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3장 (94/199)

 # 93

93.

“뭐냐, 이거… 아무도 없잖아.”

표영이 해왕도에 도착한 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황당하다는 듯 손패를 향해 물었다. 손패는 괜히 송구스러움에 젖어 머리를 조아렸다.

“방주님, 이곳은 해왕도가 틀림없습니다만… 아마도 모두 작업을 나갔나 봅니다.”

표영이 고개를 끄덕이고 능혼을 불렀다.

“음… 능혼!”

“하명하십시오. 방주님.”

“자갈과 청인과 함께 섬을 샅샅이 뒤져 혹시 남은 자가 있는지 찾아와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잠시 후 능혼 등은 네 명의 해적을 잡아왔다. 능혼과 교청인이 한 명씩 들고 제갈호가 두 명을 들쳐 메고 달려와 내려놓았다.

표영이 바닥에 누워 있는 해적 중 하나에게 물었다.

“창룡방주는 어디에 있느냐?”

“나는 모른다. 이놈들아, 차라리 날 죽여라!”

역시 본거지라서 그런지 앞서 선참도와 중해도에서 보아온 해적들과는 상태가 달랐다. 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 의리가 깊구나. 사나이는 의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지. 좋다.”

말을 한 해적은 욕을 하고 의리가 있다는 칭찬을 받자 괜히 우쭐해졌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고 의리가 있는 자는 의리를 아는 자를 아끼는 법이다 그는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영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넌 의리가 있으니 그냥 죽어라. 자자, 그 옆에 있는 해적에게 물어볼까?”

“커억!”

처음 강하게 말했던 해적의 심장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대수롭지 않게 죽이겠다고 하자 괜히 세게 나갔다는 생각이 들며 후회가 밀려들었다.

“아까 한 말 취소입니다요. 저 의리 없는 놈입니다. 제발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정신이 없을 정도로 자신은 의리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자 두 번째 지목된 해적이 반발했다.

“야, 새끼야! 왜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냐! 내가 말할 테다!”

둘은 옥신각신하며 서로 말하겠다고 난리를 떨었다. 혈이 제압당한 채 바닥에 꼼짝 않고 누워 말싸움하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아주 꼴값을 떨어라, 꼴값을 떨어.”

표영이 타구봉을 꺼내 둘의 머리를 갈긴 후 물었다.

“어디로 갔는지 빨리 말해.”

“방주께선 전 수하를 이끌고서 야유회를 떠나셨습니다.”

“음… 그래, 우리도 그곳으로 간다.”

표영은 그들 중 한 명을 데리고 창룡방주를 찾아 나섰다. 배는 타고 온 것을 두고 해적들의 배 중 큰 배를 타기로 했다. 조금은 속도를 더 높이기 위함이었다.

얼마나 갔을까 대략 밥 한 끼 할 시간이 지나 멀리 커다란 범선이 눈에 띄었다.

“저 배입니다.”

“가까이 붙여라.”

가까이 근접한 가운데 해적선의 면모가 드러났다.

전면에는 큰 해골 모양을 달고 있었는데 배 위에서 흥청망청 해적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어 배가 가까이 다가가도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같은 동료들이 온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배가 약 5장(17미터) 가까이 붙게 되었을 때 표영과 그 일행의 신형이 해왕선으로 날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해적들은 웬 떨거지들이 왔냐는 표정으로 동작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배 중앙에는 큼직한 의자에 창룡방주로 짐작되는 이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는 좌우로 여인들을 껴안고 껄껄껄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공염으로 용모를 살펴보자면 두목답게 장대한 기골을 갖추었고 특이하게도 눈이 붕어처럼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거기, 붕어 눈. 네가 두목이냐?”

표영의 말에 창룡방주 공염이 붕어눈을 더욱 부라리며 노려봤다.

-뭐 하는 미친놈들이냐?

그는 특이하게도 전음으로 되물었다. 그 전음은 조금 특이했는데 그건 대게 전음이 일 대 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데 비해 표영 일행에게 모두 들리게 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절정의 고수들 중에서도 어려운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표영 등은 자신에게만 이야기가 들리는 줄 알고 각자 답했다.

“보면 모르냐? 우린 거지다.”

“알 것 없어, 자식아.”

“진개방이다.”

“후후후.”

“누굴 보고 미친놈이라고 하는 게냐!”

일제히 답한 후 표영을 포함한 다섯은 서로를 돌아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라? 전음이 다 들린 건가?”

표영의 말에 여유를 갖고 있던 능혼도 긴장하는 눈빛으로 변한 채 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역시 두목답게 한가락 하는군.”

다시 공염의 전음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거지면 거지답게 놀 것이지 죽고 심어 안달이 난 게로구나.

공염이 수하들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일제히 해적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표영 일행에게로 달려들었다.

대략 200여 명 정도가 되는 해적들이 모두 칼을 뽑아 들고 개미 떼처럼 몰려들었지만 대부분 손이 뻗어가는 대로 칼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바닥에 드러눕는 상황이 펼쳐졌다.

공염의 얼굴이 삽시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과연 이들을 이런 방법으로 물리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를 계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정도의 고수들을 물리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들이 찾아왔단 말이냐! 음… 이들과 정면으로 승부해서는 결코 득 될 것이 없겠구나.’

공염은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것은 창룡방에서 통하는 암호 같은 것으로 어떤 적이냐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들을 나타냈다. 길게 휘파람이 이어지는 것은 최후의 수단을 펼침을 의미했다.

모든 해적들은 안 그래도 불나방처럼 상대에게 다가가 쓰러지고 있던 차에 모두들 몸을 빼 뒤로 물러섰다.

표영은 이것들이 이제 항복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다시 공염의 손이 올라갔다. 그러자 청의를 걸치고 있는 10여 명이 품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일행 주변에 주먹만 한 검은 덩어리를 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공염을 비롯한 모두가 일제히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건 또 뭐야?’

항복도 아니고 냅다 도망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주먹만 한 덩어리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콰광∼!

배가 산산조각 나듯이 부서지고 무너져 내리면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다행히 표영 등이 몸을 날려 폭발에 휩싸이지 않았지만 바다에 빠지는 것만은 면하기 힘들었다. 해적 두목 공염이 택한 방법은 수중전이었던 것이다. 그는 육지라면 몰라도 바다 속이라면 고수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대적할 자신이 있는 터였다.

표영은 여태껏 근본 물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던 터라 물에 빠지자 순간 당황했다. 몸을 떠올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몸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침착해야 한다, 표영. 생각하자, 생각…….’

마음을 가다듬으며 일단 몸을 물에 맡겼다. 몸이 쭉 내려가는 가운데 눈을 감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했다.

‘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것까진 없구나.’

물에 들어가 있었지만 호흡이 가쁘지 않자 일단 마음이 놓였다. 내력이 충만하고 한 모금의 호흡만으로도 숨을 쉬지 않아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던 것이다. 눈을 뜨고 바다 안에서 몸을 움직여 보았다. 다리를 젓자 몸이 쭉 뻗어갔다.

표영이 어느 정도 물에 적응하게 되었을 때 해적들의 수중 공격이 가해졌다. 유달리 많은 해적들이 표영에게 달라붙었는데 그건 바로 건곤패 때문이었다.

건곤패는 물에 닿으면 청광을 발하는데, 빛이 번지는 것을 보고 달려든 것이다. 다리를 저으며 손을 위로 뻗고 수면 위로 올라가려 할 때 옆구리 쪽으로 물의 파동이 느껴졌다.

눈을 돌려보니 어느새 뾰족한 창 같은 것이 막 찔러 들어오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크.’

표영은 급하게 손을 들어 작살을 잡았다. 작살은 아슬아슬하게 옆구리에 닿기 직전에 잡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이번에는 사방에서 10여 개의 작살이 뻗어왔다.

‘이런!’

마땅히 피할 방향이 없었다. 그 순간 한 가지 방법이 머리를 스쳤다.

표영은 피하려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문 채 전신의 기를 운용해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몸에서 뻗어 나간 호신강기는 유형의 막을 형성하며 타원형으로 물을 밀어냈고, 작살은 타원형의 공간을 뚫지 못하고 맥없이 힘을 잃고 떨어졌다.

그 광경은 실로 신비할 지경이어서 작살을 날린 해적들은 놀라지 않는 자가 없었다. 표영은 계속 이렇게 물속에 있다가는 결코 좋지 못한 일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먼저 두목 녀석을 잡아야겠다.’

해적들은 어느새 근처에 이르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표영은 몸을 수직이 되게 하고 손을 위로 쭉 뻗어 수면 위로 올라가려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위쪽에서 뭔가가 덮쳐 오는 것이 아닌가. 표영은 얼른 손을 들어 걷어내려 했지만 그것은 넓게 퍼져 몸을 감싸듯이 휘감아 버렸다.

‘이크! 이거 뭐야?’

그것은 그물이었다. 해적들은 수중전에 탁월한 재주를 지녔는데 강한 고수를 만났을 때 대적하기 위해 특수하게 만든 연환망이었다. 연환망은 총 세 겁으로 이루어져 있고 고래 힘줄로 만들어진 것이라 쉽게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표영은 급한 마음에 사방으로 장력을 발출해 보았지만 물보라만 일으킬 뿐 그물을 어찌할 순 없었다. 게다가 손으로 잡고 뜯어내려 해도 물속이라 크게 힘이 작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심하게 몸부림친 결과 그물만 촘촘히 몸에 감겨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나치게 호신강기를 일으키고 그물을 끊어내려 힘을 쏟다 보니 이젠 호흡이 가빠져 숨까지 막혔다.

‘으읍… 읍… 아… 이게 아닌데…….’

더 이상 숨이 남아 있지 못하게 되자 코로 물이 들어왔다.

꼬르륵-

“으읍… 아아압…….”

작게 벌린 입이었지만 그사이에 물이 거침없이 밀려들었고 식도를 타고 몸에 가득 들어찼다. 잠시 후 표영은 물을 가득 먹고 바다 속에서 그물에 갇힌 채 부영초처럼 맴돌았다.

해적들은 이미 표영의 숨이 다한 상태인 것을 보았음에도 여전히 물에서 건지지 않았다. 워낙에 초절정의 무공을 소유한 것을 보았기에 확실하게 목숨을 끊어놔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약 한 식경 정도를 지켜본 후 그제야 그물을 끌어 올렸다.

창룡방주 공염과 그의 부하들은 표영이 타고 온 배에 올라와 있었다. 배 한가운데에는 표영과 능혼 등이 숨도 쉬지 않은 채 아직까지 그물에 뒤덮여진 상태로 놓여졌다. 공염이 낄낄낄 웃으면서 전음으로 옆에 있는 수하에게 명했다.

-저놈들의 팔다리를 잘라 고기밥이 되게 해 주어라. 흐흐흐…….

‘녀석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까부는 것이냐. 제아무리 무림고수라 해도 이곳은 바다가 아니더냐. 감히 바다의 왕인이 공염 앞에서 재주를 부리다니.’

명령을 받은 수하들이 재밌겠다는 듯 팔다리를 끊어버리려 그물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들이 칼을 들어 몸을 썰어버리려 할 때였다.

“방주님! 어디 계십니까?”

뒤쪽에서 큰 외침이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능파였다. 능파는 해왕도까지 헤엄쳐 도착한 후 거기 있는 해적 잔당을 족쳐 함께 배를 타고 일행이 간 곳으로 쫓아온 것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었다.

능파는 두 척의 배가 보이는 가운데 커다란 배 한 척이 거의 머리 부분만 남겨두고 바다에 잠긴 것을 보고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아직 가까이 이르기도 전에 큰 소리로 물어본 것이었다. 해적 두목 공염과 그 수하들이 일제히 다가오는 배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 누구냐? 너는 창룡방의 형제냐?”

들려오는 말에 능파의 간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저놈들이… 그럼 지존께서는 어찌 되신 것이란 말이냐!’

능파는 마음이 다급해져 배의 갑판을 장력을 날려 뜯어낸 후 바다에 띄웠다. 한달음으로 배에 옮겨 타기엔 거리가 먼지라 나무판자들을 밟고 배로 이동할 생각을 한 것이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세 조각의 판자를 뜯어낸 능파는 삼등분을 해 배와 배 사이로 판자를 날렸다. 그리고 지체할 것 없이 신형을 날렸다.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솟구쳐 오르다가 힘이 다해 떨어졌는데, 그 지점엔 정확히 나무판자가 놓여 있었다. 능파는 발로 판자를 밟고 판자가 물에 쑥 하니 들어가는 순간 다시 그 힘으로 튕겨 몸을 솟구쳤다. 그러길 두 차례를 반복한 후에 번개같이 배에 올라섰다.

이 광경은 실로 해적들의 눈으로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라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표영과 일행의 팔과 다리를 자르려고 했던 이들도 모조리 얼이 나가 구경하기 바빴고, 능파가 배에 올라선 후에도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능파의 시선이 배 한가운데에 꽂혔고 그와 동시에 그의 입에서 형용하기 힘든 괴성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보이는 게 없었다. 능파는 허겁지겁 달려가 그물 안에 갇힌 지존을 살폈다. 몸이 싸늘하게 굳어진 것이 숨도 쉬지 않았다. 능파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해적들을 바라보면서 악귀처럼 부르짖었다.

“이런… 개 같은 새끼들을 봤나! 모조리 다 죽여 버리겠다!!”

능파의 눈이 혈광으로 물들며 몸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능파는 한 가닥 희망을 떠올렸다.

“여기 두목이 누구냐? 누구냔 말이다!!”

능파의 눈이 공염에게 꽂혔다. 두목임을 알아본 것이다. 살기를 동반한 채 신형을 날릴 때 나름대로 무공에 자신이 있다는 해적들이 칼을 들고 능파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상황에서는 가히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퍼펑- 퍼펑-

능파는 칼을 쳐다보거나 피하지도 않고 손을 쭉 뻗어 해적들의 머리통을 장력으로 날려 버렸다. 두 명의 해적의 머리가 목 위에서 형체를 잃은 채 사라져 버렸다. 머리가 날아가는 통에 미처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두 명의 해적이 순식간에 죽자 더 이상 다른 이들은 달려들 엄두를 못 냈다.

어느덧 공염 앞에 이른 능파가 그의 심장에 손을 얹었다. 공염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지 오래였는데 심장에 손이 닿자 싸늘한 고통이 온몸에 퍼짐을 느꼈다. 그의 귓가로 다시 능파의 말이 들렸다.

“너희들의 목숨을 부지하려면 저기 모두를 살려내라. 만약에 단 한 사람이라도 살려내지 못한다면 너희 모두의 몸을 산 채로 씹어 먹어버리겠다!”

악귀와 같은 모습과 함께 살기 어린 목소리에 해적들은 덜덜 떨며 분주히 움직였다. 그들은 급히 그물을 제거하고 서둘러 응급조치를 취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들은 모두 이런 구조 방법에 능통하다는 점이었다. 잠시 후 물을 토해내는 소리가 연신 들리며 하나둘 숨이 돌아왔다.

이들 중 제일 먼저 깨어난 것은 능혼이었고 다음으로 표영, 그리고 제갈호와 교청인과 손패가 거의 동시에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도 기도에 물이 가득 찼던 까닭에 모두는 연신 토악질을 해대며 힘들어했다.

깨어나는 모습을 보며 능파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것도 잠시, 지존께서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자 열이 솟구쳐 견딜 수 없었다. 다시 능파의 주먹이 공염의 배에 꽂혔다.

퍽.

“크악! 살려뚜세요!”

어찌나 통증이 심했던지 이제껏 전음으로만 이야기하던 공염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벙어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능파는 ‘살려주세요’가 아니라 괴상하게도 ‘살려뚜세요’라고 하는 말에 다시금 열이 뻗쳤다.

“네 녀석이 이 판국에 장난을 하겠다는 것이냐!”

능파는 화가 치밀어 이번에는 공염의 오른손을 잡고 다섯 손가락을 모두 부러뜨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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