데 어두워서 곧바로 내부의 사정을 파악하긴 힘들었다.

문이 열리고 내부를 바라본 순간은 매우 짧았는데 바로 그 순간 강력한 힘이 문 앞에 서 있는 제갈호의 가슴을 강타했다.

슈욱-

퍼억!

제갈호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고 밀려드는 공격이 상상외로 강력해 그만 가슴에 장력을 얻어맞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그의 몸은 동굴 벽에 심하게 부딪쳤고 동굴 벽면의 가루들이 부서져 내리며 몸도 나뒹굴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숨 한번 몰아쉴 여유 없이 이번에는 표영의 심장을 노리고 살수가 전개되었다.

“우리는 구해주러 온 것이오! 읍…….”

미처 자세한 것을 설명할 시간조차 없었다. 장력의 기세는 가히 살인적이었고 대화로 해결한답시고 그대로 있다가는 심장에 구멍이 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급박함 속에서 표영은 상대의 공격이 지척에 이르렀음을 보고 몸을 틀었다.

퍼펑!

“으윽!”

표영의 어깨가 뒤로 확 밀려가며 몸이 비틀거렸다. 그나마 심장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내가 분명히 구해주러 왔다고 미리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 이런 살수를 전개한단 말인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그동안 분노가 쌓였던 것일까?’

하지만 표영은 곧바로 자신의 생각이 빗나가도 한참이나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그 상대는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었고 결코 반가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 늙은이는…….’

그는 바로 이진구의 숙부인 개방의 집법장로 이요참이었던 것이다. 이요참은 이진구 동굴 사건으로 인해 표영을 죽이려고 했던 이였다.

표영은 수여막이 들려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반구옥 안에 갇혀 있는 개방인들은 모두 내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스스로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적은 인원으로도 관리함에 있어 크게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표영이 그 말을 떠올린 것은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이요참의 신형이 흔들하는 순간 표영의 아혈과 마혈을 찍었고 등 뒤로 돌아 목 부근에 손가락을 세운 것이다. 표영은 입 언저리가 마비되고 동시에 몸이 굳어짐을 느꼈다.

‘이런 제기랄! 어쩐지 너무 쉽게 일이 진행된다 했더니만 이런 암수가 있을 줄이야.’

지금까지의 상황은 꽤 긴 시간이 흐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거의 찰나와 찰나가 연결된 것과 같이 짧은 시간들이었다. 그렇기에 능파와 능혼이 재빨리 달려와 손을 쓰려고 했을 땐 이미 상황은 종료돼 버린 후였다.

능파가 이요참을 향해 벼락같이 소리쳤다.

“죽고 싶은 거냐! 어서 그 손을 놓지 못해!”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지존의 몸에 상처라도 나는 것을 원치 않는 그가 아니던가. 그의 목소리엔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었는데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동굴 천장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한쪽에서는 교청인이 혼절해 있는 제갈호를 바로 눕히고 몸을 살피고 있었고 능파의 곁에 선 능혼은 능파보다는 조금 냉정한 신색으로 싸늘하게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방주님과 우리가 여기 온 것은 너희를 구해주러 온 것이니 두려워하거나 경계심을 가질 필요 없다. 어서 방주님을 놓아라.”

말이야 이렇게 했지만 만일 순순히 놓아준다 해도 아예 반 죽여 놓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쨌든 달래야만 했다. 하지만 능파와 능혼의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이요참의 얼굴엔 득의한 미소만이 가득 피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아직 표영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로선 과거 표영이 구지경외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 확실히 죽었다고 생각했기에 참혹할 정도의 거지였지만 구지경외자가 진개방의 방주로 나타났음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단지 그는 문젯거리인 진개방의 방주를 자신이 제압했다는 것이 그저 기쁠 따름이었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얌전히들 있어라. 나는 이곳에서 너희를 기다린 지 오래다. 요즘 강호에 진개방이라는 쓰레기들이 나돌아 다닌다고 하여 노부가 청소를 해주려고 한다. 죽을지 살지도 모르고 겁도 없이 이곳까지 오다니 간덩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구나.”

그는 거만함을 가득 실은 채 말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방주 노위군에 대해 감탄했다.

‘정말 기묘하구나. 어찌 방주는 진개방의 무리가 이곳으로 올 것이라 예상했을까? 만일 내가 이곳에 없었다면 개방은 곤욕을 치르게 되었을 것이다.’

이요참은 처음에 방주가 반 구옥에 잠시 가 있으라고 했을 때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그곳에서 진개방의 무리들이 올지도 모른다고 한 말 때문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건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려 해도 터무니없는 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요참은 방주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호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느닷없는 침입으로 경계조들이 다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진개방의 무리가 구하러 왔다는 말에 정신을 차리자 이와 같이 공격에 성공하게 된 것이었다.

‘방주는 신통력이 생긴 것일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허튼수작은 부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난 사실 세상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거든.”

이요참은 진개방의 방주도 방주지만 정작 무서운 놈들은 노려보고 있는 두 늙은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그들을 제어해 놓지 않으면 여차하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돼버릴 것은 분명했다.

“나는 사실 이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이거든. 하지만 네놈들이 뛰어다니는 것은 그렇게 기쁘지 않아. 그러니 내 성질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기분 상하면 여기서 죽여 버리면 그만이거든. 하지만 난 지금 당장에 죽일 생각 따윈 없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내 말을 곱게 듣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떠냐. 여기서 너희 방주가 죽는 꼴을 보고 싶으냐. 아니면 후사를 기약하겠느냐?”

잔인한 미소를 흐릿하게 흘리며 이요참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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