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11장 (112/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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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기이한 의뢰

표국에서 하는 일은 가장 많게는 귀한 물건을 안전하게 목적한 곳까지 옮기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중요한 인물을 보호하며 지정한 곳까지 모셔가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주문에 따라 저택의 호위나 경비를 서는 일도 간혹 있곤 했다.

그러한 일의 특성상 당연히 표국의 국주나 표두, 표사들은 뛰어난 무위를 갖춘 자들로 구성되어 있어야 했다.

강호에는 아무 노동이나 수고로움 없이 거저 보물을 얻으려는 자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위하는 중에 호위받는 자의 원수라도 나타난다면 마땅히 물리쳐야만 했다.

아무 힘없이 해를 당해 호위하는 자가 다치거나 보물을 빼앗긴다면 그 모든 책임을 표국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그런 특성상 표국 중에서 이름난 곳은 그 무위의 수준이 강호의 내로라하는 문파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갖춘 곳도 있을 정도였다.

강호에는 수많은 표국이 존재했다 그중 당가가 자리한 섬서성에서 가장 확고하게 기반을 갖춘 표국은 만리표국이었다.

만리표국은 강호인들에게 물어보아도 한결같이 첫손에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그 만리표국의 국주는 유유천하(流流天下) 강모인데 그는 현재 나이 60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 못지않은 기백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강모의 얼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수심으로 가득했다. 수심에 뒤덮인 것은 단지 국주 강모뿐만은 아니었다.

만리표국에서 회의실로 쓰이는 유표각 내에 모인 표국의 핵심 인사들 모두의 얼굴도 강모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이 잔뜩 근심에 싸인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어제 느닷없이 의뢰받은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의뢰는 황당하고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제껏 수십 년 동안 별의별 표물과 호송을 의뢰받았었지만 이번만큼 뒤통수를 날린 의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뜻을 알 수가 없으니…….”

국주 강모는 탄식하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번 의뢰는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었다. 대개 호송을 부탁하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모두 나약한 사람이거나 자신을 지킬 만한 힘이 없는 경우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뒤집어 보고 옆으로 보고 다시 본래대로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문제의 의뢰가 무엇인지는 강모의 이어지는 탄식으로 나타났다.

“천하의 당가의 가주와 장로 등을 호위하여 가라니… 나참, 워낙에 진지하게 말하니 그냥 농담으로 여길 수도 없는 것이지 않는가.”

아마도 강호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뭐, 그게 어떻다고?

하지만 강호를 아는 이들은 배시시 웃고 말 것이다.

-거참, 농담도 아주 썰렁하구먼.

그렇다. 이 상황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면 전후가 바뀌어야만 했다. 만리표국의 사람들을 당가에서 보호하고 호송하기로 했다고 말이다. 그러면 모두들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것이 분명했다. 사파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당가의 가주와 장로들을 호송하라니… 이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이러한 고민이 생긴 것은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어제 정오 무렵이었다.

당가의 장로 당경과 한 거지 노인이 함께 만리표국으로 찾아 왔었다. 그때 국주 강모는 하마터면 당경을 몰라볼 뻔했다. 당경의 얼굴은 한마디로 가관이 아니었던 것이다. 얼굴 전체가 퉁퉁 부은데다가 오른쪽 눈은 시퍼렇게 멍들었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들어올 때는 한쪽 발을 약간 절룩거리는 것이 대결투를 벌이고 온 사람같이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무인이자 상인으로서의 기본을 알고 있는지라 왜 그렇게 되었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등의 말을 묻지는 않았다.

상대가 듣기 싫은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전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이거 오랜만입니다.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누추한 곳에 장로님께서 직접 발걸음을 하셨군요.”

강모로서는 당가가 귀한 고객의 입장이었기에 예의를 갖추었다. 몸이 왜 저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나 장로가 직접 온 것을 보면 뭔가 특별한 부탁이 있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강모의 반가운 인사에 당경은 대충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당경의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때부터는 보잘것없어 보인 늙은 거지가 말을 꺼낸 것이다.

“대략 열댓 명 정도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어야겠소.”

당경과 함께 온 늙은 거지는 능혼이었다. 강모는 처음엔 흘깃 보고 신경도 쓰지 않았던 거지가 당가의 장로를 옆에 두고 당당하게 말하자 그때부터 자세히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더도 말고 영락없이 거지였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힘없는 늙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기백이 담겨 있음을 강모는 놓치지 않았다. 이제껏 살면서 사람 보는 눈은 확실하다고 자부해 오던 강모였다.

‘보통 거지가 아니구나.’

강모는 능혼의 말을 듣고 당가에 개입 여부와 진위를 알기 위해 당경을 바라보았다. 당경은 어정쩡한 얼굴로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의 뜻을 보냈다. 강모는 확실히 당가의 일임을 인식하고 두 손을 포권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저희로서도 당가의 의뢰를 받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분들인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역시 능혼이 말했다.

“앞으로 열흘 뒤 당가의 가주 당문천과 네 명의 장로들, 그리고 십영주를 광동성 남단 신합 마을의 손패라는 사람에게 데려다 주시오.”

그 말은 너무도 뜻밖이었고 상식 밖의 일이라 강모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그는 농담으로 말한 것이리라 여긴 것이다.

“하하하, 의외로 재밌었습니다. 웃을 일이 없던 차에 꽤나 기분이 놓아지는군요.”

하지만 껄껄거리며 웃는 사람은 오로지 강모뿐이었다. 능혼과 당경이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멀뚱하게 바라보자 머쓱해진 강모가 물었다.

“험험… 자, 그럼 이제부터 만리표국까지 오신 참 이유를 알려 주십시오.”

능혼의 눈이 꿈틀하며 움직였다.

“지금 장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번 목소리는 산전수전 다 겪은 강모라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음성이 아닐 수 없었다. 강모는 고막을 파고드는 얼음장 같은 말에 순간적으로 질려 말을 더듬었다.

“네? 제, 제가… 뭘… 그럼 아까 하신 말씀이 진정이십니까?”

거기에 대한 답변은 당경의 입에서 나왔다.

“모두 당가에서 제대로 의뢰한 것이니 잊지 말고 열흘 뒤에 당가로 찾아와 주시오.”

당경은 말을 끝내고 능혼에게 말했다.

“이만 가시죠.”

상황 파악을 못한 강모는 유유히 내전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인지라 황급히 당경의 뒤통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지금 우린 꿈을 꾸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강모는 자신이 살아생전에 이런 엉터리 같은 질문을 아주 심각하게 던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이게 묻지 않는다면 잠깐 꿈을 꾼 것이라 치부해 버릴 것 같았기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강모의 말에 능혼과 당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능혼은 대답 대신 대문에 이르기 전 오른발을 한차례 굴려 화강암으로 깔아놓은 바닥을 뚫어버렸다.

꿈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보다 증거를 남겨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 그 바닥은 그렇게 허무하게 작살나서는 안 되는 돌이었다. 하지만 구멍이 나버렸으니 강모로서는 믿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어제 강모가 겪었던 일의 전부였다. 어제 일을 방금 전에 있었던 것처럼 느끼며 강모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 그 거지 노인은 대체 누구고 당경 장로는 왜 그런 몰골이 되었단 말인가.”

총관 오연혁이 그의 말을 받았다. 오연혁은 산귀자(算鬼子)란 별호가 붙을 정도로 계산에 밝아 만리표국의 재정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제가 생각할 때 이번 의뢰는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의뢰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뭔지는 모르나 이 속에는 음모나 함정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신중을 기하십시오. 국주님.”

오연혁의 말에 힘을 얻었는지 일표두 상관청도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국주님, 제 생각도 총관님의 뜻과 같습니다. 비록 만리표국의 명성에 흠집이 가는 일이 될지라도 이번 의뢰는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뛰어들었다간 무슨 일이 나도 날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그렇게 생각한 것만은 아니었다.

“저는 두 분의 생각과는 조금 다릅니다. 비록 의뢰가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각도를 달리해서 생각해 본다면 그저 원하는 곳까지 안내하고 돌아오면 그만입니다. 지금 강호는 정파와 사파가 나뉘어 있다곤 하나 사파라도 드러내놓고 악행을 일삼지 않으니 당가가 무모한 짓을 하진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의뢰를 거절하면 이것을 빌미로 당가에 꼬투리를 잡히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유문의 말이 끝나자 오연혁과 상관청이 말도 되지 않는다며 반박했고 또 한편에서는 유문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쪽으로 공방이 이루어졌다. 국주 강모는 모두들 자신의 주장이 맞다며 소리 높여 외치는 사이에서 침음성만을 흘렸다.

“음…….”

의뢰를 수락해도 뒤가 찜찜했고 의뢰를 거부하자니 이것도 개운치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국인 것이다. 연신 수염을 쓰다듬던 강모의 입이 어렵게 열렸다.

“조용히들 하라.”

모두가 입을 다물고 시선이 모이자 강모가 다시 말했다.

“만리표국은 모든 의뢰를 회피하지 않는다. 이번 일도 정면으로 승부하겠다. 이번 일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말도록.”

말은 그럴듯했지만 국주 강모의 얼굴엔 여전히 근심이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곳에 왜 가는지를 알았다면 강모는 거품을 물었을지도 모른다.

제8장 자녀를 찾아

당문천과 네 장로들의 얼굴은 악몽 같은 서로 간의 후려 패기를 끝낸 지 칠 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피멍이 빠지지 않은 채였다.

게다가 그동안 표영이 천음조화로 심어놓은 말로 인해 숱한 꿈을 통해 괴로움을 당하였던지라 거의 피골이 상접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고통만 남아 있는 건 아니었다. 어느덧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고통과 수치를 받는 자들의 슬픔에 대한 깨달음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깨달음인 것같이 보였으나 그들이 살아온 육십 평생이 넘는 삶을 생각할 때 매우 큰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칠 일이 지난 오늘은 표영이 말한 대로 대집회가 열렸는데, 표영은 이날을 칭하길 일명 파송식이라 명했다. 파송식의 풍경은 나름대로 거창하기까지 했다. 연무장 중앙단상엔 표영이 올라서 있었고 그 우측으로는 능파와 능혼, 그리고 제갈호와 교청인이 땅바닥에 아무렇게 앉아 있었다.

또한 좌측으로는 당문천과 네 장로, 그리고 십영주들이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퀭하니 앉아 있었다. 파송식이 끝나고 나면 대략적으로 채비를 갖추고 광동성에 위치한 신합 마을로 떠나게 될 터였다.

그중 당문천의 얼굴엔 벌써부터 어둠의 장막이 깊이 드리워진 채였다.

그가 유독 불만을 갖게 된 것은 흙바닥에, 그것도 아무것도 깔고 앉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고급스러운 좌석에 앉았고 그 안락함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맨바닥에 털썩 앉아 있지 않은가.

그로선 벌써부터 거지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여간 착잡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파송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표영에게 한 대 얻어터진 상태였다.

“의자라도 놓고 좌우에 앉아 있는 것이 보기에도 좋지 않겠습니까요?”

나름대로는 공손함을 다해 한 말이었지만 여지없이 타구봉은 날아들었고, 그 결과 머리에 혹을 달 수밖에 없었다.

‘칫, 거지도 고위급이 있고 하급이 있는 거 아니냐고. 이거 너무하잖아.’

그는 불만을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정작 진개방에 있어서는 오히려 고위급이 될수록 더 힘들다는 것을 당문천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것을 알았다면 저런 투덜거림도, 그리고 고위급이 되려고도 하지 않았으리라.

연무장 중앙에는 거의 모든 당가인들을 모아놓은 듯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가득 채워졌다. 그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이렇게 많은 숫자가 한꺼번에 모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지금 이와 같이 많아진 데는 당가의 주변을 수비하는 매복조들까지도 모조리 참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지금 당가는 정문이며 동쪽 외벽이든 서쪽 외벽이든 할 것 없이 아무도 경계 근무를 서는 이가 없었다.

누군가 침투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당가인들 중에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반듯이 줄을 맞추려는 듯 앞뒤로 돌아보며 혼잡스럽게 움직였다. 그때 표영의 음성이 연무장을 제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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