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23장 (124/199)

 # 123

123.

‘헉! 저건……!’

나타난 이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죽였던 사람들이었다. 목이 찔리고 가슴이 파헤쳐진 이도 있었고, 등이 찔린 이들이며 아예 목이 없이 몸만 움직이는 사람도 있었다. 죽은 자들은 그렇게 하나둘 모여들며 끔찍한 소리로 토해냈다.

-막경! 너는 왜 날 죽이려 했던 것이냐!

-으아악! 손동, 네놈이 날 죽여……!

-가만두지 않겠다… 지옥 끝에서 너를 기다리마!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나쁜 인간 같으니……!

-네놈들은 무슨 권리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냐!

세 명의 살수들은 끔찍한 광경에 도망치고 싶었지만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으으윽… 살려줘…….”

가까스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흙만 입으로 꾸역꾸역 밀려들 뿐이었다.

“제발… 데발(제발)…….”

“무서워… 제발 구해주세요.”

그렇게 시작된 죽은 자들의 엄습은 이틀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들이 이러한 공포를 느끼게 된 것은 표영이 술법을 부리거나 능파와 능혼이 손을 쓴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들이 무덤에 들어가 있다는 것과 스스로가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상념이 뒤섞여 후회와 번뇌로 인해 그러한 환상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제대로 된 죽음의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청막의 삼영주 무요는 달을 바라보며 초조해했다.

이미 왔어도 서너 차례 왔다 갔을 시간임에도 세 명의 수하들은 아무런 소식도 없는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옆에 있던 상문표도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곤 말했다.

“아무래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네.”

“그렇겠지?”

“응.”

상문표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요가 수하들에게 명했다.

“모두 함께 간다.”

그들은 맹렬한 기세로 추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함께 간다라고 말한 무요의 말은 모두 함께 땅에 묻히자, 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지금 무요와 그의 수하들은 모두 어두컴컴한 땅속에 묻혀 버린 것이다. 그들 중 유일하게 묻히지 않은 자는 상문표뿐이었다.

그들이 오는 것은 이미 능파와 능혼에게 중도에 감지 당했고 매복하여 기다린 일행에게 걸려 제압당했다. 비록 약간의 저항이 있었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표영은 그들도 먼저 온 세 명의 살수들처럼 땅에 곱게(?) 묻었다.

하지만 상문표는 이미 살수계를 떠나 유유자적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말했기에 무덤에 들어가는 것은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

일행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서 표영은 상문표가 잔잔히 전해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으음…….”

“흠흠, 부모님이나 형님도 걱정하고 계시니 조금 힘들더라도 집에 한번 들러보십시오.”

상문표는 자신이 과거 흑조단참이라는 별호로 강호에서 살수였으나, 그 후 무당파의 운경 도장으로부터 바른 교훈을 받아 은퇴하게 되었다는 것과 이번에 운경 도장의 제자인 표숙으로부터 동생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음을 차근히 말한 터였다.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계인데다가 도무지 그동안 연락이 안 돼 마음을 졸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상문표의 말에 표영의 마음은 어느덧 집에 가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고 자신을 위해 애태우시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 어머니…….’

당장에라도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확실하게 해두자.’

아직은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급했다.

“음… 이렇게 먼 곳까지 고생하며 찾아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사부님과 약속한 것이 있어 당장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음…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상 형께서 부모님과 형에게 저의 소식을 잘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특별히 부모님께는 거지 생활을 훌륭하게 잘하고 있노라고 전해주십시오.”

“그, 그게… 그래도…….”

상문표로서는 이렇게 돌아서기가 난처했지만 표영이 거듭 당부하며 등을 떠미는 바람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잘 부탁합니다.”

상문표가 엉겁결에 등이 떠밀려 떠나가고 살수들은 드디어 무덤에서 나오게 되었다. 비록 뒤에 들어간 무요 등은 시간이 앞에 온 막경 등에 비해 짧았지만 그들이 받은 심적 충격 역시 그들 못지않았으리라.

무덤에서 나온 그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린 것이 새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하기까지 했다. 개중에는 아직까지 무덤에서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떠는 이도 있었다.

표영이 그들을 보고 말했다.

“정신 차리고 잘 들어라. 앞으로도 돈 받고 사람 죽이는 따위의 일을 할 사람은 앞으로 한 걸음 나오도록.”

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살수들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청막의 영주답게 무요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결코 따를 수 없소.”

무요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강호에는 그래도 기개가 있는 자를 높이 사는 법이지.’

대체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 비록 나서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지만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라는 점은 보여 줘야만 했다.

그가 앞으로 나서자 표영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리고 한마디.

“묻어버려.”

“커억∼!”

무요는 달려드는 능파 등에게 붙잡혀 질질 끌려갔다. 설마하니 이렇게 간단히 묻어버리라고 할 줄은 몰랐던 무요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농담이라고요! 그냥 해본 소리라니까요∼ 아무 생각도 없었다고요∼. 진짜예요∼! 흑흑…….”

어찌나 처절하게 울부짖는지 듣는 이의 폐부를 아리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무요의 수하들은 모두들 퀭한 눈동자가 되어 핼쑥해지고 말았다.

‘농담이라니…….’

무요가 가까스로 묻히는 것을 면하고 아직까지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표영이 장엄하게 말했다.

“앞으로 너희는 진개방의 일원이다. 그리고 청부 조직과는 전쟁이다.”

무요를 비롯한 살수들은 모두들 회선환을 먹었고 일행은 이제 살수들 일곱 명이 더해져 총 열한 명이 되었다.

제15장 천선부의 반응

당운각은 온 힘을 다해 천선부로 향했고 지금 그는 그의 열성적인 발걸음의 대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천선부주 오비원.

바로 천하제일고수와 대면하게 된 것이다.

당운각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오비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하지만 직접 얼굴을 본 것은, 그것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것은 생애 처음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야 인생에 있어 매양 벌어지는 일이겠으나 당운각은 상당히 긴장했었고 지금도 긴장하고 있었다.

거짓말 없이 입이 바짝 타 들어가고 모든 신경이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는 상태였다.

오비원을 본다는 것은 곧 무엇을 의미함인가.

천하제일고수를 눈앞에 두고 있음이 아닌가.

어쩌면 강호인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영광이라 할만 했다.

허나 정작 오비원을 본 당운각은 속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가 생각해 왔던, 그리고 천하제일고수라면 이러한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과 실상의 오비원은 너무도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칼날 같은 기세.

상대를 꿰뚫어 버릴 것 같은 안광.

황금빛 장포를 두르고 주변을 압도하는 위엄.

거기에 화려한 보좌에 태산처럼 앉아 있는 모습.

대략 이 정도가 그가 상상했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었다.

실지 오비원의 모습은 마치 옆집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를 연상케 했다.

‘만약 그의 얼굴을 모른 상태에서 시장 어귀에서 보았다면 아마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무심코 스쳐 지나갈 것이리라.’

마음의 창이라는 눈빛도 특별하지 않았다. 단 한 번 움찔거리는 것만으로 상대를 얼어붙게 만드는 강렬함 대신 따스함이 피어나고 있었다.

거기에 모든 모습과 조화를 이루는 평범한 백색 장포, 또한 오비원은 높은 상석에 앉아 내려다보는 것 대신 탁자에서 가만히 당운각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녕 이 노인이 건곤진인 오비원이란 말인가. 믿기지 않는구나.’

아마도 당운각으로선 건곤진인 오비원 옆에 굳건히 선 두 호법의 장중한 기세가 아니었다면 엉겁결에 이렇게 물어봤을지도 몰랐다.

-정말 노인장이 건곤진인이시오?

하지만 당운각이 눈 뜬 소경은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당가의 장로가 아니던가. 그는 짧은 시간 오비원의 모습을 훑어보면서 의아함도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경탄도 컸다.

‘이 사람이 천하제일고수 오비원이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그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필시 내공 최고의 단계인 노화순청(爐火純靑), 반박귀진(反撲歸眞)에 이르렀으리라.’

당운각이 속으로 중얼거린 ‘노화순청’은 화로의 붉은 불꽃이 절정에 이르러 다시 파란색으로 변한다는 것으로 내공이 점점 발전해 극에 이르면 가히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게 되는 경지를 뜻했다.

‘반박귀진’도 그런 비슷한 뜻이다. 눈빛과 표정이 평범함 그 자체를 이루어 가히 보통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며 진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운각은 처음에 생각하길 천하제일고수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의 생각은 결과적으로 왔을 때는 맞은 셈이었다.

평범함으로 가린 능력.

그 경지까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지는 표영이 익힌 비천신공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표영은 비천신공을 통해 아예 처음부터 평범으로 포장되어 가는 것이고 오비원의 경우엔 무공이 절정에 이르러 이런 변화를 갖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당운각이 ‘완벽한 평범함’을 갖춘 오비원을 보고 감탄할 때 그의 귓가로 늙수그레하지만 푸근한 음성이 들려왔다.

오비원의 음성이었다.

“당 장로께서 말씀하신 가문에 생긴 변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보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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