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5장 (46/199)

 # 45

45.

송비와 두철심은 언덕배기를 넘어 뒷산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목과 동료들에게 도착했다. 일각두와 양조포는 이제까지의 상황을 다 듣고 울화통이 치밀었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들! 나무에 매달린 녀석 하나를 끌고 오지 못했단 말이냐? 가서 뒈져라, 뒈져!”

일각두는 두 부하를 인정사정없이 패버렸다. 아까까지 신나게 표영을 두들겨 팼던 송비와 두철심은 반대로 신나게 얻어맞는 입장이 되었다. 방금 전 표영을 때리기까지 어찌 그들이 이런 지경에 처할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퍼퍼퍼퍽- 퍽퍽-

“죽어, 새꺄∼”

각두파 두목 일각두가 더욱 열받은 것은 조포파의 두목 양조포와 핵심을 이루는 친위대원들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완전히 체면 구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일각두는 양조포와 그 부하들이 민망해할 지경까지 팬 후 비로소 손을 멈추었다.

“이 못난 놈들 같으니라구.”

옆에 있던 양조포는 괜히 시간만 끌어서는 좋지 않을 것 같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거지 놈이 꽤나 끈질긴 구석이 있는 모양이니 사람을 좀 더 여럿 보내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둘은 각기 대원들 중에서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놈들을 대여섯 명 정도 추렸다.

“정 안 떨어지거든 칼로 토막을 내든 살만 도려내서 오든 좌우지간 데리고 와.”

“네.”

떡대가 좋은 놈들이 씩씩대며 사명을 받들고 막 떠나려 할 때였다.

“어이, 건달들. 거기들 모여서 무슨 작당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를 토막 내주겠다고?”

갑작스런 말에 모두는 소리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그들이 찾는 구지경외자 표영이었다.

“어라,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

일각두와 양조포는 의아함에 송비와 두철심을 찾았다.

“야, 새끼야! 저렇게 멀쩡하게 나타났는데 뭣이 어쩌구저째?! 나무에서 떨어지질 않아?! 이놈들이 나를 물로 보는 거냐! 가 죽어, 죽어∼!”

퍼퍽- 퍼퍼퍽-

다시 송비와 두철심은 얻어터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마음만 답답할 뿐이었다.

‘어떻게 저놈이…….’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구지경외자를 어서 잡아야 한다는 생각도 잊은 채 패던 일각두는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개운한 듯 두 팔을 깍지 끼고 기지개를 켰다.

“어쨌든… 구지경외자가 제 발로 찾아왔으니 우리 수고는 던 셈이군.”

표영은 느긋하게 다가와 7장여(22미터 정도) 정도 거리를 두고 말했다.

“오늘 날짜로 이 지역 양아치들은 모두 취직하도록 한다.”

취직이라는 말은 둘째 치고 표영의 발언 중 양아치라는 말은 두 조직원들의 심사를 건드렸다.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양아치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야, 자식아! 양아치라니, 엄연히 우리는 각두파라는 이름이 있는데 무슨 망발이냐! 콱 이걸 그냥 입을 찢어놓을까 보다.”

“차가운 땅속에 파묻혀 보아야만 이 세상이 얼마나 따뜻한 곳이었는지를 느낄 셈이냐.”

“저걸 그냥 내장을 꺼내 줄넘기 해버릴까 보다. 조포파가 물로 보이냐?”

“입을 곱게 놀리지 않는다면 횟감으로 변신할 줄 알아라.”

온갖 양아치들의 수준에서나 나올 법한 험한 말들이 일거에 쏟아졌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런 말에 흔들릴 표영이 아니잖은가.

“허허, 고놈들… 귀엽긴. 각두파라 이거냐. 각두파라… 각두파. 그럼 깍두기 녀석들이구먼. 에라, 이 깍두기들아.”

쿠궁! 깍두기!!

깍두기라는 말에 각두파 두목 일각두의 두 눈은 실핏줄이 일어서며 당장에라도 터질 것같이 변해 버렸다. 더불어 주위에 있는 각두파의 조직원들과 조포파의 두목과 대원들도 모두 긴장에 휩싸였다.

깍두기! 이 말은 일각두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깍두기라는 단어는 각두파에게 있어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로 등록된 지 오래였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원망해선 안 되는 일이지만 왜 하필이면 부모님이 자신의 이름을 각두(角頭)라고 지었는지 일각두로서는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아무리 처음 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네모나게 각졌다기로서니 각두라고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사실 그 부모가 각두라고 이름을 정한 것은 네모난 얼굴처럼 항상 바르고 정돈된 삶을 살라는 좋은 뜻으로 지은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유년기 때 놀림을 받은 일각두는 삐뚤어진 길을 걸어갔고 지금에 이르러 각두파의 두목이 된 것이었다.

“까, 깍두기라니… 이 거지새리가 짧은 명을 더욱 재촉하는구나.”

바르르 떠는 일각두는 분노 수치가 최대치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표영은 유들유들하기 그지없었다.

“거지라… 후후, 좋은 말이지. 계속해 봐. 난 그 말을 들을 때가 제일 행복하더라. 너도 깍두기가 어울리는데 뭘 그래. 좋으면서 괜히 그러는 거지.”

표영이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런… 개자식을……. 애들아, 쳐라!”

각두파는 물론이거니와 조포파의 조직원들까지 100여 명에 이르는 졸개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때였다.

“잠깐!”

표영이 오른손을 번쩍 내뻗으며 일갈했다. 벼락을 치듯 큰 소리인데다가 묘하게 마음을 움직인 터라 모두는 일순 주춤거리며 멈춰 섰다. 표영이 천음조화를 시전해 외친 탓이었다.

아직 부족한 천음조화였지만 이런 양아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두목들은 움직이지 않고 부하들만 보내는 것이냐. 그건 좀 비겁한걸. 네놈들이 부하를 보낸다면 나도 내 부하들을 상대하게 해주마.”

일각두와 양조포는 혹시 개방의 고수들이 동원된 것은 아닌가 하여 흠칫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부인했다. 이진구 님은 철저하기 이를 데 없고 한 번도 자신들을 버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후훗, 네놈에게도 부하들이 있었단 말이냐.”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로군. 그래, 부하들은 어디에 있느냐?”

표영이 씨익 하고 웃었다.

“좀 많은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모두 나와라.”

“킬킬킬, 죽을 놈이 허풍은… 허거걱?!”

일각두는 킬킬대다 말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렸다. 엄청난 광경이 목격된 것이다. 표영이 ‘모두 나와라’라는 말을 외치기 무섭게 사방팔방에서 시키먼 그림자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으허헉!”

“이건 뭐냐?!”

“늑대다. 늑대 떼야!”

사방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어두운 밤중에 보는 것이라 재빠른 몸 동작과 떼지어 등장한 광경은 흡사 늑대 떼를 연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나타난 짐승들은 사실 개 떼였다. 대략 그 숫자는 1,000여 마리를 상회하고 있었다. 허운 지역에 있는 개라는 개는 모조리 동원된 것이 분명했다.

삽시간에 양아치들은 개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양아치들은 이런 상황에서 그저 호기만을 부릴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라. 야심한 밤중에 꿈틀대는 천여 마리의 개 떼들이 포위하고 있는 모습을.

아까까지 죽일 듯 외치던 일각두나 양조포는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구지경외자가 개들을 잘 다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장악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어떠냐, 내 부하들의 위용이. 한번 붙어볼 테냐?”

양아치들이 아무리 깡다구가 좋다고 해도 개와 혈전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건 이긴다고 해도 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는 싸움인 것이다. 게다가 개들을 다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도, 도대체… 어쩌자는 거냐?”

“개, 개를 돌려보내라. 오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

일각두와 양조포는 일단 이 순간을 모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타협안을 제시했다.

“흐흐흐… 그건 안 될 말이지. 이 개만도 못한 놈들에겐 개 이빨이 약이거든.”

표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각두의 진영에서 한 그림자가 튀어나오며 외쳤다.

“감히 거지 놈이 누굴 협박하는 것이냐!”

양아치들이라고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튀어나온 이는 각두파의 쌍도끼였다. 예전 패싸움을 벌었을 때 쌍도끼로 상대 진영을 누벼 공로를 세운 후 쌍도끼라는 별명이 붙은 무지막지한 건달이었다.

두목들과 모든 조직원들은 한 가닥 희망과 또 한 가닥 염려 속에 쌍도끼를 지켜보았다. 쌍도끼는 언제 빼들었는지 도끼날을 번뜩이며 표영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쌍도끼의 움직임은 표영의 손짓 한 번에 그 목적한 바를 잃고 말았다. 근처에 있던 오십여 마리의 개 떼들이 순식간에 쌍도끼에게 달려든 것이다.

월월.

으르릉.

워워- 웍-

용기를 내 뛰쳐나온 쌍도끼는 개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처참한 비명을 질러댔다. 도끼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지켜보는 양아치들은 등줄기에서 식은땀을 흘렸고 주먹을 입으로 꽉 물고 불안에 떨었다. 개중엔 쌍도끼처럼 뛰어나가려고 했던 녀석도 있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로 쌍도끼의 상황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으아악! 사람 살려!”

비명은 끊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괴성이 메아리쳤다.

“카아악∼!”

소름이 확 돋았다.

“우어어∼ 사람 살려! 잘못했어요. 으아악! 제발… 거긴 안 돼∼! 아악∼!”

다시 물리지 말아야 할 곳을 물린 것 같았다. 쌍도끼는 가슴 절절히 후회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객기 부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괜히 난 척하다가 이게 무슨 꼴이냐.’

양아치들은 날이 그다지 춥지 않은데도 보는 것만으로도 한기(寒氣)를 느꼈다. 처참한 비명이 계속 이어지자 별의 별 상상이 다 떠올랐다.

‘이러다 개들이 쌍도끼를 다 먹어치우는 것은 아닐까?’

‘쌍도끼는 앞으로 고자로 평생을 살겠지?’

‘불쌍한 놈.’

부질없는 용감이 얼마나 큰 화를 자초하는지를 절실히 보여주는 좋은 예었다. 표영은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 두 번 박수를 치는 것으로 신호를 보냈다.

짝짝.

이젠 됐다라는 뜻이었다. 표영의 박수 소리에 개들은 아쉬운 기색으로 쌍도끼를 흘낏거리면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모든 건달들은 손짓 한 번에 개들을 움직이고 박수 소리로 물러서게 하는 구지경외자의 신비스런 능력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개들이 물러선 뒤에 쌍도끼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건 더 이상 쌍도끼가 아니었다. 옷은 갈기갈기 찢기고 피를 뒤집어쓴 채 축 처져 있는 게 살아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부하들이 쌍도끼를 한쪽으로 끌어냈다.

“후후, 어떠냐? 아직도 한판 붙어볼 생각이 나느냐?”

일각두와 양조포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식은땀만 연신 흘릴 수밖에 없었다.

“조, 좋다. 오늘 일은 우리가 잘못했다. 이러면 됐지?”

일각두는 일단 후일을 도모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하지만 표영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후후, 그건 안 될 말이지.”

“그럼 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답답하다는 듯 버럭 양조포가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주위의 개들이 기분이 상했는지 으르렁거렸다.

으르르르- 르르르-

감히 견왕에게 큰 소리를 치다니 개들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중저음으로 짙게 깔리는 개 소리에 양조포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해 버렸다.

“흐흐흐, 아까도 이야기했다시피 앞으로 깍두기파와 양아치파는 해체하도록 한다. 더불어 건달 활동은 접고 모두 취직을 하도록 한다.”

쿠궁!

취직이라니……!

각두파와 조포파 일당들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이 일을 천직(天職)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다른 건 몰라도 그, 그건 절대 있을 수…….”

일각두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하지만 표영의 의지는 단호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모두 개 밥이 되고 싶은 거냐?”

표영이 말을 하면서 손을 중간 정도 치켜들자 모든 개들이 일제히 으르렁거리며 서너 발짝씩 포위망을 좁혔다. 한두 마리가 으르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1,000여 마리가 동시에 으르렁거리는 것이어서 그 소리는 심장과 폐부까지 저며 오는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급기야 양아치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서로 주위에 있는 건달들끼리 수군수군대는 것이 나름대로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무리들 중에 한건달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각두파의 행동대장인 일명 무대포라 불리우는 공환이었다.

“보자 보자 하니 이 거지새끼가 못하는 말이 없구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조직을 해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이제껏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맞이했지만 그때마다 단 한 번도 용기를 잃어본 적이 없었다!”

행동대장은 확실히 뭔가가 다른 모양이다. 그의 목소리엔 힘이 넘쳤고 모두의 마음 가득 담대함을 심어주고자 함이 역력했다. 두려움이란 마치 전염병과 같아서 순식간에 물들어 간다. 그럴 때 누군가가 패기 어린 말로 그 벽을 깨뜨려 준다면 상황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공환은 실전을 통해 깨달은 터였다.

“우리 모두 죽을 각오로 개 떼들과 싸우자!”

그의 용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뒤를 이어 나오는 더 큰 고함 소리가 있었으니 그건 일각두와 양조포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방금 말한 새끼 어떤 놈이야. 당장 나오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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