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60.
허운 지역의 오백여 마리의 개들은 정기 소집일을 맞이하여 외곽 토지묘 공터에 모였다.
훈련을 목적으로 매번 한 달에 한 번 소집되곤 했는데 늘 같은 훈련이었지만 표영의 철학 ‘적어도 1년가량은 습득해야 훈련의 성과는 이루어진다’에 따라 지겹지만 모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들어 제군들의 질서 정연한 모습에 본좌는 기쁘기 그지없다. 도둑놈들도 부쩍 줄어들어 치안에 대한 염려가 없어진 것은 실로 치하할 만한 일이다.”
한참 신나게 연설하는데 끝 부분에 있던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본좌가 말을 하는데 어떤 개새끼가 시끄럽게 떠드는 거냐. 죽고 싶은 게냐!”
표영은 기분 잡쳤다는 듯 고함을 치고 멀리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
개들이 괜히 짖는 것은 아니었다. 개들 뒤로 두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도 아니고 특별히 자신을 찾아올 사람도 없기에 표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안력을 높여 점점 다가오는 두 사람을 살펴보았다. 이미 내공이 경지에 오른 표영의 안력은 대단했다.
어지간한 곳까지는 사람의 외양은 물론이거니와 입고 있는 옷의 무늬가 어느 쪽으로 휘고 꺾었는지조차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저 노인은 전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하, 그렇군. 개방 총타에서 왔다는 장로로구나.”
표영에게 다가온 이는 집법장로 이요참이었고 함께 온 이는 그의 수하였다.
전공장로 호노작과 총원장로 계주억은 표영은 안중에도 없는지라 함께 오지 않았다.
이진구 사태가 벌어진 후 이요참은 표영을 만나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몇 가지를 물어보았으며 무공의 여부를 살핀 터였다.
표영은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대수롭게 생각지 않고 가만히 그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요참은 어느새 표영의 눈앞에 이르러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이거 개들이 많이 모였군. 소문이 헛되지만은 않았는걸.”
그의 표정은 밝았다. 전에 보았을 때는 무표정이었는데 지금은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인심 좋은 노인의 모습이랄까.
하지만 이렇듯 웃음을 머금고 있을 때야말로 가장 잔인한 마음을 품고 있을 때라는 것을 표영은 알지 못했다.
“아, 지난번에 오셨던 장로님이로군요. 귀한 발걸음을 이 누추한 무명소졸에게 옮기시다뇨. 정말 황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요.”
표영이 고개를 숙여 황송함을 표하자 이요참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장로님이라… 뭐,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지만 네놈에게 그런 칭호는 더 이상 듣지 못할 것 같구나.”
“아하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혹시 장로님께서 개방을 떠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어라? 그러시면 안 되는데…….”
이요참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껄껄껄, 내가 개방을 떠난다고? 껄껄껄, 아니야. 떠날 사람은 바로 너란다. 넌 오늘 부로 개방인이 아니다. 그저 개 잡는 거지일 뿐이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표영은 묵백의 방문을 받은 후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짐작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무슨 일이라는 것이 바로 이요참의 등장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음을 대략 알 수 있었다.
“너는 그저 거지로 살았다면 좋을 뻔했구나. 하긴, 생각해 보면 네놈이 들어온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로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어찌 배반자 묵백과 오선교를 추려낼 수 있었겠느냐.”
“배, 배반자라뇨?”
“껄껄껄… 네놈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니 들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어쨌든 둘은 이제 형벌을 받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네놈인데, 네놈은 조용히 사라져 주어야겠다. 개방은 거지를 받아들이는 곳이 아니거든. 껄껄껄.”
표영은 고의로 두려운 척하며 덜덜 떨었다.
“사, 사라지다뇨? 그럼 절 죽이시겠다는 겁니까?”
“껄껄껄, 네놈의 더러운 피를 꼭 내 손에 묻힐 필요까지야 없겠지. 단지 너로 인해 개방의 위상이 실추되었으니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자, 그럼 이제 퇴출식을 거행해 보도록 할까.”
“퇴출식이라니, 그런 것도 있나요?”
“아무렴. 어느 조직에서든 들어올 때는 쉽지만 나가는 것은 어려운 법이란다. 그냥 가면 내가 섭섭하지.”
연신 웃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표영의 눈엔 더 이상 그의 모습이 인심 좋은 할아버지로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역겨운 모습에 토악질이 날 것만 같았다.
이요참은 실실거리며 가만히 손을 들었다. 죽이고자 함은 아니었지만 그에 비견되는 고통을 안겨 주리라 다짐한 터였다.
“네놈이 개방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내 조카가 그 지경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의 몸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표영은 온몸으로 살기를 느꼈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살기는 표영만 감지한 것이 아니었다. 본능적 감각을 지닌 개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늙다리를 바라보았다. 개들의 입장에서는 이 늙다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감히 견왕에게 깝죽대다니……. 개들은 분노에 차 우렁찬 소리로 짖기 시작했다.
으르르릉. 으르르릉.
[이 새끼가 죽을려고 환장을 했나.]
와르르왈왈.
[늙으려면 곱게 늙어야지 어디 와서 주책이냐. 감히 견왕 앞에서 살기를 피우다니.]
콰르콸콸.
[우리가 정녕 눈에 들어오지 않는단 말이냐! 미친놈 같으니라구.]
월월! 월월!
[저런 놈들 때문에 견왕께서 화내시고 우리한테 화풀이가 돌아오는 거 아니냐구. 썩을 놈!]
하지만 표영은 개들이 오백여 마리나 있다고 해도 개방의 장로를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괜히 어쭙잖게 달려들게 해봤자 개들만 죽어갈 뿐이었다. 표영은 개들을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자, 오늘 교육은 여기서 마친다! 모두 돌아가도록!”
말과 함께 양손을 들어 교차하자 개들은 의아함에 가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표영을 바라보았다.
“이놈들, 가라고 하는 말 못 들었어!”
주먹을 쥐고 곧 때릴 듯한 기세를 보이자 개들은 못내 서운한 듯 하나둘 발길을 각자의 집으로 옮겼다. 한 번씩 뒤돌아보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이요참은 손을 들어 치려다가 그러한 꼬락서니를 보고 기가 막힌 지 그저 허허거렸다. 구지경외자라고 하더니만 그런 별명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허허, 그래도 개들을 아끼는 마음이 가상하구나.”
하지만 모든 개가 다 떠나간 것은 아니었다. 허운 지역 개들 중 서얼 1위인 바둑이와 2위인 흰둥이, 3위인 똘똘이는 여전히 표영 주위를 맴돌았다.
이들은 견왕에게 깝죽대는 노인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었다. 아무리 견왕께서 돌아가라고 했지만 들어야 할 말이 있고 듣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다. 개들에게도 충성심은 있는 것이다.
으르릉.
세 마리의 개들은 쫙 가라앉는 저음으로 상대방에게 위협을 준 후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건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는 공격이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것이 이러할까. 흰둥이와 똘똘이는 뛰어오른 기세 그대로 이요참의 손아귀에 모가지가 잡혀 낑낑대었고 뒤이어 솟구친 바둑이는 발길질 한 방에 저만큼 나가떨어져 몇 번 몸을 떨더니 축 처져 버렸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죽은 것이 분명했다.
끼낑- 끼낑-
흰둥이와 똘똘이의 고통에 겨운 버둥댐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요참이 살짝 손아귀에 힘을 주자 목뼈가 으드득 부러지며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았다.
“무슨 짓이오!”
표영이 쌍심지를 켜고 소리쳤다.
“어쭈, 화를 내는 것이냐? 하하하.”
표영은 잠시 생각했다. 과연 여기에서 본신의 힘을 다해 맞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나중을 기약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맞서 싸운다면 과연 승산이 있을까. 하지만 잘못된다면 여기서 목숨을 잃게 될 확률이 높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 일단 힘이 닿지 않으니 맞서지는 말기로 하자.’
“아이야, 어서 덤벼보아라. 내가 먼저 손을 쓰긴 조금 난처하지 않겠느냐. 나는 너의 충성스런 부하를 죽였으니 어서 복수를 해야지. 껄껄껄.”
표영은 분노한 기색으로 동네 건달들이 주먹을 날리듯이 어쭙잖게 뛰어가 주먹을 뻗었다.
거기엔 조금의 내공도 실려 있지 않았고 초식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저 막싸움에서나 볼 수 있는 건달의 주먹질이었다. 표영은 가장 허술하게 보이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래야만 피해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요참은 어이가 없는지 피식 하고 웃었다.
“허허, 거참… 기분이 안 나는걸.”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의 손은 매섭게 뻗어갔다. 다가오는 주먹을 어깨 위로 흘리면서 정권으로 복부를 강타했다. 표영은 호신강기를 전혀 일으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연적으로 반응하는 내공력까지 제어한 상태였기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명치끝에서부터 찌르르하니 전해오는 충격은 숨을 쉬기조차 힘들게 했다.
“우읍.”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서서히 허물어졌다. 이요참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느리게 허물어지는 표영의 뒤통수를 손날로 가격했다.
퍽.
급격한 충격에 표영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개구리처럼 뻗어버렸다.
“껄껄껄, 일어나라.”
표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장에라도 진기를 일으켜 파옥장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 자식, 두고 보자. 언젠가 백 배로 갚아주고 말겠다!’
꾸역꾸역 몸을 일으키자 어느새 이요참이 날린 발이 턱을 강타했다. 어찌나 쾌활한 발놀림이었던지 표영의 몸은 공중으로 솟구쳐 세 바퀴를 돌고서 땅으로 풀썩 하고 떨어져 내렸다.
“껄껄껄, 잘도 도는구나. 그러니까 거지는 거지답게 살아야 하는 법이야. 개방에는 왜 기웃거렸느냐. 불쌍한 녀석.”
‘너의 이름이 이요참이라고 했지. 기억해 두마. 이요참, 이요참.’
표영은 혼절하는 척하지 않았다. 오기가 발동해 덜덜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깡다구가 있긴 하구나. 하지만 그런 깡다구는 개들에게나 통하는 법이란다. 껄껄껄.”
이요참은 웃으면서 오른발을 땅을 스치듯이 날리며 표영의 발을 쓸었다. 다시 표영의 몸이 공중으로 붕 뜨며 허리부터 쿵! 하고 땅에 찧었다.
“정말 너무 재미없는걸. 이렇게 싸워서야 아무런 흥이 나질 않아. 이젠 마무리를 해야겠지.”
이요참은 표영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견왕봉(타구봉)을 보았다.
“오호, 이건 개들을 다스리는 막대기로구나. 껄껄껄, 이것으로 개들을 많이 후려팼나 보지? 자, 그럼 이것으로 네놈도 한번 맞아보려무나?”
‘그래, 마음껏 웃고 마음껏 패라. 언젠가는 너의 얼굴에서 웃음을 제거할 날이 오지 않겠느냐.’
표영이 이를 갈고 있을 때 이요참의 몽둥이질이 가해졌다.
슉- 퍽!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표영의 오른쪽 다리뼈가 부러졌다. 표영은 이를 악물고 신음을 토해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너무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다간 아예 죽을 수도 있는지라 신음성을 참지 않고 토해냈다.
“으윽!”
“아프냐? 이것 가지고 아프다고 하면 곤란하지. 이번에는 발목이다.”
슉- 퍽!
“으으읍.”
발목뼈도 어긋나 버렸다.
“이번에는 발가락 차례로구나.”
“이번에는 팔목!”
“이번에는 손목!”
“손가락!”
“이번엔 갈비뼈 차례구나.”
“이번에는 턱? 아하, 아까 부쉈지. 하하, 두 번은 너무 과하니 그냥 놔두도록 하지.”
이로 인해 표영의 몸은 오른쪽에 있는 뼈라는 뼈는 모조리 부러져 버렸다.
“왼쪽은 나중에 손을 봐주기로 하마. 언젠가 또다시 소란을 피우거나 혹여 개방 제자라고 사칭하고 다닌다면 그땐 모든 뼈가 제자리를 찾긴 힘들 것이다. 하하하, 하긴 살아남을지도 의문이긴 하다만. 하하하.”
이요참은 함께 온 수하를 돌아보고 말을 이었다.
“보자기에 싸서 야산 깊숙한 곳,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버리도록 해라. 짐승의 먹이가 되든 굶어 죽든 알아서 하도록 말이다. 껄껄껄.”
“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수하가 보자기에 표영을 우겨넣었다. 시키먼 짐승의 아가리 같은 보자기에 들어가면서 표영은 이를 갈았다.
‘이요참. 너의 이름은 나의 뼈에, 나의 살에, 나의 피에 새겨 넣어 주마.’
전대 방주인 엽지혼의 제자로 진정한 방주인 표영은 개방장로 이요참에 의해 철저히 부서졌다.
힘없는 방주는 맥없이 보따리에 싸매어진 채 이제 야산에 버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표영의 가슴속 깊은 곳엔 이요참의 웃음과 잔인함이 깊이 각인되었다. 최고의 기재이자 현 개방방주인 표영에게 이요참은 제대로 찍힌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이요참은 표영을 담은 보자기가 멀리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고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 정도면 됐겠지. 이젠 묵백과 오선교를 총타로 데려가 고문하는 것만 남았구나, 클클클. 어서 가자. 오랜만에 재밌는 일이 벌어지겠어.”
그의 얼굴엔 평온한 미소가 번졌지만 그의 눈엔 따뜻함이 담겨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