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96.
독접각 내전의 풍경은 단출했다.
특이한 것이라곤 좌우 벽면에 온갖 독물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엔 뱀부터 시작해서 전갈이며 지네,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독충들의 모습들이 세밀한 화법으로 벽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세상천지에 독물들이 이렇게 많았나?”
표영이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중앙에 놓인 탁자로 향해 그중 한 의자에 앉았다. 탁자 주위로 의자는 단 세 개밖에 없었기에 표영만이 의자에 앉았고 나머지는 모두 뒤쪽에 시립했다.
제갈호는 흑모환을 대수롭지 않게 집어 삼키는 방주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으로 나오게 될 독들을 과연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방주님, 괜찮으십니까?”
그 말에 표영이 ‘이까짓쯤이야’라고 말하려 할 때 능파가 제갈호의 복부에 주먹을 먹였다.
퍽∼
“네가 감히 지존을 무시하는 것이냐?”
고작 흑모환으로 지존에게 염려의 말을 전한다는 것은 지존을 무시해도 한참 무시한 것이라 능파는 생각한 것이다.
급작스럽게 일격을 맞은 제갈호가 허리를 숙이고 아픈 배를 어루만졌다.
‘아, 씨팔… 툭하면 주먹질이야.’
하지만 능파라고 무사할 순 없었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선 표영의 주먹이 능파의 턱을 갈겨 버린 것이다.
“어디서 함부로 주먹을 날리는 것이냐!”
바닥에 고꾸라진 능파가 번개같이 튕겨 일어섰다. 그 모습은 말 그대로 번개였다. 그는 어쩔 줄 몰라 머리를 조아렸다.
“속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만 방주님을 무시하는 발언을 듣다 보니…….”
그런 물고 물리는 모습을 보고 교청인은 고소를 머금었다. 해적들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처음 보게 된 방주의 해맑은 얼굴이 그녀의 머리에 교차되어 떠올랐다. 하는 짓이 좀 괴이하긴 해도 은근히 정이 가는 방주였다.
게다가 험악하기 이를 데 없고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안 가는 두 늙은이들을 애 다루듯이 하는 방주가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이 다니기는 하지만 방주는 은근히 멋지단 말이야.’
그러다가 풋, 하고 소리 죽여 웃었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해도 이런 자신의 변화가 우스웠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지금에 이르러선 방주와 함께 다니는 것을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도 한 것이, 전 사파를 거지로 만들겠다니 그런 걸 누가 생각이라도 하겠는가. 그런 발상 자체가 그녀에겐 신선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새에 독접각의 내전 문이 열리며 구충이 새로운 인물을 데리고 왔다.
“이 사람들입니다.”
구충의 말에 당통이 힐끔 쳐다보고 표영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당통은 당가의 가주 당문천의 사촌동생으로 사천독의라는 별호를 지니고 있는 자였다. 그의 독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비록 구충에게 말을 듣긴 했어도 표영을 하룻강아지 정도로 여길 뿐이었다.
“나는 당통이라고 한다. 흑모환을 통과했다니 예삿놈은 아니로구나.”
능파와 능혼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지존께 예삿놈이라니… 그래, 네놈의 이름이 당통이라 이거렷다. 네 이름을 기억해 두마!’
당통은 표영의 진면목을 모르니 아직까진 ∼놈에 불과했다.
당통이 말을 이었다.
“…흑모환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지. 고작 흑모환을 통과했다고 좋아할 것까진 없다. 음… 어쩌면 네놈은 흑모환에 죽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독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특징이 있거든. 칠공에서 피를 서서히 흘리다가 삼 일 후에 숨이 끊어지게 되니까 말이다.”
당통은 이 말을 뱉은 후 느긋한 표정으로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전례를 보건대 대개 이 정도 이야길 하면 누구나 긴장하는 낯빛이 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의 생각은 아주 큰 오산이었다.
“자자. 시간 끌지 말고 어서어서 합시다.”
표영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은 것이다. 당통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이런 개새끼를 봤나.’
당통은 속으로 씨부렁대며 들고 온 작은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 상자 안에는 독왕사가 들어 있다. 이번 관문은 바로 독왕사에 직접 물리는 것이다.”
그 말에 표영의 뒤쪽에 있던 일행들의 입에서 각기 침음성과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음…….”
“헉!”
침음성은 능파와 능혼에게서 나왔고 경악성은 제갈호와 교청인에게서 나왔다. 독왕사는 흑모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독을 지닌 뱀이었다. 뱀이 많기로 이름난 남만 지역에서 가장 지독한 놈이 바로 독왕사였다.
독왕사라는 이름은 어지간히 강호를 활보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그 무서움을 아는 것이었다. 당통은 중인들의 놀람에 가득한 소리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녀석들… 놀라긴.’
그때 표영이 가만히 소매를 걷어붙였다. 난 아무렇지도 않으니 여길 물게 하라는 뜻이었다. 소매가 걷어지자 때에 잔뜩 전 팔뚝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억!”
당통이 토해낸 소리였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옷을 걷어붙인 것을 보았건만 어찌 된 게 옷 색깔이나 피부 색깔이 전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이게 정녕 사람의 팔뚝이란 말인가.
‘내 살다 살다 이런 추접한 놈은 처음이다. 끙.’
원래 그는 소매를 걷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으려 했었다. 독이 빠르게 퍼지도록 가슴을 풀어헤치고 심장에 뱀의 이빨을 꽂아 넣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팔뚝을 본 후 차마 가슴을 열어보라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인상을 구긴 후 갈대 상자를 열어 독왕사의 머리를 빠르게 잡아챘다.
머리를 잡힌 독왕사가 사악한 눈을 번뜩였다. 긴장되는 순간, 뒤쪽에 있던 교청인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맞잡고 침을 삼켰다.
꿀꺽.
긴장감이 팽팽히 도는 상황이라 교청인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소리에 표영은 고개를 돌려 교청인을 바라보고 씨익 웃음을 날려주었다. 그건 마치 ‘염려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교청인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것이 방주의 마지막이 아니길…….’
능파와 능혼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일이 잘못되면 해독약을 빼앗을 생각으로 양손 가득 기를 응집했다.
‘만약 지존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오늘로 당가에서 목숨을 부지할 사람은 없을 줄 알아라!’
당통이 독왕사의 머리를 표영의 팔뚝에 가져가 살짝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독왕사의 사나운 이빨이 표영의 팔에 꽂혔다. 순식간에 위아래 네 개의 이빨이 절반이 넘게 박혀 버렸다.
“흐흐흐흐…….”
당통이 표영을 바라보며 음침한 미소를 흘렸다. 표영도 마주 보며 덩달아 웃음으로 답했다.
“하하하하.”
“어때? 견딜 만하냐?”
표영은 대답 대신 이빨을 박고 있는 독왕사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 척하며 살짝 손가락 끝으로 독왕사의 입가에 독을 발출했다. 지금 발출한 것이 무엇이던가. 독 중 제일 오극전갈의 독이 아닌가.
천하의 독왕사도 오극전갈의 독 앞에는 그저 어린애 놀음에 불과한 것이다. 독왕사는 비록 표영의 몸에 독을 주입하긴 했지만 곧바로 이빨을 빼고 고통에 겨워 쉬식거리며 몸부림쳤다.
당통은 독왕사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미쳤나. 왜 갑자기 난리야? 이 녀석도 너무 더러워서 괴로운 건가?’
독왕사는 사방으로 온몸을 비틀다가 당통의 손에서 끝내 최후를 맞고 말았다. 당통의 눈이 평소의 세 배로 확대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이게 어떻게……!”
그는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독왕사와 표영의 팔뚝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뒤쪽에 시립해 있던 능파와 능혼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며 잔뜩 끌어 모았던 기를 이완시켰고 제갈호와 교청인도 한숨을 돌렸다.
당통은 그제야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처음 흑모환의 관문을 통과한 것은 요행히 있을 수 있겠지만 독왕사의 독을 이겨낸 것은 요행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까지 팔뚝에는 독왕사의 이빨자국이 선명했고 붉은 선혈이 점점이 맺혀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한번 쓰다듬는 것으로 독왕사가 즉사해 버렸다는 점이다. 겉보기엔 그저 보잘것없는 거지처럼 보이나 실로 대단한 독공의 고수임이 분명했다.
“안목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소이다.”
짧은 시간에 그의 말투도 달라졌다.
역시 당가인들은 독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만큼 독공을 익힌 자에 대한 예우도 갖출 줄 알았다. 당통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물러났다.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시길 바라오.”
표영이 소매를 내린 후 수하들을 향해 너스레를 떨었다.
“잘 보았겠지? 너희들은 무언가 느껴지는 게 없느냐?”
즉시 능파와 능혼은 감동에 젖어 눈물을 글썽거리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참으로 훌륭하신 독공입니다. 방주님의 영명하신 능력에 속하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찌 위대하신 방주님 앞에 독왕사 따위가 위험을 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표영의 입에서는 전혀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잔소리 집어치워라. 너희들도 봤겠지만 말이야. 독사에게 물릴 땐 우리 몸에 지닌 때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는 법이다. 그놈 참, 이빨을 얼마나 박아대던지 때가 많지 않았다면 더욱 깊이 박혀 훨씬 따가웠을 것이다. 너희도 더욱 수련에 힘써 때를 많이 쌓아 이런 경우에 대비하도록 하여라.”
능파와 능혼의 얼굴이 돌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뭔가 그럴싸한 말을 기대했던 그들이었다. 능파와 능혼은 식은땀을 흘렸고 제갈호와 교청인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약 일 식경이 지났을 때 이번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거물급으로 보이는 두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들어서자마자 표영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과거 사부와 함께 있을 때 당가의 가주와 함께 온 장로들이었던 것이다.
‘저놈들은……!’
표영은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분노가 끓어올랐다. 사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기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장면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머저리 같은 놈아! 오극전갈을 어서 내려놓지 못해!”
“이런 거지같은 놈들!”
“찢어 죽일 놈 같으니라고. 감히 우리 일을 방해하다니!”
“저놈은 독에 당했으니 내버려 두어라. 지금 목숨을 끊어놓으면 편안히 죽음을 인도하는 것 뿐이잖느냐. 오랫동안 독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칠공에서 피를 뿌리고 죽도록 두는 편이 낫다.”
“저 미친 영감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클클클, 미친 영감탱이도 저대로 두어라. 미친놈이 무얼 하겠느냐. 오히려 동료가 죽은 것을 보고 더욱 미치게 만들어 주자꾸나. 클클클. 이만 가자.”
머리에서 그 당시 지껄이던 당가인들의 말이 윙윙거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복수는 이렇게 해선 안 된다! 진정한 복수를 위한다면 참아야 해!’
사부의 음성도 들렸다.
“개방의 법도는 오직 하나, 의를 숭상하라임을 잊지 말아라.”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절대 사사로이 힘을 쓰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던 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표영에겐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얼굴을 보기 전에는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건만 얼굴을 본 후로는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귓가에서 자꾸만 유혹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죽여 버려. 마음에 내키는 대로 하는 거야. 그들이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해주는 거야. 이건 잘못된 것이 아니잖아, 그럴 만한 힘도 갖추고 있지 않느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미 뒤쪽에 있던 능파 등이 괜찮으시냐며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만 표영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표영은 순간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분노를 갈무리하지 못하면 당가인들과의 대혈전이 벌어질 것이고 마음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심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또 다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비록 이들이 악행을 저질렀다고는 하나 그들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봐야 한다. 최선의 길은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이곳에 계셨다면 분명 참으셨을 것이다.”
사부님의 천진난만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자 이윽고 표영의 마음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후우∼.”
가만히 탁기를 내뱉자 진기가 유유히 흐르고 정신이 맑아졌다. 그제야 주변의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방주님! 방주님!”
“정신 차리십시오.”
“독에 중독되신 겁니까?”
“아무 말이나 해봐요.”
모두들 걱정스런 목소리였다. 한편에선 당가의 두 장로 당추와 당경이 탁자에 앉아 기이한 듯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독왕사의 독이 이제야 나타난 것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증상이 아니잖는가. 내가 보기엔 이분은 겁에 질린 듯허이.”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군.”
당추와 당경은 까닥 잘못했으면 목이 날아갈 뻔했다는 것도 모른 채 여유를 부렸다. 표영이 수하들을 안심시켰다.
“난 괜찮다. 갑자기 속이 더부룩해서 말야. 하하하.”
쾌활한 말투에 모두는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절정의 고수가 속이 좋지 않다고 심각해지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당장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모두는 일단 마음에 묻어두었다.
표영이 마음의 싸움을 끝낸 후에 고개를 들었기에 장로 당추와 당경은 비로소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둘의 눈썹이 거의 동시에 꿈틀하고 움직였다.
‘낯설지 않은 얼굴인데…….’
‘거지라… 어디서 본 것일까?’
둘은 명확히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들은 과거 오극전갈을 얻기 위해 몹쓸 짓을 한 것에 대해 그리 신중하게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정이 온전치 못한 이들은 원수의 얼굴은 잊지 않아도 은혜를 받은 자의 얼굴은 쉽게 잊는 법이다. 그들에겐 오극전갈에 대한 아쉬움은 가득했을지 몰라도 당시 볼품없게 보인 거지의 모습은 기억 저편에 아스라이 흐려진 상태였다.
물어보는 것이 빠르겠다 싶어 당추가 말을 건넸다. 거기엔 거만함이 가득 섞여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데 혹시 만난 적이 있소이까?”
표영이 똑바로 쳐다보며 냉담하게 뇌까렸다.
“잔말 말고 어서 독이나 내놔 봐라.”
박력이 철철 넘치는 말이었다. 그 말에 제일 좋아한 것은 능파와 능혼이었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싸늘한 말투에 둘은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지존다운 면모가 물씬 풍겨나는 한마디가 아닐 수 없었다. 갑작스런 반응에 ‘웬 거만이냐’는 투로 노려보는 당추와 당경에게 능파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야야, 귀가 먹었어? 방주님의 말씀을 허투루 듣는 것이냐? 어린놈들이 싸가지없기는.”
능파가 어린놈이라고 말한 것은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제까지 세월을 따지자면 거의 300년에 육박하는 나이이니 말이다.
당추가 콧방귀를 날렸다.
“흥, 독왕사의 독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냈다고 기고만장해진 것이더냐? 좋다.”
오는 말이 험하니 가는 말도 고울 리가 없었다. 당추가 품에서 주먹만 한 옥합을 꺼냈다.
“흐흐… 놀라지 마라. 이 안에는 들어 있는 것은 묘강뇌신충이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놀란다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뭘 알아야 놀라는 법이다.
표영은 뇌신충이 뭔지 알리가 없었기에 당연히 놀라고 싶어도 놀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묘강뇌신충이라는 말에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느긋하게 바라보던 당추와 당경은 상대가 여전히 꼬나보기만 하자 웃음을 싹 지웠다.
‘전혀 미동도 없지 않은가.’
‘대체 저놈의 정체가 뭐길래…….’
아무리 담대한 자라 할지라도 그 표정을 숨기려 할 때는 미세하나마 흔들림이 포착되는 법이건만 당추와 당경이 보기엔 거지 녀석은 전혀 아무런 격동도 없었다. 당가의 두 장로는 그나마 뒤쪽에 있던 네 명의 거지들이 경악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실제로 묘강뇌신충이라는 말은 놀랄 만할 가치가 충분했다. 그건 마치 심장을 바깥으로 꺼냈다가 다시 도로 집어넣을 정도의 놀라움이라 할 수 있었다.
묘강뇌신충이 무엇이길래 당추와 당경이 자신만만한 것일까?
묘강뇌신층은 번데기같이 생긴 작은 벌레다. 하지만 작은 벌레라고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배추벌레 수준으로 생각하는 건 미련한 생각일 뿐이다.
일단 묘강뇌신충이 몸 안에 들어가게 되면 곧바로 머리 쪽으로 이동해 뇌를 갉아 먹는다. 결국 복용한 자의 뇌는 충에 의해 서서히 파 먹히며 모든 신경이 마비되고 끝내는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 당가에서도 소중히 여기는 독물이라 할 수 있었다. 당가에 독으로 도전하는 자들 중 태반이 세 번째 관문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 일부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중도 포기하기도 한 과정이었다.
당추가 옥합을 열자 비단에 감싸인 시리도록 흰빛을 발하는 벌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매우 작아 새끼손가락 한쪽 마디에 불과할 정도였다.
“흐흐흐… 정녕 원치 않는다면 지금 포기해도 좋다.”
당추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만일 그만두겠다면 팔 하나 정도는 떼놓고 가는 성의는 보여야 할 것이다.”
이 말은 괜히 하는 말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도전자 중엔 묘강뇌신충을 접하고 포기한 자가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강호 무림인들 중 외팔이가 있다면 어쩌면 그는 당가에 독으로 도전했다가 뇌신충의 관문에서 포기한 자는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표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조금 특이하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 두려움 따윈 없었다.
“허허, 벌레 한 마리로 내게 겁을 주겠다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