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5장 (96/199)

 # 95

95.

“허허… 참…….”

문언이 마른하늘을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주화랑은 땅이 꺼져라 탄식했다.

“정말 세상 더럽게 변해가는군. 이거 너무하는 거 아냐.”

두 사람이 어이없어만 할 뿐 당장에 쫓아내지 못한 것은 당가에서 내세운 하나의 규칙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매우 파격적이었고 또한 유혹적이었다.

-독으로 맞서려는 자는 언제든지 다섯 관문에 도전하기 위해 찾아와도 좋다.

-다섯 관문을 넘어서는 자, 사천당가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사천당가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쳐도 말이 그렇지 누가 미쳤다고 극독을 먹겠다고 나서겠는가.

물론 간혹 독에 자신이 있다는 이들이 찾아오긴 했지만 이제껏 어느 누구도 살아 돌아간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이들이 아주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다섯 관문의 독을 통과하면 당가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유혹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문언과 주화랑이 생각하기엔 이렇듯 거지들이 찾아온 것은 조금 너무한 듯싶었다. 찾아오는 이들은 어느 정도 강호에 명성을 날리는 무사들이었지 대책없는 거지 떼들이 자살하기 위해 달려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칫 이것이 소문이라도 나면 자살하려는 이들이 모두 몰려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문언과 주화랑은 찜찜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이번 기회에 아무래도 가주님께 말씀드려서 규칙을 변경토록 해야 되겠다. 이대로 두었다간 나중에 떼거리로 달려드는 자살하려는 녀석들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문언은 일 년 전 객기를 부리며 찾아온 수라도객 마환을 떠올렸다. 그가 처음 당가에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기세등등했던가.

하지만 마환은 가주까지 이르는 데 필요한 다섯 관문 중 두 번째 관문에 이르러 한 줌의 혈수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 이름 꽤나 알려진 마환이 죽고 난 다음에는 귀찮게 하는 이가 없었는데 이번에 느닷없이 거지 떼들이 찾아온 것이다.

“휴우∼.”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거지들아, 좋다. 내 이번에는 그냥 곱게 보내줄 테니 택도 없는 소리일랑 집어치우고 어서 돌아가도록 해라. 아, 나 정말 사람 많이 좋아졌네.”

그 말에 표영이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안녕히들 계십시오’하고 물러설 리가 없었다. 표영의 허리춤에서 타구봉이 빠져나오더니 번개를 방불할 정도의 속도로 문언과 주화랑의 마혈을 찍어버렸다.

파팟.

둘은 눈을 깜박일 정도의 짧은 시간에 온몸이 마비되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충격에 휩싸였다. 뭐가 지나가긴 한 것 같은데 어느새 혈도가 찍힌 것이다.

그들은 방금 스쳐지나간 것이 무엇인가를 살피다가 표영의 손에 들린 검은 막대기를 보았다.

‘저것이 지나간 것인가? 보, 보지도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표영의 곁에 있던 능파 등은 뭐 당연하다는 듯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표영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자, 어때? 이 정도면 독공을 겨루어도 되겠지?”

문언과 주화랑은 눈을 붕어처럼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금 표영의 타구봉이 날았다. 문언과 주화랑은 몸에 미세하게 뭐가 지나간 듯한 느낌을 받은 후 혈이 풀렸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에 마혈이 아닌 사혈이 찍혔다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비명횡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껏 자신들이 봐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속으로 얼마나 가소롭게 여겼을 것인가. 둘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가 다녀오겠네.”

문연이 주화랑을 보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주화랑도 달리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렇게 하게나.”

“조, 좋소이다. 나를 따라오시오.”

아까까지 동네 개에게 말하듯 내뱉던 말투가 싹 달라졌다. 그들이 아까 말하려고 했던 ‘그렇게도 빨리 죽고 싶은 거냐? 관은 미리 짜놓은 것이겠지?’, ‘미련한 놈들, 태어나는 것도 스스로 좋아서 태어난 것이 아닌 만큼 죽는 것도 하늘의 명을 따라야 하건만 알아서들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려 하다니’라는 말들은 머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표영은 이제야 말이 통하자 부하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하하, 가자.”

능혼은 뒤를 따르며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교주님이 하는 일들은 너무도 부드럽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마교는 원래 이런 방식으로 일을 풀지 않는다.

원래대로 하자면 닥치는 대로 부수고 죽여 처절한 맛을 보여 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계신 것이 그에겐 더욱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지존은 모든 인간 중 가장 잔인함을 타고났다는 천마지체가 아니시던가. 이렇게까지 심기를 드러내지 않으시고 웅크리시다니……. 과연 나중에 그 살심이 폭발하면 어떻게 될까.’

철썩같이 표영을 천마지체를 타고난 지존으로 믿고 있는 능혼은 도리어 이런 표영의 모습에 공경과 두려움이 동시에 일었다. 극도의 자제력, 자신마저 속이는 철저함…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그에 비해 제갈호와 교청인은 그런대로 표영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니, 잘 이해한다기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겪어본 방주는 하는 일마다 말도 안 되는 것들을 한다고 덤벼들었지만 그때마다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도무지 씨도 안 먹힐 것 같은 일들이 방주에게 이르면 요상하게 들어맞거나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되겠지. 나도 모르겠다.’

‘당가도 불쌍하지… 어쩌다 방주와 원수를 맺었노.’

각자 이런저런 생각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당가의 정문에 이르게 되었다. 대문 위로는 큰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 용이 승천하는 듯한 필치로 새겨진 글귀가 눈에 띄었다.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 독중지왕(毒中之王) 암전신화(暗箭神話).

그 필체 속에는 독과 암기에 있어서 천하제일가라는 자부심마저 새겨 넣은 듯 예리한 기상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제갈호와 교청인의 얼굴이 조금은 무거워졌다. 암기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간다고 해도 독에 관한 한 현재 강호에서 당가는 오독문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터다. 괜히 독으로 천하제일가라 하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잘되겠지. 암, 또 잘되어야만 하지.’

모두가 정문에서 9장(약 30미터)정도에 이르렀을 때 문언이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시오.”

정문으로 걸어간 문언은 중앙 수비대의 수장이랄 수 있는 구충에게 다가갔다. 옷 중앙에 독사의 형상을 그려 넣은 황색 무복을 입은 구충이 먼저 말을 걸었다.

“문언, 무슨 일인가?”

그의 말뜻은 웬 떨거지들을 데려왔느냐는 질문이었다. 문언은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아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구충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뭐라고? 이 거지들이 대단한 고수라고?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지? 어떻게 저런 놈들에게 독을 사용한단 말이야! 자넨 독이 남아도는 줄 아나?!”

구충의 역할은 정문의 수비를 담당함과 동시에 독의 다섯 관문 중 첫 번째 관문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문언과 친분이 깊다 해도 그로선 말을 다 믿을 수 없었다. 표영 일행의 꼬락서니를 보아서는 어느 누구도 구충과 다름이 없으리라.

현재 구충은 거지들의 목숨보다 독을 낭비하게 될 것이 더 걱정이었다.

“일장에 쳐 죽여 가만히 야산에 묻어버리면 될 것 가지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야 되겠는가 말일세!”

“이보게, 구층! 보통내기들이 아니라니까. 내가 지금 할 일이 없어서 이런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나?”

이렇게까지 말하는 문언의 말에 구충도 더 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허허, 참…….”

문언은 구충의 표정을 살피고 이제 됐음을 알았다.

“그럼 그렇게 알고 나는 이만 가 보겠네.”

문언은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자못 궁금해 지켜보고 싶었지만 자신이 맡은 임무가 있기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리에서 어쩌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쳐들었다. 그때 매복 장소로 돌아가는 그의 귓가로 구충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야, 문언! 이번뿐이다! 다음번에 또 이상한 놈들 데려오면 넌 내 손에 초상 치를 줄 알어! 알겠어?!”

구충은 방방 뛰며 고함치다가 거지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뻘줌하게 서 있던 표영은 구충이 쳐다보자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이!”

구충은 느닷없는 반응에 십 년 전에 먹은 만둣국이 넘어올 것만 같았다.

‘환장하겠네. 참나… 어쩔 수 없지. 정말 오랜만에 송장 치르게 생겼구나.’

“야. 거지새끼들! 이리로 와라!”

구충은 아까 문언이 대단한 고수라고 말했지만 아직도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거지 중의 고수라면 개방을 가리킴인데 지금의 개방은 저런 몰골을 하고 다니지 않으니까 말이다.

강호의 고수들 중 추잡하고 더럽게 다닌다는 사람은 결단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표영 일행이 정문 앞에 이르러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구층이 팔을 쭉 뻗어 가로막았다.

“아무나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네놈들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면 그때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구충이 가소롭다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말할 때 어느 샌가 그 주위로 당가의 여러 호위 무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얼굴엔 따분한 가운데 좋은 구경거리를 발견했다는 표정이 다분했다.

구충이 품을 뒤져 작은 보자기에서 손톱 크기만 한 독약 하나를 집어냈다.

“네놈들 중 누가 도전하겠느냐?”

“내가 먹겠다.”

“흥, 좋다. 먹기 전에 어떤 독약인지 알고나 먹고 죽어라. 이 독약은 흑모환이라는 것으로 흑모사의 이빨에서 뽑아낸 것인데… 어엇!”

구층이 놀란 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표영이 손으로 낚아채 흑모환을 입에 집어넣어 버린 까닭이었다. 표영은 귀찮게 이것저것 설명을 들을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구충과 주변에 모인 무사들이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아주 죽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 송장은 함께 온 네놈들이 치워야 해. 알겠어?”

“완전히 미친놈이로군.”

“요즘 거지들 문제야, 문제.”

구충을 비롯한 호위 무사들은 거만하게 떠들면서 곧이어 거지 한 마리가 땅바닥을 뒹굴 것이라 상상했다.

‘어라?’

구충이 입을 쭉 내밀었다. 이제나저제나 나자빠질 것을 기다렸지만 죽어야 할 만한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구충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야! 어서 죽어! 이젠 죽어야 하는 거야! 원래 이것 먹고 나면 죽어야 한다니까! 자자, 귀찮게 하지 말고 얼른 죽으란 말야!”

하지만 여전히 표영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구충과 호위 무사들의 표정은 서서히 떨떠름하게 변해갔다.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구 나리, 혹시 독이 변질된 것 아닙니까?”

“혹시 해독약을 건넨 건 아닌지요?”

실제 독이 변질되었다거나 해독제를 잘못 알고 건넸을 리는 만무했다. 함께 보자기에 쌓아두고 거기에서 하나를 끄집어낸 것이지 않던가. 하지만 문제가 생긴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때 표영이 한마디 던졌다.

“입에 쓴 것이 몸에도 좋다고 하더니만 몸이 아주 개운해지는걸.”

구충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로선 표영이 만독불침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보잘것없는 거지가 독을 이겨낼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독약을 잘못 주었거나, 혹은 제조하는 과정에서 불량이 났을 리는 만무했지만 억지로 그런 것일 거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래,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이 보자기 안에 든 것은 흑모환이 아니거나 잘못된 걸 것이다. 이럴 리가 없어, 암. 그렇고말고.’

구충은 급기야 자신이 직접 시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품에서 흑모환 한 알을 꺼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아무래도 약의 효능상 문제가 생긴 것이라 단정 지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엄청난 후회 속에 빠져들었다. 독기가 싸하니 몸으로 퍼졌고 몸이 부들부들 떨려온 것이다.

‘허걱! 씨발… 이거 진짜잖아!’

그는 덜덜 떨며 양손으로 모가지를 움켜쥐었다.

“크헉… 으억…….”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지는 것 같았다. 옆에 있던 호위 무사들이 기겁하며 달려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정신 차리세요!”

“독에 당하신 겁니까?”

구충은 대답할 여력도 없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두 무릎을 바닥에 꿇은 채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함께하던 호위 무사들로서는 이 긴박한 상황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우왕좌왕거렸다. 해독제는 구충만이 가지고 있었기에 구충의 품을 뒤져야 했지만, 구충이 자신의 한 손으로는 목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은 사정없이 흔들어대는 통에 가까이 가기도 힘들었다.

급기야 구충은 목을 움켜쥐던 손을 힘겹게 움직여 가슴을 뒤져 품에서 해독약을 꺼냈다. 하지만 꺼냈다고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 해독약이 있었지만 손이 점점 마비되어 가는지라 입으로 넣는 것이 또한 큰 곤욕이었다.

그는 부들부들 떨며 해독약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제껏 수없이 많은 음식들을 먹어봤지만 이번만큼 오래 걸려 입에 넣어 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다행히 아직 죽을 때가 아닌지 끝내 구충은 입 안에 해독약을 넣을 수 있었다.

효과는 당장에 나타났다.

독이 중화되는지 마비된 몸이 서서히 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헥헥헥……!”

구충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가늘게 실눈을 뜬 그의 시야에 여러 사람들이 보였다. 당황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수하들, 그리고 그 앞으로 다섯 명의 거지들이 퀭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대낮부터 지랄하네, 미친놈.

낯짝을 들기 힘들 만큼 창피했지만 지금 입장에서는 살고 봐야 하는지라 그런 생각은 사치였다. 일다경(15분) 정도가 지나 구충은 해독제가 온몸에 퍼지고 독기가 사라진 것을 감지한 후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마 조금만 늦었더라도 비명횡사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져 거지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젊은 거지는 마치 간식 먹듯이 흑모환을 먹었건만 내 이 무슨 꼴이람.’

더불어 그의 눈엔 젊은 거지와 그 일행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문언이 숨은 고수들이라고 말한 것을 믿지 않은 것이 이제야 후회됐다.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일행을 바라보고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험험험… 허허허험∼ 카칵∼”

과도하게 헛기침을 하는 바람에 가래가 끌어올라 목이 턱 막혀 또다시 꼴불견을 연출했다.

“한심한 놈, 아주 지랄을 하는구먼, 지랄을 해.”

능파였다.

아까부터 한마디 하고 싶었는데 참고 있다가 이번에 목이 막혀 캑캑거리는 것을 보고 한소리 쏘아붙인 것이다. 옆에서 듣던 표영이 손을 치켜들었다. 능파는 ‘아, 또 한 대 맞겠구나’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표영의 손은 부드럽게 내려와 능파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하하, 능파. 이번에는 아주 적절한 말이었다. 아주 좋았어.”

“감사합니다, 교, 아니, 방주님.”

아직까지도 방주라는 말에 길들여지지 않은 능파가 기쁜 나머지 교주님이라고 할 뻔하다가 말을 얼른 바꿨다.

구충은 비록 조롱 섞인 말을 들었지만 실제로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행동이었던지라 사납게 대항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험험험… 음, 첫 관문은 요행히 통과했구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이오.”

구충의 말투도 문언이나 주화랑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새 진지해져 있었다.

그것은 독공의 고수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다. 구충은 일행을 정문 안으로 들였다. 첫 관문을 통과하고 당가에 들어선 일행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리저리 작은 통로들과 여러 전각들이 규모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또 어디에선가는 약을 달이는 듯한 냄새가 전해왔다.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독접각이란 현판이 붙은 곳에 구충이 일행을 인도하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곧 두 번째 관문을 시험할 분이 오실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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