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5장 (66/199)

 # 65

65.

우조환의 아들 우경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의 마음속은 지금 터질 것처럼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각회 지역에서 손꼽히는 미인인 소춘이 팔짱을 낀 채 옆에 나란히 걷고 있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흐흐흐, 오늘은 드디어 거사를 치르고야 말리라.’

우경의 관심사는 오직 여자뿐이었다. 이제까지 거쳐 간 여자가 몇 명인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다지 잘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돈의 위력은 대단했다. 어지간히 이쁜 여자들도 돈 앞에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고 아양 떨기 바빴다. 개중엔 고고한 여자들도 있어 수모를 당한 적도 없지 않았지만 그건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날은 오랜 작업 끝에 소춘을 꼬드겨 운백산으로 함께 등산을 가는 길이었다. 등산을 한다곤 해도 운백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힘들게 거길 오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오직 우경의 관심사는 운백산 정상이 아닌 소춘을 어떻게 해볼까 하는 것에 있었다. 어느 정도 가다 으슥한 곳이다 싶으면 바로 작업에 들어갈 터였다.

‘소춘, 조금만 기다려라. 흐흐흐… 정말 기대되는걸.’

우경은 우스갯소리를 해가며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이르자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어때, 좀 피곤하지? 여기서 잠깐 쉬어가자. 경치도 아주 그만인걸.”

“호호호, 좋아요. 저도 꽤 다리가 아픈걸요.”

우경은 자리에 앉아 엉큼한 시선으로 소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우경이 소춘을 표적으로 삼아 노리고 있을 때 정작 우경 자신이 누군가의 표적이 되고 있음은 알지 못했다. 우경과 소춘이 앉은 곳에서 약 15장(약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덩치가 곰을 연상케 하리만치 거대한 30대 중반의 두 사내가 길게 자란 수풀 사이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우경 못지 않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흐흐… 저 녀석은 정말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구만. 호위무사도 없이 험한 산을 오르다니 말이야. 이 만첨 어르신의 아가리로 걸어 들어온 꼴이 아닌가.”

만첨이라 자신을 칭한 이는 전음을 사용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작게 소곤거렸다. 옆에 있던 노각이 말을 받았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겠나. 우리의 인질이 되라는 하늘의 뜻 말일세.”

이들이 몰래 우경을 지켜보는 이유는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었다.

“자네 말이 맞는군. 우조환이라는 그 뚱뚱이 부자 놈은 이제 완전히 우리 밥이나 다름이 없지.”

만첨의 말에 노각이 살짝 인상을 쓰고 소곤거렸다.

“근데 말이야. 우조환이나 그 부인은 저 아들놈에게는 전혀 관심도 없는 것 같은데 인질극이 통할지 모르겠어.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안중에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야.”

“아무렴 그렇기야 하겠나. 그래도 지 핏줄인데. 고슴도치도 지 새낀 이뻐하지 않는가 말일세.”

“그러겠지. 근데 그 부부가 하는 짓을 보면 지들 놀기에 너무 바쁘더군.”

“까짓 정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저놈을 죽여 버리면 그만이겠지. 뭐, 우리야 손해날 것이 있겠나.”

“클클, 그렇긴 하군.”

둘은 우경과 소춘을 노려보며 입맛을 다셨다.

“근데 저기 옆에 있는 여자애는 얼굴이나 몸매가 그럴싸하군.”

“이걸 보고 님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클클, 역시 자넨 통하는 데가 있다니까 우리 먼저 순서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가위바위보로 하세.”

“좋지.”

둘은 함박웃음을 머금고 조용히 소곤거리며 가위 바위 보를 했다. 이제껏 살면서 여러 차례 가위 바위 보를 했지만 언제나 여자를 두고 하는 때가 제일 신났다.

하지만 만첨과 노각은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는 줄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오로지 우경과 소춘을 어찌해 보겠노라는 생각으로 노리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노림을 당하고 있음은 알지 못했다.

그럼 과연 그들 뒤엔 누가 있는 것일까.

만첨과 노각 뒤로 약 10여 장(33미터)쯤에 표영이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표영은 우경을 깨우치기 위해 몰래 뒤를 밟고 있다가 만첨과 노각을 발견하게 되었고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작금의 형세를 정리해 보자면 우경이 소춘을 노리고, 그 우경을 만첨과 노각이 노리고, 다시 만첨과 노각을 표영이 노리는 것으로, 물고 물리는 관계 속에서 정작 당하는 쪽은 전혀 감지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건 마치 참새가 지렁이를 잡아먹으려 바라볼 때 그 참새를 독수리가 은밀히 노리고 있고 그 독수리를 다시 사냥꾼이 노리고 있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었다.

이런 이치는 결국 자신이 얻을 이익만을 생각하며 몰두하다 보면 정작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음은 알지 못하게 됨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표영은 이런 묘한 관계를 생각하다가 일순 섬뜩함을 느끼고 뒤를 바라보았다. 자신 또한 누군가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해서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살피는 자는 없는 듯했다. 표영은 다시 만첨과 노각을 바라보며 가소로움에 속으로 혀를 찼다. 이미 청력 또한 상당히 발달한 터라 그들의 말은 표영의 귀에 낱낱이 들어온 터였다.

‘쯧쯧, 저런 까마귀 같은 놈들을 봤나.’

그와 함께 표영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놈들을 진개방의 제자로 삼아야겠다. 내가 아니면 누가 거두어주겠는가. 녀석들, 복받았군. 흐흐…….’

남쪽으로 달려오면서도 줄곧 기회가 닿으면 누구라도 진개방의 제자로 삼을 참이었다. 그러던 차에 아주 적절한 녀석들이 걸린 것이다.

한편 우경을 바라보면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더니… 날마다 허황되게 사니 이런 날파리들이 꼬이지 않을 수 없겠지.’

표영은 만첨과 노각이 움직인 후에 손을 쓰기로 하고 일단 지켜보았다. 잠시 후 만첨과 노각이 옆으로 슬금슬금 이동해 우경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곤 적절하다 싶자 급작스럽게 신형을 날렸다.

풀 스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림과 동시에 우경과 소춘은 뒤통수에 충격을 받고 앞으로 쓰러졌다 소춘은 느닷없는 공격에 기절해 버렸고 우경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지르면서도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래, 너도 남자라 이거렷다.”

만첨의 뇌까림에 우경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누구… 어억!”

우경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만첨의 발길질이 다시금 머리통을 갈겨 버린 것이다. 비명을 지르며 우경이 쓰러지자 만첨과 노각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으며 지껄였다.

“킬킬킬, 이젠 돈은 다 우리 차지다.”

“돈뿐이겠나. 여기 삼삼한 처자도 우리 차지야. 으하하!”

“뭘 망설이나, 노각. 자네가 이겼지 않나. 내 오늘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네.”

“자네 마음 씀씀이가 바다같이 넓어졌구먼.”

둘이 자화자찬하며 기쁨에 들떠 있을 때였다.

빠악. 빠악.

뒤통수가 빠개지는 고통이 전해지며 만첨과 노각은 바닥을 굴렀다.

둘은 아까 자신들이 후려 팬 우경과 소춘 옆에 나란히 엎어진 꼴이 되고 말았다. 만첨과 노각은 절세고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파 계열에서는 한가락 하는 무인들인지라 득달같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떤 새끼냐! 죽고 싶어 환장을 했냐!”

“누구냐, 대체!”

둘은 흥분한 나머지 상대가 얼마나 고수일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무리 소춘을 어찌해 보겠다는 마음이 컸다 해도 뒤통수를 얻어맞을 때까지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지 않았던가.

둘이 몸을 돌리려 할 때 다시금 표영의 발이 날아올랐다.

파팍-

“으억!”

“커억!”

멋진 회구각의 발놀림이었다. 하지만 이번 발길질도 처음 것과 같이 내공을 싣지 않고 날린 것이라 작은 충격만을 안겨주었다.

“푸하하, 이놈들아. 누구긴 누구냐, 거지 나리님이시지.”

표영이 웃으면서 바닥에 지렁이처럼 꿈틀대는 둘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열심히 살아야지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냐. 쯧쯧… 하여간 요즘 것들은 너무 쉽게 세상을 살려고 한단 말씀이야.”

만첨과 노각은 머리를 들고 자신들을 후려 팬 놈이 누군가 하고 바라보았다.

‘뭐야, 이건 거지새끼잖아.’

‘우리가 거지 놈에게 맞고 살 수는 없지.’

강호 밥을 이십 년 가까이 먹고 산 만첨과 노각이었다.

둘은 강호 고수에게 맞았다는 생각보다는 재수가 없어 거지에게 얻어터졌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표영이 힘을 적절하게 조절해 공격한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둘은 입을 앙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호로 쌍놈의 새끼, 축축하고 습기 찬 곳에다 매장시켜 주마. 썅!”

“제삿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오늘 날짜를 기억해 둬라!”

둘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표영은 뒷짐을 진 채 여유롭게 몸을 붕 솟구쳐 뒤로 이동했다. 일순 만첨과 노각은 주먹질과 발길질이 목표를 잃고 빗나가자 얼떨떨했다.

그들의 눈에는 표영이 언제 뒤로 이동했는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표영은 몸을 뒤로 이동했지만 그대로 멈춰 선 것은 아니었다.

몸이 땅에 닿자마자 발을 튕기며 앞으로 달려가 회구각을 시전해 둘의 가슴을 연달아 가격했다.

퍼퍽. 퍼퍽.

“으윽.”

“으윽.”

둘은 다시 바닥을 굴렀고 그제야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강호를 떠돈 지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상대할 수 있는 고수인지 아닌지 보는 눈 정도는 있었던 것이다.

‘개방의 고수인가? 개방은 저렇게 추접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건만…….’

‘매듭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분명 개방인은 아닌데… 그렇다면 우가장의 숨은 호위 무사란 말인가.’

개방 고수든, 아니면 호위 무사든 간에 상관없이 둘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여기에서 뼈를 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만첨과 노각은 드러누운 채 서로를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뜻은 일치했다.

-잘못 걸렸다, 제길.

둘은 허겁지겁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요. 한 번만 봐주십시오.”

“대인께서 이들을 노리고 계신지도 모르고 그만 수작을 부렸습니다. 저 여자는 건드리지 않았으니 대인께서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정말입니다요. 저희들이 양보하겠습니다요.”

만첨과 노각으로서는 어쩌면 이 거지가 자신들과 같은 목적으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여겼다. 하지만 소춘을 양보하겠다는 말은 매를 벌 뿐이었다.

“이놈들 보게나… 뭐 눈에는 뭐밖에 안 보인다더니…….”

표영은 어느새 빼 든 타구봉으로 둘의 머리통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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