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7장 (5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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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동굴 안인데다 밀폐된 공간인지라 소리가 웅웅 하고 울렸다.

엎드려 있던 장산후는 요란한 소리에 정신이 든 건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몰골은 해골처럼 비쩍 말라있었고 길게 자란 머리에 가슴까지 수염이 자라나 있었다. 그런 모습은 그가 얼마나 오래 이곳에 갇혀 있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장산후는 몸을 뒤로 해 벽에 기댄 후 노위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클클… 싸가지없는 놈이 왔구나. 넌 그동안 더 싸가지가 없어진 것 같구나.”

노위군은 일순 얼굴이 굳어졌지만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이 껄껄대며 답했다.

“사형은 언제나 저를 무시하시는구려. 제가 대접이 좀 소홀했습니까?”

“소홀할 것까진 없지. 그래도 꼬박꼬박 밥을 들여주지 않느냐. 거지가 하루 밥 한 끼면 사실 적다 하긴 힘들지.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네놈의 그 썩은 혀와 눈, 그리고 심장을 말하는 것이야. 클클클.”

장산후의 조롱에 노위군이 잔인한 미소를 풍기며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너무 박대하지 마시구려. 나도 사형에게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소이다. 내게 사형은 오직 한 명뿐이잖습니까.”

“그래도 언제나 꼬박꼬박 사형이라고 말하는구나. 미친놈. 오늘도 비천신공 때문에 온 것이렷다!”

“하하하…….”

노위군은 어색한 웃음을 날리고는 말을 이었다.

“어찌 비천신공 때문만이겠습니까. 사형의 건강도 점검하고 인사도 드릴 겸 왔습니다.”

“클클클… 역시 미친놈이 분명해. 네놈에겐 정말이지 염치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로구나.”

둘의 대화는 실실거리면서 말하고 있었지만 그 속엔 포악스럽게 말하는 것보다 더한 살기들이 어려 있었다.

“하하, 제게 비천신공의 숨겨진 구결만 알려준다면 당장에라도 사형을 태상장로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자꾸 고집부리지 마시고 속 시원하게 털어놔 보십시오.”

노위군은 삼 개월에 한 번씩 이곳에 들러 장산후에게 비천신공에 대해 물어보았다. 노위군에게 있어 가장 취약한 부분은 내공 방면이었다. 내공을 보강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무공 상승을 기대하긴 힘들다 여긴 그는 마지막으로 비천신공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네놈을 돕고 있는 그 사악한 놈들에게 가서 부탁하지 그러느냐? 그놈들은 네놈 말이라면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없을 것처럼 자상하게 널 대하고 있으니 말이야. 사부님도 죽인 놈들이 그까짓 내공심법 하나 주지 않는다는 것은 좀 말이 안 되지, 암.”

노위군의 눈빛이 작게 일렁였다.

“흥, 내가 사부를 죽였다니? 왜 자꾸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나는 네가 개방을 어지럽힐 것을 염려해 이렇게 가두어 두었을 뿐이다. 헛된 말로 마음을 격동시키려 하느냐. 이 배신자!”

“개자식! 재롱을 떠는구나. 하지만 네놈의 연기력은 너무 부족해. 크게 실감나지가 않는단 말씀이야. 그래서는 누구도 속이기 힘들지. 클클.”

노위군은 허리춤에서 번개같이 단도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쏘아보는 것이었지만 장산후는 전혀 동요됨이 없었다. 오히려 손뼉을 치며 웃었다.

“하하… 맞아 맞아. 이제야 너 답구나. 역시 넌 그렇게 본색을 드러내야 어울려. 암, 그렇고말고. 게다가 타구봉이 아닌 단도라니. 하하하, 타구봉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긴 하나 보구나. 녀석아, 어서 날 죽여라. 나도 사부님이 계신 곳으로 가고 싶으니까 말이야. 으하하하!”

그 말에 노위군은 더 참을 수 없어 멱살을 쥐고 장산후를 들어 올렸다. 비쩍 마른 장산후는 힘없이 들려 대롱대롱 손에 매달린 상태가 되었다.

“흥, 쉽게 죽게 할 순 없지. 네놈은 사형 대접을 해주면 덥석 움켜쥐며 고맙습니다 할 것이지, 스스로 화를 부르는구나.”

노위군은 단도를 장산후의 어깨 밑의 비파골에 쑤셔 넣었다. 순간 단도는 어깨를 뚫고 지나가 등 뒤로 튀어나왔다.

“으윽.”

장산후는 괴로운 신음성을 참으려 했지만 워낙 허약해진 터라 어쩔 수 없이 입술 사이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끝내 옅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클클… 썩을 놈. 꼭 올 때마다 같은 곳을 찌르는구나. 하여간 잔인한 놈이라니까. 이제 아물만 하다 싶으면 꼭 이런다니까. 클클.”

노위군은 단도를 잡고 비틀어 돌리기 시작했다. 양면으로 날이 선 칼날이 뼈와 살을 후볐고 말로 표현 못할 고통이 전신으로 퍼졌다.

“으아악∼.”

잠시 후 어찌나 고통스럽던지 비명을 내지르던 장산후가 힘없이 말했다.

“말하겠다. 그만 해라.”

눈을 반쯤 홉뜬 채로 장산후는 고통스러워했고 노위군은 의기양양해졌다.

“…비, 비천신공은… 거, 거지로서의 삶에 충실하여… 으윽… 인간과 자연을 느껴 몸 안에 받아들이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공이 된다…….”

“또 그 소리냐? 끝까지 날 조롱하겠다는 것이구나. 이런 개자식!”

그가 바라는 가치있는 것은 폼나고 멋있으며 세련된 그 무엇이었다. 진정한 진리는 허리를 숙인 자에게 발견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는 들을 귀가 없어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신공을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 돼버리고 말았다.

노위군은 다시 단도를 장산후의 살 속으로 후볐다.

“으으윽… 네놈에겐 역시… 헉헉… 쥐약이 최고야. 어억!”

말을 끝냄과 동시에 장산후는 이를 악물고 혼절해 버렸다. 그제야 노위군은 단도를 뽑고 한쪽 구석에 장산후를 내던졌다.

“언제까지 말을 하지 않나 보자. 앞으론 말을 하지 않을 때마다 사지(四肢)를 하나씩 잘라주마.”

그는 잔인한 얼굴로 노려본 후 뇌옥을 나섰다.

제6장 노위군의 약점

과거 개방의 방주실은 따로 없었다.

있다 해도 그저 초라한 움막 같은 것이 고작일 정도일까. 새도 둥지가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거지에겐 천하가 내 집이고 모든 길과 모퉁이가 잠자리라 생각한 까닭이다.

하지만 노위군이 방주가 된 뒤로는 보기에도 거창한 방주의 처소가 마련되었고 아름다운 치장이 이루어져 어느 누가 보아도 거지 왕초의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규모를 갖추었다.

뇌옥에서 돌아온 노위군은 내실 한가운데에 좌정하고 앉은 채 비천신공의 구결을 따라 기를 운행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별다른 느낌을 받을 수가 없는데다 내공은 일정 수준 외에는 더 이상의 진보가 없었다.

“흥, 거지 같은 사부가 날 무시하더니 이젠 멍청하기만 한 사형이라는 녀석도 헛소리만 해대고 있지 않은가.”

노위군은 운기행공을 거두고 투덜대며 번민에 잠겼다.

‘내가 익힌 육절신공으로는 초절정 고수로 나갈 수 없다. 정녕 비천신공을 익힐 순 없단 말인가.’

그가 상념에 잠겨 고민하고 있을 때 밖에서 수하의 인기척이 나면서 음성이 들렸다.

“곡함 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말에 노위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밖을 향해 말했다.

“안으로 모셔라.”

이미 곡함이 올 것이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위군은 약간 긴장하는 눈빛이 되었다.

“노 방주,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나?”

인사를 건넨 곡함의 용모는 두 눈썹이 짙고 두 눈 사이에 작고 붉은 반점이 자리했는데 거기에 턱이 네모로 각진 것이 강인한 인상으로 비쳐졌다. 노위군의 입술이 가늘고 턱이 뾰족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하하, 자네도 신수가 아주 훤하군.”

밖에서 들으면 둘도 없는 친구가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들릴 테지만 정작 둘의 표정은 말과는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친구로 칭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은밀한 거래를 주고받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게나. 오래간만일세.”

“그러게 말이네. 자네같이 큰 방파를 맡고 있는 사람을 내 어찌 사사로운 일로 자주 찾아올 수 있겠나. 부르심 없이는 감히 만나러 올 수가 없단 말이네. 껄껄껄.”

곡함은 자리에 앉으면서 소리 내어 껄껄거렸지만 여전히 얼굴은 경직된 채었다.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전음으로 다른 말을 했다.

-곡주께서는 노 방주에 대해 심히 염려하고 계시오. 그대는 어찌하여 화산파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오이까? 우리가 약조한 것을 잊었단 말이오?

노위군은 전음을 듣고 안색이 급변했지만 입으로는 천연덕스럽게 다른 말을 했다.

“자, 술 한잔하세. 친구와 함께 술을 마셔야 진정한 제 맛이 우러나는 법이지 않겠나.”

하지만 그도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전음을 날렸다.

-혈곡과 약조한 것은 잊지 않았소. 하지만 화산파는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니지 않소이까. 자칫 우리의 행보가 노출되기라도 하면 남은 세 가지 정보를 전해주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니겠소.

“허허, 가득 따라보게나. 역시 자넨 내 마음을 아는군. 오자마자 술을 주니 말일세. 오늘 한번 제대로 취해보세.”

-흥, 그래도 잊지는 않았구려. 혈곡에서 그대를 방주로 세우기 위해 절정의 살수 천참단 50인이 희생당한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오. 우린 큰 희생을 감수하고 그대의 사부를 죽여주었고, 그로 인해 방주가 되었으니 허튼 생각일랑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여차하면 모든 진실을 강호에 다 알려 버리고 말 테니까 말이오.

노위군의 안면이 작게 일그러졌다.

‘개자식들, 천참단의 수고만 생각하느냐? 내가 미리 사부에게 독을 풀지 않았다면 너희들이 성공할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노위군은 곧 침착함을 유지했다.

“어이구, 이런! 잔이 넘쳤군그래.”

-가까운 시일 내로 극상의 정보를 전해주겠소.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소이다.

“자자, 자네도 한잔해야지.”

-또 누군가를 죽여 달라는 것이오? 이제 당신은 방주가 되어 소원을 이루었고 방내에서 거역하는 무리들까지 다 뇌옥에 처넣었는데 누가 또 문제될 사람이 있소이까?

비꼬는 전음이 노위군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혈곡을 벗어나기엔 너무나 큰 약점이 잡혀 있는 것이다.

“자, 내게도 한잔 따라보게나.”

-말이 너무 심하구려.

-어쩌다 나온 말이니 괘념치 마시오. 그래, 그 부탁이란 것이 무엇인지 들어봅시다.

-내공심법을 얻고 싶소이다. 정종심법에 가까운 것으로 말이오. 혈곡은 사파의 최정상이니 그런 비결이 있지 않겠소.

“자, 드세나.”

-허허, 그것이 부탁이오?

일순 곡함의 얼굴에 비웃음이 일었다.

‘이런 자가 개방의 방주라니……. 개방은 참으로 운이 없구나.’

속으로 혀를 차면서 전음을 날렸다.

-이거 참으로 어려운 부탁이구려. 하지만 내 힘써 보겠소.

“요즘은 어디를 주로 다니나?”

-고맙소.

둘의 이러한 대화를 화가가 그림으로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아마도 등 뒤에 비수를 쥐고 앞에서는 웃는 인피면구를 쓰고 있지만 실제 얼굴은 살기 어린 모습을 띤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

게다가 지금 둘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을 내뱉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술을 따르지도, 마시지도 않고 있었다.

단지 말을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런 광경은 참으로 섬뜩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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