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06장 (107/199)

 # 106

106.

“크아악-!”

당문천은 뜻밖의 기습에 그대로 얼굴을 땅에 처박고 쓰러졌다. 이번의 통증은 아까 당했던 것들보다 훨씬 컸다. 긴장이 확 풀리는 듯한 상태에서 몸이 미처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천호는 생각대로 공격이 제대로 먹힌 것 같자 속으로 간절히 기원했다.

‘설마 이 상태에서 또 일어날 순 없겠지.’

언뜻 모천호의 계획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언뜻일 뿐이었다. 당문천이 두 발을 움찔거리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온몸을 꿈틀대며 일어서려 한 것이다. 당문천은 비실 비실대며 두 팔로 일어서려다 쓰러지고 일어서려다 쓰러지길 서너 번 반복한 끝에 결국 일어서고 말았다. 모천호의 얼굴이 분을 칠한 듯 하얗게 질려 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모… 천… 호…….”

한 자 한 자 느리게 말하던 당문천이 벼락같이 외쳤다.

“모천호∼!”

그러더니 몸을 날려 모천호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이로 물어뜯어 버렸다.

“으으으…….”

호랑이가 사냥한 짐승의 목숨을 끊어놓으려 할 때 이빨로 잡고 머리를 흔드는 것처럼 당문천의 지금 모습은 영락없이 호랑이였다. 모천호는 이 해괴망측한 공격에 치를 떨며 괴로워했다.

“으아아악!”

잠깐이었지만 이에 물리고 있는 시간은 모천호에겐 억겁의 시간으로 여겨질 정도로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비명 소리가 어찌나 실감나던지 얻어맞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세 명의 장로들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잠시 후 박아 넣은 이빨을 뽑아낸 당문천의 입가엔 흥건한 피가 묻어 있었다. 그 피의 주인은 말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모천호가 처절한 신음 소리와 함께 자리에 드러눕자 제일 먼저 얻어맞고 쓰러졌던 당추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간다∼!”

처음에 미안해하고 이해를 구하며 조심스럽던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발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형을 벽으로 날려 한번 박차고 꺾어 당문천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퍼억!

“크악∼!”

어찌나 세찬 발길질이었던지 당문천은 그 자리에서 한 바퀴를 회전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젠 지도자고 수하를 떠나 어떻게든 서로에게 더한 고통을 안겨주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었다. 순간순간 괴성과 이를 바드득 가는 소리, 그리고 타격음만이 밀실 안을 메웠다.

이런 판국이 되자 표영도 이제 거의 할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다음은 누구?’ 등등의 말이 필요했지만 이젠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자동으로 알아서 잘해주고 있는 것이다. 거의 서로 간에 오십여 대가 교환되었을 때 표영은 이제 보는 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이야 실감도 나고 오호∼ 하는 감탄사도 나오는 것이지만 계속 보다 보니 그것이 그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표영은 처음에는 앉아 있다가 횃불을 벽에 세워두고 옆으로 드러누워 구경했다.

“잘하고 있어. 아주 훌륭하다.”

표영의 말대로 서로는 너무나도 잘하고 있었다. 밀실 안에는 한 대씩 치고 또 자빠졌다가 비틀대며 주먹을 날리고 한바탕 난리가 아니었다.

퍽!

“윽!”

퍼퍽-

“어억!”

퍼억!

“까악∼.”

시간이 지나면서 비명 소리만 들리던 밀실 풍경이 이젠 고함과 호통 소리까지 난무했다.

“죽어라, 당경∼.”

“정말 이러실 겁니까!”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릴 테다!”

“가주고 뭣이고 간에 나도 못 참는다! 받아라!”

표영은 옆으로 드러눕다가 이젠 아예 치고받는 것은 보지도 않고 등을 깔고 누웠다.

“아∼ 슬슬 잠이 오네.”

당문천과 네 명의 장로는 표영이 잠을 자든지 뭔 지랄을 떨든지 그런 것은 아예 관심도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선 주먹과 발길을 날리는 일에만 신경을 써도 부족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표영은 흘깃 싸움판을 보며 생각했다.

‘이 녀석들은 그동안 강호밥을 먹으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때려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제대로 맞아본 적은 드물겠지.’

표영이 이처럼 서로를 치고받게 한 데는 나름대로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

‘사람이란 자신이 걸어보지 않고서는 그 아픔을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암, 그렇고말고. 실컷 맞고 패보아라. 육신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괴로움을 당하는 자의 설움도 깨닫게 될 테니까 말이다.’

표영이 밀실에 이들을 데리고 온 건 이러한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었다.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근본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함이고 더 나아가서는 가족을 지키고 이웃을 지키고자 함이다. 하지만 강한 힘을 갖춤이 자신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고 위협하기 위함이라면 그 자체가 이미 어그러진 길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당문천과 다섯 장로들이 온전치 못한 사부에게 발길질한 모습은 영락없이 무공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지금 표영은 그때의 복수를 함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뜻은 이들에게 당하는 자의 설움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들을 온전히 돌이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수라 생각했다.

‘사부님도 이들을 죽이는 것보단 돌이키는 것을 바라시겠지?’

만약 제갈호와 교청인이 혹여 잘못을 했다면 이런 식으로는 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이들에게만은 이 방법이 옳다고 여겼다. 마음이 편해진 표영은 고함 소리를 잔잔한 자장가 삼아 잠에 빠져들었고 급기야 코까지 골았다.

“드르릉∼ 드르릉∼.”

그런 와중에도 난투극은 멈출 줄 몰랐다. 이젠 표영의 강압에 못 이겨 억지로 하던 것은 이미 지나 버린 과거였다.

“간다∼.”

“받아라∼.”

“죽고 싶냐∼.”

“썅… 다 죽여 버리겠다∼.”

말이 오백 대지, 사실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표영의 코 고는 소리와 격타음, 그리고 처절한 비명은 자정이 되어야 끝을 맺었다.

제4장 역지사지

밀실의 난타는 연일 계속되었다. 당문천과 장로들은 잠자는 시간과 배달되어 온 음식을 먹느라 잠깐 쉬는 시간을 제외하곤 오백 대를 채우기 위해 날마다 고군분투했다. 거기에다 그들은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신옥환을 두 알씩이나 복용하기까지 했다.

신옥환은 내력을 돋우고 피로를 몰아내 주며 내상을 입었을 때도 상당한 효험을 발휘하는 영단이었다.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 어지간해서는 품에서 나오지 않을 신옥환이었지만 서로들 아까운 줄 모르고 먹기 바빴다. 어쨌든 힘이 있어야 주먹을 날려 더 큰 타격을 입힐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가 되었을 때, 이들은 비로소 서서히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 것이다. 하지만 이젠 자존심의 문제가 걸려 누가 나중에 때리겠다며 양보한다는 말은 아무도 꺼내지 못했다.

공방 오 일째.

나흘 동안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 투견판의 개처럼 서로를 후려 패던 당문천과 장로들은 마지막 오 일째가 되어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그들이 지금 마주 선 곳은 당가의 연무장 중앙으로 그들 주변엔 빙 둘러 원을 그린 채 약 삼백여 명에 달하는 당가의 무사들과 가솔들이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중앙에 선 가주와 장로들을 바라보는 당가인들의 눈에는 짙은 의혹과 함께 연민이 가득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지금 당문천과 장로들의 얼굴은 팅팅 부어 있었고, 옷도 여러 군데가 찢어지고 피가 군데군데 묻어 있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가인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작은 소리로 서로 수군거렸다.

“저기 서 있는 사람이 정말 가주가 맞나?”

“그렇다더군. 장로들도 보게나. 하나같이 골병든 모습이 아닌가.”

“대체 누가 저런 짓을 했을까?”

“누구긴 누구겠는가. 저기 옆에 서 있는 젊은 거지. 아니, 이제 방주시지. 방주가 손을 본 것이겠지.”

“휴우∼ 강호를 울리던 당가도 이젠 정녕 안녕이로군.”

어느덧 당가인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당가가 진개방의 수중으로 들어갔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중앙에 있던 표영이 손을 번쩍 치켜들며 말했다.

“조용조용!”

그 말에 웅성거리며 수군대던 소리가 뚝 하고 멈췄다. 순간 대낮인데도 밤의 정적마냥 사방은 고요함에 휩싸였다. 표영의 손짓과 말 한마디의 위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이렇듯 당가인들이 표영의 동작과 말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표영이 독존으로 불리며 공포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당가인들은 독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만큼 독공의 고수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두려움도 뭘 알아야 제대로 겁도 먹는 법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당가의 보물인 무형지독을 병째로 마신 자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이 고요해지자 표영이 입을 열었다.

“자, 모두들 잘 들어라. 험험… 우선 너희들은 당문천과 네 장로가 왜 저런 모습으로 서 있는지 궁금하겠지?”

그 말에 당가인들은 마치 궁금하게 여겼던 터라 귀를 쫑긋 세우고 주목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당문천 등은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몸을 기어 다니는 것만 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곤욕에 빠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이 자리에는 각자의 부인과 자식들도 지켜보고 있는 중이 아니던가. 거기에다 그 외의 모두도 그동안 하나같이 존경 어린 마음으로 섬겨주던 가솔들이다. 그들이 지금 퀭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당황스럽고 황당한 경우에 처할까 봐 아까 밀실에서 마지막 오 일째를 보내겠노라며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었다.

‘조금 더 버텼어야 하는 건데… 흑흑흑……!’

‘아무리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다 불러 모을 줄이야.’

‘아들 녀석이 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 무슨 수치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내 이제껏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를 때려보긴 했지만 내가 이렇게 수모를 당하게 될 줄이야…….’

그들의 눈 밑으로 조그맣게 물기가 어렸다.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들이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표영의 말이 이어졌다.

“이들이 모두 얼굴에 멍이 들고 핏자국이 난무한 까닭은 지난날을 돌이키고 새롭게 거듭나고자 노력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잠시 장내가 술렁였다.

“당문천은 그동안 당가를 이끌며 자신이 지도자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여겨 그 대가로 수하들인 네 장로들에게 얻어맞기로 작정했다.”

때마침 당문천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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