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85.
제7장 청막의 개입
흑조단참 상문표는 암담했다. 그가 무당파의 운경 도장으로부터 표영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다지 어렵게는 생각지 않았었다. 하지만 곧 그는 황당함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첫 번째 곤혹스러움은 표가장을 방문했다는 녹정이라는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표영을 데리고 간 개방 분타주 녹정은 개방에서는 전혀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그럼 그 친구는 어디로 간 걸까?’
처음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인신매매를 당해 어느 섬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괴를 당한 것일까?’
‘어떤 미친놈에게 잡혀가 생매장을 당한 것은 아닐까?’
상문표는 이미 강호의 험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떠오르는 것마다 잔혹한 생각들뿐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좀 더 세심하게 찾아보도록 하자.’
뭔가 크게 빗나감을 느꼈으나 그렇다고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는 개방을 중심으로 수색하는 한편 뒷골목 세계에도 손을 뻗쳐 그 흔적을 찾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상문표는 표영의 행방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이른 곳은 섬서성의 허운 지역이었다. 허운에서 상문표는 표영이 구지경외자로 명성을 날렸고 개방에 입방했다가 쫓겨난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허운 지역의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 뒤의 흔적을 알고 있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주민들은 상문표를 붙잡고 표영이 어디 있냐며 물어볼 지경이었다. 그들의 말은 어린아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호의적이었다.
“구지경외자가 없으니까 심심해 죽겠다고. 그 친구를 찾거들랑 꼭 한 번 놀러 오라고 해주시구려.”
“우리 집 개가 요새 힘이 없어. 제 딴에는 그래도 구지경외자를 쫓아다닐 때가 즐거웠던 모양이야.”
“아저씨, 구지경외자님 꼭 찾아주셔야 해요. 알겠죠?”
그 외 개방인들에게 물어봤지만 회피만 할 뿐 어느 누구 하나 시원스런 답을 주지 않았다. 단지 개방의 명예를 실추시킨 탓에, 그리고 개방에 어울리지 않았기에 쫓겨났을 뿐이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상문표는 살수의 감각으로 개방에 혐의를 두어 몇몇 개방인들을 잡아다 고문을 해봤지만 그들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황당하군. 이건 사막에 떨어진 동전 하나를 찾는 격이 아닌가.’
유명한 이거나 무림인 중 한 명이라면 탐문도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누가 보잘 것 없는 젊은 거지를 눈여겨보겠는가.
결국 상문표는 혼자 힘으로 찾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군.’
그의 발걸음은 청막으로 향했다. 청막은 살수 집단으로 그곳엔 막역한 친구인 무요가 있었다. 무요는 30대 초반 때에 이미 두각을 나타내 지금에 이르러선 청막의 삼영주로 자리를 잡고 있는 터였다.
무요는 상문표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가 끝난 후 술자리에서 상문표가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그 말에 무요가 입을 귀까지 찢어지게 벌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천하의 상문표가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하다니… 참으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군.”
무요가 알고 있는 상문표는 어지간해서는 부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유독 자존심이 강해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렇기도 한 것이 상문표는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이름을 날릴 때는 혈혈단신(孑孑單身)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은 조직을 갖춘 여느 살수 집단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다.
“내가 죽기 전에 흑조단참의 부탁을 받아보다니… 이거 영광인걸.”
무요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실제 상문표로서는 표영을 찾는 일이 강호의 고수들을 찾아 척살하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끼고 있었다.
술잔을 기울이며 상문표가 말했다.
“무리한 부탁인 줄은 아네만 내가 존경하는 지인의 부탁인지라 꼭 찾아야 한다네.”
무요도 술을 입을 털어 넣고 호탕하게 답했다.
“하하, 알았네. 이 사람 강호를 떠나더니 심약해진 것인가. 자네답지 않게 자꾸 왜 그러나. 우리 사이가 겨우 이 정도 문제로 연거푸 사정을 해야 할 사이였단 말인가?”
역시 친구란 좋은 것이었다.
상문표는 일단 마음이 놓였다. 현재 살수 집단 중에서 가장 훌륭한 체제와 살수들을 갖춘 청막이 아니던가.
청막의 힘이 뻗친다면 조만간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요가 물었다.
“또 무슨 다른 문제라도 있나?”
“아니, 그게 아니라… 표영이라는 젊은이의 행방을 다시 생각해 보다 보니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말이네.”
“뭐가 말인가?”
“개방에서 쫓겨난 것까지는 이해가 간다네. 현재의 개방이 거지들을 받아들이는 곳이 아니니까 말일세. 분명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렇게 특이한 몰골이었다면 쉽게 사람들 눈에 띄었을 것이고 조금만 탐문을 해도 행적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허운 지역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을 수소문해 봐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단 말일세.”
“음…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밖에 더 있겠나. 죽었거나, 혹은 뜻밖의 고수였거나.”
무요의 말에 상문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네. 개방이 축출을 했다면 곱게 보내지만은 않았을 걸세. 거기에 맺힌 게 많았다면 더욱 심한 결과를 맞이했겠지. 어디에 매장되었든지, 아니면 대단한 고수이든지 말이네. 그런데 이제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무공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거네. 그게 내가 골치 아파하는 이유라네. 적어도 시체는 찾아야 하지 않겠나.”
상문표는 말을 하면서도 그런 결과는 나타나지 않길 바랐다. 그건 그 부모에게 못할 짓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개방에 조사 방향의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어떤가?”
“그게 또 쉽지 않다네. 내 이미 개방제자들 몇몇을 족쳐 봤지만 전혀 아는 바가 없더군. 설마 내 고문을 당하고 입을 열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무요도 그 말엔 전적으로 동감했다. 그도 상문표가 모질게 마음먹으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럼 개방의 고위급이 관여할 가능성은 어떨까?”
“글쎄…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네. 표영이 사라지기 전에 개방 총타에서 세 명의 장로가 허운 지타를 방문했다고 하거든. 그들이 온 후로 사라진 사람은 묵백 분타주와 오선교 지타주, 그리고 표영이라네. 두 사람은 장로들이 손을 썼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만 한낱 거지에 불과한 표영에게 해를 끼쳤다고 하기엔 그들의 지위가 너무 높지 않은가?”
“그렇긴 하군. 하지만 만약에 개방의 고위급이 관여했다면 그들을 상대할라치면 일이 생각보다 커지겠는걸.”
“그런 셈이지. 만약 개방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개방은 무당파와 일전을 치러야 할 것이네.”
“무당파와?”
“그렇다네. 자넨 무당파의 일옥검수를 알고 있나?”
무요의 얼굴이 ‘지금 장난하나’라는 식으로 변했다. 살수 조직의 기본은 정보에 있지 않던가. 대충 인상착의만 들어도 그가 누구인지 추리해 낼 수 있는 그가 아니던가.
“이 친구도 참… 칠옥삼봉 중 가장 뛰어나다는 무당파의 표숙을 말하는 것이 아닌… 엇… 그렇다면… 표숙과 표영이……?”
무요는 말을 하다가 말고 표숙의 성이 표영과 같음을 깨닫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문표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감을 잡겠나? 지금 찾으려는 표영의 친형이 바로 표숙이라네. 실제로 표숙은 무당파 내에서 차기 장문인으로 점쳐지고 있는 실정이지. 현 무당 장문인의 나이가 이제 50대 중반인 것을 감안하자면 아마도 15년이나 20년 안에는 장문을 승계할 수도 있을 것 같더군. 이건 운경 도장께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니 허튼소리는 아니라네. 그렇기에 만약 그의 동생이 개방에 의해 죽기라도 했다면 무당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거지. 내게 운경 도장께서 표영을 찾아달라고 한 것만 봐도 표숙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는가. 일이 틀어지면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를 것이 분명하네.”
무요가 재밌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하하하, 자칫 하다간 무림의 회오리가 일겠군.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볼 만하겠군. 한판 붙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요즘 강호는 너무 조용해서.”
무요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어느새 상문표가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본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요가 찔끔해져 어색하게 웃으며 무마하기에 바빴다.
“아하하… 아하하… 이 친구, 그냥 해본 소리 가지고 왜 그러나. 농담이야, 농담. 천선부주 오비원이 버젓이 살아 있는 한 강호에 폭풍이 불겠나. 어떻게든 수면 위로 나마 평화를 유지하겠지.”
상문표도 그 말은 전적으로 동감했다.
“그렇지. 건곤진인 오비원이 아니었다면 진작 무슨 사단이 나도 났겠지.”
“하하하, 그럼그럼. 중원 최강의 고수라는 이름이 거저 얻어진 것이겠나.”
무요는 껄껄거리며 웃다가 행방에 대해 다른 의견을 꺼냈다.
“하지만 말일세. 만에 하나 표영이라는 친구가 본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은 고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무공을 익힌 상태로 경공을 발휘해 이동한 것이라면 인근 마을 사람들이 알기는 어렵지 않겠나.”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지. 마음 같아서는 부디 그래 주었으면 한다네. 그럼 일이 의외로 쉬워지는 것이니까 말이야.”
“좋네, 일단 다양한 경로로 찾아봄세.”
무요의 말은 상문표에겐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자네만 믿네. 그건 그렇고. 막주님께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는지 모르겠군.”
“인사는 드리고 가야 되지 않겠나?”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그럼, 당연하지.”
“하하하…….”
이렇게 상문표의 추적은 청막을 날개 삼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제8장 또 다른 추적자들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묘는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도무지 두 귀로 들었지만 믿을 수가 없는 말들뿐이었다.
그의 입술이 버벅거리며 더듬었다.
“또, 똑바로 다시 말해 봐라. 어, 어떤 놈이었다고?”
지금 제갈묘의 탁자 맞은편에는 사마복이 송구스럽다는 듯 얌전히 두 손을 모으고 자리하고 있었다.
사마복의 얼굴은 표정 관리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 채 죄송스러움과 당황스러움으로 뒤범벅이 된 채였다. 제갈호와 교청인이 하령산에서 표영에게 사로잡혀 수하가 되어버린 직후 남궁창인과 주약란은 남해검파로 이 참담한 소식을 알리러 갔고 사마복은 제갈세가로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말입니다…….”
사마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불러와 그때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그는 분명 행색이 거지같았지만 놀라운 무공을 발휘했습니다. 저희로서는 이미 손을 쓰지 않기로 약속한 상태였기에 어찌해 볼 수 없었고, 또 손을 썼다 해도 결과를 알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복은 손을 쓰지 않는 내용을 설명할 때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었다.
강호에서 칠옥삼봉이라 명성만 얻었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름도 없는 젊은 거지에게 농락당했으니 고수라는 말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으로 치자면 어찌 사마복이 제갈묘와 비교될 수 있겠는가.
제갈묘는 믿음직스럽고 제갈세가를 빛낼 기대주인 첫째 아들이 떨거지의 수하로 끌려갔다는 말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데 어떻게 호아는 그리 쉽게 거지를 따라갔더란 말이냐?”
사마복은 차마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그저 탁자에 놓인 찻잔만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사실은 그게 저희들로서도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호 형과 교 매는 눈물을 흘리면서 저희에게 말하길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도무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갈묘의 손이 다시 부들부들 떨렸다.
“협박이라도 받은 것인가?”
뿌드득.
제갈묘가 이를 간 후 사마복에게 말했다.
“너는 너의 집안에 이 일을 알렸더냐?”
“상황이 급박하고 사안이 사안인지라 그저 급한 일이 있다고만 집에는 말씀드리고 곧바로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아직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합니다.”
“좋다. 복아, 너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 알겠느냐?”
“네, 명심하겠습니다.”
사마복도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제갈세가에게 있어서 치욕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강호에 이 일이 알려진다면 제갈호에게나 제갈세가에나 결코 좋은 인상으로 보이진 않으리라.
확답을 들은 제갈묘는 비장함으로 가득한 눈을 번뜩거렸다.
“남쪽이라고 했겠다. 남쪽, 좋다. 내 이놈을 가만두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