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32장 (13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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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제8장 청막으로 들어가는 길

무요가 손으로 멀리 보이는 붉은색으로 칠해진 정육점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곳입니다.”

무요는 표영을 비롯한 일행의 시선이 충분히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자 말을 이었다.

“저 정육점 주인의 이름은 나채종입니다. 청막의 일원으로 산서성에서 청부 요청을 받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청부 살인이란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은밀하게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청막에서는 본거지로 직접 의뢰를 청하러 오게끔 하지 않았고 비밀 장소를 두어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현재 정육점으로 꾸미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소와 돼지가 아닌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여러 지역에 펼쳐져 있는 청막의 청부 의뢰처마다 모두 정육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곳은 주루, 또 어떤 곳은 포목점, 또 다른 곳은 전당포 등등 다양한 모습으로 외양을 둘렀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꾸미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그러한 장사를 하면서 동시에 청부를 받았다.

이런 곳들은 워낙 자연스럽게 일반 상인들과 섞여 있기 때문에 정녕 그곳이 확실한 청부 조직의 하부인지 알고 오지 않는 이상 전혀 눈치 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아무도 모르게 된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비밀이란 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비밀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적었을 때 그 의미가 있는 법이다.

대부분 청부를 의뢰함은 연결연결 되어 아는 사람을 통해 접근해 오는 경우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청부 고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섣불리 예측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근심은 할 필요가 없었다. 세상에는 놀랍게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무요가 표영을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이 드문 틈을 타 나채종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하늘은 청명한데 오늘도 소와 돼지는 많이도 죽어가는구나’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청부를 의뢰하는 암호였다. 이렇듯 무요가 표영에게 청막에 접근하는 방법을 말한 것은 표영이 청막과의 정면 승부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표영은 수하들에게 말하길 청막에 청부를 의뢰할 사람이 있다고만 이야기했다.

능파가 대체 누구를 죽이려 하시는 거냐며 자신이 직접 죽이겠다고 집요하게 달라붙었지만 주먹으로 얼굴만 한 대 얻어터졌을 뿐이었다.

교청인 또한 미인계를, 실제로는 미인이지만 지금 상태로는 결코 미인이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용해 표영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건 시끄럽게 하지 말고 어디 시냇가에서 두 번째 목욕이나 하고 오라는 구박만 받았을 뿐이었다.

“하늘은 청명한데 오늘도 소와 돼지는 많이도 죽어가는구나… 암호치고는 웃기는걸. 그놈들은 사람들을 소나 돼지로 여기는 놈들인가 보구나.”

암호를 되뇌며 표영은 한쪽 입 꼬리를 올리고서 능파와 능혼을 보고 말했다.

“좋다. 능파, 능혼, 함께 가자.”

느릿한 걸음으로 우가촌 정육점으로 향해 그 앞에 이른 표영 등은 잠시 동안 손님들이 없는 틈을 기다리며 정육점을 유심히 살폈다.

정육점은 고기 맛이 좋은지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정육점 주인 나채종은 40대 후반의 나이에 고기집 주인답지 않게 약간 큰 키에 비쩍 마른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고기집 주인을 떠올릴 때면 퉁퉁한 돼지 같은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조금은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나채종은 고기를 팔면서 늘 손님들에게 자신의 마른 체형을 이용해 더욱 많은 고기를 팔기도 했다. 그의 말은 고기를 먹고 뚱뚱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효과적이었는데 그 말인즉 이러했다.

“매일같이 고기를 먹지만 우리 집 고기는 몸에 딱 맞아서 속으로 건강해질 뿐 살 같은 것은 찌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염려 마시고 많이들 드십시오.”

물론 이 말만 믿고 양껏 고기를 먹다가 피 본 아줌마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달려와서 따지거나 왜 속였냐며 화를 내는 아줌마들은 한 명도 없었다. 어쨌든 먹을 땐 맛있게 먹었으니 말이다.

표영이 기다린 지 약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까. 어슬렁거리며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이 없는 틈이 생겼다. 표영은 어기적거리면서 능 씨 형제와 함께 정육점 안으로 들어갔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고기들이 아주 먹음직스럽습니다. 하하하.”

나채종은 고기를 썰다가 세 명의 거지가 느닷없이 들어서자 칼을 꽂고서 한소리 크게 내질렀다.

“거지 놈들이 어디서 주접을 떠느냐! 고기에 때 묻으니까 어서 썩 나가거라. 이놈들아!”

버럭 지르는 소리 속에는 알 수 없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그건 사람을 여럿 죽여서 생겨난 기운이라 보기는 힘들었다. 도리어 소나 돼지를 무수히 잡고 그 가운데 많은 나날 피를 접하다 보니 저절로 생겨난 기운인 듯 싶었다. 그는 표영을 그저 보잘것없는 거지가 고기 조각이라도 얻어 보겠다고 달라붙는 것으로밖에는 보지 않았다.

그때 표영이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르듯이 흥얼거렸다.

“아, 하늘은∼ 청명한데∼ 오늘도 소와 돼지는∼ 많이도 죽어가는구나∼”

표영이 무요에게 들은 암호를 가락에 맞춰 대수롭지 않게 흥얼거리자 나채종의 안색이 급변했다. 우연히 정확하게 암호를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표영을 의아함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온몸을 훑어보았다. 그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뭐냐. 대체 이건.

그는 단언코 청부를 받음에 있어서 귀함과 천함을 따지거나 부와 빈곤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경우는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았다.

나름대로 세상 경험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천지에 이렇게 확실한 거지새끼는 처음 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거지로부터 청부를 받는다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할 말을 잃고 멍하게 바라보는 나채종에게 표영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꼬옥∼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말이오.”

당황함 속에 있던 나채종은 비로소 표영의 말을 듣고서야 사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여유를 찾았다.

어떻게 이곳이 청부 조직인지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약간 어눌한 말투로 인해 쉽게 단념시킬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바깥쪽의 차양을 내리고 잠시 외출 중이라는 팻말을 붙여두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무일푼인 사람의 의뢰를 들어줄 만큼 여유로운 사람들이 아니외다. 몰골을 보아하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것 같은데 여기까지 온 성의를 봐서 소고기나 조금 떼 줄 테니 국이라도 끓여 드시오.”

그는 실제로 거지들이 여기까지 찾아온 정성이 가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누구에게 말을 전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거지들도 살다 보면 놀림과 멸시를 받으며 죽이고 싶은 사람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불쌍하다고 공짜로 죽여준다면 죽은 사람이 서운해 할 것이 분명하다 생각했다. 공짜로 죽였다간 죽은 이가 말하길 ‘나의 목숨이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니…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냐’면서 지하에 묻혀서도 가슴을 치고 통곡할 것을 청막에서는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유롭게 말하던 나채종은 코로 고기 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전해오자 눈을 돌려보다가 붕어처럼 눈이 튀어나와 버리고 말았다.

‘저, 저 늙은 거지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능혼이 길게 걸린 고기에 손을 댄 채 삼매진화를 이용해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행동은 나채종의 고정관념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보통 거지들은 아니라는 말이렷다.’

상대가 의외로 진지하게 나오는 듯하니 그에 맞춰 나채종도 진지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좋소. 누구에게 청부에 대한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잘 오셨소이다. 서로가 목적이 확실한 것 같으니 다른 잡다한 말은 접어두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당신들은 누구를 원하오?”

나채종의 음색은 아까와는 또 다른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표영으로서는 그것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을 마치 사업가들이 철저한 이익을 보고 냉철한 판단력으로 거래를 하듯 뱉어내는 말에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섣불리 화를 내는 것은 고작 깃털만 건드리고 몸통을 놓치는 결과를 부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귀하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오.”

나채종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말해 주지 않으면 어찌 청부를 행하겠소이까?”

“내 말인즉 당신에게 말할 수 없다는 말이오. 막주를 만나 직접 의뢰해야 할 일이오.”

나채종이 손을 저으며 약간은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대체 그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나 강호엔 그럴 만한 인물은 없소이다. 설마 하니 그대들은 의뢰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에 대한 규칙을 모르는 것은 아니오?”

그때 한쪽에서 답답해하던 능혼이 음산한 목소리를 뱉었다.

“그대는 우리가 그렇게 하릴없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능혼으로서는 당장에라도 후려 패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지존의 눈치 때문에 참고 있다가 작은 도움이 될까 싶어 고의적으로 음산한 기운을 실어 협박해 본 것이었다.

능혼의 생각은 제대로 적중했다. 목소리가 어찌나 소름을 돋게 하던지 나채종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나채종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고 그때 표영이 말했다.

“청막에게 큰 이익을 주는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원하지 않는다니 어쩔 수 없군. 하긴 청부 조직이야 다른 곳도 많으니 굳이 청막에 목맬 필요 없겠지. 하하, 그대는 나중에 왜 우리의 청부를 접수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보냈느냐고 막주에게 책망받더라도 내 탓으로 돌리지 마시오. 자, 그럼 우린 이만 가겠소이다.”

표영이 능파, 능혼과 함께 문을 나서려 하자 나채종은 그 짧은 순간 수만 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머리를 굴렸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리도 자신만만하게 만든단 말인가. 이들은 겉으로는 보잘것없는 거지로 보이나 내게 보인 본 모습들은 일반 거지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으음…….’

갈등하는 나채종의 입술은 표영이 채 문을 나서기 전에 열렸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오?”

표영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대답 대신 머리를 끄덕였다. 상황에 따라선 말 대신 작은 동작이 더 크게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는 것이다.

“좋소이다. 하지만 만일 그대들이 말한 대로 대단한 청부가 아닐 시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임을 명심하시오.”

기세에 눌려 허락을 했지만 청막이 만만한 곳이 아님을 주지시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표영이 거기에 주눅 들 사람이 아니잖은가.

“두말하면∼”

거기서 말을 끊고 능파와 능혼을 바라보자 두 사람이 뒤를 이었다.

“잔소리죠, 하하.”

세 거지를 바라보며 나채종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의 이 자신감이 청막에 가서도 계속될지 궁금하구나.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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