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37장 (138/199)

 # 137

137.

“그럼요. 잘 안 믿겨지시나 보군요?”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네의 차림새가 걸인이라…….’

그 뒷말은 매듭을 짓지 않더라도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은 없을 터였다. 아무래도 거지꼴을 보자니 신뢰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잘 보십시오. 몸에 이런 식으로 구멍을 뚫어놓겠습니다.”

표영은 말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중간에 놓인 탁자를 새끼손가락으로 가만히 눌렀다. 무슨 큰 기합 소리를 지른다거나 요란을 떨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탁자는 작은 새끼손가락에 눌려 솜이 뭉개지듯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것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주 할머니의 눈에도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입에서 저절로 놀람의 감탄사가 터졌다.

“허어……!”

사실 지금 보여준 표영의 솜씨는 무공을 아는 자라면 더욱 놀랄 한 수라 할 수 있었다. 기를 이용해 타격하여 탁자를 부수거나 혹은 구멍을 낼 순 있겠으나 지그시 눌러 가만히 들어가게 하는 것은 한곳으로 힘을 모을 수 있어야하고 그만큼 기가 정순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이 정도로 놀라시면 곤란합니다. 사람의 몸이야 이 나무판자보다 단단할 리는 없으니 수십 개의 구멍도 뚫을 수 있답니다. 그러니 의심하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표영의 활기 넘치는 말에 옆에 있던 교청인은 당혹스러웠다. 다른 조에게 말하길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라고 해놓고서 지금에 와서는 죽여주겠노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말이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구나. 진짜 나이 든 노인네를 죽일 셈이란 말인가?’

이제까지 그녀가 봐오고 알고 있는 표영은 절대 그럴 사람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큰소리치며 자신만만해하니 불안하기까지 했다. 표영이 다시 활기 넘치는 얼굴로 할머니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수하를 보내 깨끗하게 죽여 드리겠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알려 주십시오.”

표영이 할머니에게 말한 뒤에 대답도 듣지 않고 바깥문을 향해 소리쳤다.

“이리로 들어와 보아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겁지겁 오영주인 설대호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방주님?”

“너는 이분이 말씀하신 곳을 잘 기억해서 사람을 찾아 죽이도록 해라.”

“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표영이 서둘러 청부를 시행하려 서두를 때 할머니의 얼굴은 구멍 뚫린 탁자를 보고 있었는데 차츰 안색이 어두웠다.

‘휴우, 그 노인네의 몸이 저렇게 뚫려 버린단 말인가?’

주경운 할머니는 표영이 워낙 활기차고 적극적으로 나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자 도리어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원래 싸움을 함에 있어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더 열심히 싸우고 자극받게 되지만 아무도 신경을 안 쓰거나 오히려 싸우라고 멍석을 깔아놓으면 흐지부지 끝나 버리고 만다. 그런 심리를 표영은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한스러운 마음은 타이른다고 해소될 부분이 아님을 표영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표영은 진지하게 응대할 수도 있었으나 되려 요란스럽게 웃으며 장사꾼처럼 말했고 그로 인해 할머니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그건 한편으로 할머니의 심성을 온전히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처신이기도 했다.

“자자, 어서 말씀해 보세요.”

“으음… 산서성 호곡 지역의…….”

할머니는 그 다음 말을 속으로 삼켰다.

“호곡 지역이라… 좋습니다. 그 다음은 어디죠?”

“…….”

다시금 활기차게 물어보는 표영의 말에 주경운 할머니는 입술을 달싹거리긴 했지만 말을 꺼내진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교청인은 비로소 표영의 의도를 알고 속으로 미소 지었다.

‘방주는 멍석을 요란스럽게 깔아주려고 한 것이었군.’

“휴우∼”

주경운 할머니는 대답 대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표영은 이제 방향을 틀어야 함을 느꼈다. 이렇게 계속 한곳으로 몰아붙여선 안 되는 것이다.

“청부를 취소하실 생각이신가요?”

“으음. 아무래도 그래야 될 것 같은데…….”

할머니는 눈치를 살폈다 아까까지만 해도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면서 늙은 남편이 꼭 죽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이런 변화는 표영의 멍석 깔기 작전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제껏 이런 이야기를 그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는데 표영 앞에서 마음을 활짝 열고 속 깊은 이야기를 다 드러내자 오히려 화가 가라앉은 것이다.

정신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은 들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환자들 대부분은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누군가가 귀를 기울여 주면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이다.

표영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주경운 할머니를 보고 말했다. 웃는 얼굴은 아까와 비슷했지만 전달되는 느낌은 전혀 달라 지금은 따스함이 배어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사실 제 마음도 편치 않았답니다. 미운 정도 정이기에 쉽게 무시할 수 없어요. 청부를 하는 대신에 이 돈으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세요. 대신 한 달 후에 집에 가셔서는 남편 분께 더욱 잘하도록 하세요. 그동안의 사정은 남편 분께 저희가 말씀을 드려놓을 테니 염려 마시구요.”

“어떻게 말인가?”

솔직히 주경운 할머니는 애초에 할아버지를 죽일 작정이었기에 이곳까지 따라온 것이었다. 해서 그녀는 당장에는 돌아갈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부하를 할머니 집으로 보내 적당히 말해 놓을 테니 마음 놓으십시오. 하하하.”

그렇게 하여 주경운 할머니는 그 뒤로 작은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표영은 오영주 설대호에게 명해 할머니를 모시고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도록 했다.

더불어 그 집 위치를 물어 알아둔 후에 먼저 찾아가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게 된 이유를 그럴싸하게 둘러대라고 말했다. 훗날의 이야기지만 설대호는 조천상 할아버지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머니를 우리가 모시고 있으니 적당한 사례를 하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을 줄 아시오.

이 말은 설대호로서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것이었다. 비록 치사한 방법이긴 했지만 이 말을 통해 할머니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도 파악하고 부수입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천상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가출(?)해 버린 후에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고 늘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듣게 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아껴둔 재물을 꺼내주며 부디 건강하게 되돌려달라고만 하게 되었다.

그 후 주경운 할머니가 집에 돌아갔을 때 할아버지가 눈물을 글썽이며 맞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할머니가 살인 청부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떠올리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맞게 된 것이다.

표영은 주경운 할머니의 청부를 해결(?)하고 계속해서 순서대로 그들의 말을 들었다. 약 200여 명이 넘는 일반 서민들의 살인 청부 동기는 참으로 다양했다.

부부 싸움을 하고 살인 청부를 생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의원이 진료를 잘못하여 남편을 잃었다며 의원을 죽여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이는 괜히 그 사람만 생각하면 기분이 더럽다며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다며 죽여주길 바라는 이도 있었다.

표영은 각양각색의 청부를 원하는 이들에게 그에 맞는 답을 해주며 어떨 땐 천음조화로 위로하고 또 어떨 땐 천음조화로 꾸짖기도 하며 한 명씩 그 마음을 돌이키는 데 힘썼다. 그리고 이런 시간들은 나름대로 표영에게는 간접 경험을 늘려주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제11장 호랑이 굴로 들어온 이들

표영의 1조가 나름대로 좋은 결과를 낳고 있을 때 2조에 편성된 제갈호와 무요도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해 나갔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3조와 4조는 상황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앞서 두 개 조가 평온함 속에 하나둘씩 청부를 요청한 자들의 마음을 달래고 각기 고향으로 보냈다면 3조의 자리에 들어간 이들은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협박을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3조의 책임자는 지문환이었다. 그는 비록 표영의 뜻을 받들어 청막을 포기하고 진개방의 분타주가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마음의 잔재를 다 떨쳐 내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살인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울분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야이, 새끼들아! 누구를 죽인다든지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알겠어? 알았냐구?!”

무조건 다그치고 보는 것이었다. 3조에 편성된 이들은 무림인이면서도 그다지 큰 힘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기에 살기를 여과없이 드러낸 지문환 앞에 벌벌 떨며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개중엔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지, 아니면 자신은 정당한 거래를 하는 고객의 입장이라고 생각하는지 주눅 들지 않고 큰소리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곧바로 구석에 처박혀 지문환과 영주들로부터 몰매를 맞았고, 그렇게 맞은 뒤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싱글거리며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인사를 하고 떠났다.

3조가 나름대로는 험악하다고 볼 수 있겠으나 4조에 비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래 4조는 인상이 더럽고 제법 무공을 펼칠 것 같은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들이 청막을 찾은 대부분의 이유는 그리 온당치 못한 것으로 사사로운 감정이나 혹은 이권을 위해 어떤 사람을 죽이기 위한 목적이 많았다. 혹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로부터 청부를 받고 그 청부를 청막에 다시 의뢰하여 마진을 챙기는 수법을 쓰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런 자들이야말로 최악의 장사꾼이 아닐 수 없었다.

장담하건대 이들 중에는 진정 참된 원수를, 예를 들어 부모의 원수나 일가 친지의 복수를 감행하는 일 등…, 갚고자 하는 이들은 없었다.

실질적으로 원수를 갚고자 하는 이들은 거의 백이면 백 직접 자신의 손으로 원수의 목을 따기를 바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쉽게 원수가 죽도록 배려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 까닭을 아는지 모르는지 능파와 능혼이 청부를 해소하는 방법은 특이했다. 3조의 책임자인 지문환 같은 경우엔 대충 몇 마디 말이라도 물어보고 협박을 가해 마음을 짓누른다. 그에 반해 능파와 능혼은 순번에 따라 들어오면 그저 씩 웃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그때부터 냅다 후려 패버리는 것이다.

청부를 하러 온 이는 나름대로 손을 쓰려 하지만 능파와 능혼 앞에서 그런 수작은 그저 개수작에 불과할 뿐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잖은가.

그렇게 한참이나 팬 다음에 기진맥진해 있는 상대에게 한마디를 던진다.

“그냥 좋게 말할 때 집에 돌아가라. 청부는 잊어버려. 알겠지?”

언제 좋게 말한 적도 없으면서 태연한 얼굴로 좋게 말했다고 하는 말에 그 누가 위협을 느끼지 않겠는가. 무공도 초절정인데다가 완전 미친놈들이라는 생각에 그저 이 자리를 뜨고 싶은 생각뿐인 것이다.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서는 이에게 능혼은 마지막으로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의 대해서는 다 알고 있으니 함부로 입을 놀리거나 또 다른 곳을 찾아 청부를 하려 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관이 배달될 줄 알아라. 하하하.”

그 말에 능파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하면 조금 아쉬우니까 관 속에 쥐를 넣고 보내줄게. 으하하하!”

끔찍스런 말을 들으며 떠나는 요청자는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청막을 벗어났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4조의 대기인들은 무엇이 저리도 감동적이기에 눈물까지 흘리는지 궁금해 했다.

“살수 조직들도 경쟁이 치열한가 보군. 고객이 저렇게 감동할 정도로 정성을 다하니 말이야.”

“아무렴, 먹고 사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은 한 명씩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때마다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서야만 했다.

큰일(?)없이 그렇게 조마다 각기 살인청부를 해소하고 있을 때였다. 일행에게 있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구나, 라는 안일함이 감돌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중대한 청부가 발생했다.

그것은 제갈호와 무요가 책임자로 있는 2조에서였다. 약 백 명 정도가 지날 때였을까. 제갈호와 무요 앞에 이른 이들은 두 명의 백의를 걸친 40대 중반의 무사들이었다.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던 제갈호는 그들의 입으로부터 엄청난 청부를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청막은 우리가 예상했던 곳과는 많은 부분 다르군요.”

맞은편 탁자 오른쪽에 자리한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백의인이 입을 열고 뱉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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