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102.
“하하하, 내가 너희에게 줄 독은 바로 발작을 일으켜선 안 되는 것이란다. 그렇게 하려면 일정 기간 독을 억제시킬 수 있는 약물과 혼합해야 하는데, 내 그만 깜빡 잊고 독만 건넨 것이지……. 하하하, 나도 참 한심하지.”
당문천을 위시한 네 명의 장로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깜빡 잊을 것이 따로 있지. 어떻게 그것을 잊는단 말씀이십니까!’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거 너무하잖아.’
‘아, 씨파… 대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네.’
‘이번 것도 제대로인지 확실한 게 아니구먼.’
표영의 말이 이어졌다.
“하하하, 그리하여 이번에 이렇게 크기가 커진 건 실수가 없도록 제대로 혼합한 까닭이다. 그러니 아무런 염려도 하지 마라. 하하하, 나도 이제 나이가 먹어 가는지… 험험… 한 번씩 이런다니까.”
그래도 표영은 할아버지 급에 해당하는 당문천 등에게 미안했던지 태연한 가운데서도 헛기침 두 번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표영이 다시 껄껄거리며 웃다가 말했다.
“하하하. 그럼 이왕 생각난 김에 일단 먹고 시작하는 게 좋겠다. 먹는 거 앞에 두고 딴 짓 하는 것도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지. 자, 보아라. 저 독들이 어서 먹어달라는 듯 예쁘장하고 다소곳한 표정(?)으로 찻잔 옆에 둥지를 틀고 있지 않느냐.”
너스레를 떠는 소리에 교청인이 자기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었다.
‘훗, 다소곳하게 앉아 있다고? 하여튼 약 올리는 데는 도가 텄다니까. 저런 것은 다 어디에서 배웠을까.’
그녀 또한 이미 지난날 독을 복용했던 터라 그 매캐한 냄새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끔찍했었지. 휴∼ 하지만 내가 저리도 큰 것을 먹지 않게 된 건 천만다행이야. 이들은 과거에 방주에게 무슨 몹쓸 짓을 했기에 이런 곤욕을 치르는 걸까?’
“자자, 어서 한입에 우겨 넣어.”
표영이 다그치자 능파와 능혼이 이때다 싶어 거들었다.
“부스러기도 떨어뜨리면 안 돼. 알겠어? 티끌만큼이라도 떨구고 먹었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테다.”
“제일 늦게 먹는 놈은 앞날이 괴로울 줄 알아라.”
연신 다그치는 말에 당문천 등이 손을 떨며 독(?) 덩어리를 잡았다.
푸스스.
비록 손이 타 들어가는 이와 같은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당문천 등에게는 이보다 더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윽! 손이 썩는 것 같다.’
‘젠장… 이 감촉은 대체 뭐란 말인가…….’
‘닿기만 해도 미칠 것 같은데 이걸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 하늘이시여. 정녕 이 당경을 버리시나이까.’
‘참으로 모진 목숨을 붙잡고 있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각기 속으로 한탄을 머금었고 이제 서서히 손을 입으로 이동했다. 그때 표영이 긴박한 순간을 온 천하에 알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아∼ 대단합니다. 대단합니다. 이제 곧 입에 들어가려 합니다. 네, 아주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표영의 말은 가히 당가인들에게는 염장을 지르는 것이었다. 비장미를 드러내며 먹어도 시원찮을 판에 장난을 치고 있다니… 하지만 곧 능파가 맞장구를 치며 가세하고 나섰다.
“정말 긴장됩니다. 지존이시여∼ 어찌나 독이 큰지 저놈들은 앞으로 삼 일 낮 삼 일 밤 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든든할 것 같습니다요.”
북 치고 장구 치고 놀려대는 가운데 당문천 등은 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래, 씨발… 먹자, 먹어. 죽기밖에 더하겠냐. 썅!’
갈조혁이 몸은 온데간데없고 목만 덩그러니 들려오던 것이 떠올랐다. 괜히 반항했다간 갈조혁처럼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그럴 바엔 그나마 살아날 가망성 높은 쪽이 독을 복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와그작… 와그작…….
다섯이 각기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네∼ 드디어 입에 들어갔습니다. 대∼ 단합니다∼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표영의 긴박함에 담뿍 담긴 해설을 들으며 당가인들은 처참하게 때를 우겨넣었다.
“우우욱… 욱…….”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시큼함과 매캐함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표영이 다시 이 광경을 보고 열을 올렸다.
“오호∼.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자자, 이젠 되도록이면 꼭꼭 씹어 먹는 게 중요하죠∼. 그래야 독을 억제하는 약효가 많이 살아나거든요. 그 이치가 가장 중요한 관건입니다∼”
표영의 말을 들으며 당가인들은 ‘씨발’을 연발하면서도 우걱우걱 씹어댔다. 그것은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히 처참함 그 자체였다.
이윽고 때독이 뭉개지며 입술에 묻어나고 땟국이 길게 입 가장자리를 타고 턱을 따라 흘렀다. 하지만 더욱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크게 베어 문다고 물었지만 아직도 대여섯 번은 더 베어 물 수 있는 덩어리가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우적우적.
입 안에 감도는 맛과 처절함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다. 급기야 그 처절한 맛에 당문천을 비롯한 사대장로는 눈에서 눈물을 주르르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씹고 또 씹었다.
‘어찌하여 하늘은 당문천을 나게 하고 또 한편 다른 독공의 고수를 세상에 나게 하셨단 말인가.’
‘정말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콱 그냥 죽어버릴까.’
‘이런 씨발… 흑흑흑……. 아직도 많이 남았잖아. 이걸 언제 다 먹냔 말이야.’
‘여러 독을 보고, 혹은 맛을 봐왔지만 이런 맛을 가진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각기 속으로 한탄하면서 꾸역꾸역 때독을 삼키고 또 삼켰다. 가히 그 모습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심지어 거지 무공을 수개월간 연마한 능파와 능혼, 그리고 제갈호와 교청인 등도 꾸역꾸역 피어나는 냄새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우적우적 먹어대면서 침이 범벅이 되고 하다 보니 침이 흘러나오면서 시커먼 때 구정물이 입 가장자리에서 나와 턱 밑으로 뚝뚝 흘러내리자 지켜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 뭐냐… 이 때 구정물은, 독 중에서도 정말 추잡스런 독이로구나.’
‘저놈들도 대단하다. 삶에 대한 집착은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 없구나.’
‘서, 설마, 내가 먹은 것도 저런 것은 아니었겠지.’
‘거지 무공 중 영약 복용의 과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보는 것도 힘들었을 거야.’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경악스럽다면 현재 직접 먹고 있는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먹는 자나 지켜보는 자나 모두들 한마음으로 처절함을 느낄 때 당존각 내에서 유일하게 미소를 띠고 있는 이는 표영뿐이었다. 표영은 흡족하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이며 연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자자, 좀 더 힘을 내라. 이제 끝이 멀지 않았어. 좀 더, 좀 더∼”
표영은 힘차게 격려하며 속으로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놈들아, 너희는 과거 한낱 보잘것없는 거지라며 사부님과 나를 업신여기고 죽이려 했지 않았느냐. 이젠 어떠냐? 바로 너희들이 멸시하던 그 거지의 때를 먹고 있지 않느냐. 세상사 돌고 도는 것, 작은 자라도 업신여긴다면 언젠가는 갑절로 보응을 받게 되는 법이다.’
또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때독을 먹이는 일이야말로 당가인들에게 가장 적절한 복수라 할 수 있겠구나. 이들은 이제껏 독으로 많은 사람을 살상했지만 실제로 독에 의해 고통당해 본 적은 드물 것이다. 독을 복용하는 기분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모르고서야 어찌 독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겠는가. 지금 독에 당했으니 앞으로 독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 당하는 자의 기분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지.’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쉽게 다투거나 괜한 시비가 일어나지 않는 법. 그런 관점에서 표영은 이들에게 나름대로의 교훈을 주고 있는 셈이었다.
‘앞으로 육체의 고통과 부끄러움에 대한 교훈을 준 후 걸인도로 보내야겠다.’
일다경(약 15분)이 지났다. 그사이 당문천 등은 꾸역꾸역 그 큰 때독을 다 먹어치웠다. 입가에 새까맣게 때가 덕지덕지 묻고 치아 사이사이로 때가 새까맣게 파고든 것이 가히 보는 것만으로도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거의 비몽사몽의 지경에 처한 당문천 등이 이젠 끝났구나, 라고 생각할 때 표영이 꺼져 가는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놈들! 이 독들이 내가 얼마나 어렵게 모은 것들인 줄 모르는 모양이로구나. 입가에 묻은 것과 이 사이에 낀 독들을 남김없이 먹어치우도록 하라.”
다시 얼마간의 짧은 시간이 지나고 당문천 등은 매끈하게 남아 있던 때독을 혀를 사용해 낱낱이 먹어치웠다. 아마도 당문천 등이 거울을 앞에 두고 입을 벌려봤다면 평생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때독이 비록 독극물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가 그리 이로운 음식은 아니잖은가. 몸에서 나온 노폐물들과 외부에서 낀 먼지가 쌓여 때가 되는 것인 만큼 그걸 먹고 속이 좋은 리가 없었다.
때들은 뱃속에 들어가자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위와 내장에서 이상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때 장로 당경이 배를 움켜쥐며 뭔가를 참는 듯하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토했다.
“꺼억-”
장대한 트림 소리였다. 위에 남아 있던 여러 음식 찌꺼기들과 혼합된 때독이 부글거리다가 소화가 되면서 위쪽으로 공기가 배출된 것이었다. 그 냄새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내전 안의 공기가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정면에 있던 제갈호와 교청인은 황급히 손을 들어 코와 입을 막아야만 했다. 단련될 대로 된 제갈호와 교청인이 코를 틀어막아야 할 지경이었으니 정작 트림을 한 당경은 어떠하겠는가. 그는 엄청난 냄새에 순간 뇌가 마비되는 듯한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떨구고 혼절해 버렸다.
자기가 뱉은 트림에 스스로 기절해 버린 것이다. 당가의 가주 당문천과 남은 세 명의 장로들도 각기 밀려드는 역겨운 냄새와 몸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증상에 몸을 부르르 떨다가 거센 트림을 품어냈다.
“커억∼.”
“커억∼.”
먼저 가주 당문천과 사장로 당추가 연이어 트림을 하고 자신의 냄새에 충격을 받고 혼절해 버렸다. 그 뒤로 오장로 당운혁과 이장로 모천호도 크게 트림을 발했다.
“쿠허헉∼.”
“꺼어억∼.”
그중 오장로 당운혁은 트림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트림을 한 후 뱃속에 가득 담겨진 혼합 고체 및 액체를 정면을 향해 폭포수처럼 뿜어냈다.
한결같이 트림을 하고 쓰러진 터였기에 그것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그로 인해 불그스름한 토사물들은 고스란히 앞쪽에 있던 능혼의 얼굴로 쏟아지고 말았다.
“으아악! 이게 뭐냐… 이 더러운 놈들!”
신법에 통달한 능혼일지라도 이 갑작스런 기습(?)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소리 없이 날아드는 암기도 수월하게 피해내는 능혼이었지만 이 황당무계한 상황에 정신이 혼미해진 터였고, 설마 자신에게 토를 발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지라 그만 토사물을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고스란히 뒤집어쓴 능혼은 머리와 얼굴에 뜨거운 김을 풍기며 분노의 주먹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주먹을 날릴 필요조차 없었다. 어느새 둘 다 탁자 위로 상체를 기댄 채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당가의 가주 당문천과 네 명의 장로들은 때독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처참한 걸과가 나타나게 되었을 때 표영이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다섯을 바라보더니 두 손을 천천히 들고 장엄한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