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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조금씩 변해가는 마음들
두 번째 반항이 수포로 돌아가자 살수들은 이제 더 이상 반항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을 수 없었다. 다시는, 정말 다시는 묻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 기묘한 기분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었고 단 반 시진을 있다 해도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자신들이 고통을 당해보자 다른 사람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순종적으로 변한 살수들은 본격적으로 거지가 되기 위한 훈련에 돌입하게 되었다.
원래대로 하자면 걸인도(불귀도)로 보내져 피나는 훈련을 받아야 옳겠으나 지금은 살수 조직을 찾아가는 길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역시 제일 힘든 관문은 영약 복용이었다.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개들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들이 개밥을 하루 세 끼 먹으리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위대했다. 뭐든지 처음이 힘든 법이지 조금 익숙해지자 언제 꺼려했냐는 듯 맛있게 쩝쩝거리며 먹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걸 도대체 왜 먹으라고 하는 겁니까?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제발 강요하지 마세요.
라고 했던 말들이 몇 대 얻어터지고 다시 묻어버리겠다는 협박 아래 며칠이 지나면서는 다르게 변했다.
-이거 너무 양이 적잖아, 제길.
-오늘도 국밥이네. 짭짤하구만. 흐흐흐.
-저리 가, 개새끼야! 우린 지금 수련을 하고 있단 말이다!
-국물이, 국물이 끝내줘요.
살수들의 적응력은 놀라울 지경이었다. 꽤나 단련되었다고 자부하는 능파와 능혼, 그리고 제갈호와 교청인도 놀랄 지경이었다.
‘저것들이 알고 보니 아주 거지로 타고났구나.’
‘무지 맛있게 먹네. 저놈들은 원래부터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괜히 빼는 척하고 말야.’
‘국물 한 방울 안 남겨놓는구나. 무서운 놈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아주 환장을 하고 먹어대는구나.’
이렇듯 살수들은 표영의 영도 아래 나날이 씩씩하게 진정한 거지로 변해갔다.
뇌려타곤을 외치며 땅을 구르기도 하고 만천화우를 발한다며 비듬을 날리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원래 사람은 환경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살인을 밥 먹듯이 하게 되면 아무리 따스한 심장을 가진 자라도 잔악함을 몸에 쌓게 되고 그 심성에 마의 기운이 감돌게 되는 것이다. 차가운 마음에 휩싸여 있던 살수들은 거지 생활을 통해 조금씩 마음이 변해갔다. 지난날들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어떠한가. 처음 태어날 때는 벌거벗은 채 아무것도 없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첫 출발은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두 손을 꼭 움켜쥔 모습이다. 아마도 한세상 움켜쥐어 보겠노라는 포부가 아닐는지.
그렇게 사람은 점점 자라나면서 하나둘 자신의 욕심에 따라 움켜쥐기도 하고 또 놓치기도 하면서 한평생을 살게 되는데, 결국 한 생애를 끝마쳤을 때는 처음 나왔을 때와 같이 빈 몸과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 꼭 쥐고 태어났던 것과는 반대로 두 손을 펼친 채로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이렇게 떠나간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떠나게 되는 것이다.
살수들은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처럼 거지 수련을 통해 자신을 죽여가고 있었다. 그건 실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 그동안 쌓아왔던 과거의 자신을 죽여 가는 것이었다.
거지의 삶은 철저히 자신을 비워내는 데 있었다.
가장 천하게 여기는 개의 밥을 먹음으로써 자존심을 버리고 더러운 모습 속에서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이려는 헛된 망상도 버리게 된다. 또한 구걸을 통해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면서 온 우주 가운데 먼지 한 톨도 되지 않은 미천한 자신의 존재를 깨우치는 것이다.
그렇게 깨우쳐 나가게 되었을 때 결국 모든 삶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헛된 야망과 욕망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길을 통과했을 때 개방의 진정한 힘이라 할 수 있는 비천신공도 익힐 수 있게 된다. 현 개방 방주 노위군이 비천신공의 구결을 온전히 깨우치지 못하고 우사신공에 집착하게 된 것은 그에게 있어서 참으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끝내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면 비천신공은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살수들은 하루하루 거지 무공을 익히며 자신을 버려 갔고 표영과 능파와 능혼의 갈굼 속에 꿋꿋이 버텼다. 그러는 새 그들의 마음 또한 아기의 순수함으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
제7장 청막의 규칙
일행은 청막의 본거지인 산서성 쪽으로 이동했다. 표영은 겉으로는 희희낙락하며 거지의 길에 대해 설파하기도 하고 친히 본을 보이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나름대로 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건 청막에 찾아가 어떻게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고민의 핵심은 그들이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을 리 없다는 데 있었다.
-네, 앞으로는 청부 살인은 하지 않고 바른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주신 회선환도 아주 맛있었습니다.
이렇게만 말해 준다면야 오죽 좋겠는가마는 세상은 그렇게 생각대로 만만한 곳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고 무작정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식으로 패싸움을 벌이는 것도 무모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능파와 능혼이 있다 해도 도리어 큰 피해를 입는 쪽은 표영과 그 일행임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터였다.
피를 보지 않고 조직을 접수할 수 있는 방법.
여러 생각과 가능성을 떠올려 보았지만 마땅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옛말에 이르길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하지 않았던가. 또한 말하길 정성이 깊으면 그 뜻이 하늘에 닿는다 했다.
표영이 찾고자 하는 길은 의외로 과거 청막의 삼영주였던 무요의 입에서 나왔다.
점심으로 뜨거운 밥을 얻게 되었는데 표영이 거지로서 뜨거운 밥을 먹음이 합당치 않다고 말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게 된 시점이었다.
“청막에 대해 들어보자.”
식은 밥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서 표영이 나뭇등걸에 기댄 채 무요에게 물었다. 무요도 옆에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손에 밥알을 덕지덕지 묻힌 상태로 입 안에 우겨 넣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실로 거지로서 손색이 없는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청막의 일곱 영주 중 한 명이라는 남부러울 것 없는 자리에 있었으며 살수라는 직업이야말로 가장 남자다운 일이라 생각했었던 그의 사상을 고려해 볼 때 지금의 모습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변화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가장 크게 작용했던 건 무엇보다도 관 속에 들어가 땅에 묻혀본 것이었다. 괴상한 형태로 죽음의 공포가 밀려온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기가 죽인 사람들도 그처럼 싸늘한 시체로 누워 있을 것이란 생각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것이었다.
살인을 저지르며 얼음장같이 얼어붙은 그의 마음에 따스한 인간 본연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거기에 그의 마음을 더욱 가속도로 변화하게 한 것은 거지 수련이었다. 거지 수련은 일 푼의 자존심이라도 가지고 있는 한 결코 해낼 수 없는 것이기에 자존심이 사라지자 무심의 경지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변화의 요인 중 또 한 가지를 꼽으라면 표영을 따르면서 인간의 냄새를 맡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로선 이제껏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오직 사람의 목숨을 그저 돈으로만 여겼을 뿐이었다.
무공을 배우는 목적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빨리 사람의 목숨을 끊어놓고 그 대가로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배워왔기에 또한 그렇게 가르쳐 왔었다. 하지만 그는 비록 짧은 거지 생활이었지만 이제껏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돈이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과 그가 생각지 못했던 마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과거에는 다른 이에게 멋지게 보여야 한다든지 혹은 돈이 있어야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식의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거지 생활 속에서 단돈 한 푼조차 없이도 매우 편안했고 오히려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들이 모이고 모여 이젠 살수라는 일에 대해 거부감이 일기 시작했다.
막역한 친구인 흑조단참 상문표가 살수계를 은퇴하고 얼굴에 평온함이 감돈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표영의 질문에 밥을 오물거리며 무요가 답했다.
“청막은 청부 살인을 주 목적으로 하는 곳으로 막주는 밀천은영 지문환입니다.”
무요는 청막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청부를 받았으며 살수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들이며 암중으로 다른 살수 조직들을 이끌고 있는 위치라는 것. 그리고 조직의 지도 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총인원은 어떠한지 등을 설명했다.
설명을 하는 와중에 유독 무요는 구성 인원에 대한 부분을 말할 땐 조금 더 강조해서 말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인즉 은연중에 청막으로 가는 길을 포기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무요가 생각할 땐 이 인원으로 청막에 쳐들어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 동네 건달이나 양아치들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니 말이다.
무요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청부를 받음에 있어 청막에는 예외되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중원오대고수와 구파일방의 장문인과 후계자들. 그리고 사파 쪽의 지도자들에 대한 청부는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아무 말도 없이 쭉 뻗은 발목만 까닥거리며 밥 알갱이를 우물거리던 표영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물었다.
“그러니까 청부에도 예외가 있단 말이렷다? 그것 참 재밌는 일이네.”
“어느 정도 짐작하고 계시겠습니다만 그 까닭은 첫째로 장문인과 후계자들을 제외함은 너무 크게 일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청부를 실행함에 있어서 가장 큰 노력은 청부 조직이 동원되었음을 최대한 숨기는 데 주력합니다만 만에 하나 발생할 상황에 대비코자 함입니다. 둘째로 중원오대고수들에 대한 부분은 도리어 살수들의 목숨만 헛되이 날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싸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표영을 더욱 짜증나게 만들었다. 낮은 위치에 있거나 문파의 대표가 아니면 언제든지 죽어도 무방하단 말인가.
표영이 한쪽 입 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후후, 그들은 특혜로군.”
표영은 문득 사부를 떠올렸다.
‘사부님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살수들이 공격했다고 했었지 않던가. 청막의 규칙으로 보아 그 살수들이 청막은 아니겠구나.’
그때 또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쳐 얼른 무요에게 물었다.
“청막은 정파라고 해야 하나 사파라고 해야 하나?”
무요는 한 번도 그에 대한 구분을 해본 적이 없었고 또 표영이 무슨 뜻으로 질문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과거 막주 지문환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청막은 정파도 사파도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사꾼이라고 봐야 합니다.”
표영을 만나기 전의 무요라면 결코 이렇게 청막에 대해 말할 수 없었을 것이지만 지금 그가 장사꾼이라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다.
“음… 장사꾼이라…….”
고개를 끄덕이던 표영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이건 만약인데 말이야. 아까 말한 경우 외엔 다 받아들인다고 했는데 만약 수락하지 못하는 경우엔 어떻게 되지?”
“하하하!”
무요가 쳐다보고 크게 웃었다. 뭐 그런 택도 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식의 웃음이었다.
“하하하,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럼요. 만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땐 이미 청막은 청막이 아닌 겁니다.”
“청막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하하하, 그러니까 청막이 청부를 거부하며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갖다 바쳐야 하고 그에 수중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표영의 눈이 번쩍 하고 빛을 발했다.
“네 말은 틀림이 없겠지?”
“그럼요.”
“만약에 허튼소리면 한 달간 땅에 묻어버린다. 알겠지?”
무요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이, 진짜라니까요.”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약간 반항적인 말이 뻗어나가자 저쪽에 있던 능파가 번개같이 달려와 무요의 뒤통수를 발로 가격해 버렸다.
퍽!
무요가 앞쪽으로 머리를 처박고 쓰러지며 비명을 내질렸다.
“으아아악!”
“어디서 감히 억지를 쓰는 것이냐!”
능파로서는 지존의 그늘도 밟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라 이런 어쭙잖은 발언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 능파가 무사할 리 만무했다.
퍼퍼퍽!
표영이 타구봉을 꺼내 들고 능파를 조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함부로 발길질이냐!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는데도 아직 그대로냐. 응?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퍼퍼퍼퍽!
“가 죽어. 이놈아! 가 죽으란 말이다!”
어느 정도 두들겨 팬 표영은 타구봉을 거두었다. 하지만 험한 말과는 달리 얼굴은 환히 빛났다. 이제껏 고민했던 청막에 대한 문제가 의외로 쉽게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다려라. 청막!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