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01장 (102/199)

 # 101

101.

제1장 특별히 제조된 회선환

표영 일행과 당가의 수뇌급들은 당존각에 자리했다.

당존각은 당가 내의 대소사를 의논할 때 사용하는 회의 장소였다.

당존각 내에 길게 놓여진 탁자의 제일 앞자리 상석, 그곳은 언제나 당문천이 앉던 고정 좌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허름한 옷차림을 한 표영의 것이 되어 있었다.

당존각 내에는 총 10명이 앉아 있었다. 자리의 배치는 표영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능파 등이 일렬로 자리했고 왼쪽으로는 당문천을 시작으로 네 명의 장로들이 앉아 있었다.

지금 이 자리는 표영이 주최한 것으로, 당가의 앞으로 나아갈 바를 논하고자 함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표영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던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자 했다.

“당문천! 네게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표영이 당문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당문천을 비롯한 사대장로들은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한 사람들처럼 그저 멍한 얼굴로 탁자만을 바라볼 뿐 어떤 대꾸조차 없었다.

“…….”

표영은 듣고 있으려니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까 어린아이를 인질로 삼았던 그놈, 뭐라 했더라? 응, 그래… 갈조혁인가 하는 놈의 정체는 무엇이냐?”

표영으로서는 갈조혁이 왜 그럴게 폭주하며 장로 중 하나를 인질로 삼았는지, 게다가 뒤에는 어린아이까지 인질로 잡고 탈출하려 했는지가 궁금했다.

당가인이라면 마땅히 가주의 뜻에 따라야 할 터이고, 또 한 식구로서 당가인의 어린아이를 인질로 삼는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당가가 사파 쪽에 서 있다 해도 그런 짐승만도 못한 짓을 식구끼리 할 리는 없는 것이다. 그가 보인 행동과 말투 또한 결코 같은 식구로는 여겨지지 않는 것이 아니었던가.

“…….”

하지만 표영의 질문이 나갔음에도 여전히 당문천을 비롯한 네 명의 장로들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오히려 대답 대신 그들은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을 뚝뚝 흘렀는데 턱 선을 따라 뚝뚝 떨어져 내리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오로지 자신들의 모든 삶은 탁자에 달려 있다는 듯 노려볼 뿐이었다.

이들은 지금 무엇을 보고서, 혹은 무슨 일로 얼이 빠져 버린 것일까. 현재 당문천을 위시한 장로들이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는 것은 탁자가 아니었다. 그럼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시선이 꽂힌 건 찻잔 옆에 놓인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시커먼 덩어리였다.

이 덩어리의 정체는?

그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바로 표영이 몸에서 가득 긁어낸 때였다. 하지만 표영을 제외하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걸 한낱 사람의 몸에서 벗겨낸 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엄청난 독.

그렇다. 한결같이 무지막지한 독으로 믿고 있었다. 덩어리는 큰 덩치를 자랑함과 동시에 칙칙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당장에라도 독향을 뿜어낼 것만 같았던 것이다. 가히 거지 왕초로서의 때는 뭔가 달라도 다름을 보여주는 표영의 한 수가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이제껏 표영이 회선환을 제조함에 있어서 이렇게 크게 만들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과거 산적들이나 해적들, 그리고 수하들을 받아들이면서 늘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크기의 회선환을 만들었었다.

그리고 어제 마지막 다섯 번째 독관문을 맞이했을 때만 해도 회선환의 크기는 변함이 없었지 않았던가. 하지만 어제 만든 회선환은 갈조혁이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탁자가 엎어지고 쫓아가느라 밟고 넘어가는 사이 다 뭉개져 버려 쓸 수 없게 돼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표영이 오늘 다시금 몸을 문지르는 수고로움을 더해 급히 제조해 놓은 것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 탁자 위에 놓인 때의 크기는 처음 것에 비해 거의 삼십 배 정도로 커지고야 말았으니 당문천 등에게는 이래저래 갈조혁이 죽어 마땅한 놈이었고, 지금 입장은 불행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표영은 왜 이처럼 때독을 크게 만들었을까? 때독의 크기가 처음과 달리 커다랗게 변한 데는 표영의 복수심 때문이었다. 사부님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 아래 당가인들을 때려죽일 마음은 없었던지라 이왕 새로 만들 바에 크게 만들어서 독을 복용하는 고통이라도 안겨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을 고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지 몸에 좋은 환약이 비록 쓰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먹는 것과는 달리 환약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리타분한 냄새와 독을 먹는다는 정신적 불안감이 무서울 뿐이리라. 하지만 정작 몸의 일부를 절단하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빼앗는 것도 아닌 만큼 실질적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되려 웃을 일일 것이다.

독의 크기는 비단 당가인들만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복용한 바 있는 제갈호와 교청인도 그 크기에 놀라 눈빛에 경악이 떠오른 상태였다. 둘은 놀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방주가 제조한 독이 신비스럽기도 했다.

‘도대체 방주는 어디에다가 독을 숨기고 다니는 것일까.’

‘나는 손톱 크기만 한 것을 먹고도 숨 쉬기가 곤란했는데 저걸 다 먹어야 한다면 차라리 죽고 싶을 거야. 으이그, 불쌍한 놈들.’

제갈호와 교청인도 아직까지 전혀 독의 실체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저 독이라고만 생각했지 설마 하니 독의 실체가 표영이 몸에서 직접 벗겨낸 때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표영이 실제로 독공의 고수임을 보았으니 그렇게 믿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제갈호와 교청인이 독의 실체가 독과는 전혀 관계 없는 표영의 때라는 것을 알았다면 약 한 달 동안은 식음을 전폐하고 미친 연놈들처럼 소리치고 다녔으리라.

이런 차원에서 당문천을 비롯한 사대장로들이 표영의 연거푸 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넋이 나가 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가히 독(?) 덩어리의 크기는 그것이 실제 독이라고 믿는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질식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 덩어리의 색깔은 칙칙하기가 이를 데 없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곪아버릴 것만 같았고 혈맥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크기도 크기지만 거기에 한 수 더 뜬 것은 뭉게뭉게 풍겨나는 냄새였다. 시큼털털한 냄새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악취가 섞여 있었는데, 오죽했으면 냄새를 맡는 코를 생채로 뜯어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 지경일까.

더불어 냄새가 몸을 휘감고 도는 것이 살마저 마구 부패하게 만들 것 같은 착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지경에 이르다 보니 지금 당문천과 사대장로는 표영이 하는 말은 전혀 들리지도 않았고 오로지 독 덩어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황당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독: 어때, 내 자태가? 멋지지 않아? 후후후후.

당가인들: 뭐. 뭐냐…….

독: 한번 먹어봐. 응? 먹어보래도∼.

당가인들: 이, 이럴 수가! 도, 독이 말을 하다니…… 말을 하고 있다고∼!

그들은 한결같이 환상과 환청에 사로잡혀 땀만 삐질 흘려댔다. 주먹만 한 독 덩어리는 어느새 눈을 뜨고 입까지 생겨 미소를 지으며 온갖 아양을 떨면서 먹어보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당문천 등은 가까스로 그에 맞섰지만 황당함의 큰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이 말을 한다… 말을 해……. 으으으.’

‘너무 커, 너무 크단 말이야.’

‘제삿날이 이럴게 빨리 다가오다니… 독들아, 제발 다른 데로 가 주면 안 되겠니?’

그들이 환상과 환청에서 벗어난 것은 능파가 고함을 친 후였다. 지금 당문천 등이 심각한 상태로 독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음도 모른 채 능파가 당장에 주먹을 날릴 듯 외쳤다.

“이놈들아! 지존께서 말씀하시건만 고막이 터진 거냐? 아예 손으로 귓구멍을 뚫어주랴?”

성미 급한 능파의 말에 당가인들이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독의 눈과 입 등이 사라지고 말 역시 들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관심사는 독 덩어리에 관한 것뿐이었다. 당문천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갈조혁에 대한 대답 대신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하, 한 가지 여,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만…….”

표영이 고개를 까닥였다.

“뭐냐?”

“제, 제가 이걸 복용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만…….”

당문천은 중도에 잠시 말을 멈추고 탁자 위에 놓인 독 덩어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건 시선의 교차로 무언의 암시를 주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강조하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게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저… 그게…….”

차마 말을 못하고 계속 질질 끄는 소리에 능파는 울화가 치밀었다. 능파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몸을 탁자 위로 쭉 빼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당문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우당탕!

당문천이 의자에서 나자빠졌다.

“이 자식이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 이분이 뉘신 줄 알고 감히 희롱하는 것이냐!”

아직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한 능파였다. 그에겐 오로지 충성과 열정만이 간직되어 있어 지존에게 무례한 행동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능파도 무사할 수만은 없었다.

“이 자식이∼.”

파악!

표영이 몸을 일으켜 탁자 위로 다리를 수평으로 벌려 능파의 면상을 날려 버린 것이다.

“으아악!”

우당탕!

“어디서 감히 주먹질이냐! 내 허락 없이 주먹을 휘두르지 말라고 말한 게 지금까지 몇 번이냐! 응? 죽고 싶냐. 능파!”

표영의 즉각적인 조치는 당문천을 아끼기 때문에 취한 행동은 결코 아니었다.

능파에게는 이럴 때마다 경고를 해줘야만 마음에 새겨질 것이고 함부로 설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마성을 제어하지 못할 상태가 된다면 지금의 표영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구석까지 날아가 처박혔던 능파가 번개같이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무릎을 꿇었다.

“죽여주십시오. 지존이시여.”

“일어나라, 너, 한 번만 더 그랬다간 진짜 죽을 줄 알아라.”

“속하 지존의 말씀 심장에 새겨 기억하겠나이다.”

대답은 늘 기가 막힐 정도로 훌륭했다. 이번에는 심장에 새긴다고 했지만 그전에도 명 대답이 여러 가지였다.

“뼈 마디마디마다 지존의 말씀을 새겨 넣는 중입니다.”

“환골탈태하는 것과 같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의 살과 피는 오직 지존의 뜻을 따라 움직일 준비가 되었나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말들을 생각해 내는지 함께 다니는 이들도 모두 신기하게 여길 정도였다.

당문천이 나자빠지고 능파가 얻어터지는 상황이 벌어지자 당가의 네 장로들은 모두 퀭해져 간이 오그라들었다. 하지만 능혼 등 일행은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라서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뿐이었다. 이런 것도 자주 보면 면역이 되는 것이다.

되려 ‘아, 이 정도 시간이면 한 대 얻어터지겠군, 하는 그런 상태까지 이를 정도라고나 할까.

“당문천! 아까 하려던 이야기를 해봐.”

표영의 말에 당문천이 힐끔 능파 쪽을 쳐다봤다. 능파는 당문천을 쳐다보진 않았지만 떨떠름한 표정을 한 채 탁자 밑으로 발을 쭉 뻗어 당문천의 발을 짓이겼다. 아까처럼 까불지 말라는 뜻이었다. 당문천은 발가락에 통증을 느끼며 입을 뗐다.

“그러니까… 제 말은 머리가 잘려 나간 갈조혁과 함께 있을 때 처음 주셨던 독 있잖습니까. 그게 어찌 된 게 그때 것보다 지금 보이는 것이 훨씬 큰 것 같습니다만… 혹시 독이 바뀐 것은 아닌지 해서 말입니다.”

당문천은 마지막 말을 끝맺을 때쯤엔 눈물까지 글썽였다. 탁자 밑으로 뻗으며 짓이기는 능파의 고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말에는 ‘독을 먹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습니다’라는 뜻이 가득 담겨 있었다.

표영은 이미 이들이 눈이 풀리고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예상했던 질문인지라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자식들. 독이 너무 커서 쫄았구나. 모두 염려하지 마라. 그렇지 않아도 내 다 말해 주려 했었다. 사실은 처음 너희에게 내놨던 독은 잘못 만들어진 것이었다. 만약 너희가 그것을 먹었다면 지금쯤 싸늘한 시체로, 아니, 시체조차 없이 그저 한 줌의 혈수로 바닥을 타고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하하하!”

당문천 등의 얼굴은 떫은 감씹은 표정으로 변해 버렸다.

‘바닥을 타고 흘렀을 것이라니…….’

눈을 돌려 바닥을 내려다보며 줄줄 흘러내리는 형체를 생각하자 온몸이 흐물거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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