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30장 (13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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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노위군은 사방팔방으로 장력을 날리며 성난 광기를 드러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장산후는 몸을 가누지도 못할 상태에서 혼잣말로 입을 달싹거리며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녀석, 사부가 널 얼마나 아꼈는지 모른단 말이냐? 사부가 좋아했던 사람을 다 죽인다면 바로 너도 죽어야 하는 것임을 왜 모르는 거냐.”

하지만 이 말은 결코 노위군에게 들리지 않았다. 이미 기진맥진한데다가 현재 노위군이 광분에 젖어 사방 벽에 장력을 날려 벽을 허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 안에는 벽이 허물어지며 뿌연 먼지가 흩날렸다.

잠시 후 분분히 피어난 먼지들 사이로 노위군의 시뻘건 눈이 드러났다.

“그래, 먼저 그놈부터 없애 버려야겠다. 그리곤 차근차근 목을 따 주마.”

노위군은 어느 정도 분이 풀린 것인지 광기가 가라앉고 있었다. 분노 중에도 그는 어떻게 해야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했다.

‘타구봉법이다! 그놈이 타구봉법을 안다면 곤란하지 않은가.’

제일 염려스러운 것은 사부가 타구봉법을 전수해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부분이었다. 현재 그로선 타구봉은 가지고 있으되 타구봉법을 알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그것은 사형인 장산후도 마찬가지였다.

타구봉법은 방주로 임명하기 바로 전에 전수하는 터라 미리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사부가 방주 자리를 실제로는 셋째 사제에게 주려고 마음먹었다면 타구봉법에 대해 알려주었을지도 몰랐다.

‘강호에 더 드러나기 전에 목을 끊어놓아야만 한다. 크크.’

장산후를 내버려 두고 반구옥을 나온 노위군은 수하들과 함께 멀리 울창한 산을 바라보았다.

가파른 절벽마다 곳곳에 푸른 나무들이 자리했고 그 밑으로 마음까지 푸르게 하는 나무들이 자리했지만 노위군의 눈에는 푸르름 대신 불타는 화염으로 비춰졌다.

‘소리 없이 죽여주마. 기다리고 있어라!’

제5장 반항

표영의 일행은 처음에 계획했었던 녹림채가 아닌 청부 조직인 청막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갔다.

표영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돈을 벌고 그것으로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또한 용납할 수도 없었다.

세상엔 많은 직업이 존재하고 나름대로 사는 법이 다 달라 수만 가지 형태의 돈을 버는 방법이 있겠지만 살인이 직업이나 그 방법이 돼서는 안 된다 여겼다.

지난날 당가에서 혈곡의 고수 송도악이 어린 여자 아이를 인질로 삼았을 때 분노했던 것도 그런 마음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게으름 속에서 나날을 보내며 아무런 생각도 없는 인간으로 살았던 표영이었지만 비천신공을 익히고 거지 생활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대오각성 해 가며 많은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달아갔다.

더욱이 만성지체를 타고난 까닭에 그 틀이 깨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하나의 이치를 깨달으면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것들이 일제히 꿰뚫리곤 했다.

현재 표영의 계획은 일단 시급히 청막을 제압하고서 차례로 나머지 살수 조직들을 와해시킬 생각이었다.

‘개방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 강호에 살수 조직이 나타나는 일이 없도록 만들고야 말겠다.’

이런 표영의 생각과 길에 대해서 함께 따르고 있는 수하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나는 충분히 납득하고 따르는 무리였고 또 다른 무리는 겉으로는 따르지만 속으로는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었다.

무리들 중 충분히 납득하는 이들은 제갈호와 교청인이라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이미 어느 정도 표영의 진심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기에 보는 바를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보며 마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능혼과 가장 최근에 접수된 살수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작은 불만의 덩어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능혼이 그러한 까닭은 얼마 전 일차 주화입마를 당했을 때 표영의 반응 때문이었다. 당시 표영은 잔인한 살성을 타고났다는 천마지체의 모습이기보다는 너무도 인간적인 눈동자와 뒷모습을 보였었다.

비록 그 일이 나름대로 마음에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오긴 했지만 어쩐지 낯간지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마음 한 귀퉁이에서 울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능파의 경우는 정신이 아직 온전치 못한 고로 여전히 충성과 복종에 파묻혀 그런 부분까지는 의심할 마음조차 갖지 못했다. 즉, 능파는 두 갈래 무리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거의 ‘무대포 정신’의 충성으로 똘똘 뭉쳐진 셈이었다.

살수들 같은 경우엔 그 도가 능혼보다 더욱 심한 편이었다.

이들은 비록 표영에게 강제로 독을 복용당하고 힘에 굴복해 마지못해 부하가 되었다곤 해도 마음으로까지 승복한 것은 아니었다.

살수들 무리의 지도자인 청막의 삼영주 무요는 부하들과 매우 은밀하게 뜻을 나누어 대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계획은 쉽게 결론지어 기습이었다. 온전히 복종한 듯 가장해 일거에 제압한 후 해독약을 얻고 바로 청막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흑조단참 상문표의 부탁이 있었지만 받은 수모를 생각하면 복수를 해주어야만 했다.

이처럼 표영을 따르는 무리는 여럿이었지만 여러 갈래로 마음이 나뉘어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길을 가고 있었고, 그런 사정을 표영은 깊이 생각지 못했다.

동행한 지 5일째가 되었을 쯤 일행은 어느 이름 모를 산 고개에서 밤을 맞게 되었다. 모두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적당한 자리를 보아 잠자리를 마련했고 가까운 곳으로 벌려 자리를 잡았다.

제일 오른쪽 자리에는 능파와 능혼이 누웠고 그 옆으로는 살수들, 그리고 왼쪽으로는 제갈호와 교청인, 그리고 표영이 자리했다.

이때쯤에는 어느덧 살수들도 대충 적응 기간이 끝난 터라 겉으로는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표영을 비롯해 능파와 능혼도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여건과 시점이야말로 청막의 삼영주 무요와 그 수하 살수들이 가장 바라던 순간이었다.

‘흐흐, 녀석들, 순진하긴.’

무요는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 척하며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이런 상황이 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렸던가.

수하들과는 이미 입을 맞춰놓은 상태였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면 지가 해독해 주지 않고 배기겠어? 흐흐흐.’

그는 나름대로 자신감에 넘쳤다. 비록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를 만큼 대단한 고수인 것만은 확실하지만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피해내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일 식경(30분)이다… 일식경.’

그들이 계획한 것은 잠자리에 누운 지 일 식경이 지나 일제히 손을 쓰는 것이었다.

살수들이 나름대로 머리를 사정없이 굴리며 자신들의 살길을 찾고 있을 때 능혼은 능파에게 마음에 있는 바를 털어놓고자 했다.

아무래도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느니 형님과 상의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교주에 대해 파악해 보고자 함이었다.

-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중요한 말이니 모르는 척하고 전음으로 이야기하도록 하죠.

은밀히 전해오는 전음에 능파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가 전음으로 답했다.

-말해 보아라.

-형님도 기억하실 겁니다. 지난번 절벽 아래로 질주한 후에 기혈이 역류해 주화입마당한 적이 있었잖습니까?

-그렇지.

-그때 교주님의 안색이 자꾸만 마음에 걸립니다.

-뭐가 말이냐?

능파가 능혼 쪽으로 몸을 돌리고서 똑바로 쳐다보며 전음을 날렸다.

-근본 지존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잔악한 성품을 지니고 나신 분이 아니십니까? 하지만 그 당시 지존의 모습은 너무도 인간적이었습니다. 수하들의 죽음을 보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지존이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능파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그래서?

비록 전음이었지만 상당히 기분이 상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능혼은 순간 당황하긴 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을 계속해서 말했다.

-실제로 그 일뿐만 아니라 그전의 일들을 돌아보면 뭔가 미심쩍은…….

하지만 능혼은 하고자 하는 말을 마저 다 할 수 없었다. 느닷없이 능파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버럭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주먹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구나!”

퍼퍼퍽!

인정사정없는 주먹질이 능혼의 얼굴을 강타했다.

“으억!”

능혼은 날벼락을 맞듯이 주먹에 얻어맞고 자지러졌다. 능파의 공격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온갖 고함을 내지르며 주먹이며 발로 걷어찼다.

“차라리 가서 죽어라. 이 개자식아! 네가 그러고도 내 동생이냐!”

그런 소란에 모두 화들짝 놀라 일어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소란이냐? 야, 자식아! 조용히 하지 못해!!”

표영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외쳤지만 능파의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하늘이 묻는다면 아무 주저함 없이 그는 교주님이라고 말할 것이고, 또다시 하늘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 해도 똑같은 답을 말할 것이다. 그런 능파에게 능혼의 말은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너의 아가리를 찢어주마! 그런 아가리를 달고 사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죽어∼!”

퍼퍼퍽! 퍼퍼퍽!

“형님, 참으세요! 잘못했습니다!”

능혼은 감히 맞서서 싸우지 못하고 힘겹게 몸을 웅크린 채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힘썼다.

“네놈의 머리통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더란 말이냐! 내가 너의 형이라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울 줄은 몰랐다!”

이 급작스런 사태에 가장 당황한 것은 살수들이었다. 곧 있으면 행동을 개시할 터였는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들이 멈칫거리며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때 표영이 타구봉을 빼 들고 씩씩대며 능파와 능혼에게 달려갔다.

“능파, 네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한 거냐! 왜 자라는 잠은 안자고 사람을 패는 것이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표영의 손이 움직였고 게거품을 물며 패던 능파는 표영에게 온몸을 난타당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파파파팍!

“으억! 방주님… 사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니! 이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그렇다고 능혼이 무사한 건 아니었다.

“너도 똑같은 놈이야, 이놈의 새끼야!”

표영은 둘을 번갈아가면서 후려 패버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살수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단을 내리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무요가 전음을 날렸다.

-좋다! 행동을 개시한다!

전음이란 것이 단 한 번에 모두에게 날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무요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일이 전음을 보냈다.

헌데 무요가 마지막 수하에게 전음을 날렸을 때는 이미 처음 전음을 받았던 청면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기를 드러낸 상황이었다.

그 살기는 여지없이 표영과 능파와 능혼에게 포착되었다.

“이놈들 보게나?”

언제 때렸고 또 언제 맞았었냐는 듯 표영과 능파와 능혼이 일제히 살수들에게 달려들었고 그것을 신호로 제갈호와 교청인도 달려들었다.

“이놈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무요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했기에 이판사판이었다.

“아, 씨팔! 그래, 한판 붙어보자!”

하지만 그의 외침에 비해 결과는 너무도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무요를 비롯한 살수들은 다리가 부러지거나 갈비뼈가 나가거나 어깨가 빠지는 등 패잔병처럼 바닥을 뒹굴게 된 것이다.

“이것들이! 정말 문제가 심각하구나.”

표영은 능파 등에게 명해 관을 준비토록 했다. 그리고 다시금 7일간에 걸쳐 무요 등은 땅에 묻히게 되었다.

“안 됩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다니까요!”

“제발 묻지는 말아주세요! 제발요!”

“앞으로는 말 잘 듣겠습니다요!”

“으악! 안 돼요!”

모두들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땅에 묻힌다는 것이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겠으나 실제로 단 한 시진만 묻혀본다면 마음이 싹 달라질 것이다.

게다가 관에 누워 있고 밤이 되어 찬 이슬이 등줄기로 올라오는 느낌은 가히 공포의 극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온갖 망상이 떠올라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억겁의 고통이 다가왔다.

살수들은 땅에 묻혀 지내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것은 그들에겐 매우 진귀한 경험들이 되었고 여러 해 동안 깨우치고 터득해야만 할 것들을 단숨에 돌이킬 수 있도록 하는 마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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