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21장 (122/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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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제14장 죽음 체험

청의 무복을 걸친 세 명의 사내가 매우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들의 신법은 매우 쾌활한 것이 군더더기라곤 전혀 없어 보였다.

그 신법은 무당파의 제운종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것도 소림사처럼 힘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선 매우 은밀함이 엿보였고 당장에라도 안개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언뜻언뜻 칼날 같은 예리함이 솟아나 있는 듯했다.

이들은 누구이며 또 누구를 뒤쫓고 있는 것일까?

세 명 중 중앙에서 달리던 청면수 해청이 중얼거렸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군. 이들이 우리가 찾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추격해서 누구인지 확인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겠는걸.”

오른쪽의 혼원수 막경이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이네.”

왼쪽에 달리던 흑월수 손동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에 등장한 거지 차림의 고수들이라… 하지만 이들과 시비가 붙어서는 안 될 것 같군.”

청면수, 혼원수, 흑월수는 청막의 일급 살수들이었다.

이들이 지금 쫓고 있는 무리는 표영과 그 일행이었다. 이들은 흑조단참 상문표로부터 표영의 행방을 찾도록 요청받은 터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어렵사리 당가 부근까지 이르게 되었고, 다시 얼마 전 탐문하던 중 아주 심란한 거지 떼를 보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표영을 찾는 데 동원된 인원은 상문표와 무요를 포함해서 여덟 명이었다. 그들 중 지금 세 명의 살수가 그 정보를 토대로 확인차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맹렬히 달리다가도 급히 멈추어서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고 또 급히 달려갔다. 그건 거지 떼가 이동한 흔적을 찾고 바른 방향을 알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추격해 가면서 상대가 결코 만만한 인물들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이 맞는다면 우리의 목적을 바로 말할 수 있어 어려움을 당할 리 없겠지. 하지만 아니라면… 으음…….’

그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녹림채를 향해 달려가는 길에 능파와 능혼은 묘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건 누군가로부터 왠지 쫓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본능적인 육감으로 느껴지는 것이라 과연 가던 길을 멈추고 살펴봐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들의 망설임에는 지존에 대한 배려와 지존의 눈치를 살피는 마음도 담겨 있었다.

지존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이때에 지존께서 눈치 채지 못한 것을 아는 체한다는 것은 마교의 전례를 돌아볼 때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었다.

역대 교주들의 행동 형태를 볼 때 그 순간은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지만 뒤에 무슨 보복이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개의 경우는 오히려 모른 체하고 있다가 교주가 인지할 때 비로소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형님!

능혼이 신형을 움직이는 중에 은밀히 능파에게 전음을 날렸다.

능파가 전음으로 답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말씀드리고 한번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으음… 지존께서는 천마지체가 아니시더냐. 괜히 말을 꺼냈다가 화를 부르지 않을까?

-제 생각엔 오히려 천마지체이시기에 조금 더 특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도…….

능파는 답을 하면서 얼마 전 주화입마를 당했을 시 보였던 지존의 모습을 떠올렸다.

뭔가 달라도 달랐다.

‘천마지체? 가장 잔혹한 성정을 지닌 자? 아직은 숨겨져 있는 것인가?’

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형님!

능혼의 전음에 능파가 살짝 고개를 돌려 능혼을 보았다.

-제가 지존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능혼은 신형에 속력을 더해 앞쪽에서 달리는 표영 옆에 달라붙었다.

“방주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에 표영이 대답 대신 눈썹을 살짝 올리고 입을 조금 내밀며 ‘뭐냐?’라는 뜻으로 물었다.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어떤 무리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육감이 맞는다면 필시 이번 당가 일로 인해 복수를 하겠다고 쫓아오는 무리가 아닐지 싶습니다.”

“그래?”

그 말과 함께 표영은 곧바로 신형을 멈췄다. 표영의 경공은 일취월장하여 그 몸의 가볍기가 깃털 같았다.

달리던 관성이 작용했지만 표영은 신공을 운용해 계속 뻗어가려던 힘을 상쇄시키고 본인이 생각한 대로 그 자리에 섰다. 하지만 옆에서 달리던 능혼은 워낙에 표영이 갑자기 선지라 그만 앞으로 쭉 뻗어 나가다 정지했다.

급히 멈추게 된 것은 다른 모두에게도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나마 능파가 조금 안정적으로 신형을 세운 편이라 할 수 있었고 제갈호는 앞으로 쭉 나아갔던 능혼의 코앞에까지 이르러 멈출 수 있었다.

그중 교청인은 위치상으로 표영의 뒤쪽 선을 따라온 터였는데 그녀는 표영이 급히 멈춰 서자 마음으로는 신형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어어…….”

교청인은 당황스런 소리를 내뱉으며 그만 표영의 등을 덮쳤다.

그때 표영은 소리를 듣고 급히 뒤돌아서며 착(捉)자결을 따라 부드럽게 교청인을 두 팔로 잡았다. 교청인은 부딪칠 것이라 생각했는데 도리어 푹신푹신한 솜털에 몸이 파고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표영이 내력을 이용해 뻗어오는 교청인의 기세를 부드럽게 완화시켰기 때문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교청인은 기분이 묘해졌다. 그녀는 차츰 표영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지라 품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다.

그때 그녀의 귓가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다친 곳은 없니?”

이제까지 이렇게 부드럽게 이야기 듣기는 처음이었다. 갑자기 주위엔 꽃들이 만발했고 온갖 새들이 날아와 노래했다. 그리고 능파와 능혼, 제갈호는 활짝 웃음꽃을 피운 채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모두들 축하해 주는 것인가?’

뿌듯한 마음으로 교청인은 수줍게 대답했다.

“네…….”

교청인의 짧은 대답, 하지만 매우 수줍은 듯한 목소리에 표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능파, 능혼, 제갈호 등은 거의 경악스럽게 입을 쩍 벌렸다. 원래 저렇게 말하는 그녀가 아니었다.

표영과 그리고 수하들은 저마다 속으로 이 상황을 분석하느라 바빴다.

표영

‘음… 이제 확실히 적응해 가는가 보구나.’

능파.

‘저거 혹시 미친 거 아냐?’

능혼.

‘이젠 여자이길 포기했단 말인가. 허허, 참…….’

제갈호.

‘교 매가 왜 저러지? 설마 방주님을 좋아하는 건가? 에이, 설마…….’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표영이 교청인에게 건넨 말 때문이었다. 사실 교청인이 들었던‘어디 다친 곳은 없니?’라는 말은 그저 그녀의 환청일 뿐이었다.

실제로 표영은 교청인이 품에 안기게 되자 그녀의 머리 냄새를 바로 맡게 되어 한마디를 한 것이었다.

“머리 냄새가 아주 구수하구나.”

하지만 교청인은 너무나 뜻밖의 사태에 직면하여 당황스러운 상태였고 거기에 그동안 암암리에 품고 있던 마음 때문에 스스로 엉뚱한 말을 만들어 듣게 되었던 것이다.

더불어 주위에 있던 능파와 능혼, 제갈호마저 박수를 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순각적이나마 꽃들이 주위에 만발하는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녀가 너무도 수줍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하자 모두들 얼떨떨해진 것이다.

능혼이 상황을 인식시키려 헛기침을 발했다.

“험험험…….”

교청인은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얼른 표영의 품에서 떨어졌다. 표영도 교청인의 수줍은 대답과 그녀의 포근한 느낌에 뭔지 모를 기분에서 벗어나 그녀를 향해 격려를 보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해 보도록 하자꾸나. 알겠지?”

표영의 말인즉 지금 머리 냄새도 대단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거지답게 냄새를 만들어가자는 말이었다. 하지만 교청인에게는 다른 뜻으로 다가왔다.

‘노력해 보자라면…….’

교청인이 환상에 사로잡혀 헤맬 때 표영은 아까 능혼이 한 말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어떤 놈들일까?’

실제로 표영은 아직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능혼이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좋다. 능파, 능혼! 너희는 지금 즉시 살피고 오도록 하라. 혹시 누군가와 맞닥뜨리게 되면 생포해 오도록. 우리 진개방은 아무나 죽여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존명.”

나지막한 소리로 답하고 능파와 능혼의 신형을 오던 길로 돌려 달렸다.

상대가 비위 거슬리게 나올 경우 숨통을 끊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둘은 누군지 모를 이들을 향해 바람처럼 내달렸다.

얼마쯤 갔을까.

능파와 능혼의 예리한 안광이 빛을 발했다.

아직은 멀지만 저만큼 세 개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다. 능파와 능혼의 신형은 나란히 달리다가 좌우로 갈라졌다.

이때부터는 신형의 속도보다는 은밀함이 더욱 중요했다.

추적하던 청막의 살수 중 제일 왼쪽에 있던 혼원수 막경의 눈이 찌푸려지며 다급히 말했다.

“누군가가 오고 있네. 흩어지세.”

막경은 말을 마치고 신형을 근처 나무쪽으로 날려 은신했다.

그 말에 청면수 해청과 흑월수 손동의 몸도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혼원수 막경은 숨소리를 고르며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며 은밀히 주변을 살폈다.

그때였다.

순간 그의 눈이 등잔처럼 커졌다.

‘뭐, 뭐지?’

막경은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은신술만큼은 대단하다 자부하고 있었다. 그건 청막 내에서도 익히 알려진 것이었으며 직속 상관인 무요도 인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비록 숨소리를 채 고르지 못했다 해도 이렇게 빨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건 꿈이 아니었다. 그는 일단 시간이 필요했다.

손을 뿌리자 십여 개의 암기가 쏘아졌다. 오후의 햇살이 비추었지만 암기는 빛의 반사됨이 없이 음유한 기운을 품고 뻗어갔다. 상대가 고수이긴 하지만 적어도 동작을 지체시킬 순 있을 것이다.

허나 그건 막경만의 바람일 뿐이었다.

상대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범주를 넘어선 고수였고 그의 이름은 능파였기 때문이다. 능파가 쏘아지는 암기를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릴 때 이미 암기는 그 의미를 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귀한 암기를 이렇게 허비해서는 안 되지.”

능파는 호신강기를 발하며 암기를 그대로 몸으로 받아 튕겨내고 정확히 막경에게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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