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9장 (70/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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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제13장 칠옥삼봉

사마세가의 독자 사마복은 하령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연신 싱글거렸다. 그는 지금 칠옥삼봉(七玉三鳳)이라 불리는 천하의 기재들 중 네 명과 함께 조촐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하령산은 언제나 봐도 경관이 놀랍답니다. 게다가 훌륭한 분들과 함께 있노라니 절로 흥이 돋는 게 마치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말에 제갈세가의 기대주 제갈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마복의 말을 받았다.

“모두 다 사마 형의 생일 덕분 아니겠습니까. 어찌 이리 훌륭한 곳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칠옥삼봉 중 다른 분들도 모두 오셨으면 좋으련만 그 점이 아쉽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칠옥삼봉이라 불리는 열 명의 기재 중 다섯이었다. 칠옥삼봉이라 함은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는 젊은 신예고수들을 칭하는 말이었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고강한 무공으로 두각을 나타내었고 앞으로 강호를 이끌어갈 인물로 꼽히고 있었다.

강호는 수많은 젊은 고수들 가운데 오직 이들 열 명에게만 이런 칭호를 붙여주었으니 그들 개개인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하령산 중턱에서 환담을 나누는 이들은 칠옥에 속하는 이로 사마세가의 사마복과 제갈세가의 제갈호, 그리고 남궁세가의 남궁진창이 자리했고. 삼봉 중엔 아미파의 주약란과 남해검파의 교청인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 외 무당파의 표숙, 그리고 소림의 지공, 곤륜파의 막여충, 화산파의 양일원과 삼봉 중 천선부의 오경운은 문파의 사정상 참여하지 못한 터였다.

이날 모임은 사마복의 24번째 맞는 생일잔치를 마친 후 칠옥삼봉의 기재들만 따로이 하령산에 올라 여흥을 즐기고 있던 터였다.

한참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사마복의 눈이 숲 속을 스치다가 한순간 번쩍 하고 빛을 뿜었다.

‘저건 백호(白虎)다!’

다른 이들도 사마복의 표정을 읽고 얼른 그의 시선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흰 털에 뒤덮인 호랑이가 잽싸게 모습을 감추고 있는 중이었다.

백호는 하령산의 주인과 같이 행세하는 영물(靈物)이었다.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있는 사마세가의 고수로서 사마복은 언젠가는 백호를 꼭 잡아보겠노라고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얼른 제갈호와 남궁진창 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방금 보신 백호를 함께 잡으러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모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도 하령산에 오르기 전 백호에 대한소문을 듣고 궁금해 하고 있던 차였다.

“그거 재밌겠습니다그려.”

“누가 걸음이 제일 빠른지 호랑이를 빌어 겨루어봅시다.”

“좋지요.”

“호호호. 백호가 왠지 불쌍하게 느껴지는걸요.”

모두는 흥겹게 한마디씩 내뱉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법을 발휘해 백호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스스슥.

풀을 스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다섯 명의 젊은 고수들은 서로에게 뒤질세라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숲은 여기저기 나무가 불규칙적으로 자리해 이동하기 힘들 터인데도 이들은 기기묘묘한 신법을 구사하며 바람처럼 달렸다. 모두들 하나같이 선남선녀의 외모를 지닌 터라 그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이 화려하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백호는 평이하게 달리다 뒤쪽에서 심상치 않는 기운으로 짓쳐 오는 무리들을 보곤 이내 힘을 다해 달음질쳤다. 백호의 본능적 감각은 상대가 보통 내기들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사마복 등은 백호의 뒷모습을 보고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거리는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그럴 법한 것이 백호는 일반 호랑이와는 달리 그 덩치가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동작의 빠름은 혀를 내두르게 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백호로서는 하령산의 산세와 지형을 꿰뚫고 있어 그 동작엔 막힘이 없었다. 하지만 뒤쫓는 젊은 기재들은 전력을 다해 쫓기엔 지형의 변화가 커 급작스럽게 멈춰야 하거나 옆으로 꺾어야 하는 등 애로 사항이 많았다.

이런 상태로 점점 거리가 멀어지자 제갈호가 품에서 수라전을 빼 들었다.

수라전은 여섯 개의 톱니로 이루어진 표창이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채 진기를 유입해 날리게 되는데 기의 운용함에 따라 미리 예정된 방향으로 날리면 그대로 움직여 목표물을 꿰뚫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무기였다.

쐐액-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나면서 백호의 등판은 당장에라도 수라전이 꽂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수라전이 백호에게 거의 이르렀다 싶었을 때 백호는 몸을 수평으로 이동하여 수라전을 피해 버렸다. 그건 마치 무림고수가 암기를 피해내는 것같이 민첩하기 그지없는 동작이었다.

“오호∼”

제갈호는 아쉬움보다는 감탄이 앞섰다. 한낱 미물인 호랑이가 어지간한 고수들도 피하기 힘든 수라전을 피한 것이다.

다른 이들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말 보통 호랑이가 아니구나.’

‘수라전은 적어도 세 개 정도는 한꺼번에 던져야 가장 효과적이라 했다. 하지만 제갈 형이 힘을 다해 던진 것만은 사실이건만 어렵지 않게 피하다니…….’

하지만 도리어 백호의 이번 동작은 이들 다섯에게 강한 투지를 심어주었다. 백호는 수라전을 피하느라 주춤했고 그 작은 시간 동안에 거리는 좁혀졌다. 백호가 일순 커다란 포악성을 질렀다.

어흥∼!

마치 기합이라도 외치는 듯 백호는 소리를 내지르고 급작스럽게 방향을 바리 동남쪽으로 치달렸다. 백호는 방향을 바꾼 뒤로 거세게 달리다가 뒤를 슬쩍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코자 함이었다.

백호는 쫓는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음을 보고 한 번 더 괴성을 토해내더니 더욱 힘차게 달려 거리를 벌여놓았다.

현재 사마복 등은 전력을 기울여 달려가고 있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거리는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때였다.

달리던 제갈호가 길게 휘파람을 불고서 큰 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멈춰보십시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빠르게 달리던 중 제갈호가 멈춰 서자 다른 이들도 신형을 멈추었다.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제갈호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이대로 가서는 백호를 잡을 수 없을 듯합니다.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할 듯합니다만.”

“달리 복안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사마복이 모두를 대신해 물었다.

“쫓기보단 기다려야겠지요.”

“……?”

제갈호가 중인들의 시선을 즐기듯 이어 말했다.

“아까 백호가 갑자기 달리던 중 방향을 틀 때 언뜻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리고 계속 쫓는 중에 그 생각은 확신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건 분명히 지금 백호가 우리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인을 하다니요?”

“유인입니다. 추측컨대 그놈에겐 분명 새끼가 있을 겁니다. 놈은 처음에 우리에게 쫓기게 되자 모성 본능에 의해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달음질하게 되었으리라 추정됩니다. 그러다 우리의 추격이 예상보다 훨씬 위협적이자 새끼가 있는 곳에 가까이 이르러 불현듯 불안을 느낀 것이죠. 결국 자신이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른 곳으로 유인해서 따돌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겁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죽더라도 새끼들만은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것이죠. 기실 우리가 이대로 쫓아봐야 백호의 빠름을 쫓긴 힘듭니다. 그러니 이제 작전을 바꾸어 새끼들이 있는 곳에서 새끼들을 인질로 삼아 기다리고 있으면 쉽게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치 자신이 호랑이라도 되는 듯한 자세한 설명에 모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십니다그려. 삼뇌절선(三腦切扇)이라는 별호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로군요.”

하지만 그중 남궁진창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른 의견을 냈다.

“그건 좀 너무 지나친 비약이 아닐는지요. 그저 단순히 도망가는 것일 뿐이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허겁지겁 도망가다 보니 앞뒤 구분하지 않게 되었고 쫓기다 생각해 보니 길은 막다른 길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유독 괴성을 지르며 달려간 것은 마지막 힘을 발휘한 것일 뿐 곧 힘이 빠졌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괜스레 제갈 형 때문에 백호를 놓친 것이 아닐까 싶소이다.”

제갈호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백호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았을 터. 결코 길을 잘못 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백호를 쫓아가기 힘들게 되었으니 한번 가서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만일 제 말이 틀렸다면 여기 있는 모든 분들께 한턱 단단히 내겠소이다.”

“호호호. 그거 참 좋은 말이로군요.”

교청인이 재밌겠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아미파의 주약란은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안 됩니다. 우리는 정도(正道)를 걷는 인물들로서 어찌 호랑이 새끼를 인질로 삼아 백호를 잡는단 말입니까. 그건 사파에서 자주 쓰는 비열한 짓일 뿐입니다.”

제갈호는 주약란이 남궁진창과 연인 사이임을 떠올렸다.

‘후후,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지. 꼴에 비호한다고 나서기는, 내가 타당한 말을 하니 둘 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렷다. 미련하면 마음이라도 착해야지. 괜히 시기하기는……. 쯧쯧.’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기색으로 말을 받았다.

“주 소저께서는 너무 심약한 말씀을 하고 계시구려. 호랑이는 자칫 사람을 잡아먹을 수도 있으니 없애야 하지 않겠소? 게다가 비록 인질극이라고 해도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낱 짐승을 상대하는 것이니 너무 몰아세우지 마시구려.”

자칫 잘못하다간 대화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마복이 손을 내저으며 재촉했다.

“자자, 너무 일을 크게 보지 마십시다. 어차피 우리 목적은 백호를 잡는 것이지 그 새끼를 잡으려 함이 아니잖습니까. 모두 함께 일단 그쪽으로 가보도록 합시다.”

사마복이 이렇게 말하고 나서자 남궁진창이나 주약란도 더 이상 따지기 어려워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사마복이 앞서 달렸다.

“자, 서두르시지요.”

일행은 모두 아까 달려왔던 방향으로 돌아가 백호가 급히 방향을 틀었던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곳입니다.”

다섯은 학이 날개를 펼치듯 일정한 간격을 벌렸다. 그리고 그 지점으로부터 호랑이 굴이 있을 법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호랑이 굴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제갈호였다.

“이쪽입니다.”

제갈호가 가리킨 곳에는 작은 동굴이 하나 보였다. 제갈호는 자신의 생각이 들어맞은데다가 호랑이 굴로 여겨지는 곳까지 발견하게 되자 약간 의기양양해졌다.

‘후후. 내 짐작을 벗어나진 못하는구나.’

그는 일행이 다 이르기도 전에 동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퀴퀴한 냄새가 심해졌고 중간 정도 넘어서는 짐승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깊숙한 안쪽에는 어린 호랑이 새끼 세 마리가 있었다.

호랑이 새끼들은 위험이 닥친 것도 모르고 서로 할퀴고 엉겨 붙으며 뛰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 모두들 들어와 보십시오.”

일행은 굴 안으로 들어가 진짜 호랑이 새끼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감탄사를 발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어유, 너무나 귀엽네요.”

하지만 남궁진창과 주약란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꽁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둘은 제갈호를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머리가 뛰어나고 무공이 고강한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왠지 편협하고 이기적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때 사마복이 주위를 환기시켰다.

“우리의 목적은 백호입니다. 모두 나가 이곳 근처에서 은신하며 백호를 기다려 봅시다.”

그들은 굴에서 약 20여 장(약70미터) 떨어진 수풀에 몸을 숨겼다. 일식경(약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생각과는 달리 백호가 나타나지 않자 점점 따분해지려 할 때였다. 백호가 오기만을 눈을 빼고 기다리던 다섯의 이목에 기다리는 백호 대신 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허나 그 세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괴이하기 짝이 없어 그들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첫 번째 놀라움은 제일 앞쪽에서 걸어오는 젊은 거지의 모습이었다.

‘세상에! 저런 추접스런 거지가 다 있었다니…….’

이들 명문가 자제들의 눈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 누가 뭐라 해도 이들은 단연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지같은 놈이라고 말이다. 추접스런 놈 다음으로 두 번째 희한해하며 놀란 것은 뒤쪽에 따라오는 두 명의 중년 거지의 모습이었다.

그 둘은 땅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이동하고 있었는데 뿌옇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구르는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저런 미친놈들’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었다.

‘저 둘은 왜 걷지 않고 저리도 고생을 하는 것일까?’

그때 칠옥삼봉 인물들의 궁금증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앞에서 걷던 거지가 큰 소리로 떠들었다.

“야야! 좀 더 몸을 옆으로 굴리란 말이야! 그래 가지고 몸에 때가 오르겠냐. 되도록 지면에 최대한 몸을 밀착시켜야 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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