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129.
“으윽! 커억! 으억!”
장산후의 입가엔 피가 연신 새어 나왔고 온몸을 뒤틀며 처절한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자 노위군은 그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퉤∼.
오른쪽 눈가로 가득 침 세례를 퍼부은 후 노위군이 이제부터라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대화라는 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나도 맹숭맹숭한 건 정말 싫거든. 입도 좀 풀고 몸도 풀었으니 진실을 말하게 하는 보따리를 풀어야 할 때가 온 것 같군.”
노위군의 목소리엔 그 어떤 말이라도 들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밖을 향해 소리쳤다.
“한 놈을 안으로 데려와라!”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인지 아직까지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장산후는 그저 서글픔과 울분에 젖었다.
“으윽, 미, 미친놈… 사부님께서 너를 얼마나… 아끼셨는지 너는 정녕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냐. 헉헉… 넌 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이냐.”
노위군이 버럭 소리쳤다.
“개소리 집어치워! 이제껏 사부는 날 사랑한 적이 없다. 오직 너만을 아끼고 너만을 사랑했다. 난 그저 들러리에 불과했단 말이다! 내겐 모두 가식적으로 대했을 뿐이다!”
장산후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네놈은… 미쳤어.”
그 말에 노위군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좋다. 네놈 말대로 미친놈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마. 크크크.”
그의 웃음이 끝나기 전 밖에서 십이밀 중 한 명의 음성이 들렸다.
“염 장로를 데리고 왔습니다.”
“안으로 들어오라.”
문이 열리고 앞서 들어온 사람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에 거의 뼈다귀만 세워놓은 듯 초췌한 모습이 해골바가지에 머리털이 올려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엽지혼이 방주로 있을 때 8대 장로 중 한 명인 전공장로 염파였다. 나이가 70세가 넘어가고 있으나 그는 쓸쓸히 감옥에 갇혀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흐흐, 염 장로. 그동안 잘 지냈소이까?”
노위군은 과장된 표정과 말투로 반겼고 다가가 두 팔로 그를 껴안았다. 그 모습에 염파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가느다란 음성으로 말했다.
“네놈이었구나. 어쩐지 아까부터 고약한 냄새가 나더라니. 클클, 이런 냄새는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라 네놈의 흔적을 찾긴 어렵지 않지.”
염파의 목소리는 비록 가늘었지만 그 음성엔 짙은 살기가 담겨 있었다. 만일 말속에 칼날이 묻어 있었다면 노위군의 몸은 이미 난자된 상태가 되었으리라.
바닥에서 힘겹게 눈을 치뜨고 바라보고 있는 장산후는 왜 이곳에 염 장로를 데리고 온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놈이 이제 나만 괴롭히기가 싫증난 건가?’
하지만 노위군의 의도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하하, 뭐든지 연습이 필요한 것이니까. 염 장로, 우리 연습이나 해봅시다그려. 물론 염 장로하고는 한 번밖에 못하는 게 아쉽지만 말이오. 하하하.”
그때까지도 염파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노위군의 손이 서서히 염파의 목에 닿았다.
“염 장로! 피부가 많이 부드럽구려. 감옥에 있으면서도 피부를 용케 잘 관리하셨나 보오. 너무 부드러워서 그런지 내 손가락이 자꾸만 목으로 들어가고 싶은가 보구려. 어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어어어…’라는 말을 할 때 이미 노위군의 손가락은 염파의 목에 깊이 박히고 있었다.
“케케켁!”
염파는 처음에는 고통스럽게 신음하다가 급기야는 말도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보는 장산후는 너무도 급작스럽고 놀라워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저, 저놈이!’
“크크크, 손가락이 허공을 움켜쥐는 것처럼 느껴지는걸. 살결이 너무 곱단 말씀이야.”
염파는 두 눈을 까뒤집고 흰자위를 드러내며 서서히 죽어갔다. 장산후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안 돼! 안 돼! 제발 그러지 마라… 왜 그러는 것이냐, 왜!”
어릴 적부터 작은아버지처럼 따르고 좋아하던 염 장로였다. 그런 염 장로가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안 돼!’
노위군은 축 처져 버린 염파의 목에서 손가락을 빼고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긴, 염 장로의 죽음치곤 너무 맥 빠진 일이군. 과거의 명성에 비하자면 살결이 너무 고와진 게 흠이었어. 난 그냥 목을 쓰다듬으려 했을 뿐인데 손가락이 박혀 버리다니 말이야.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몸은 지킬 수 있어야지. 그렇지 않아?”
말을 맺고 노위군은 피에 젖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쭈욱 빨았다.
“이런, 늙은이 피라서 그런지 엉 텁텁하군. 이래서야 식욕을 북돋을 수 있겠어?”
장산후는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왜 지금까지 살아서 이런 모습을 봐야 한단 말인가.’
그로선 당장에라도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차라리 날 죽여 다오! 나를 먼저 죽여 달란 말이다!”
노위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장산후 곁에 이르러 발을 들어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장산후는 발에 짓이겨져 머리가 으깨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후후, 다 알아서 때가 되면 죽여줄 텐데 그렇게 보채면 곤란하지. 게다가 사람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말을 하고 죽어야 하지 않겠어? 사실 사부가 일찍 간 것도 알고 있는 것을 자꾸 내게 숨기려고 해서 죽은 것이거든.”
노위군이 다시 십이밀에게 명했다.
“시체는 밖으로 치우고 다른 놈으로 데려와라.”
“도대체 뭘 말하라고 하는 것이냐? 사제 따위는 없단 말이다!”
고함치듯 장산후가 말했지만 노위군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후후, 다 기억나는 수가 있지.”
노위군은 철썩같이 사부에게 또 다른 제자가 있었을 것이라 믿었기에 장산후의 외침에 격동하지 않았다.
‘서두를 건 없지. 아직 목을 딸 사람은 많이 있으니까 말이야. 후후후.’
노위군은 서두르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둘 죽이다 보면 진실은 나오게 될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차 장로를 데리고 왔습니다.”
“오호! 차군명 장로로군. 독불신개 차 장로! 어서 모셔라.”
차 장로의 상태도 앞서 들어왔던 염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온갖 초췌함이 깃든 모습에 뼈만 앙상히 남아 바람이라도 거세게 분다면 훨훨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안으로 들어온 차군명은 상태가 좋지 못해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인 듯했다.
“어서 오시구려. 아니, 근데 차 장로는 아직까지 자고 있는 건가? 이런, 방주가 왔는데 잠을 자서야 쓰나. 쯧쯧.”
장산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를 내버려 두어라. 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것이냐?”
“원치 않는다면 세 번째 제자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난 그저 적당히 손 운동을 하고 싶을 뿐이니까 말이야. 근데 이거 운동이 되기나 할지 모르겠군.”
노위군은 차 장로의 등 뒤로 돌아가 뒤에서 목을 팔로 감쌌다.
“이런, 차 장로의 목도 아주 가냘프군. 예쁜 소녀의 목 같아서 기분이 묘해지는걸. 자, 그럼 세 번째 제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실까?”
“이 개 같은 자식아! 왜 미친 소리를 해대며 사람을 죽이는 것이냐! 그렇게 죽일 구실이 없더냐!”
“후후, 좋군, 좋아.”
노위군이 미간을 살짝 찡그린 후 팔에 힘을 주었다.
뚜두득
차 장로의 목이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났다. 외마디 비명 소리도 없이 차 장로가 저세상으로 가버린 것이다. 과거 독불신개로 천하에 명성을 날리던 그 굳센 기개의 강호인이 허무하게 죽어버린 것이다.
노위군이 팔을 풀자 부러진 목이 머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제멋대로 움직였다. 거기에 잡고 있던 어깨를 놓자 차 장로의 몸은 바닥으로 힘없이 허물어졌다.
장산후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 반구옥에 갇혀 있음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늘 생각해 왔지만 막상 눈앞에서 피붙이같이 여기던 방의 형제들이 죽어가자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저놈이 왜 저러는 것일까? 미쳐도 저렇게 미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로선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있지도 않고 또 알지도 못하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전에 찾아올 때마다 비천신공의 비법을 물으며 비수로 어깨를 후벼 팔 때보다 더한 답답함이 몰려왔다.
“제발 그만 해라! 원하는 게 뭐냐? 괜히 엉뚱한 것을 물어 곤란하게 하지 말고 솔직히 원하는 것을 말해라!”
장산후가 가슴 가득 끓어오르는 분노로 말했지만 노위군은 단지 말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후후후… 아직 효과가 크게 없나 보군. 자, 그 다음!”
노위군은 서두르는 기색이나 조급함 같은 것이 없었다.
이미 단단히 마음먹고 온지라 하루 내내 이 자리에서 모두를 죽여 버릴 생각도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장산후는 또 다른 희생자가 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말하겠다. 다 말해 주겠어! 그러니 이젠 그만 해다오.”
노위군의 눈이 순간 번쩍 하고 빛났다.
“좋다.”
하지만 그런 사이에 그의 뒤로 또 다른 예비 희생자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백월승 분타주로 그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노위군은 손으로 백 분타주의 목을 어루만지면서 장산후를 바라보았다. 순순히 말하지 않는다면 여지없이 목에 구멍을 내주겠다는 뜻이었다.
장산후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
“사실 나도 사부께서 거둬들인 제자를 본 적은 없다. 그리고 누구인지 이름도 모른다. 하지만 사제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거기까지 들은 노위군의 눈이 붉게 충혈 되어 가기 시작했다.
“…사부께선 말씀하시길 사제는 나이는 어리지만 너보다도 더 뛰어난 무골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아이를 통해 앞으로 개방을 이끌도록 하겠다는 말씀도 주셨다. 거기까지다. 더 이상은 나도 알지 못해.”
장산후는 육감으로 파악한 느낌을 가지고 지어서 말을 한 것뿐이었지만 노위군으로서는 혈곡에서 전해준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던지라 짧은 말에도 마음이 격동하고 분노가 끓어올랐다.
“역시 그랬었군, 역시 그랬었어. 사부, 사부는 역시 나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야!”
그의 눈이 이글거리더니 이윽고 목을 어루만지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 결과 백 분타주의 목에서 피분수가 사방으로 튀었고 피가 줄어들면서 백 분타주의 몸은 허물어졌다.
그 광경을 보며 장산후가 절규하듯 외쳤다.
“죽이지 않는다고 했잖아. 이 개자식아!! 흑흑!”
그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누기조차 힘든 몸을 날려 노위군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가상했으나 실제로 무모하기 그지없는 동작에 불과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나 할까.
노위군은 가볍게 소매를 휘둘렀고 그 기세에 장산후는 종잇장처럼 뒤로 밀려나며 바닥을 뒹굴었다.
장산후의 몸짓은 노위군의 심기를 더욱 자극했는지 노위군은 괴성을 지르며 발광하듯 외치기 시작했다.
“으와악∼ 그래, 다 죽여주마! 사부가 좋아했던 사람은 내가 다 죽여 버리고 말겠어! 하나도 남겨주지 않고 다 죽여 버리겠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