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7장 (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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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흥, 벌레 한 마리가 너의 머리통을 집어삼키고 나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두고 보겠다.”

이때 능파와 능혼, 그리고 제갈호와 교청인은 솔직한 심정으로 말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팔을 하나 떼놓고 가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 때려 부수고 나오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여기에서 그만 하자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방주가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영이 손을 뻗어 묘강뇌신충을 집어 들려 하자 중도에 당경이 손으로 막았다.

“내가 직접 넣어주겠다.”

당경이 이렇게 한 데는 자칫 손으로 집는 과정에서 묘강뇌신충을 눌러 죽인 이후 먹을 것을 우려함이었다. 표영이 입을 벌리자 당정이 충을 조심스럽게 잡고 입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묘강뇌신충은 입에 닿기가 무섭게 미끄러지듯이 목을 타고 넘어가 버렸다. 표영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겉으로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과연 이 뇌신층이라는 것이 어떤 작용을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아닌가.

오극전갈의 영향으로 만독불침이 되었다는 사부님의 말씀은 확실할 터이지만 그 효능이 독충을 제어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표영은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조용히 몸 안의 반응을 살폈다.

퍼펑- 퍼펑-

내부에서 작은 요동이 느껴졌다. 그건 표영만이 느끼고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충돌은 오극전갈의 독과 천년하수오, 그리고 묵각혈망의 내단의 기운이 한데 연합되어 묘강뇌신충과 부딪치고 있음이었다.

표영의 몸이 작게 떨렸다. 그 모습은 마치 갑자기 추운 곳에 나오게 된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당추와 당경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옳거니! 걸렸구나! 클클클.’

‘그러면 그렇지!’

둘은 몸을 떠는 이유가 충이 뇌를 갉아 먹고 있기에 신경이 마비되어 가는 중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흐흐흐. 이제 곧 귀와 코와 입, 그리고 눈 주위에서 피가 흐르며 처참한 최후를 맞겠지.’

‘자, 그럼 이제 남은 거지들을 처리해야겠지?’

당추와 당경이 속으로 뇌신충을 열심히 응원하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때 표영의 몸 안에서는 묘강뇌신층이 녹아내린 지 옛날이었다. 단지 지금 상태는 묘강뇌신충이 지니고 있는 독의 정화를 흡수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매우 특이한 현상이라 할만 했다. 대개 독을 다루는 이들이 주로 힘쓰는 것은 그 독을 어떻게 해독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표영 같은 경우는 해독 개념이 본질적으로 달랐다. 굳이 해독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쉽게 말해 독의 정화를 본신진력으로 흡수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케 된 것은 오극전갈의 최고의 독과 영약 중의 영약이라는 천년하수오, 그리고 묵각혈망의 내단이 한데 어우러져 기묘한 힘을 형성한 까닭이었다.

즉, 표영에겐 어떤 독이라도 몸에 들어오면 그 독의 정화를 받아 내력이 상승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것도 그 힘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왜 아까 흑모환과 독왕사의 경우 때는 아무런 일이 없었을까. 사실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둘 다 독이 대단치 않았기에 빠르게 힘을 흡수해 버려 몸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었다.

표영의 몸이 서서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잦아들었다. 이윽고 번쩍 하고 표영이 눈을 뜨자 신광이 한차례 발하다가 사라졌다. 표영은 온몸에 감도는 상쾌한 느낌에 마치 깊은 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난 것만 같았다. 몸 안에 힘이 회오리쳤다.

“이거 독충이 아니라 보약이로구먼. 하하하하!”

표영의 입가에 매달린 웃음에 당추와 당경은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몰랐고, 능파와 능혼, 그리고 제갈호와 교청인 등은 먹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갠 것 같았다.

‘지존께서는 가히 독의 신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으시겠구나. 아, 천마지체의 위대함인가.’

능혼은 마교가 무림을 제패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삐이익∼

긴 호각 소리가 당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소리는 길게 퍼져나가 모든 당가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호각 소리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지금 당가인들이 놀란 것은 그 호각 소리 중 가장 위급함을 알리는 신호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호각 소리는 어떤 식으로 부느냐에 따라 경고와 비상, 혹은 대수롭지 않은 집합 등 각기 다른 의미를 나타냈다. 지금 울리는 비상 호각은 몇 년 만에 듣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에 듣는 최고 수준의 비상 상황을 뜻했다.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글쎄, 독으로 도전하러 왔다는 사람 때문이 아닐까?”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가 보면 알겠지.”

당가인들은 저마다 의문을 품고 대전 앞쪽으로 모여들었다. 앞쪽에 놓인 단상에 장로 당추가 올라가 무리를 쭈욱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모두는 들어라. 아직 적이 침입한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즉, 곧 적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말도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자면 찾아온 이가 곧 적으로 둔갑할지도 모른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당추의 말이 이어졌다.

“현재 뜻밖의 방문자는 다섯 관문 중 세 번째까지 통과했다.”

그 말에 탄성이 터져 나오며 여기저기 웅성대기 시작했다.

“어찌 그런 일이…….”

“이제껏 묘강뇌신충을 억제한 사람이 누가 있었던가.”

“그럼 이번이 최초가 되나?”

“그렇다고 봐야겠지.”

“그 사람이 적으로 돌변하면 무서운 일이 벌어지겠군.”

당추가 손을 높이 쳐들었지만 서로 놀라 수군거리는 당가인들을 멈추게 하진 못했다. 그만큼 이 일은 당가인들에게 뜻밖이었고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

당추가 큰 소리로 외쳤다.

“조용! 조용하라!”

그때서야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모두 놀라지 말고 앞으로 일이 어찌 될지 모르니 긴장을 유지한 채 대기하도록 하라. 이건 실제 상황이다.”

당추는 솔직히 불안함을 느꼈다. 그 불안함은 상대가 세 번째 독관문을 통과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불안의 실체에 대해 말하자면 세 번째 관문에 이르기까지 그동안의 독들이 상대에게 어떤 타격도 주지 못했다는 바로 그 점이었다.

‘당가의 일생일대의 위기로구나.’

비상 소집을 발한 장본인은 당연 당가의 가주 당문천이었다. 그는 아까까지만 해도 식객으로 머물고 있는 갈조혁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당경이 뛰어들며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아직도 귓가에 음성이 메아리치는 듯했다.

“가주님, 묘강뇌신충이 깨졌습니다! 세 번째 관문이 뚫린 겁니다!”

처음 당문천은 그 말을 농담으로 여겼었다. 그는 여유롭게 웃음 지으며 ‘이봐! 농담도 좀 그럴싸한 것으로 골라서 해야 놀라기라도 할 것 아냐’라고 말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당경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불을 뿜듯이 말을 내뱉지 않았던가.

한가로이 차를 마시고 있을 수 없었다. 당경의 말을 듣고 당문천이 놀란 것은 단지 세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떻게 통과했느냐 하는 점이었다.

적어도 지금 버티고 있다 해도 상대는 치명적인 몸 상태가 되어야 정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몸으로는 당연히 네 번째 관문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고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당가에서 강호에 다섯 관문을 두고 독으로 도전하도록 하고 모두 통과한 자에게 당가의 주인이 되게 하겠다고 한 데는 그만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매우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고 거의 완벽할 정도의 승산이 갖춰져 있었다.

그 핵심은 독의 특성을 이용함이었다.

첫 번째 관문인 흑모환과 두 번째 관문인 독왕사는 모두 뱀의 독으로 성질이 모두 음의 기운을 갖추었다. 허나 흑모환은 음한 가운데 양의 성질을 지녔고 독왕사는 음한 가운데 더욱 음한 성질을 지닌 터였다.

그렇기에 도전자가 비록 흑모환을 버터냈다고 해도 둘째 관문인 독왕사 때에는 해독할 수 있다 해도 이미 음한 가운데서 몸의 균형이 무너져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아주 특이한 경우로 둘째 관문까지 통과했다 하더라도 도전자는 세 번째 관문에서 더 큰 함정에 빠지게 된다.

세 번째 관문인 묘강뇌신충이 앞서 펼쳐진 흑모환과 독왕사의 독에 영향을 받고 더욱 광분하며 몸속을 헤집고 다니기 때문이다.

실로 묘강뇌신충은 당가의 가주인 당문천으로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무서운 독충이라 할 수 있다. 묘강뇌신충은 내가진력을 이용해 태워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닌지라 내공이 신화경이 이르렀다 해도 가히 속수무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당문천이 알고 있기로 뇌신충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게 음공을 익힌 고수나 뇌신층을 잘 다루는 이가 있어 피리나 악기를 통해 몸 밖으로 유인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최악의 관문들을 통과한 자가 거뜬히 아무런 이상도 없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당문천의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음…….”

깊은 침음성을 발하는 당문천에게 식객으로 거주하고 있는 갈조혁이 위로의 말을 던졌다.

“설마 하니 그자가 네 번째 관문을 통과할 수 있겠습니까? 가주께서는 크게 걱정하지 마시구려.”

정말 힘든 상황에서는 작은 위로의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게다가 위로를 하는 사람이 고명한 자이거나 신뢰할 만한 자라면 더욱 위안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갈조혁은 당문천의 마음에 위로를 한껏 던져 줄 만한 위치에 있다 할 수 있었다. 현재 그는 식객의 위치에 있긴 하나 당가에서 새롭게 장로로서 그 직분을 부여받기 직전이었다.

이 사실은 당가의 지도급 인사들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당문천은 예민하기 그지없었다.

“혼자 있고 싶소이다. 갈 형은 잠시 처소로 돌아가 계시는 것이 어떻겠소.”

말은 곱게 했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은 만큼 갈조혁이 어물쩍 우스갯소리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 저는 잠깐 들어가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갈조혁이 나간 후 당문천은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 무형지독을 뛰어넘을 순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독존이라고 불리울 만하지 않겠는가.’

당문천의 자신감은 그저 마음을 위로하려는 것만은 아니었다. 무형지독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무형지독이라 함은 얼핏 보면 물처럼 보이는 것으로 맛도 느낄 수 없고 향도 없으며 투명체로 이루어져 있다.

제조법은 약 오천여 종의 독초를 혼합해 액을 내고 그 액을 펄펄 끓여 떠오르는 증기를 모아 만들어내게 된다. 그 가운데 배합이 조금만 빗나가면 탁한 기운이 끼고 무색이 아닌 누리끼리한 색으로 변해 버리기에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번 만들어지면 단 한 방울만으로도 순식간에 온 혈맥에 퍼져 전신 혈도를 파괴하고 신경을 죽이며 끝내는 산화 작용을 일으켜 뼈와 살을 녹여내는 파괴력을 지녔다.

소를 예로 들자면 한 방울만으로도 소 10마리 정도는 눈 한 번 깜박이는 사이에 죽일 수 있을 정도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당문천도 무형지독을 만드는 비법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껏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무형지독은 당문천의 증조부가 되는 당항이 추출해 낸 것이었다. 만드는 방법이 까다로운 만큼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현재 보유한 양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병에 절반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이 무형지독이야말로 당가에 있어서 가장 진귀한 보물이랄 수 있었다.

‘만일…….’

당문천의 이마에서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만일… 무형지독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 과연 그를 죽일 수 있을까? 그런 자라면 손짓 한 번에 독기를 수증기처럼 발출해 십수 장에 떨어져 있는 사람까지 살상할 수 있을 텐데… 이대로 가문이 넘어가야 한단 말인가? 아니야… 아니야…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아무렴. 절대로!?’

당문천은 앞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아무런 사물도 볼 수 없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장로 당경이 연이어 네 번을 부른 다음이었다.

“가주님!”

“어? 어… 무슨 일이냐?”

당경이 대답 대신 당황하는 표정을 짓자 그제야 자신의 실언을 깨달은 당문천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밀실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수정병을 들고 나왔다.

“나는 가지 않겠다. 확실히 끝내도록 하여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답을 한 당경은 가주의 모습 속에서 당가의 불안한 미래를 보는 듯해 마음이 답답했다. 사실 당경 스스로도 얼마나 불안한지 몰랐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네 번째 관문을 뛰어넘는다면 다음은 가주님의 차례가 아닌가.’

그것이 문제였다. 원래 마지막 다섯 번째 관문은 당가의 가주가 상대와 마주 앉아 서로의 몸에 지닌 독기를 서로에게 복용토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형지독까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라면 그런 경지에 이른 자와 어찌 대적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 이르면 좋게 당가를 넘기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 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당경은 당문천이 그랬던 것처럼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최고의 보물인 무형지독을 앞에 두고서 말이야. 그 누가 있어 벗어날 수 있겠느냐. 그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당경은 무형지독을 들고 독접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자리에 앉자 팽팽한 긴장감이 내전을 휩쓸었다. 잠시 후 침묵이 감돌았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 시간을 마치 억겁의 시간처럼 느끼는 건 비단 당경뿐만은 아니었다.

당경이 입을 열었다.

“네 번째 관문이오. 규칙대로 어떤 독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겠소이다. 이 독은 무형지독으로 본가의 최고의 독이라 할 만하외다. 귀하의 능력이 얼마나 고명한 것인지 판가름해 줄 것이오.”

당경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일직선으로 뻗어가지 못하고 틈틈이 갈라지며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마음을 다그치며 똑바로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표영은 당경이 내려놓은 수정병을 바라보고 안색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묘강뇌신충을 대할 때도 거리낌이 없었던 표영이 아니던가.

‘이제까지의 독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서운 독이구나.’

표영은 사부에게 배운 바 독의 이치를 떠올렸다.

‘사부님은 독이 지독하면 할수록 아름다움으로 치장한다고 했다. 수정병에 든 무형지독은 독이라고 부르기가 미안할 정도로 맑은 기운을 뿜어내고, 심지어 영롱함마저 깃들어 있는 것 같지 않는가. 얼마만큼이나 지독한 독일까?’

뒤쪽에 있던 능파와 능혼, 그리고 제갈호와 교청인도 바짝 긴장했다. 그들은 무형지독이 대체 얼마나 위험한 독극물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수정병을 꺼내고 그에 대해 설명하는 당경의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만 보아도 이번 독에 당가가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진정 당가의 모든 힘이 응집된 액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때를 가리키는 말이겠지.’

교청인은 마음을 다해 표영을 응원했다. 그녀는 방주가 당가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간직하고 있음을 함께하는 동안 다소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방주님은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이런 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

그녀의 마음으로 방주의 따스함이 전해오는 듯했다.

‘부디 방주님이 무사하시길…….’

당경은 당경대로 염려와 근심에 휩싸이고 능파 등은 표영의 안위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숨이 막힐 듯한 긴장 속에 드디어 표영이 수정병을 집어 들었다. 지켜보는 당경의 목젖이 크게 출렁거렸다. 사실 그로서는 지금 말을 해야만 했다.

-한 방울만 마셔야 하오.

하지만 그는 말을 집어삼켜 버렸다. 절대로 수정병에 담긴 무형지독을 다 복용토록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보물인 무형지독은 이것이 전부다. 이걸 다 마시기라도 한다면 상대는 확실히 죽일 수 있겠으나 가문의 보물이 날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만약… 이것으로도…’라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에 보물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표영은 수정병을 한번 들여다보고 뚜껑을 열었다. 역시 아무런 향도 맡을 수 없었다. 표영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엇을 머뭇거리는 거냐. 표영아.’

이윽고 입 안에 술 한 잔 걸치듯 털어 넣자 미끄러지듯이 무형지독이 목으로 넘어갔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표영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모두는 각기 다른 열망에 사로잡혔다.

당경.

‘자, 이제 피를 토해. 어서 토하라구! 그리고 눈이 녹아내리고, 혀가 썩어지며, 뼈가 흐물흐물해지는 거야. 어서. 어서!’

능파.

‘지존은 강하시다, 강하시다. 천마지체가 고작 무형지독 따위에 무너질 것 같으냐.’

하지만 어느새 능파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가고 있었다.

능혼.

‘아, 지존이시여. 200년의 염원과 마교군림을 위해 이겨 주소서.’

제갈호,

‘방주는 쉬운 길을 두고 참으로 힘든 길을 걸어가는구나. 비록 걸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 커 보이지 않는가.’

제갈호는 알량한 무공을 믿고 교만한 마음을 품었던 연약했던 지난 시절을 돌아보았다.

교청인.

‘제발… 제발…….’

모두의 염원이 더욱 간절해지고 있을 때 표영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이제껏 흑모환이나 독왕사, 그리고 약간의 반응을 보였던 묘강뇌신충의 때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당경의 눈에 작은 희열의 불꽃이 피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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