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31.
“어떻게…….”
아니나 다를까, 당운각의 모습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흑의를 걸친 네 명이 더 있었고 그 중앙에는 잿빛 무복을 차려입은 노인이 껄껄거리고 있었다. 그 노인은 특이하게도 흰 수염이 가슴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당운각이 중앙에 있는 잿빛 복장의 노인에게 공손히 말했다.
“가주님, 말씀드렸던 소협입니다.”
가주라고 불린 이는 바로 당가의 가주 당문천이었다.
“하하하, 반갑구나. 네가 전갈이 있는 곳을 알고 있다는 것이냐?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려무나.”
당운각이 표영에게 삼 일 후에 온다고 한 말은 마음을 놓게 하려는 수작일 뿐이었다. 그로선 당일 오후에 올 예정이었으나 혹시 거지 녀석이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솔직히 말하지 않았다. 아까 멱살을 잡고 위협한 것 때문에 겁먹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당운각은 표영에게 미세하게나마 특이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헤헤헤… 삼 일 후에 온다고 하시더니 이렇게 빨리 오셨네요?”
표영은 당황하는 기색을 떨쳐 내고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초조하기만 했다.
‘이들이 정녕 사부님의 원수들이라면 일이 정말 어렵게 되겠구나. 이들은 하나같이 내기가 충만하고 기도가 훌륭하지 않은가. 내가 아무리 힘을 기울인다고 해도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표영아, 정신 차려라.’
머리가 복잡해지며 생각에 몰두해 있을 때 당운각의 답변이 들렸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삼 일은 너무 길더구나. 마침 내가 모시고 있는 분께서 특별히 네게 영약을 준다고 말씀하시어 특별히 모시고 오게 되었다.”
“너무 고맙습니다요, 다들 바쁘실 텐데… 저희 때문에…….”
‘그래, 그냥 저들에게 오극전갈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저들이 주는 가짜 영약을 받는 걸로 마무리 짓도록 하자. 그럼 사부께서 나오시기 전에 이들을 데리고 가는 게 좋겠어. 얼굴을 보면 더욱 의심할 테니 말이야.’
생각을 정리한 표영이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어눌하게 말했다.
“헤헤, 그럼… 절 따라오세요.”
막 표영이 그들을 인도하려 할 때였다.
“형, 어디 가는 거야?”
엽지혼이었다.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지만 어디 순순히 말을 들을 만한 상태이던가. 표영은 황급히 돌아서 엽지혼을 다시 안으로 데려가려 했다.
“내가 나오지 말라고 했지.”
하지만 엽지혼이 나오는 것을 본 당문천과 장로들의 얼굴색은 급변했고 순간 몸은 경직되었다.
“이, 이런… 엽지혼…….”
“어떻게…….”
모두들 놀랄 때 당운각이 가주에게 말했다.
“가주님, 정말 똑같이 닮지 않았습니까? 저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제야 가주 당문천이 잠에서 깬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정말이로군. 운각 장로가 말할 때 웃어넘겼지만 이렇게 닮았을 줄이야…….”
당문천은 그 뒤에 이어질 ‘소름이 끼칠 정도구나’라는 말은 생략했다. 만일 진짜 엽지혼이라면 호랑이 굴로 들어온 셈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엽지혼은 정녕 모두 다 덤빈다 해도 이길 승산이 없을 만큼 강력한 존재였던 것이다.
“하하하하, 하지만 그저 미친 노인일 뿐이군.”
엽지혼의 초점 없는 눈과 불안함에 좌우로 두리번거리는 모양에 모두는 긴장을 풀고 여유를 찾았다. 엽지혼은 사람들이 갑자기 주위에 여러 명이 나타나자 뭔지 모를 불안에 싸여 연신 눈을 깜박이고 표영의 옆에 붙었다. 그런 엽지혼을 표영은 팔로 감싸주었다.
“겁먹을 필요 없어. 이분들은 사실 좋은 분들이거든. 그러니 내가 이분들과 잠깐 다녀올 동안 넌 동굴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혼자 있기 싫어. 난 형이랑 같이 갈 거야.”
“안 돼. 너, 자꾸 말 안 들을 거야!”
표영의 다그침에 엽지혼의 얼굴은 울상이 되었다. 한 번만 더 뭐라고 하면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가주 당문천은 흐릿한 조소를 머금고 표영에게 말했다.
“함께 가도 된다. 뭐, 문제될 것이 있겠느냐. 하하하, 그리고 네가 만약 전갈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면 약속한 대로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주겠다.”
“거봐, 형, 저 할아버지가 같이 가도 된다고 하잖아.”
표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그저 아무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자, 그럼 어서 가보자꾸나.”
표영과 엽지혼이 앞서고 그 뒤를 당문천 등이 따랐다. 일 식경(30분) 정도가 지나 표영은 전에 오극전갈을 발견했던 곳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단번에 그곳에 이르지 않고 고의로 그 근처를 몇 바퀴 돌며 헤매는 척했다. 한참을 그렇게 헤매다가 표영이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바로 거기였지.”
따르던 당가 일행은 답답했지만 좀 모자란 녀석이라고 여기고 속으로만 궁시렁거렸다.
‘이런 머저리 같은 녀석을 봤나. 이곳에 꽤 오랫동안 살았을 것 같은데 이렇게 헤매다니 오극전갈을 찾기만 하면 네놈의 숨통을 끊어주마.’
작은 언덕을 넘어 표영은 오극전갈이 살고 있는 곳으로 옳게 인도했다.
“바로 이곳입니다요.”
가주 당문천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후 서서히 접근했다. 풀이 우거진 곳을 기척을 죽이고 접근하자 작은 흙 밭이 보였고 그 중앙에 조그만 구멍이 있었다.
‘이곳이군.’
당문천이 장로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세 장로가 품에서 하얀 분말 가루를 구멍의 주변에 뿌리고 점점 뒤로 물러서며 멀리까지 가루를 뿌렸다. 분말가루는 독물을 유인하는 독인분(毒引粉)이었다. 어떤 독물이든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근거지로 돌아가려는 본성이 있다. 당가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분말을 따라 전갈이 나오면 덮칠 것이고 전갈은 본능적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나오게 돼 결국은 잡히게 될 것이다. 구멍으로부터 10여 장 부근에 당가인들은 특수하게 만들어진 장갑을 끼고 몸을 숨겼다.
하지만 그리 쉽게 오극전갈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거의 반 시진(1시간)이 지나는데도 불구하고 나올 기미는 없었다. 시간이 길어지자 엽지혼은 몸이 근질근질한 게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마 다들 긴장된 낯빛을 하고 있는지라 엽지혼은 자신도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한계를 맞이했다.
“형, 우리 그만 돌아가자. 너무 재미없어.”
“쉿! 조용히 하고 있어.”
“어서 가자, 응? 가자구.”
초긴장 상태에 있던 당문천은 심사가 뒤틀리며 살기가 일었다.
‘저것들 보게나, 안 되겠군. 전갈을 잡은 뒤에 죽이려고 했지만 스스로 명을 재촉하니 먼저 죽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어차피 오극전갈을 얻은 것은 비밀로 해야 하니 말이야.’
가주 당문천이 번쩍 손을 들자 장로들의 시선이 쏠렸다. 당문천은 손을 내리며 엽지혼과 표영을 가리킨 후에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살인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건 장로들의 눈에만 띈 것이 아니라 표영의 눈에도 띄었다. 표영이 놀라 장로들을 바라보니 눈에 살기가 번득거렸고 그중 당운각은 이미 검을 뽑아 들었다.
‘이런 제길.’
표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들과 겨루게 되면 마땅히 죽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맥없이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초조하고 분노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표영의 눈에 서서히 기어나오는 오극전갈이 보였다.
‘오냐, 나쁜 놈들. 내 너희들이 원하는 전갈을 찢어 죽여주마.’
마음에 끓어오르는 혈기를 주체지 못하고 표영은 벌떡 일어나 오극전갈을 향해 달렸다. 당가인들은 급작스럽게 거지 놈이 달려가자 그곳을 바라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극전갈이 나타난 것이다. 다섯 가지 색을 뒤집어쓴 전갈은 화려한 모습으로 서서히 분말 가루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표영은 금나수법인 구반수(狗般手)를 시전하며 오극전갈을 집어 들었다.
“왜 우릴 죽이려고 하는 거지? 우린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잖느냐. 나는 전갈을 죽여 버리고 말겠다.”
갑자기 똑똑해져 버린 것 같은 말투에 당문천이 분노에 찬 음성으로 외쳤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아! 어서 내려놓지 못해!!”
죽은 전갈은 살아 있는 상태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가치는 보잘 것 없어진다. 어떻게든 산 채로 잡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귀중한 두 사람의 목숨보다 미물에 불과한 전갈의 목숨이 더 귀중하게 여겨졌다. 한편 엽지혼은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울상을 지었다.
“형, 왜 그래? 왜 싸우는 거야?”
“이런 거지 같은 놈들…….”
당문천은 화난 나머지 몸을 날려 엽지혼을 발길질로 날려 버렸다. 복부를 걷어채인 엽지혼은 실 끊어진 연처럼 나가떨어져 혼절해 버렸다.
“안 돼!”
표영은 사부가 쓰러지자 화가 치밀어 올라 두 손으로 전갈을 잡고 몸통을 뜯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전설의 오극전갈이 어쩌 그리 쉽게 당하겠는가.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가자 오극전갈의 꼬리가 쌔액 하고 뒤틀리며 표영의 손등을 찍었다.
“으악!”
예리한 바늘에 관통당한 듯 표영은 손을 부르르 떨며 비명을 질렀다. 삽시간에 몸이 붕 뜬 듯 마비 증상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표영은 진기를 운행하며 두 손에 가득 힘을 주었다. 위협을 느낀 오극전갈의 꼬리가 다시 쌔액 하고 움직이며 손목을 찔렸다. 전갈도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알았는지 혼신의 힘을 다한 독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표영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손목의 고통을 참고 끝내 전갈의 몸통을 뜯어버렸다.
으드득.
오극전갈의 등갑이 두 동강나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전설의 오극전갈이 죽어 버린 것이다. 이제까지의 상황은 설명은 길었지만 사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켜보던 당가의 가주와 장로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저, 저런…….’
잔뜩 오극전갈의 독을 이용해 제조할 독에 대해 생각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던 그들이었다.
“야이∼ 거지새끼야∼!”
분노에 치를 떨며 당문천이 고함쳤다. 하지만 표영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독이 퍼졌는지 온몸의 혈맥이 팽창하며 부풀어 오르고 있는 데다가 얼굴과 피부색은 노랗게 되었다가 파랗게 되었다가 붉게 변하며 오색의 변화를 띠곤 덜덜 떨며 서서히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그런 모습은 극히 공포스러워 독을 다루는 당가인들조차 치가 떨리는 장면이었다.
‘저렇게 독이 대단했더란 말인가.’
쓰러진 표영의 몸은 계속해서 부풀어 올랐고 간헐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문천은 정신을 수습하고 입맛을 쩝쩝 다신 후 말했다.
“오극전갈을 거두어라.”
비록 오극전갈이 죽어 별 쓸모 없이 되었지만 남은 효용을 최대한 살려볼 요량이었다.
장로 중 하나인 당운혁이 전갈을 갈무리한 후 분노한 기색으로 손을 들어 표영에게 일장을 먹이려 했다.
“이런 찢어 죽일 놈 같으니라구. 감히 우리 일을 방해하다니…….”
“멈춰라.”
가주 당문천이었다.
“저놈은 독에 당했으니 내버려 두어라. 지금 목숨을 끊어놓으면 편안히 죽음을 인도하는 것뿐이잖느냐. 오랫동안 독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칠공에서 피를 뿌리고 죽도록 두는 편이 낫다.”
죽이려 한 당운혁보다 더 잔인한 말이었다. 옆에 있던 당운각이 물었다.
“저 미친 영감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까?”
“클클클, 미친 영감탱이도 저대로 두어라. 미친놈이 무얼 알겠느냐. 오히려 동료가 죽은 것을 보고 더욱 미치게 만들어 주자꾸나. 클클클… 이만 가자.”
그의 말이 떨어지자 장로들은 가주를 따라 신형을 날려 산 아래로 내려갔다. 남은 것은 기절한 엽지혼과 고통에 겨워하는 표영뿐이었다.
“으으윽.”
표영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정신만은 어찌 된 것인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두 개의 굵은 기운이 강력하게 움직이며 내부를 휘젓고 다님을 느꼈다. 이제까지 운기행공을 하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강력한 기운이었다. 그 두 개의 힘이 소용돌이치며 몸을 지나칠 때마다 통증이 잦아들고 감각이 깨어남을 느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두 개의 힘은 바로 천년하수오와 묵각혈망의 내단의 기운이었다. 그 기운들은 외부에서 독이 침범하자 스스로 발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독을 제압하고 있었던 것이다. 간헐적으로 떨던 표영의 몸도 점점 그 시간이 길어졌고 반 시진(1시간)이 지났을 때는 어느덧 부풀었던 몸도 서서히 제 모습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피부색도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당가인들이 보았다면 죽이지 않은 것을 땅을 치고 통곡했으리라.
밤이 되었다. 정상으로 돌아온 표영은 사부의 몸을 주무르며 몸을 풀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엽지혼은 짙은 신음을 발할 뿐 깨어날 기색이 없었다.
‘강호로 나가면 그놈들을 찾아내 반드시 요절을 내고 말겠다.’
엽지혼이 깨어난 것은 다시 이틀이 지난 뒤였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엽지혼은 묵묵히 제자의 설명을 들었다.
“음… 당가 놈들이로구나.”
독물을 수집하는 문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름난 문파는 당가와 오독문 정도. 하지만 엽지혼은 그들의 생김새에 대한 설명을 듣자 대뜸 당가의 소행임을 알아보았다.
“당가는 어떤 놈들입니까, 사부님.”
“독과 암기를 사용하는 녀석들이야. 비열한 놈들이지. 하지만 그놈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천만다행이로구나. 내 정체를 알았다면 날 이 정도에서 끝내지는 않았을 게야.”
표영은 사부의 말을 들으면서 한마디 한마디를 마음에 새겼다. 그놈들은 반드시 손을 봐줘야 할 부류로 마음에 분류해 놓았다. 엽지혼은 씁쓸함을 떨쳐 버리듯 고개를 젓고는 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오극전갈의 독에 두 번이나 쏘이고도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났다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구나. 음… 이건 필시 전에 네가 복용한 도라지국의 효용일 것이다. 만독불침에 이른 건가. 하하하.”
엽지혼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만독불침에까지 이르렀다면 이건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인 것이다.
“잠깐 몸을 살펴보자꾸나.”
그는 손을 표영의 백회혈에 대고 몸을 점검했다. 처음에 살폈을 때보다 두 개의 기운이 더욱 강력해져 있었다.
‘오극전갈의 독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기가 더 증강되었구나.’
계속해서 엽지혼은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가 찾는 것은 오극전갈의 독 기운이었다. 과연 독이 상쇄된 것인지, 아니면 몸 어딘가에 잠복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자 함이었다. 그의 감각에 묘한 기운이 잡혔다. 그것은 단전 부근에 위치해 있었는데 탁한 기운이 응어리진 채 머물고 있었다.
‘독이 해소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독이 그저 머물기만 할 뿐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도 못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설마 이럴 수가……. 그래, 만독불침이 되었다면 몸에 독이 있더라도 크게 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이 녀석은 마음만 먹으면 독을 발출할 수도 있게 된 것이 아닌가. 그것도 오극전갈의 맹독을 말이야. 허허.’
손을 뗀 엽지혼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왜 그러시죠, 사부님.”
“허허, 녀석. 넌 이제 독존(毒尊)이 돼버리고 말았구나. 당가 놈들이나 오독문 따위는 네겐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 버렸단 말이다.”
“네? 독존이라구요?”
“그래, 바로 독존이 돼 버린 것이야. 하하하.”