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6장 (87/199)

 # 86

86.

한편 이곳은 남해검파의 내전 안.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던 남해검파의 장문인 교운추가 맞은편에 앉은 남궁진창과 주약란을 보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 너희 둘의 농담 실력이 상당히 발전했구나. 마치 진짜같이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너희가 이 정도로 웃길 줄은 내 몰랐구나.”

남궁진창과 주약란이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며 교청인이 이상한 거지에게 잡혀갔다는 말을 했지만 교운추는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기도 한 것이 그 자리에 칠옥삼봉 중 다섯 명이 있었다는 것과 젊은 거지가 강호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란 것 때문에 그럴싸한 농을 건네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 이거 큰일인데…….’

하지만 남궁진창과 주약란은 등줄기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둘은 남해검파의 장문인인 교운추가 딸인 교청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손이 귀한 집안에 아들 없이 오직 교청인 하나만을 두고 있으니 그 소중함이란 말로 형용하기 힘든 것이었고 어지간한 강호인치고 그 사실을 모르는 자가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가 제갈세가로 갔어야 했는데 괜히 남해검파로 왔구나.’

둘은 폭풍 전야의 두려움 속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묻어버릴 순 없는 일, 어렵게 남궁진창의 입이 열렸다.

“그, 그게… 그러니까…….”

“허허허, 뭐냐. 또 다른 농담이라도 있는 게냐?”

남궁진창은 앞에 높인 차를 들이킨 후 용기를 내어 말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모두 사실입니다. 제갈 형의 소식은 사마 형이 제갈세가로 소식을 전하러 갔고 저희는 이곳으로 온 것…….”

남궁진창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갑자기 내전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뜨드드득.

이건 남해검파의 장문인 교운추의 얼굴이 얼어붙는 소리였다.

소리가 났겠는가마는 바라보는 남궁진창과 주약란에게는 진짜 뜨드득이라는 소리가 난 것만 같았다. 얼음처럼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교운추는 지금까지 들었던 말들을 머릿속에서 다시 정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눈이 활화산처럼 타올랐고 주먹이 탁자를 내려쳤다.

우지끈.

쨍그랑-

탁자가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찻잔이 사방으로 튀어 바닥으로 떨어지며 깨졌다. 남궁진창과 주약란이 화들짝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교운추의 주먹이 바로 날아들었다.

퍽!

주먹은 정확히 남궁진창의 턱을 갈겨 버렸다. 설마 하니 주먹이 날아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던 남궁진창은 여지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이 미친 연놈들아!”

아까까지 다정다감하던 장문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성난 아버지의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주약란은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널브러진 남궁진창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하시다니… 그래도 나는 여자라고 손을 쓰지 않으시는구나.’

하지만 그것이 주약란의 착각이라는 것이 바로 나타났다.

“네년도 마찬가지다!”

교운추가 이번엔 주약란의 머리끄덩이를 붙들고 앞뒤로 무지막지하게 흔들었다. 아무리 봐도 도무지 이건 무공초식 따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어느 누가 남해검파의 장문인이 처녀의 머리카락을 잡고 요동치리라 생각하겠는가. 믿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 주약란은 머리가 휘둘린 채 산발이 되어 갔다.

“꺄아악∼.”

교운추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왼손으로는 머리를 잡아 흔들고 발로는 바닥에 널브러진 남궁진창을 무슨 잡초 밟듯이 뭉개 버렸다.

퍼퍼퍼퍽!

“니들이 그러고도 뻔뻔하게 내 앞에 모습을 나타냈더란 말이다. 이 미친 연놈들아, 죽어라!”

교운추가 두 사람에게 더욱 분노한 것은 그들이 평범한 무사가 아니라 바로 칠옥삼봉이었기 때문이다.

칠옥삼봉이라는 이름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그 위력도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어려움을 방관하지 않는 우의도 돈독하지 않던가. 그런데 어찌 뻔히 보는 앞에서 거지에게 잡혀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단 말인가.

그 점이 교운추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으아악!”

“캬아악∼”

그렇게 거의 일 식경(30분) 정도를 휘젓던 교운추는 비로소 동작을 멈췄다. 이미 주약란은 아리따운 처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 버렸고 남궁진창은 바닥에 드러누워 기괴한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교운추의 싸늘한 음성이 둘의 귓가를 울렸다.

“만약에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너희들은 모두 저승으로 갈 줄 알아라. 이 잡것들아!”

그렇게 분노를 토해낸 남해검파 장문인 교운추는 젊은 거지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거지새끼… 넌 죽었다!’

제9장 진개방의 입곱 공신들

지존(?)을 만난 손패는 부지런히 배를 몰아 육지로 향했다.

그의 목적은 이제 제갈호와 교청인, 그리고 만첨과 노각을 불귀도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형제들, 조금만 참게나.’

불귀도로 떠날 때만 해도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한 연놈들이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게 달라졌다. 그들이 아직 마교의 정체를 모르지만 언젠가는 결국 함께할 식구요, 형제라 생각하니 사랑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의 눈은 희망으로 가득 찼고 온몸에 생기가 넘쳐흘렀다. 얼마나 열망하며 기다렸던가. 그토록 염원하던 마교의 부활이 눈앞에 이른 것이다.

‘기다려라, 강호여. 이제 마교가 천하를 움켜쥘 것이다.’

마치 당장에라도 천하가 마교의 깃발 아래 무릎을 꿇을 것만 같았다. 육지에 닿자 손패는 흥분에 겨워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거처를 향해 달려갔다. 손패는 채 얼마 가지 않아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반가운 나머지 손을 흔들었다.

“어이, 여기야∼.”

제갈호와 교청인, 그리고 만첨과 노각은 아침부터 나와 손패의 배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손패가 떠난 지 4일째다.

그들은 하루를 천 년같이 여기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마음 같아서는 배를 얻어 타고 불귀도로 찾아가고 싶었지만 마을에서는 어느 누구도 불귀도로 가겠다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저 발만 동동 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손패를 보니 그 반가움이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양 진영에서 손을 흔들며 마주 달려가는 모습은 멀리서 보노라면 마치 연인들이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상봉하는 것처럼 감동적으로 보였다.

가까이 이르자 제갈호 일행이 물어보기도 전에 손패가 다정한 표정과 정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들 기다렸지? 얼마나 걱정이 많았을까.”

제갈호 등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았지만 손패의 괴상하게 변한 말투 때문에 일순 멍해져 버렸다.

아까 달려올 때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것부터 뭔가 수상하다 여겼었는데 직접 말을 들으니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래 손패는 이런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그는 딱딱한 얼굴로 냉담하게 침 뱉듯이 한마디를 툭 던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겐 어울렸다.

열 번 생각해도 거기엔 변함이 없었다.

‘도대체 불귀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온몸이 다 근질거리는구나.’

‘대체 저 싱글거림은 무엇이냐!’

‘약을 잘못 먹었나. 썅.’

그들이 손패가 변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굴린 후 표영의 안위에 대해 물으려 할 때 손패가 다급하게 손을 잡고 이끌었다.

“어서들 가세. 방주님께서 모셔오라고 하셨다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야 되겠나.”

퀭∼

방주님이라니… 제갈호가 너무 황당한 나머지 말을 더듬거렸다.

“바, 방주님이라니… 설마 우리 바, 방주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형제, 당연한 것을 가지고 뭘 그리 놀라는 표정을 짓나. 자자, 어서 가자니까.”

“혀, 형제? 허…거참…….”

일행 중 어느 누가 이런 현상이 나타나리라 생각했겠는가.

그들은 나흘간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면서 애태웠던 것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말을 들어보자니 어느덧 이 사람도 방주의 부하가 된 것이 분명했다.

제갈호 등은 손패를 뒤따르며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방주가 무사한 것만은 확실하겠군. 참네… 보아하니 이 사람도 그 거무튀튀한 독약을 복용한 게로군. 불쌍한 사람이야. 쯧쯧, 평생 거지 노릇을 하게 될 텐데도 무척이나 좋아하네.’

‘만나는 족족 독약을 먹여 부하를 만드는구나. 그런데 이 사람은 변해도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오! 역시 방주님은 끝을 알 수 없는 분이로구나. 자존심 빼면 시체일 것 같던 이 사람이 이렇게 부드러워지다니…….’

‘다행이다. 방주님이 살아야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닌가. 여하튼 방주님은 묘한 힘이 있다니까.’

배를 정박해 놓은 곳에 이르러 손패가 마구 손을 휘저으며 빨리 올라타라고 성화를 부렸다.

“자자, 형제들. 어서 어서 타시게. 방주님이 보고 싶지도 않나? 아! 방주님의 목소리는 청아하여 마음까지 청량하게 하고 게다가 그 신비한 눈동자는 사람을 빨려들게 하지 않는가.”

그 말에 막 배에 올라타려던 교청인이 갑자기 몸을 옆으로 틀었다.

“우웩∼.”

비위가 뒤틀리며 속이 울렁거렸는데 끝내 구역질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기엔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정말이지. 조금 더 무게를 잡을 순 없단 말인가.

교청인은 다시 구역질을 연달아 세 번이나 더 했지만 여전히 속이 울렁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손패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 수 더 떴다.

“어디가 아픈 건가, 사매!”

사매!!

사매라는 말은 결정타였다.

“우웨웩∼!”

그 말은 이제까지 참고 있던 제갈호의 비위도 뒤흔들었다.

“우욱∼ 우욱∼.”

사람이 변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한단 말인가.

‘인간이란 이렇듯 간사한 것인가? 수년이 지난 것도 아니고 단 나흘밖에 지나지 않았잖는가.’

제갈호는 연신 구역질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일었다.

‘방주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어쩌면 난 평생 방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들 중 만첨과 노각은 그나마 비위가 좋은 편이라 꿋꿋이 참아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속이 느글거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 참고 있을 뿐.

이윽고 배가 띄워지고 불귀도로 향하게 되었다.

일행은 배 위에서 하나같이 꿔다 놓은 보리 자루마냥 퀭하니 구석지에 앉아 있었고 손패는 연신 신바람을 내며 지껄였다.

주된 내용은 방주에 대한 찬양이었다.

“방주님의 무공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네. 손을 한 번 들면 산이 뒤집히고 발을 디디면 온 땅이 요동을 치지. 그뿐인가? 비록 거지 차림을 하고 계시지만 그 마음의 원대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네. 그 앞에는 바다도 순응하고…….”

재잘재잘 대며 쉴 새 없이 토해내는 말에 교청인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손으로 막는다고 안 들리느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오히려 듣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잘 들리는 것이 또한 묘한 이치라 그녀는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저 인간이 이리도 말이 많을 줄이야.’

참다못한 제갈호가 바다를 보고 욕을 내뱉었다.

“아, 씨발∼ 기분 더럽네.”

제갈호의 욕설에 주절대던 손패가 말을 멈추고 빤히 바라보았다. 제갈호는 대놓고 그만 좀 하라고 할 수가 없어 엉뚱한 쪽으로 돌려 말했다.

“아, 씨발… 바다가 왜 물고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거야? 이게 바다야, 뭐야.”

손패는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며 마교의 지존을 만났다는 것으로 인해 극도의 흥분 상태에 놓여 있었기에 제갈호가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아하하, 물고기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은 아니지. 글쎄… 혹시나 방주님께서 배를 타고 가신다면 물고기들이 나와서 춤을 추며 영접할 수도 있겠군. 아, 그 광경을 언젠가는 볼 수 있겠지. 암, 그렇고말고.”

“우욱…….”

교청인이 다시금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이런, 사매가 몸이 좋지 않은가 보군.”

“우웩∼ 뱃멀미를… 우웩∼.”

“하하하, 배를 처음 타 본 사람은 그럴 수 있지. 조금만 참으라구.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하지만 그들 중 손패를 제외하고 누구라도 교청인이 뱃멀미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교청인이 누구던가. 남해검파의 무남독녀가 아닌가 말이다.

바닷가에서 자라고 컸을 그녀가 뱃멀미를 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하여간 일행은 가는 내내 손패의 찬양가를 들으며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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