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66.
팍! 팍!
“으이크…….”
“네놈들 눈에는 내가 도적으로 보이느냐?”
만첨과 노각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대인께서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걸인이십니다요.”
“도적이라는 말은 당치도 않습니다요. 단지 저희들의 눈이 삐어 존귀하신 대인을 몰라보았을 뿐입니다요.”
표영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괜히 마음 졸였네. 난 거지로 보여야지 도적으로 보이면 안 되는 사람이거든. 좋아, 너희들의 대답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에게 큰 상을 하나씩 내리도록 하마.”
느닷없이 상을 내린다고 하자 만첨과 노각은 왠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거지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걸까.’
‘강호에 이런 거지 모습의 거지가 출현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이거, 불안해. 불안하단 말씀이야.’
표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며 흐뭇함에 빠졌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 곧 너희들은 진개방의 첫 번째 제자가 되는 것이다. 흐흐흐.’
표영이 번개같이 손을 뻗어 둘의 모가지를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케켁…….”
“으… 사, 살려주세요…….”
둘은 두려움에 손을 휘저으며 발버둥 쳤지만 표영의 손은 강철로 만들어진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 상… 케켁… 상 주신다면서요.”
만첨이 가까스로 하는 말에 표영이 빈정거리듯 답했다.
“조금만 기다려.”
표영은 먼저 왼손에 잡힌 노각을 공중으로 높이 날려 버렸다.
“날아라.”
“으… 어거거∼!”
노각은 몸이 치솟아 나무 꼭대기까지 닿을 만큼 올라가 세상 구경을 두루 한 뒤 다시 땅으로 곤두박칠쳤다. 노각이 내려오는 때를 맞추어 이번엔 오른손에 잡힌 만첨을 올려 보냈다.
만첨은 수직으로 올라가 막 떨어져 내리는 노각의 배를 들이받았다.
“커억!”
“아아악! 미안해∼!”
만첨의 돌머리에 명치끝을 들이받힌 노각은 숨이 턱 막힌 채 떨어져 내렸고 만첨 또한 들이받은 후 다시 추락했다.
표영은 다시 둘을 차례로 낚아채고 다시 아까의 자세를 회복했다.
“케켁! 아, 앞으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으헉!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개과천선해서 바르게 살겠습니다!”
하지만 표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음… 사람의 마음이란 게 말이지 용변을 보러 갈 때 하고 나올 때가 다른 법이거든. 아쉬울 때야 무슨 말인들 못하겠어. 안 그래? 상황이 회복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게 될 것이란 말씀이야. 해서 앞으로 너희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나의 부하가 되는 축복을 내리도록 하겠다.”
만첨과 노각이 머리를 조아리고 황급히 답했다.
“아, 그럼요, 그럼요. 부하를 하겠습니다요.”
“당연한 말씀이십니다요.”
하지만 속으로는 둘 다,
‘씨팔, 나중에 두고 보자.’
‘부하라니 무슨 개털 같은 소리냐.’
라고 중얼거렸다.
표영은 둘을 바닥에 팽개쳐 놓고 얼른 때를 밀어 회선환 한 알을 제조했다. 이 세상 어떤 의원이 이보다 더 빨리 약을 제조할 수 있을까. 검고 굵은 구슬 같은 회선환은 그 모양새도 거의 환약과 비슷했다.
회선환은 몸을 고치는 것이 아닌 마음을 바꾸어놓는 약이니 사람에게 있어 이보다 더 좋은 환약은 없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첨과 노각이 두려움에 휩싸인 채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고 있을 때 표영은 조용히 눈을 감고 주변을 살폈다. 예민한 청각에 풀 스치는 소리가 나며 뱀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이 포착되었다.
‘저놈으로 시범을 보여야겠군.’
표영은 신형을 번개같이 날려서는 다리로 풀을 스치듯이 휘감았다. 그러자 지나가던 초록 뱀이 불쑥 솟아올라 표영의 손에 잡혔다.
그 동작은 간단하면서도 명쾌해 만첨과 노각은 감탄이 절로 새어 나왔다.
‘듣기로 거지들은 개와 뱀을 잘 다룬다고 하더니 정말이로구나.’
‘근데 이 거지는 무슨 방파일까? 개방은 아닌 것 같은데 말야.’
그렇게 만첨과 노각이 감탄과 전전긍긍함에 사로잡혀 있을 때 표영은 뱀 모가지를 쥐고 다가갔다.
“흠흠, 내 부하가 되기 위해서는 약을 하나 복용해야 한다. 이 약은 하나하나 만들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 험험… 아무에게나 주는 것은 아니다. 너희들은 큰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때, 좋지?”
만첨과 노각은 뭔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겉으로는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음, 조금 아깝지만 약의 효과를 위해 뱀에게 복용시켜 보도록 하겠다.”
표영은 뱀의 머리 양쪽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뱀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순간 잽싸게 회선환을 먹임과 동시에 손가락 끝으로 독기를 주입하고선 땅에 내려놓았다. 재수 없는 뱀은 순식간에 독이 온몸에 퍼져 지랄발광을 하며 몸부림쳤다.
원래 뱀이야 꿈틀거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손 쳐도 지금의 광경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둘은 곧 뱀이 복용한 것이 독임을 알아보고 기겁했다.
“허거걱 ! 뭐, 뭐지?”
“왜, 왜…….”
급기야 뱀은 미친 듯이 꿈틀대다가 입에서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동작이 느려지더니 간헐적으로 발작하다가 끝내 죽고 말았다.
“환약이라면서요? 왜 그러는 겁니까요. 부하가 되겠다니까요.”
“흑흑흑, 제발, 제발 용서해 주세요.”
둘은 잘못 걸려도 여간 잘못 걸린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잘은 몰라도 아주 지독한 놈인 것이다.
“하하하, 다 큰 놈들이 울기는… 뚝 그치지 못해. 뚝!”
뚝이라는 한마디에 만첨과 노각은 울음소리를 멈추었지만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사이 표영은 얼른 두 개의 회선환을 제조했다.
“너무 염려하지 마라. 방금 뱀이 먹고 죽은 것은 너희들이 복용할 것보다 수 배는 강한 독성을 지닌 것이다.
회선환을 복용한 후에 1년이 지나기 전에 다시 회선환을 복용하면 또다시 1년이라는 시간은 아무 문제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자, 너희는 먹을 준비가 되었겠지?”
만첨과 노각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눈물만 좔좔 흘릴 뿐이었다.
“자, 그럼 먹자.”
표영은 번개같이 둘의 마혈을 짚어 얼굴 아래를 마비시켜 꼼짝 못하게 만든 후 입 안에 우겨 넣었다.
“뱉어내면 이 자리에서 죽을 줄 알아.”
마지막 반항의 기회조차 놓쳐 버린 만첨과 노각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회선환이 입 안에서 점점 축축해지며 녹아내리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어째 인생이 이렇게 꼬여 버린 거냐.’
‘어무이∼’
입 안을 들여다보고 목구멍으로 완전히 들어간 것을 확인한 표영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좋아, 훌륭하다. 너희들은 진개방의 첫 번째 제자들이다. 으하하하!”
“헉! 개방이라뇨?”
“첫 번째는 무슨 말씀이십니까?”
느닷없는 개방 타령에 눈이 휘둥그레진 둘을 보고 표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강호에 개방이 있지만 진정한 거지의 집단은 아니라 할 수 있지. 본좌는 그것을 통탄히 여기고 새로운 개방을 만들었으니 이름하여 진개방이다. 앞으로 너희들은 본 방주를 따라 거지로서의 사명에 충실하고 온 힘을 기울여 참거지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나마 뭔가 거창한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둘은 거의 절망에 사로잡혔다. 살다 살다 이렇게 재수가 없을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독약을 복용한 것도 서러운데 이제 다시 거지가 된 것이다.
“너희들의 이름은 무엇이냐?”
“저는 만첨이라고 합니다.”
“저는 노각입니다.”
“만첨과 노각이라… 좋군. 별호 같은 것은 뭐 없냐?”
“흑오쌍영(黑烏雙影)이라 불리우고 있습니다만…….”
“하하, 그래? 흑오쌍영이라… 새까만 까마귀 두 마리라 이거로군. 처음 들어보는 걸 보니 별것도 아닌 녀석들이로구나.”
흑오쌍영은 표영의 말처럼 별것도 아닌 것만은 아니었다. 절정의 고수는 아니어도 사파 계열에서는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단지 표영이 강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생소하게 느끼고 있는 것뿐이었다.
“저희들도 꽤 한다고 하는 편입니다요.”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은 살아 있어 만첨이 힘겹게 한마디를 꺼냈다.
“후훗, 그래? 그건 앞으로 지켜봐야겠지. 그나저나 너희의 별호는 너무 촌스러우니 새로운 별호를 지어야겠다. 거지는 거지다워야 하거든.”
이제 어쩔 수 없는 신세가 되었던 터라 만첨과 노각은 운명에 순응하기로 하고 그럴싸한 별호를 생각하느라 머리를 굴렸다.
“흑오쌍개가 어떨까요?”
만첨의 말에 표영이 고개를 저었다.
“별로야. 거지답지 못해. 음…….”
“천지쌍걸은 어떠신지요?”
“안 돼, 그건 너무 멋있어.”
표영은 고개를 젓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타구봉을 치켜들고 외쳤다.
“이것이 좋겠다. 잡개쌍수. 잡스러운 거지 둘이란 뜻이지. 오호∼ 좋아 좋아, 하하하!”
만첨과 노각의 얼굴이 일순 일그러졌다.
‘이런, 씨팔∼ 잡스러운 거지라니… 어째 두목이라는 놈의 작명 감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냐.’
‘잡개쌍수라… 진짜 추접스런 별호로구나. 으이그∼’
“방주님! 그건 좀 왠지…….”
“흑오쌍개가 훨씬 나을 것 같은데요.”
둘이 삐질 거리며 하는 말에 표영이 가만히 주먹을 내밀었다. 그러자 만첨과 노각의 얼굴이 싹 달라졌다.
“아하하… 잡개쌍수… 좋습니다요.”
“멋있는데요. 잡스러운 거지로 하겠습니다요.”
“하하, 역시 말이 통하는구나. 자, 그럼 하던 일을 계속해야겠다. 너희 둘은 저기 우경과 젊은 처자를 옆구리에 끼고 나를 따라오도록.”
“네.”
일시에 대답한 만첨과 노각은 둘 다 우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춘을 데리고 갈 목적으로 다가갔다.
“자넨 저놈을 데리고 가.”
“무슨 소리야. 아까 가위 바위 보에서 내가 이겼던 게 기억이 안 나?”
“그건 이제 물 건너갔잖아. 이번 판은 다른 거라고.”
“뭐야, 이 새끼야. 그러고도 네가 친구냐.”
“이 새끼가 어디서 욕을 하고 난리야.”
둘은 본연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욕설을 퍼부어대며 한판 붙을 기세였다. 표영이 옆에서 보자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것들이 방주 앞에서 못하는 짓이 없구나.”
일순 발이 날았다.
파파파팍!
“으억!”
“커억!”
둘이 바닥에 나동그라지자 표영은 자신이 소춘을 옆구리에 끼었다.
“자고로 거지는 재물뿐 아니라 여자에도 초연해야 하는 법. 앞으로 주접떠는 모습을 보이면 바로 독이 발작하도록 만들어 줄 테니 그리 알아라. 가자.”
표영이 신형을 날려 산 위로 올라가자 만첨이 우경을 들쳐 메고 뒤를 따랐고 노각도 움직였다.
만첨과 노각은 자신들도 나름대로 경공술에 조예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표영의 움직임을 보고선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았지만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신들의 걸음보다 더 빨랐으니 말이다.
‘젊은 나이에 대단하구나.’
‘근데 이게 정말 가능한 걸까. 혼자 방파를 세우고 부하들을 끌어들이다니… 우리만 피 보는 것 아닌지 몰라. 그래도 무공 실력은 엄청나구나.’
어느덧 산 정상에 오른 표영은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호기있게 말했다.
“멋지구나. 마음이 절로 탁 트이는걸.”
그리고 눈길을 돌려 노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노각! 굵은 넝쿨을 구해와라.”
“네, 방주님.”
노각이 씩씩하게 대답한 후 잽싸게 긴 넝쿨을 가져왔다. 그런 후 둘은 젊은 방주가 대체 뭐 하려나 하고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나. 어째 불안해∼’
표영은 우경의 오른쪽 발목에 넝쿨을 친친 감아 묶은 후 혼절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명문혈에 손을 대고 기로써 몸을 가볍게 자극했다. 그러자 우경이 신음 소리와 함께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처럼 머리를 움직였다.
“자, 됐다.”
표영은 왼손으로 넝쿨의 끝자락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우경의 몸을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렸다.
“으거걱!”
“뭐, 뭐냐!”
오히려 놀란 것은 만첨과 노각이었다. 설마 하니 이런 엉뚱한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터였다.
‘혹시 이거 완전히 미친놈 아니야.’
‘자꾸 불안해. 자꾸 불안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