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1장 (72/199)

 # 71

71.

“음… 그러니까 호랑이 새끼들을 이용해 어미 호랑이를 잡겠다는 것이로군.”

그 말에 정면으로 답하기가 조금 어색해진 사마복이 얼버무렸다.

“우리의 목적은 호랑이 새끼가 아니니 그리 나쁘게 여길 필요는 없을 것이오.”

하지만 표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소이다. 잡으려거든 직접 가서 잡으시오.”

그리곤 만첨과 노각을 보며 중얼거렸다.

“호랑이 새끼들이 정말 불쌍하구나. 그렇지 않냐?”

만첨과 노각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불안해하기만 했다. 방주의 배짱이야 두목다운 맛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지만 배짱도 부려야 할 때가 있고 그러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얼른 자리를 떠야 할 텐데… 왜 자꾸 저러시나.’

‘이러다간 분명 어딘가 어긋나도 크게 어긋날 텐데.’

이때 남해검파의 여검수 교청인이 참지 못하고 호통쳤다.

“정말 고집불통이로군.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것이냐!”

그녀의 아리따운 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함이었다. 실제 그녀는 남자 못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로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보여주곤 하던 터였다. 그래도 표영은 여유를 부렸다.

“어쨌든 나하고는 상관없으니 호랑이를 잡든 새끼를 잡든 마음대로 하시구려.”

제갈호와 교청인은 분노한 기색으로 자신들의 애병기인 청화선과 벽력검을 뽑으려 했다. 그때 또다시 사마복이 나섰다.

“자자, 두 분은 고정하십시오. 사실 이분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자리를 옮기라 마라 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오늘 백호를 잡자고 한 것은 본인이니 그저 오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내려가도록 합시다. 두 분은 부디 저의 낯을 보아 참으십시오.”

남궁진창도 거들고 나섰다.

“그렇게들 하십시오. 우리가 모인 것은 사마 형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함이니 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제갈호는 분노 폭발 일보 직전이었지만 사마복과 남궁진창이 손을 잡아 이끄는 바람에 못 이기는 척하고 뒤로 물러섰다. 교청인 또한 주약란이 이끄는 대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렇게 사태가 원만히 수습되는가 싶을 때 표영이 느물거리며 그들의 뒤통수에 대고 말을 걸었다.

“음… 만약에 말이외다. 내가 그 호랑이를 잡아오면 어떻게 하겠소이까?”

느닷없는 말에 제갈호와 교청인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고 만첨과 노각은 다시금 앗 뜨거 하는 심정으로 표영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대단한 농담이로군.”

“호호호, 지금 잠꼬대하시나요?”

“바, 방주님.”

“그, 그게…….”

표영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하고는 농담 같은 거 안 하지.”

제갈호가 코웃음으로 맞받아쳤다.

“흥! 만일 백호를 잡아온다면 나는 너의 부하가 되어 거지로 살아주마.”

화끈한 성격의 교청인도 끼어들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표영은 옳거니 잘 걸렸다 싶었다.

‘딱 걸렸구나, 흐흐흐. 너희 두 녀석은 앞으로 훌륭한 거지가 될 것이다. 섬까지 가는 데 있어 심심치는 않겠는걸.’

“정말이신가? 내 부하가 되겠다고? 하하하하. 참으로 듣던 중 반가운 소린걸. 음… 근데…….”

표영이 약간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그대들은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들인지 모르겠군.”

“흥, 그것은 염려하지 마라. 정 믿지 못하겠다면 여기 세 분을 증인으로 삼도록 하겠다.”

표영이 사마복 등을 돌아보며 확인차 물었다.

“이 사람 말이 정말이오?”

사마복 등은 껄껄껄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놓친 백호를 이 덜떨어진 거지가 잡아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생각한 것이다.

“그렇소. 제갈 형 말대로 우리가 증인이 되어 주겠소이다.”

표영은 입술을 삐죽거리고 양팔을 돌려 어깨를 풀었다.

“좋소이다. 만일 세 분께서도 나중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시엔 모두 내 부하가 되어야 할 것이외다.”

“하하하, 그렇게 합시다.”

표영은 만첨과 노각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둘 다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공짜로 얻는 것이니 부하로 삼아야겠다. 너희도 좋지? 사제와 사매가 생기는 것이니까 말이다.”

“네? 네네…….”

만첨과 노각은 그저 불안할 뿐이었다. 중얼거리는 소리에 제갈호는 심사가 뒤틀렸지만 꾹 참고 물었다.

“만일 네가 백호를 잡지 못하면 너는 무엇을 내놓겠느냐? 더러운 목숨이라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냐?”

“하하. 몸이 더럽다고 목숨까지 더러운 것은 아니지. 나야 뭐 가진 것도 없지만 어찌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할 수 있겠나. 대신 내 귀 두 개를 하나씩 잘라내는 영광을 안겨주겠다. 내 귀가 높으신 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죄가 큰 것이니 말이야. 하하하.”

“그거 참 좋군. 귀가 없으면 구걸할 때 더욱 불쌍하게 보일 테니 밥 굶을 염려도 없을 테고 말이야.”

“하하하.”

“호호호.”

만첨과 노각은 걱정이 태산처럼 쌓이며 두 손으로 귀를 움켜쥐었다.

‘영락없이 방주는 귀 없는 거지가 되게 생겼구나.’

이미 방주와 생사를 같이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으로서는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난데없이 호랑이를 잡아오겠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니 칠옥삼봉의 기재들조차도 백호란 놈을 잡지 못한 것 같지 않은가.

만일 방주가 잡아오지 못하게 되는 날은 귀가 잘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방주님이 말은 저렇게 해도 정작 귀가 잘릴라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바탕 싸움이 일어날 터이고 그때는 정말 살아남기 힘들 것이 아니겠는가.’

만첨이 어떻게든 무마시켜 보려고 웃으면서 말했다.

“방주님, 우스갯소리 그만하시고 가던 길이나 얼른 가시죠. 이 정도면 충분히 재밌었습니다.”

노각도 거들었다.

“그럼요, 아마도 저분들도 재밌다고 여기셨을 겁니다. 그런대로 많이 쉬었으니 어서 가시죠.”

표영은 씨익 웃으며 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너희들, 겁먹었구나. 하하하. 조금만 참아라. 그러면 잠시 후면 방의 식구가 늘어날 테니 말이야. 하하하.”

만첨과 노각은 그저 땀만 삐질 흘릴 뿐이었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어느새 표영은 신형을 날렸다. 꾀죄죄한 옷차림과는 달리 신형의 움직임은 가히 절세의 경신법이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갈호 등은 이제까지 무시했던 감정이 싹 달아나고 말았다.

‘그래도 한가락 솜씨가 있었던 게로군.’

하지만 곧 그들의 감탄은 어이없는 웃음으로 바뀌고 말았다. 표영이 달려가면서 호랑이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듯이 괴성을 질렀기 때문이다.

“호랑이, 이놈! 어디 있느냐! 어서 나와라! 어흥∼ 어흥∼.”

만첨과 노각의 얼굴은 창피함에 벌겋게 달아올랐고 다섯은 배꼽을 쥐고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것 봐, 저거. 으하하하!”

“그럼 그렇지. 제깟 놈이 무슨 재주로 백호를 잡겠어.”

“오호호호. 저 사람은 정말 괴짜로군요.”

표영이 어흥∼ 하는 소리를 지른 것은 그네들을 웃겨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과거 개 사부 원구협 밑에서 흉악육식을 하던 때를 머리에 떠올렸기 때문이다. 사부는 곰이나 호랑이 등을 쉽게 찾아내곤 했는데 그 방법은 짐승의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곰이면 곰의 소리를 냈고 호랑이면 호랑이 소리를 내었는데 그럴 때면 각 짐승들은 동료들이 가까이 이른 줄 알고 튀어나온 곤 했던 것이다.

표영은 견왕지로를 온전히 통과한 자로서 그 실력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비천신공까지 연마한 터라 견왕지로에 있어서 사부를 능가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개 사부 원구협은 20여 년간 수련하여 간신히 성취를 이루었지만 표영은 견왕지로에 천음조화까지 터득한 터라 소리에 대한 능력은 개 사부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 할 수 있었다.

“어흥∼ 어흥∼.”

달려가며 연신 소리를 내자 수풀 여기저기에서 진짜 호랑이가 나타난 줄 알고 다른 짐승들이 빠르게 근처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러길 일식경(30분) 정도 지났을까. 급기야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잡고자 했던 백호가 아니었다.

‘음… 저건 줄무늬 호랑이잖아. 저놈은 어떻게 한담. 그래, 덤으로 잡아가야겠다.’

줄무늬 호랑이는 기실 동료가 근처에 이른 줄로만 알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거지만 달랑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무시하는 마음도 잠시. 호랑이의 안색은 기이하게 뒤틀렸다. 그 모습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사 거지가 아니다.

표영은 견왕지로 중 흉악육식과 심신평정을 동시에 펼쳤다. 흉악육식으로는 그동안 잡아먹은 흉악한 곰이나 호랑이 등의 냄새를 풍겼고 더불어 심신평정으로는 지난날 수많은 흉악스런 동물들을 잡아먹었던 장면을 눈으로 쏘아 보냈다.

표영과 눈이 똑바로 마주친 호랑이는 덜컥 겁에 질려 버렸고 오금이 저려 도망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미 승부는 결정 난 것이다.

표영은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 똑바로 걸어가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실 예전의 표영이라면 호랑이의 머리통을 갈기는 것으로 시작했을 테지만 허운 지역에서 개들의 충성심과 의리를 본 후로는 한낱 짐승이라도 대하는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하하, 짜식. 쫄았구나. 염려하지 마라.”

호랑이는 이제 죽었구나 싶었는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마치 애완견처럼 꼬리를 흔들어댔다.

그 촐랑 맞은 모습이란…

아마도 누군가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말 그대로 보고도 믿지 못할 상황이라고 소리소리 쳤으리라. 하지만 표영에게 있어서 호랑이나 곰들도 개와 비교해 다를 바가 없었다.

“어허, 이거 어서 빨리 백호를 찾아야 하는데.”

표영은 호랑이에게 따라오라 손짓한 후 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어흥∼ 어흥∼.”

다시금 영락없는 호랑이의 포효가 숲을 울렸다. 다시 일 식경 정도가 지났을 때는 어느덧 호랑이는 두 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두 번째 호랑이도 갈색 털에 줄무의 호랑이었다. 이제 표영은 호랑이 두 마리를 끌고 다니며 백호를 찾았다. 산 이곳저곳을 이 잡듯이 뒤지며 외치던 표영은 급기야 하얀 털에 휩싸인 백호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백호는 두 마리의 줄무의 호랑이가 처음부터 쫄아버렸던 것과는 달리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령산의 영물이라 칭하는 백호는 뭔가 달라도 달랐던 것이다.

‘이놈은 호락호락하지 않겠는걸.’

단단히 마음먹은 표영은 흉악육식에 구혈잠혈을 더해 주변을 살기로 채우고 심신평정으로 백호를 노려보았다. 표영과 백호 사이의 두 눈이 마주치는 공간에는 마치 불꽃이라도 튀기는 듯한 치열함이 가득했다.

일식경(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백호의 눈이 서서히 힘을 잃어갔고 고개가 차츰 내려갔다. 즉, 항복 선언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백호라 할지라도 견왕지로의 최고 절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데는 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식경 동안이나 표영의 눈을 바라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백호는 느꼈을 것이다.

앞에 선 거지야말로 자신을 초월하는 자라는 것을 말이다. 무서운 존재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동물들의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이렇듯 한 시진이 못 되는 시간 속에서 표영은 백호를 비롯해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아들이는 쾌거를 이루고야 말았다.

표영은 으쓱한 기분으로 백호의 등에 올라탔다.

“가자∼ 앞으로! 으하하하. 진개방의 앞날이 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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