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49.
이진구의 명은 다한 것이 아니었다. 기(氣)가 일시적으로 막혀 쓰러지긴 했으나 다음 날 오후쯤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몸은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침착하자, 이진구야. 넌 지혜롭지 않더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 난 할 수 있어.’
그는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침착하게 생각했다.
‘그래, 일단 돌을 걷어내 보도록 하자.’
칠흑 같은 어둠이 동굴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이진구는 동굴 벽을 짚으며 더듬더듬 입구 쪽으로 향했다. 작은 돌이 발에 걸렸고 그 돌을 넘어서자 점점 큰 돌이 만져졌다. 그는 힘을 사용하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려보았다.
“헉헉.”
하지만 어제의 후유증으로 내력은 모여들 기미가 없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돌을 걷어낸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어제 표영에게 얻어맞아 근육이 뭉치고 멍들어 있었기에 힘을 쓰기도 쉽지 않았다.
‘때려죽일 놈! 내 이곳에서 나가면 천 배 만 배로 복수해 주리라.’
구지경외자를 떠올리자 분노가 힘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갑자기 힘을 낸 그는 돌을 하나둘 걷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심장이 몇을 듯한 충격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사람 대여섯 명을 붙여놓은 듯한 크기의 거대한 바위들이 꽉 밀착된 채 박혀 있었던 것이다. 절망이 온몸을 비틀어 버렸다.
‘흑흑흑… 이런, 씨팔! 흑흑흑…….’
욕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는 눈물을 뿌리며 바위를 밀어보기도 하고 발로 차보기도 하다가 끝내 절망으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동굴 생활 3일째.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이진구에게 남은 희망은 외부로부터의 도움뿐이었다. 그는 산행을 하는 사람이나 약초를 캐는 노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구조대를 보내주길 간절히 희망했다.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이 갇혔습니다. 살려주세요-.”
동굴 입구에 입을 바짝 대고 소리 지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하지만 목이 터져라 외쳐 보았으나 밖에서는 들리지 않는지, 아니면 지나는 사람이 없었는지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흑흑흑, 살려주세요…….”
입구에 자리한 바위를 붙들며 이진구는 서서히 주저앉았고 지친 심신으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동굴 생활 4일째.
이날도 이진구의 일과는 그전 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저 온 힘을 다해 구조 요청을 하는 것뿐.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역시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눈물을 그렇게 흘리고도 또 눈물이 나왔다. 눈물 범벅이 된 채 외치길 얼마나 했을까. 급기야 이젠 목이 쉬어버리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목이 터져라 외쳐 대니 제아무리 대단한 목청을 지녔다 해도 목이 버터낼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리라. 이제 그의 외침은 아무리 질러대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허어어어… 허어어어…….”
자신은 분명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지만 정작 나오는 소리는 ‘허어어어’일 뿐이었다. 그는 또다시 좌절했고 기력이 다해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진구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노력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의 구조를 바라는 외침을 들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표영이었다. 표영은 행여나 살아서 구조를 요청하지나 않을까, 그 자리에서 계속 머물면서 동굴 안쪽의 기척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삼 일째 되는 날 표영은 희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건 아주 미세하게 들렸지만 표영은 이진구의 ‘살려주세요’라는 외침임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살아 있었구먼, 하하하.”
표영은 기쁜 마음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동굴 생활 5일째.
목까지 쉬어버린 이진구에게 남은 희망은 아무것도 없었다. 칠흑 같은 동굴 안에서 멍하니 누운 이진구는 서글픔이 밀려들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오직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배고픔도 잊고 외쳤건만 그 희망도 끊어진 이때 목마름과 배고픔은 그를 더욱 서럽게 만들었다. 양식도 없는 상황에서 이진구는 문득 신(神)을 떠올렸다. 이제껏 신의 존재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그였으나 의지할 데라곤 없는 이 마당에 남은 건 오직 하늘뿐이었다. 인간이란 나약하기 그지없어서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라야 신을 찾는 몰지각한 면을 보이곤 한다. 그는 벌떡 일어나 하늘을 향해 기원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늘이시여, 도우소서. 저는 개방에서 지타주로 있으면서 나름대로 개방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또한 별호를 백결서생이라고 불리울 만큼 깔끔하게 생활했습니다. 그걸 유지하기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답니다. 제가 죽는 것은 이 세상이 큰 인재를 잃는 것입니다. 부디 하늘은 저를 도우시어 이 어려운 난국을 벗어나도록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흑흑흑, 저는 어릴 적부터 총명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의 기원의 소리는 인격만큼이나 모자란 구석이 철철 넘쳤다. 구원을 바란다고 하면서도 순 자기 자랑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었다. 그 어떤 신이 있어 그를 구원할 마음이 들겠는가. 하지만 그의 기원은 하루 온종일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동굴 생활 6일째.
어제 하루 내내 기원을 올렸으나 결국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한 이진구는 부질없는 짓이라며 포기했다. 과거 표영의 모친 화연실이 5천 번의 기원을 올려 응답받았던 것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작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육 일째에 이르자 더 이상 배고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속절없이 굶어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먹을 것을 찾아야 한다.’
그가 기대한 것은 동굴에 사는 쥐나 박쥐였다. 사실 4일째가 되면서 찍찍거리는 소리를 듣고 언젠가는 양식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원래 쥐나 곤충들은 자연 재해에 대단히 민감해 폭풍우가 몰아치거나 지진이 날 것 같으면 제일 먼저 대비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동굴 봉쇄는 벼락을 맞은 터라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혀 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진구에겐 불행 중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진구는 일단 박쥐를 잡았다. 쉽게 들쥐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나중에 힘이 빠지면 그때가선 영영 박쥐를 잡을 수 없을 것이기에 먼저 박쥐를 택한 것이었다. 어렵사리 박쥐 열 마리를 잡은 이진구는 박쥐를 매만지며 부르르 떨었다.
“흑흑흑…….”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가 누구인가, 백결서생이라 불리며 청결함에 있어서는 비교 대상이 없을 만큼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는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몰락한 것이 서럽기만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울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박쥐를 쥐고 입으로 가져갔다.
으드득.
“흑흑흑, 내 인생아. 아적아적… 흑흑흑… 어째서 내가 이 지경이… 아적아적… 되었단 말인가.”
그는 씹어 먹으면서도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그날 이진구는 박쥐 7마리를 먹어치웠다. 사실 이 일은 그가 몰라서 그렇지 또 다른 즐거움인지도 모른다. 그가 즐겨먹는 모기 눈알이 박쥐의 몸속에 들어 있으니 그로선 박쥐뿐만아니라 모기 눈알까지 먹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하늘은 그가 모기 눈알을 간절히 먹길 원하자 동굴에 갇히게 하여 싱싱한 모기 눈알을 먹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동굴 생활 12일째.
동굴 안에 있는 쥐와 박쥐는 10일째가 되어 씨가 말랐다. 이제 그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목마름이었다. 그동안은 쥐와 박쥐의 피를 마심으로써 어느 정도 목마름을 해소했지만 이젠 그마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도저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 떠올랐다.
“그건 안 돼… 절대로 그럴 순 없어……. 사람이 어찌 그런 일을…….”
그가 떠올린 것은 자신의 오줌을 받아 먹는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도리질하며 부인했지만 그 외엔 실질적으로 다른 길이 없었다.
“절대 나는 먹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야!”
그는 이를 악물고 갈증을 참고 또 참았다.
동굴 생활 13일째.
대(大)자로 드러누운 이진구는 웃고 있었다. 그의 입에선 연신 실실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의 입가엔 마시다 만 오줌 물이 촉촉이 적셔져 있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던 그의 결심은 하루를 넘기지 못한 것이다.
“흐흐흐… 그래도 먹을 만한걸. 다른 사람 것이라면 난 죽어도 먹지 않았을 거야. 이건 내 몸 안에 들어 있던 거잖아. 나온 것을 다시 내 몸 안으로 집어넣은 것뿐이라구. 흐흐흐흐…….”
이진구. 그는 진정 참다운 거지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껴서 먹어야 되겠어. 한없이 나올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흐흐흐흐.”
동굴 생활 15일째.
간신히 소변으로 목마름은 해결되었지만 그것으로 생명을 지속하긴 힘든 노릇이었다. 어느덧 이진구의 양손에는 가죽신발이 들려 있었다. 그는 과거에 들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금광에서 일하던 광부가 글쎄 거의 20일 만에 구출되었다지 뭔가. 그는 자기 소변도 먹고 게다가 가죽 신발까지 먹고 버텄다더군 대단한 사람이야.”
예전에 이 말을 들었을 때 비웃음을 지었던 이진구였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그는 자신이 가죽 신발을 신고 다닌 것에 진정으로 감사했다.
“비싸게 주고 산 것이라 맛도 기가 막힐 거야.”
그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가죽신을 입에 넣고 뜯었다. 질기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앞부분을 자근자근 씹으며 누글누글해질 때까지 씹고 또 씹었다. 예상했던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합리화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
‘원래 몸에 좋은 것은 몸에 쓰다고 했지 않던가. 흐흐흐.’
그는 이날 가죽 신발 하나의 절반을 씹어먹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정상적인 음식이 아닌 가죽 신발인지라 몸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며 소화 장애가 일어나고 만 것이다.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뒤틀리는 고통을 겪으며 온 동굴을 구르고 다녔다. 진정 몸에 좋은 것은 입에만 쓸 뿐 몸에는 좋으나 가죽 신발은 입에도 쓰고 위장도 쓰라리게 만들었다.
동굴 생활 18일째.
아쉽지만 가죽 신발조차 이젠 다 떨어지고 없었다. 가죽 신발에 위(胃)가 적응한 듯싶자 어느새 다 먹어치우고 만 것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최후의 보루인 큰 것(?)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동안 고이고이 모셔둔 큰 것들은 동굴 한쪽 구석에서 풀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설마 저것들마저 먹지야 않겠지라고 생각했건만 이제 드디어 때가 오고 만 것이다.
“안 돼, 안 돼… 이것만은 안 돼……!”
그의 절규는 처절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마음은 서서히 먹을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맞아. 이것들도 모두 내 몸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냐. 내가 오줌도 먹었는데 이것도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구.’
한쪽에선 반대 의견이 들고 일어섰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을지언정 절대… 절대 안 된다!’
‘아니야, 괜찮아. 목숨은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거야. 지금의 고난을 참고 이기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야.’
‘안 돼, 안 돼… 안∼돼∼ 안 돼… 돼… 돼… 돼……. 그래, 되는 거야.’
이렇게 그의 생각은 결국 된다는 쪽으로 온전히 돌아서고야 말았다. 그날 이진구는 눈물을 흘리며 큰 것을 우적우적 먹어댔다. 이제 그의 모습은 표영보다 더한 거지꼴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