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140.
다시금 뼈를 온전히 흐트러뜨린 후 동작을 멈춘 능파가 지문환을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다. 지문환은 그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뼈를 맞추라는 말인 것이다.
“네, 갑니다.”
지문환과 무요가 다시 날듯이 달려와 허겁지겁 뼈를 맞췄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더 힘들었다. 더 벗어났고 더 부러진 곳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도 두 사람의 손은 매우 정교해 뼈들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물론 그 순간도 수여막과 공초환에게 고통은 찾아왔다.
“…….”
“…….”
가끔 어떤 뼈들은 부러져 날카롭게 쪼개진 것도 있었는데 그것들의 일부가 살에 박힌 경우가 있었기에 다시 원래대로 하는 과정에서 형용하기 힘든 고통이 찾아든 것이다. 거의 다시 부러지는 고통보다 더 아프게 느꼈질 정도였다.
지문환과 무요는 뼈를 다 맞추고 누워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가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이미 눈은 팅팅 부어 있었다. 게다가 입가엔 끊임없이 거품들이 피어올라 부글거리고 있었다.
지문환이 작은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속삭였다.
“쯧쯧. 이놈들아. 어서 모든 것을 실토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영영 병신이 되고 만다구.”
지문환의 말은 생각해서 한 말이었지만 수여막과 공초환에겐 염장을 지르는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새끼야, 지금 장난 하냐! 아혈을 찍어 말 한마디 하지 못하게 하고서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정말 큰일이다. 이 새끼들, 완전히 미친놈들이잖아?’
하지만 능파와 능혼이 아혈을 짚고서 아무런 말도 물어보지 않고 냅다 고문을 해댄 것에는 나름대로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
그때 능파와 능혼이 다시금 접근했다.
“자, 좋아. 정말 분위기 좋구나. 이 모든 것은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니 그렇게 인상 쓸 필요 없다. 사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고금을 통틀어 진정한 진리라고 할 수 있거든. 크크크.”
“그럼요,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의원들도 한결같이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뼈가 부러진 다음에 다시 붙으면 그 뼈는 더욱 튼튼해진다고 말이죠. 의원들은 그런 말을 할 때 꼭 이런 비유를 들죠. 비 온 후에 땅이 더욱 굳는다, 라고 말입니다. 하하하.”
수여막과 공초환은 정말 암담했다. 다시 또 뼈를 부러뜨릴, 아니, 뼈를 흐트러뜨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고통을 주었으면 대충 아혈을 풀어주고 물어봐야 하고, 그렇게 되면 여러 가지 준비해 높은 변명의 보따리를 풀어놓을 텐데 그런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능파와 능혼이 아혈을 짚고서 무작정 때리기만 한 것은 어쭙잖은 변명을 들으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능파와 능혼 두 사람은 고문에 대해 통달한 상태였기에 마음을 다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또다시 능파와 능혼의 발이 움직였고 세 번째로 뼈들의 분단과 이산이 시작되었다. 수여막과 공초환은 이번에는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온 얼굴의 주름이란 주름을 다 구겨가며 침묵의 비명을 내질렀다.
“…….”
“…….”
인간의 얼굴에 저리도 많은 주름이 잡힐 수 있는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때리고 있는 능파와 능혼의 얼굴에도 맞고 있는 두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주름이 잡혔다. 하지만 그 주름은 활짝 웃느라고 생긴 주름일 뿐이었다.
수여막과 공초환이 흐물흐물해질수록 능파와 능혼의 얼굴은 환히 밝아졌다.
“낙지가 되어라. 어서 빨리 낙지가 돼∼.”
“껄껄껄껄!”
능파는 이제 새로 급조해서 만든 ‘낙지 노래’를 부르면서 발길질을 가했고 능혼은 능파의 가락에 맞춰 껄껄거렸다.
세 번째 뼈들의 분단과 이산이 있은 후 전과 동일하게 지문환과 무요가 쏜살같이 달려와 분단되고 이산된 뼈들을 상봉시켜 주었다.
그때도 온 얼굴 가득 주름을 만든 것은 물론이었다.
수여막과 공초환은 모든 뼈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후 마음으로 간절히 기원을 올렸다.
‘모든 것이 삼세판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세 번이 지났으니 그만 할 때도 되었지 않습니까?’
‘제발 아혈을 풀게 하고 무슨 말이라도 좀 물어보게 해 주십시오! 정말 이 새끼들은 미쳤단 말입니다!’
누구를 향한 기원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기원은 정말 간절했다. 그들의 마음속 기원이 하늘에 닿았음인가. 곧 이어 놀라운 소리가 능파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이제 그만 하도록 하자. 저들도 똑같은 사람이 아니더냐.”
진중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고 짙은 회의가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능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우리가 너무 심했던 것 같습니다. 치료라도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음, 그래야겠지.”
그 오고 가는 말들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떨림을 보아 진정 사실인 듯싶었다. 능파가 지문환을 보며 말했다.
“뼈가 잘 붙을 수 있는 약을 몸에 발라주고 원기를 북돋아 주도록 해라. 우린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다.”
“이런 일은 하면서도 기분이 그리 좋지 않죠.”
능파와 능혼이 한마디씩 하고 밖으로 나가자 모두들 얼이 나간 표정으로 둘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김빠지는 소리를 토해냈다.
“허허… 거참…….”
“알 수가 없네… 쩝…….”
그러나 제갈호의 황당함에 두 사람이 어찌 비할 수 있겠는가.
‘저럴 리가 없는데… 저 양반들이 머리에 충격을 받았나……?’
이제까지 같이 지내오며 살핀 능파와 능혼이 할 수 있는 말이 결코 아니었다. 원래 저 두 사람은 아까 같은 대화는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말이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나…….’
지문환과 무요는 능씨 형제가 나간 후 서둘러 두 사람을 치료했다. 능파와 능혼의 행동에 대해 의문이 가득했지만 일단 하라고 하는 대로 하지 않을 순 없었다.
청막에는 훌륭한 내상약과 외상약이 많이 겸비되어 있었다. 살
수라는 일 자체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일이므로 몸에 어떤 상처가 날지 모르는지라 치료약에 대한 부분도 상당 부분 발달하게 된 것이다.
수여막과 공초환은 드러누워 치료를 받으며 스스로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까는 정말이지 단 한시라도 세상에 있고 싶지 않았지만 상상을 불허하는 인내를 발휘한 결과 이렇게 고문이 멈추고 벗어나게 된 것이다.
비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쩍쩍 벌리고 얼굴 가득 온갖 주름을 잡았던 것이 결코 헛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하늘이 우리를 도우시는구나.’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 그런데 과연 이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기에 우리를 괴롭힌 것일까?’
무슨 약을 바른 것인지 온몸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끼며 수여막과 공초환은 한껏 여유를 찾았다. 그러자 마음 깊이 대체 왜 이런 고통을 당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보아도 뚜렷이 잡히는 것은 없었다.
‘우리가 말한 것이라고는 진개방에 대한 것뿐이잖은가. 거참.’
‘진개방은 소수의 무리들이고 그 거지 같은 놈들과 청막이 관련을 맺고 있을 리는 없…….’
거기까지 생각한 공초환은 눈동자를 떼구루루 굴려 지문환과 무요, 그리고 제갈호를 바라보다가 얼굴이 경직되었다.
‘아니, 그렇다면 이놈들이 혹시… 모두들 진개방 놈들?’
약간 말이 안 되는 가정이었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진개방의 힘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막강한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럴 리 없어, 아무렴. 청막이 어디 동네 건달들의 조직도 아니고 어찌 진개방 따위에게 무릎을 꿇겠는가.’
그로선 되도록이면 부인하고 싶었기에 자꾸만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세뇌시켰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왠지 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한구석에서 치고 일어났다.
‘젠장… 어쨌든 찜찜하니 몸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속히 이곳을 떠나야겠다. 다행히 머저리 같은 녀석들이 강하게 나오다가 마음이 약해져 물러섰으니 대충 핑계를 댄 후에 빠져나가야지.’
그런 생각으로 통박을 신나게 굴릴 때 어느덧 지문환과 무요는 외상약을 다 바르고 끝으로 내상약인 치우환을 입에 넣어 주었다. 치우환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 뜨거운 열기가 목을 관통하고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것이 보통 물건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귀한 것까지 주는 것을 보니 확실히 오해로 판명된 것이 분명하다.’
수여막과 공초환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밖에 바람 쐬러 갔다 온다던 능파와 능혼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지문환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신 대로 조치했습니다.”
능파가 어깨를 두들겨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수여막과 공초환 앞에 이르렀는데 이상하게도 발목을 빙글빙글 돌리는 것이 아닌가. 아직까지 수여막과 공초환은 아혈이 풀리지 않은 상태인지라 ‘왜 그러십니까?’라든지, 혹은 ‘어디 발이 아프십니까?’라고 물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설마 또 패기야 하겠는가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지켜보는 지문환과 무요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외상약과 내상약까지 먹이라고 해놓고서 또다시 패기야 하겠어…….’
그러나 제갈호는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들겨 패고도 남을 사람들이지… 암, 그렇고말고… 함께 지내오며 방주로부터 시작해서 모두가 정상인 사람이 있었냐고…….’
여러 사람이 각기 냉철한 판단력으로 예상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갈호의 생각이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자, 다시 한 번 시작해 볼까?”
“좋지요.”
능파와 능혼이 활기차게 말을 주고받으며 밟아버릴 기세를 보였다. 그 광경에 수여막과 공초환의 눈이 황당함에 겨워 동그랗게 변했다. 그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뭐 대체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씨발, 믿을 수 없어…….
그랬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지문환과 무요도 마찬가지였다. 막 발을 뻗으려 할 때 지문환이 얼른 물었다.
“장로님들… 저기… 말씀하신 대로 약을 다 발라놓았고 아까 말씀하시길 이렇게 패서는 안 된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에?…아… 저는 그냥 궁금해서…….”
능파와 능혼이 노려보자 지문환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능혼은 화를 내거나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는 듯 도리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답해주었다.
“아하, 아까 그 말? 그거야 농담이지. 하하, 뭘 그런 것 가지고…….”
“자자! 아우야. 잔소리할 거 없다. 얼른 밟아주자.”
그 뒤로 지하 고문실에는 타격음과 뼈마디 어긋나는 소리만이 들릴 뿐 다시 고요함에 빠졌다. 제일 황당하기로는 역시 수여막과 공초환 두 사람이었다.
둘은 극도의 허탈감에 젖었다. 그 허탈감이 얼마나 컸던지 두 사람은 아까처럼 침묵의 비명도 내지르지 못했고 온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그저 발에 차이는 대로 몸을 꿈틀대며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어두컴컴한 천장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으로써는 고통도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허탈감이 고통을 넘어버린 것이다.
‘나는 대체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나는 왜 이곳에서 이렇게 맞고 있는 것일까?’
‘내 몸은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단 말인가? 정말 살기 싫다…….’
하지만 두 사람이 어떤 심적 갈등을 겪든 그런 것까지 능파와 능혼이 배려할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저 정성스레 맞춰놓은 뼈들을 다시 멀리 떨어뜨리면 되는 것이다. 네놈들은 누구고 어떤 놈의 명령을 받고 청부를 하게 되었느냐 따위는 물어볼 생각도 없었다. 아직도 해가 뜨기까지 시간은 충분했고 밤은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그때까지가 네 번째로 뼈마디들의 이산과 상봉이 이루어졌고, 그 후로 다시 세 번의 뼈마디들의 이산과 상봉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여덟 번째 뼈마디가 부러질 즈음에 수여막과 공초환은 급기야 한계에 이르렀다.
사실 한계에 이른 것은 진작부터였다. 하지만 말을 하고 싶어도 아혈을 찍어놓고 말할 기회를 안 주니 사실을 사실대로 실토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되자 두 사람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말할 기회를 안 주니 자신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5번째부터 시도를 했지만 그때까지도 의지는 확고한 편이 못 되었다. 하지만 8번째가 되었을 때 수여막과 공초환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이미 온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상태이고 손가락뼈가 너덜거릴 지경에 빠졌지만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바닥에 글자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