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82.
제4장 마교를 끌어안다
표영이 깨어난 건 이틀이 지나서였다.
선련초의 약효와 더불어 능혼과 능파가 내공을 불어넣어 진기로 막힌 기혈을 타통해 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면 단지 이틀 만에 깨어나진 못했을 것이다. 표영의 몸 안에 내재된 천년하수오와 묵각혈망의 내단이 원기를 회복시키고 기를 북돋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 격심한 타격을 입은 것에 비해 이틀이라는 시간 만에 깨어났다는 것은 경이적인 것이라 할만 했다. 이런 현상은 십절쌍마와 손패의 마음에 지존에 대한 경외감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역시 지존이시지 않은가. 보통 무림인이었다면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아직 하늘은 우리 마교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표영은 정신을 차렸어도 곧바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상태라 깨어난 후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혹은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었던 까닭이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예민하게 살피자니 몸 근처에서 두 가닥의 가느다란 호흡 소리와 한 가닥의 약간은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렸다.
그중 거친 호흡이라는 것도 사실 앞선 가는 두 호흡에 비해 거칠다는 것이지 결코 평범한 능력을 지녔다는 말은 아니었다.
‘이들은 대체 누굴까? 혹시 이들이 괴상한 두 노인으로부터 나를 구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단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곳은 불귀도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저주의 섬으로 인식돼 이곳으로 오려고 해도 배를 구하기조차 힘들지 않는가.
‘만에 하나 이들이 나를 공격한 사람들이라면 정말 낭패로구나. 하지만 왜 나를 가만 내버려 두는 것일까? 내 몸은 누가 치료한 것일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표영은 정신을 잃기 전까지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느닷없이 나타난 노인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떠올랐다.
“지존이시여… 십절쌍마입니다… 마교의 영광을…….”
‘도무지 어떤 식으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파편처럼 던져진 의문을 짜 맞추기엔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이어 무서운 두 노인의 공격이 머리에 떠올랐다.
목덜미에서부터 온몸이 마비되고 이어 가슴을 때리는 엄청난 충격.
표영은 격타당하는 순간을 떠올리다가 하마터면 몸을 떨 뻔했다. 표영이 스스로 그때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뛸 정도이니 그 타격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정말 무서운 공격이었어. 지금 이렇게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게 신기하구나.’
표영은 주위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뭔가 변화가 있겠지.’
표영이 대충 마음을 정리하고 여전히 죽은 듯이 누워 있을 때였다. 그 앞에 무릎 꿇고 있던 능혼의 눈이 번쩍 하고 빛을 발했다.
‘교주님께서 정신을 차리신 것인가!’
원래 사람이 실제 잠들어 있을 때와 억지로 잠든 척할 때는 엄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는 법이다. 작게나마 눈이 가늘게 떨리기도 하고 피부가 미세한 움직임을 나타내는가 하면 심할 경우엔 침을 삼키느라 목젖이 꿈틀대기도 하는 것이다. 능혼이 본 것은 표영의 눈이었다.
아까 표영이 공격당할 때를 떠올리다가 부지불식간에 눈을 움쩍거렸는데 능혼이 놓치지 않은 것이다. 능혼은 얼른 능파와 손패에게 전음을 날렸다.
-형님, 지존께서 정신을 차리신 듯합니다.
-손패, 지존께서 정신을 차리신 듯하다.
전음을 받은 능파와 손패의 얼굴에 순간 긴장이 감돌았다.
꿀꺽.
천극간시공해체대법이 불완전하게 풀리면서 오히려 순수해져 버린 능파가 침을 삼키자 그 소리가 적막한 동굴을 울렸다.
그것은 마치 전염이라도 되는 듯 차례로 능혼과 손패에게도 옮아갔다.
꿀꺽.
꿀꺽.
싸늘한 긴장감 속에서 능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느라 분주했다.
‘이는 필시 교주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지켜보고자 하심일 것이다. 능혼아, 능혼아, 너는 지금 이 순간 잘해야 할 것이다. 이 순간 교주님께선 우리에게 속죄할 기회를 주신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 어떻게든 마음을 풀어드려야 한다.’
능혼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막 입을 떼려 할 때였다.
“흑흑… 이 미천한 놈이 교주님을 상케 하다니… 난 죽어야 해… 죽어야 한다구…….”
예상치 못한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느닷없이 능파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동굴의 벽을 들이박은 것이다.
쿵쿵쿵!
“헉!”
“허걱…….”
‘헉!’
능혼과 손패의 입에서 헛바람이 터져 나왔고 표영은 속으로 놀라면서도 소리를 참았다. 능혼과 손패는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나 표영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건 흑의노인의 목소리가 아닌가. 휴∼ 눈을 뜨질 않길 잘했구나. 근데 교주님이라니… 설마 날 가리켜서 하는 소린 아니겠지? 이 사람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모르겠구나.’
표영의 입장에서는 아직 더 지켜봐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도 능파는 여전히 벽에 머리를 박아댔다.
쿵쿵쿵!
장난이 아니었다. 그저 형식적으로 들이받는 것이 아닌 것이다. 어찌나 세게 들이받는지 동굴 전체가 웅웅거릴 지경이었다.
그것은 듣는 모두의 마음에 황당한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교주님께서 깨어나지 않으신다면 나는 오늘 머리를 박고 죽고 말겠다. 난 죽어야 해∼.”
쿵쿵쿵!
이런 광정에 동굴에 자리한 모두는 각자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표영.
‘아니, 저 노인은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마교 교주라는 사람이 빨리 깨어나야겠는걸. 저러다 사람 하나 잡겠어. 교주라는 작자도 아주 지독한 사람인가 보구나.’
능혼.
‘이건 형님이 크게 착각하신 것이다. 대대로 교주님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는 분들이 아니던가. 예전의 형님이시라면 저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터인데… 계속 저렇게 내버려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으니 난감하기 그지없구나.’
손패.
‘큰일이다. 나도 능파님처럼 머리를 박아야 하는 것 아닐까. 내 죄도 결코 적지 않잖은가.’
이렇듯 각자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정작 가장 큰 고심을 하고 있는 이는 능파였다.
능파는 처음에는 그런대로 들이박을 만했다. 하지만 점점 박다 보니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용서를 비는 마당에 호신강기를 이용해 들이박을 수도 없는지라 생머리가 터질 상황이었다. 그로선 당장에라도 멈추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밋밋하게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속으로는 아파 죽을 것 같았지만 겉으로는 장황하게 용서를 빌었다.
“교주님을 능멸하다니… 나 같은 놈은 죽어야 해…….”
하지만 정작 속으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 죽겠는걸. 능혼, 저 바보 같은 놈은 뭐 하고 있나. 교주님을 어서 깨워야 할 것 아니야. 아이, 씨발, 머리 터질 것 같다니까!’
머리가 터지기까지는 오래 기다릴 것도 없었다.
백 번 정도를 받았을까? 어느덧 능파의 머리는 터져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백 번이 되기 전까지는 쿵쿵쿵 소리가 났으나 지금은 전혀 다른 소리가 났다.
척척척.
수박이 깨지는 소리가 이러할까. 차라리 수박이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라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소리는 살벌함 그 자체였다.
능혼과 손패는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는 가운데 경악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표영의 경악은 그보다 더했다.
보지 않고 눈을 감고 상상을 하게 되는 바람에 머리가 박살난 것인지 뇌수가 터져 흘러나온 것인지 별의별 그림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던 것이다.
표영은 전전긍긍하면서 연신 그 교주라는 작자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면 용서를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정말 교주라는 작자는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표영은 정작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지 못한 채 불만만 가득했다. 얼마나 상처를 입었는지 눈을 떠 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모든 게 애매했기에 때가 아니라 여겼다.
그 가운데서도 여전히 머리를 박고 있는 능파는 참기 힘든 고통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아직까지 지존께서는 침묵을 지키고 계신다.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 여기시는 것이겠지. 하긴, 내가 지존을 죽이려 한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법도 하다. 아∼ 나는 진정 하늘이 감동할 정도의 정성을 기울여야만 한다. 더욱 더 힘을 내야 해.’
그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마저 혼미해지려 했지만 열정적으로 연신 박아댔다. 한쪽 머리가 터졌으면 다른 방향으로 돌려 머리를 박아댈 만도 했지만 능파는 오로지 한쪽만 박아댔다.
과연 마교인으로서 손색이 없는 깡이었다.
‘다른 쪽으로 돌리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분명 부정 탈 것이다. 끙…….’
척척척…….
“교주님… 크아아악… 지존이시여… 으아악…….”
척척척.
거의 일 식경(30분) 정도가 지났다.
지켜보던 능혼과 손패는 입을 벌리고 침을 조금씩 흘리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눈은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더불어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온몸에 피칠을 해가며 머리를 들이받던 능파는 끝내 느린 동작으로 뒤로 허물어졌다.
“어어어…….”
사실 이제까지 버틴 것만도 용한 일이었다.
능파가 쓰러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능혼이 몸을 날려 몸을 받쳐 들었다.
“형님! 정신 차리세요. 형님…….”
능혼의 머리는 어지럽고 복잡하기만 했다 그토록 염원하던 교주님을 만났다. 하지만 뵙자마자 존귀한 옥체에 중상을 입히고 말았다. 게다가 함께 교주님을 보필해야 할 사명을 가진 형님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것이다.
‘아, 하늘이시여, 정녕 마교를 저버리시나이까.’
능혼은 속으로 장탄식을 터뜨리고 급히 지혈을 한 후 옷을 찢어 터진 머리를 감싸주었다. 한쪽에 자리한 손패는 그저 전전긍긍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표영은 혹시나 머리를 벽에 박고 죽은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되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모습은 예의 주시하고 있던 능혼의 눈엔 다른 의미도 받아들여졌다.
‘음, 인상을 쓰시다니… 교주님께서 아직까지 마음이 풀리지 않으신 게로구나. 그래, 뭐든 제일 좋은 방법은 솔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껏 있었던 일들을 다 털어놓고 나중에 처분을 받도록 하자. 진실은 어디에서도 통하는 법이 아니던가. 음… 그런데 과연 마교에서 진실이 통한 적이 있던가…….’
하지만 별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는 지금으로써는 참회의 고백만이 유일한 길로 보였다.
능혼이 표영의 머리맡에서 무릎을 조아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교주님, 미천한 속하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희는 200년 전 마교 최고의 지혜자인 오뇌자 신기천의 예언에 따라 이곳에서 교주님을 기다렸고 이제야 뵙게 되었습니다…….”
표영은 마음이 뜨끔했다. 꼭 자신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에이, 설마…….’
능혼의 말이 이어졌다.
“…신기천은 말하길 훗날 천마지체를 타고나신 분으로 인해 마교는 다시 부활할 것이며 전 무림은 마교의 깃발 아래 무릎 꿇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제가 아직까지 비천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오늘 이처 지존을 뵈옵고 보필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능혼은 죄송스러움으로 잠시 말을 멈췄다.
보필하기 위해 200년을 기다려 온 그들이 보필은커녕 이렇게 몸져눕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200년 전 무령마제(武令魔帝) 조환(趙幻) 교주님과 그 휘하의 마교 고수들은 천선부와 구대문파를 위시한 정도인(正道人)들에 의해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오늘날을 위해 남겨진 사람은 네 사람이었습니다. 신기천은 응벽동의 안배를 통해 지존께서 지존패를 거두시고 마교의 무공의 기틀을 닦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저희 십절쌍마는 이곳 불귀도에서 천극간시공해체대법으로 지존을 영접하설 보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대법은 건곤패와 감응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자연 지존께서 불귀도로 오시게 되면 대법이 풀리고 지존을 뵈올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거기까지 듣던 표영은 너무도 놀라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원래 깨어 있을 때는 침을 자연적으로 삼키기 어려워 침이 입 안에 가득 차게 마련인 법인지라 표영은 부지불식간에 다 삼킨 것이었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에 능혼이 말을 멈추고 잠시 긴장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일까?’
하지만 정작 표영은 여간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럼 이들이 이제껏 교주라며 불렀던 사람은 바로 나를 보고 한 말이었단 말인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황당함에 젖어 있을 때 기억 저편에서 잊고 있었던 일 하나가 떠올랐다.
‘건곤패! 이런! 그때 그 언덕배기에서 매달리다 죽은 그 머저리가 마교의 교주였단 말인가?’
매달려 죽은 사람과 지금 들은 이야기를 조합해 보자 비로소 의문이 하나씩 풀렸다. 극독에 중독되어 죽어 있었던 점, 그의 몸에서 영약이 나왔던 점, 그리고 건곤패.
‘이거 어떻게 한담. 이들은 철썩 같이 나를 교주로 알고 있는 듯한데, 내가 아니라고 하면 건곤패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 뭐라고 설명한다는 말인가. 이거 참… 그때 그 머저리가 그곳에 매달려 있지만 않았었어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희한하기도 했다.
‘건곤패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불귀도에 오게 되어 이들을 만나게 되다니…….’
이 일은 사실 천마지체 독무행이 천적인 만성지체를 만나게 되어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천마지체가 받을 기연을 모조리 만성지체가 이어받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천기의 흐름에 대해서 표영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능혼은 교주님으로부터 어떤 반응이 있을 것을 기대했으나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음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마교의 후인 중 나머지 한 명은 손추로서 그는 불귀도에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게 하기 위해 불귀도가 저주의 섬이라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그의 후손인 손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족한 속하는 지존께서 고귀하신 뜻으로 위장하고 계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목숨은 지존께 달려 있으니 마땅히 죽음으로 죄를 치르겠습니다.”
강호의 어떤 문파나 조직이든 하극상은 최악의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마교라면 그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능혼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굳이 지존도 알고 계실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설명한 것은 ‘200년의 염원을 담고 마교 부활을 꿈꾸어왔으니 지난날의 수치를 영광으로 바꾸기 위해 이번만은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뜻이 담겨 있는 셈이었다.
이런 능혼의 말은 실제 표영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모든 내용을 통해 표영은 불귀도에 대한 전설이 어떻게 조장되었고 불귀도의 안내자 손패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제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표영은 눈을 꼭 감은 채로 사정없이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들은 교주의 얼굴도 모르고 영락없이 나를 교주로 알고 있는 것이렷다. 어차피 교주 친구는 죽었으니 다시 나타나 ‘내가 진짜다’라고 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어 보였다. 또 달리 생각해 보니 이대로 이들을 나 몰라라 할 경우 이들이 강호로 나가 무슨 혼란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은 교주로 행세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이거 참…….’
표영은 생각을 대충 마무리하고 기를 운행해 몸을 점검해 보았다.
중요 혈맥으로 기가 원활하게 흐르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전체적으로는 미진하기 그지없었다. 스스로 몸을 일으켜 앉기조차 힘들 것 같았는지라 약간 시간을 더 보내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만약 마교 교주라면 이때 어떻게 했을까?’
이들이 지독한 놈들인 것만 봐도, 마교 교주라는 작자는 당장에 그들을 용서하지는 않을 성싶었다.
‘당장 말을 듣고 몸을 일으킨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해 보이기도 하니 요양이나 더 하도록 하자.’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교의 집착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200년을 기다렸단 말이지! 정말 이놈들은 이해할 수 없는 놈들이로구나.’
표영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