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8장 (89/199)

 # 88

88.

“음, 훌륭하다. 그런 정신이 바로 우리 진개방을 살찌우고 번영케 하는 기틀이 되는 것이다. 내 너희들에게는 특별히 더 많은 시간을 수련토록 배려하겠다.”

만첨과 노각의 눈이 감동으로 일렁였다.

“감사합니다. 방주님.”

표영이 이번에는 교청인을 보고 말했다.

“청인! 너도 아직 부족한 것 같은데 만첨이나 노각처럼 특별 수련에 참여하는 것이 어떠냐?”

교청인이 깜짝 놀라 손을 가로저었다.

“네? 저요? 아… 저는 됐어요. 그냥 이대로가 좋은걸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음, 그래? 내가 보기엔 좀 부족한 것 같은데. 좋다, 언제든지 부족하다 느끼면 이야기하도록 해라.”

표영이 이번엔 제갈호를 바라보자 제갈호는 얼른 눈을 내리깔고 손가락으로 땅을 열심히 긁느라 정신이 없었다.

‘음, 저놈도 별로 특별 수련에는 관심이 없나 보군. 쩝.’

“좋다. 먼저 5단계까지의 수련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간략하게 설명토록 하겠다. 험험, 1단계는 영약을 복용하는 과정으로 하루 세 끼 식사 대신에 영약으로 배를 채우도록 한다. 이때 특별 수련을 받게 될 만첨과 노각은 영약 다섯 끼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 험험험, 2단계는 뇌려타곤을 연마하는 것으로 이 과정을 통해 호신강기를 형성하고 끝내 환골탈태를 이루게 될 것이다. 2단계를 지나게 되면 비로소 어느 정도 진개방의 일원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다고 할 수 있느니라.”

만첨과 노각은 영약을 거의 두 배 가까이 준다는 말에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까지 자신들을 아끼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2단계 과정을 듣던 두 사람은 ‘환골탈태’라는 말을 듣고 비로소 뒷골이 땅기기 시작했다.

‘어라?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환골탈태라…….’

그러다 문득 지난날 방주가 큰 소리로 외치던 말이 떠올랐다.

“이놈들아, 힘내! 환골탈태가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것인 줄 아느냐.”

‘커억∼ 이런 개 같은 일이…….’

환골탈태를 이룩해야 한다면서 걷지도 못하게 하고 땅을 구르게 하지 않았던가. 그 일로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가 말이다. 만첨과 노각은 눈앞이 캄캄했다.

‘이씨∼ 이젠 다 살았다.’

특별 수련까지 받겠다고 큰소리만 치지 않았어도 이렇게 후회되지는 않으리라. 그런 가운데서 표영의 연설은 계속됐다.

“에∼ 3단계 과정은 귀식대법이다. 귀식대법!”

연신 귀식대법이라 말하는 표영의 표정엔 대단하지 않느냐라는 자부심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너희는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력과 거지로서의 깊은 통찰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음하하하!”

자신이 말해 놓고도 그럴싸한지 거창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능파 등은 귀식대법하고 거지로서의 통찰력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몰랐지만 지존의 가르침인지라 어떻게든 연관을 지어 보려고 머리를 싸맸다.

‘분명 무슨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끙∼.’

하지만 제갈호 등은 귀식대법이 어떤 식으로 거지 생활에 적용될지를 생각하느라 골머리를 썩혔다. 대체 무슨 추잡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다음 4단계는 만천화우를 익히도록 한다. 사실 이 단계는 3단계까지 잘 진행해 오면 저절로 습득되는 것으로 그 죽일 놈의 사천당가의 만천화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모두는 최선을 다해 익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당가에 대한 말이 나올라치면 욕이 튀어나오고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표영이었다.

“마지막으로 5단계 과정은 금강불괴다.”

쿠궁!

금강불괴라니! 모두의 얼굴이 각기 생각의 방향에 따라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금강불괴가 어디 동네 개 이름이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그들은 태연자약하게 금강불괴를 말하는 방주의 입을 보며 감탄과 존경, 그리고 불안과 염려와 근심에 휩싸였다.

“너희는 금강불괴를 연마한 후라야 비로소 진개방의 훌륭한 형제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모두들 최선을 다해 수련에 힘을 다하길 바란다. 알겠나∼.”

“네∼.”

“네…….”

대답은 두 가지 종류로 나타났다. 아직 영문을 모르는 능파 등 세 명은 눈을 반짝거리며 큰 소리로 대답했고 제갈호 등은 거의 들릴 듯 말 듯 기어가는 소리로 답했다.

1단계 영약 복용 과정 이틀째.

어촌 마을 신합의 개들은 때 아닌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단 말인가. 먹을 게 따로 있지, 어찌 개들의 식량을 축낸단 말인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건 말이 안 됐다. 그나마 위로를 삼고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견왕지존께서 납시어 가끔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는 점이었다. 정말이지 견왕이 계시지 않았다면 사생결단을 냈으리라.

월월- 끄르르-

하지만 개들이 아무리 원통하다고 한들 진개방의 공신들에(?) 비할 수 있겠는가. 영약을 복용한다는 말이 개밥을 먹는다는 것임을 알았을 때 그들의 안색은 핼쑥해져 버렸다.

퀭∼.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다. 아직도 오 일 정도를 더 지나야 영약 복용의 과정이 끝난다고 생각하자 그들의 마음엔 깊은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그들 중 유독 열성을 보이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능파였다. 능파는 대법이 풀리면서 아주 단순 무식해져 버린 탓에 교주, 즉 표영의 말이라면 철을 녹이는 불 속에라도 머뭇거림 한 번 없이 달려들 태세였다.

물론 능혼이나 손패도 뜨거운 충정은 그와 같았지만 영약을 복용한답시고 개밥을 먹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처사였다. 그런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능파는 산해진미를 먹듯 열심이었다.

“오늘 반찬은 두부가 많이 들어갔더라고. 내일은 뭐가 나올까 궁금하다. 맛있는 것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

“…….”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행 가운데 가장 많은 한숨을 토해내는 이들은 만첨과 노각이었다.

특별 수련을 신청했던 그들은 매일 두 배에 가까운 영약(?)을 복용한 탓에 하루하루가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저 아직까지 미치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심각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따지자면 교청인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남해검파의 무남독녀로 애지중지 자라온 그녀가 언제 꿈에라도 이런 영약(?)을 복용하리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틀째를 지나며 그녀는 극도로 신경쇠약증세를 보이며 눈이 반쯤 풀려 버렸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눈을 두리번거리다가 벌벌 떨다가 잠이 들곤 했다.

이제껏 귀여움만 받고 좋은 환경에서 호의호식하던 그녀가 아니던가.

아름다운 얼굴은 감고 매만져 주지 않아 부풀어 오른 머리에 가려지고 때구정물이 가득해진 탓에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마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본다 해도 지금으로썬 알아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다른 이들은 한결같이 불평을 늘어놓을 수 없었다.

그녀에 비하자면 자신들은 행복한 편에 속했다 여긴 것이다.

영약 복용 5일째.

하루가 천 년같이 여겨지는 나날들 속에서 5일째가 되었다.

마교의 천하제패를 꿈꾸던 능혼은 혼란스러움에 사로잡혔다.

‘천마지체의 잔악함은 이런 하찮은 것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일까? 어찌 지존께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수하들에게 개밥을 먹도록 할 수 있단 말인가. 역대 교주님들 중에 과연 어느 누가 이런 지시를 내렸던가. 아! 정말 깊고 깊은 지존의 모략은 이 짧은 소견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이제 겨우 1단계인데 앞으로는 얼마나 험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고개를 쳐들었다.

‘마교는 곧 힘을 상징하고 있다. 어쩌면 지존께서는 마교에 대해 잘 모르고 계신 것은 아닐까? 아니야,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불세출의 기재로 가장 잔악한 마성을 지닌 분에게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200년을 기다려 만난 지존이시다. 조금만 더 인내를 가지도록 하자. 아, 하지만 영약 복용은 너무도 힘들구나. 이 험한 수련은 언제쯤 끝이 날까. 마교의 군림천하는 언제쯤 이를 수 있을까.’

능혼은 아침에 먹었던 영약(?)으로 느글거림을 참고 능파에게 다가갔다. 능파는 해를 바라보며 왜 이리 점심시간이 늦게 오는지 초조해했다.

“형님, 속은 좀 어떠세요?”

능혼이 옆에 앉으며 하는 말에 능파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좋지. 넌 아침에 뭐 먹었냐? 난 운이 좋았어. 고깃국이 나왔지 뭐냐. 맛있어 죽는 줄 알았다니까.”

능혼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아! 과거 형님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일까.’

능혼이 알고 있는 형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냉철한 판단력에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무공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예법에도 능해 글과 바둑, 음악과 시(詩)등 모든 방면에서 예술적인 기질을 지닌 터였다.

지금처럼 개밥으로 고깃국이 나왔다며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을 분이 절대 아닌 것이다.

“형님, 우리는 근본적으로 교주, 아니, 방주님을 보필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교의 발전을 위해 뭔가 다른 방법을 건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능혼은 답답한 마음에 토로한 것이었지만 능파는 거칠게 반응했다.

“뭐라구? 네가 감히 방주님의 높으신 뜻에 딴죽을 걸겠다는 것이냐? 이런 썩을 놈을 봤나. 너, 이리 와!”

능혼은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래도 힘내야지’라는 말만 들었으면 했었다. 하지만 능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 많이 컸구나.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거냐! 이놈, 죽어라! 죽어!”

퍼퍼퍽- 퍼퍽-

능파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내공을 이용해 때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옆에서 보기엔 장난이 아니었다. 주먹과 발을 날리며 후려 패는 가운데 표영이 멀리서 보다가 신속하게 다가왔다. 그때까지도 능파는 주먹을 휘둘러 댔다.

“이놈, 능파. 멈추지 못해!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비로소 손을 멈춘 능파가 씩씩대며 변명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표영의 주먹이 날았다.

퍼퍽- 퍼퍼퍽-

“진개방의 인원이 몇 명이나 된다고 벌써부터 주먹질이냐! 네놈이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이 자식, 죽어봐라!”

아까까지 후려 패던 능파는 이제 상황이 바뀌어 신나게 얻어터졌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더니 딱 그 꼴이었다.

“잘못했습니다. 방주님, 으아악…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퍼퍼퍽- 퍼퍽- 퍼퍽-

“내 앞에서 방의 형제들끼리 싸우는 것은 못 본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진 그런 일은 참을 수 없어… 이 자식아∼”

한동안 주먹과 발길질을 춤추듯 날리며 패버리고 나서야 표영의 동작이 멈췄다. 땅바닥에 꼴사납게 뻗어버린 능파와 능혼을 향해 표영은 소맷자락을 털며 말했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면 그땐 용서하지 않겠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방주님…….”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꾸역꾸역 대답하는 것을 듣고 그제야 표영의 얼굴이 풀렸다.

“좋다. 내 이번만은 이것으로 끝내도록 하겠다. 자, 어서 일어나라. 점심 시간이 다 됐어. 영약을 복용하러 가야지. 늘 제때 먹어줘야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자, 어서…….”

결국 결론은 영약 복용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능혼은 그저 할 말을 잃고 멍해졌다.

그렇게 영약 복용 과정이 오 일이 지나면서 신합마을 사람들은 서서히 표영 일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보통 거지들이려니 생각했지만 꾸준히(?) 개밥을 먹는 것이 괴상한 거지들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껏 제대로 된 거지를 본 적이 없던 터라 한결같이 불쌍히 여겼다.

또 그들의 인심이 후한 터라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밥이며 여러 반찬 등 먹을 것을 싸오기도 했다. 제대로 된 밥을 먹어보는 게 소원인 일행에겐 그보다 더 반가운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표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뜻은 고맙지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도로 가져가십시오.”

뭐가 때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한사코 거부하는지라 안타까움을 안고 마을 사람들은 돌아가야만 했다.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말하게나. 언제라도 가져다 줄 테니까 말이야.”

“진짜 거지다운 것도 좋지만 굳이 개밥을 먹을 필요까진 없지 않겠나?”

그중 교청인을 보고 하는 말도 있었다.

“저기 저 거지는 처자인 것 같은데 어쩌자고 이렇게 모질게 살아가누. 쯧쯧.”

안 그래도 서러운 교청인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엄마∼ 흑흑흑…….’

그나마 교청인은 닷새째가 되면서 다행스럽게 영약 복용을 중단했다.

좀 더 심해지면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표영이 안전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대신 교청인의 몫은 다른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 먹게 되었고 모두가 불만을 품는 가운데 그들 중 능파만이 자신이 교청인의 몫을 다 먹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영약 복용 7일째.

마지막 날이 되었다. 지난 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능파를 제외한 모두는 억겁의 시간을 통과한 것만 같았다.

억겁의 시간이란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져 바위에 구멍을 뚫는 시간이니 그들의 고통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그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자, 드디어 영약 목용을 마치는 순간이다. 모두들 수고가 많았다. 이제 이 저녁 식사를 끝으로 2단계로 넘어가게 되니 최선을 다해 마무리를 하도록 하자.”

표영이 유달리 마지막을 강조하는 것이 왠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표영의 말이 계속됐다.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남다른 법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언제 또 영약을 복용해 보겠느냐. 그래서 저녁 식사는 평소의 세 배의 양을 먹도록 한다. 특별 수련을 하고 있는 만첨과 노각은 다섯 배의 양을 먹도록 해라. 자, 출동하자∼”

대답을 한 사람은 오직 능파뿐이었다.

“야호∼ 신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리고 다물 줄을 몰랐다.

다 끝났다고 좋아했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능파가 일행들을 다그쳤다.

“어서 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어서 가자, 어서어서.”

모두의 시선은 다시 능파에게 향했다.

‘형님만 아니면 정말 확 패버리는 건데…….’

‘원래 십절쌍마 능파님은 저런 분이 아닌데… 에구∼’

‘영감탱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혹시 저 늙은이는 방주의 친척이 아닐까.’

그들의 눈은 수없이 많은 말들을 하고 있었다.

원망과 한탄, 그리고 절망과 안타까움 등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1단계 영약 복용의 마지막 밤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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