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35장 (136/199)

 # 135

135.

“그동안 너희들은 온통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사람을 빨리, 그리고 조용히 죽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고민일랑 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너희가 오로지 신경 써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하루 세 끼 밥을 굶지 않을 것인가와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훌륭한 거지로서의 삶을 살았는가를 되돌아보면 되는 것이다. 하하하하!”

표영은 그런 살수들의 모습을 떠올릴수록 웃음이 나왔다.

그들은 본래 예민한 감각으로 은신해 있다가 단칼에 사람의 목을 베고 유유히 사라진다. 그런 그들이 이젠 거지가 되어 초라한 몰골로 기웃거리는 것은 왠지 모를 기쁨으로 다가왔다.

“원래 사람의 목숨이란 하늘에 매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으로서 함부로 누군가를 죽여서는 안 되는 법이다. 너희들이 만일 사람들을 죽일 권리가 있다면 능히 사람을 다시 살릴 수도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느냐? 너희는 하늘이냐,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보도록! 지문환, 넌 어때?”

아까 자신이 행한 행동으로 인해 깊은 우울감에 빠진 지문환의 입은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굳게 닫혀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능파와 능혼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저런 쌍놈의 새끼를 봤나! 어제 너무 봐주고 팬 거야. 이 새끼, 넌 끝나고 죽었어!’

‘저 새끼! 내 그럴 줄 알았다! 오늘은 아주 죽여주마!’

둘은 지존의 연설에 호응하지 못하는 지문환을 때려죽여야겠다고 다짐하며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하지만 표영은 지문환이 아무런 말이 없자 그걸 빌미로 말을 이어갔다.

“저 봐라.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거야. 그걸 보고 유구무… 음, 험험… 그런 거 있잖아.”

학문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표영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의 마지막 글자가 생각나지 않아 헛기침으로 때우고 말을 이어갔다.

“험험… 지문환, 저놈도 나름대로는 양심이 있으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는 거야. 짐승도 낯짝이 있는 법인데 나잇살 처먹고서 양심이 없다면 말이 안 되겠지. 그래, 네 마음 잘 알았다.”

표영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잇살 처먹은 짐승 같은 놈이라는 말이었다. 그런 표영의 말에 능파와 능혼은 아까까지 분노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져 불끈 쥔 주먹을 풀었다.

‘크크, 자식∼ 말할 염치가 없어서 그런 것이었나 보군.’

‘그럼 그렇지, 저런 귀여운 놈을 팰 수야 없지. 흐흐.’

표영이 지문환에게서 눈을 돌려 전체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청막은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리고 조만간에 살인 청부를 업으로 삼는 무림 조직들 모두를 정리할 생각이니 그리 알도록. 이제 강호에서 대가에 따라 살인을 하는 일은 허락지 않겠다. 너희들이 살인을 맡아주지 않아도 이 세상에는 살인을 맡아주는 분이 계시는 것을 알고 있느냐?”

느닷없는 질문에 모두는 이번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가 하고 눈을 삐딱하게 뜨고 바라보았다.

“진정 위대한 청부는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을 맞게 된다. 결국 원수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가 죽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원수보다 더 오래 살도록 도와주어라. 물론 그전에 죽어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들이 각자 할 일이다.”

표영의 말은 일면 황당해 보이긴 했지만 살수들의 마음에 와 닿은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이레간에 걸쳐 죽음을 체험해 본 터라 이제까지 잊고 있었던 생명에 대한 부분을 깨달은 터였고 하늘에 청부를 맡기라는 말에 어느 정도 마음이 움직였다.

표영은 하늘에 청부하라는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다가 이번에는 청막을 온전히 진개방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다른 명을 내렸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 후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청부를 받는 이들이 이곳으로 도착하도록 연락을 하라.”

그들은 약 100여 명 정도 되는 인원으로 여러 형태로 청부를 받고 있는 청막의 접수자들을 가리킴이었다.

“그리고 돌아올 때 청부를 요청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함께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전하라.”

표영이 청부한 사람들까지 오라고 한 것은 청막이 청부를 행하지 않는다고 살인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어차피 다른 곳을 찾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직접 만나 설득해 보고자 함이었다.

어느 정도 진지한 이야기를 끝낸 후 표영은 헛기침을 한 후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었다.

“험험, 내일부터 너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도록 하겠다. 기간은 약 두 달 정도로 외지에 나가 있는 인원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행해지게 될 것이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수련으로 너희가 진개방의 일원으로서 갖춰야 할 덕과 용기를 쌓는 일이 될 것이다.”

거기까지 말한 표영은 이번에는 손으로 능파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네 명이 너희들을 이끌 교관이니 앞으로 잘 따르도록.”

능파 등은 엉겁결에 교관이 되어버렸지만 이젠 이들을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대가 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가끔씩 걸인도에서 수련을 시키고 있을 손패와 만첨, 노각을 부럽게 생각한 적도 있던 그들이었기에 이번 명령은 심심찮은 위로로 다가왔다.

“자, 내 말은 여기에서 마치도록 한다. 모두들 내일을 위해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기다리도록 하라. 혹시 궁금해할까 봐 먼저 말하는데, 내일 첫 수련은 영약 복용부터 시작한다. 기대해도 좋다.”

청막의 살수들은 영약 복용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도 기뻐하는 자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영약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는 것 같은데 영약은 무슨…….’

‘그래, 필시 산과 들을 다니며 약초를 캐라고 할 거야.’

‘하여튼 지독한 놈한테 걸렸어.’

모두들 이와 같이 생각할 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질 않았다. 그런 그들의 생각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실제 영약 복용이 아니라는 것은 맞았지만 그 영약이 정작 개밥을 의미한다는 것은 까마득히 몰랐으니 말이다. 아마도 그것이 개밥인 줄 알았다면 밤은 너무도 길었으리라.

제10장 각양각색의 살인 요청자들

약 두 달여 동안 청막엔 지옥이 임했다.

원래 살수들은 일급살수가 되기 위해 걸어보지 않은 시련이 없었다. 그 온갖 시련과 역경을 지나 수련에 수련을 거치며 지금까지 온 것이다.

거기엔 당장에라도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도 있었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가는 괴로움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은 두 달 동안의 거지 수련에 비하자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개밥을 기쁜 표정으로 먹어야만 하는 영약 복용은 특급살수든 일급살수든 그저 그런 삼, 사급살수든 누구에게든 절망을 안겨주었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겨주었다.

근본 영약 복용의 목적한 바가 자신을 철저히 버리도록 만들기 위함에 있기에 살수들은 영약 복용으로 하루 이틀 지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해 갔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인생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스스로 좌절했다.

개밥을 먹으며 자신을 돌아보니 참으로 보잘것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짧게 정의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듯 맛있게 영약을 복용하고 뇌려타곤을 외치며 시장 통을 구르고 만천화우라며 비듬을 늘려갔다.

그런 수련 속에서 살수들은 서서히 비참함과 허무함의 언덕을 넘어섰다.

그들이 그 언덕을 다 넘어섰을 때 그들의 눈에 세상은 새롭게 다가왔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제껏 생각해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연에 좀 더 가깝게 접근했고 자존심이 사라지며 마음도 평온해졌다.

누구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고 또 누구보다 더 잘나 보이려 노력함도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더 강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사라졌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매달려 있던 강한 사슬을 벗어난 것이다. 그렇게 무겁게 매달려 있던 사슬이 벗겨지자 마음은 한가로운, 지극한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 수련 시의 무한한 정신적인 충격이 이젠 정신을 바르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 모든 깨달음이 전부에게 다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개중엔 두 달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만투성이인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부에 불과했고 대세는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다.

특히 높은 자리에 있었던 이들일수록 비참함과 허무가 컸기에 그 뒤에 얻는 것도 많았다. 그렇기에 지문환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의 살수들은 자신의 마음의 그릇을 비워두었다.

이제 그 자리에 새롭고 의미 있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두 달이 되어갈 때쯤 청막은 대변신에 성공했다.

청막이 아닌 산서성 진개방 분타로, 살수 집단이 아닌 완전한 거지 소굴로 변한 것이다.

오랜만에 본거지로 돌아온 외부 특파원들은 뜻밖의 호출에 여러 가지 궁금증을 안고 속속들이 청막으로 도착했다.

1년에 두어 차례 모임을 가지기도 하고 혹은 긴요한 일이 있을 때는 오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전혀 계획에 없던 것인지라 모두들 한결같이 의아함을 품지 않은 이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 자네는 혹시 알고 있나?”

감숙성 도천 지역에서 표면적으로는 전당포를 운영하며 청부를 받던 40대 초반의 송호가 옆을 보고 물었다. 송호의 옆에는 오는 길에 만나서 함께 길을 가게 된 같은 또래 나이의 막여가 있었는데 그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킨 채 두 눈썹을 꿈틀거리며 답했다.

“글쎄… 도무지 그동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하고는 맞질 않으니 알 수가 있나.”

“그렇지. 막주님이 늘 말씀하시길 대단한 일이 아니고서는 본거지가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말이네.”

“그래,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일이 복잡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둘은 지금 각기 열 명씩 살인을 요청한 이들을 데리고 가는 중이었다.

송호나 막여 같은 경우엔 솔직히 전갈을 받았지만 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앞뒤가 맞질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모일 이유도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살인을 요청한 사람들을 데리고 갈 그 어떠한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청막은 관광 명소나 유원지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긴가민가하며 청막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하나둘 동료들을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청막에 뭔지 모를 큰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반란이 일어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막주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휴∼ 어쨌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가보면 알게 되겠지.”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서는군.”

송호와 막여 등이 이처럼 고민에 휩싸일 때 반대로 살인을 청부했던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본거지로 간다는 말에 뜻밖의 수확이라는 눈치였다. 왠지 더 확실하게 일이 처리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청부자들 중엔 무림인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들은 그동안 신룡이 꼬리를 감추듯 신묘한 종적을 가진 청막의 본거지를 간다는 말에 큰 기대를 품었다.

물론 그 반대로 불안함도 없지 않았지만 그 불안은 기대보다는 적은 것이었다.

“으헉∼.”

“뭐, 뭐냐!”

“잘못 왔나 본데?”

“아니야. 여기가 맞는다고!”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지?”

“그동안 번 돈이 장난이 아닐 텐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야!”

“혹시 막주가 모든 돈을 가지고 튀기라도 했단 말인가!”

청막의 입구를 접어들면서 외부 특파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은근함 속에 살기를 품으며 입구를 지키고 있을 동료의 모습을 기대했건만 그들을 맞이한 것은 거지 떼였던 것이다.

청막으로 들어서는 입구 쪽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팔로 머리를 받친 채 모로 누워 있는 것이 완전히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거기에 발까지 까닥까닥하는 모습은 마치 그런 자세를 취하는 것이 자신이 이제껏 수련해 온 무공이라도 된 듯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모두들 놀라고 있을 때 거지 하나가 누운 채로 말했다.

“어이∼ 구종서! 나야. 나 소우복! 모르겠어? 허허, 이 친구도.”

앞쪽에서 경악성을 토해내고 있던 구종서는 거지가 자신의 이름을 알 뿐만 아니라 친구인 소우복이라고 말하자 눈을 씻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허허, 이 친구도. 내 비록 몰골이 상했기로서니 친구도 못 알아보나?”

구종서는 자세히 훑어본 후에야 비로소 그가 친구인 소우복이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 자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것인가?”

“뭐 하긴, 경계를 서고 있었지. 허허,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거야? 다들 어서 들어가게나.”

청막인들은 다들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는 표정이 되어 안으로 들어가서 물어보리라 다짐하며 꾸역꾸역 몰려갔다.

한편 청부를 바라며 따라온 이들은 뭔가 살수 조직의 절제된 모습과 냉혈한 같은 첫인상을 기대했다가 거지의 모습을 보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개중에 스스로를 깊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의식하는 자들은 살수로서 자연스럽게 죽이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더욱 놀라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